읽고본느낌

교사도 학교가 두렵다

샌. 2017. 12. 8. 11:43

제목에 끌려서 읽은 책이다. 교직에 있었을 때 나도 그랬기 때문이다. 다른 무엇보다 교실에 들어가는 게 싫었다. 수업 시작 종소리가 저승사자의 호출 소리로 들릴 때가 많았다. 만족한 수업은 가물에 콩 나듯 했다.

 

수업 붕괴나 학교 폭력은 이제 보편적 현상이 되었다. 학교가 교육의 장으로서의 기능을 하고 있다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런 현장의 최일선에 서 있는 사람이 교사다. <교사도 학교가 두렵다>는 우리나라 학교 교육의 실태를 실사례 중심으로 고발하고 있다.

 

내가 교직을 힘들어했던 이유는 학교에서 교육의 의미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교사는 입시 시스템의 한 부속품일 뿐이었다. 선생으로서 열심히 한다는 게 누구를 위하여 일하는 건지 뻔히 보였다. 바쁘게 일하고 열심히 노력할수록 역설적으로 반교육적인 행태로 연결되었다. 그나마 과거에는 학생과 교사 사이에 커뮤니케이션이 되었다. 그러나 90년대 중반부터 교실은 급격히 변했다. 교사에게 적개심을 품거나 무관심인 학생이 다수를 차지했다. 학교는 내 자존감을 망가뜨리는 고문의 장소였다.

 

이젠 공공연히 학교의 교육 불가능성을 말한다. 더 이상 인간 성장으로서의 교육이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교육이란 낯선 것, 새로운 것을 만나 경이로움을 느끼는 연속적인 과정이다. 그러나 현실의 학교는 절망적이다. 지식 습득의 장, 계몽의 공간, 신분 상승의 도구, 다양한 재능을 발견하고 계발하는 곳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했다. 오히려 학교는 배움의 가치를 왜곡하고 폄하하기에 이르렀다.

 

지은이인 엄기호 선생은 현장을 살펴보며 교사와 학생, 교사와 학부모, 교사와 교사 관계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도 교육의 본질을 위해 헌신하는 교사들의 목소리도 담겨 있다. 그들이 왜 좌절할 수밖에 없는지 구조적인 문제도 지적한다. 교직 사회에도 경쟁과 실적주의가 들어와 교사들 사이에도 대화가 끊어졌다. 학교는 타인과의 만남이 아니라 침묵과 순응, 자기 단속의 공간이 되었다. 이런 문화를 깨지 않고서는 교육은 없다.

 

이 책을 읽으며 나 자신 반성하는 바가 많았다. 학생들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고 지레 포기했다. 그들의 눈높이로 내려가지 않았다. 바깥 시스템만 탓했다. 한 교사의 예가 있다. 자율학습에서 도망간 학생을 피시방에서 잡아와서 이유를 물었더니 "그냥요"라고 대답하더란다. 화가 나서 다그쳐도 대답은 역시 "그냥요" 였다. 1년 내내 다툼을 계속하다 그 교사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단다. 자신도 하루의 태반을 '그냥' 보내고 있고, 모든 일에 꼭 이유가 있어야 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나중에는 "선생님도 그냥 하는 게 많다. 그냥 살 때가 대부분이다. 가봐라"라고 말했다. 아무 벌칙이 없자 그 학생이 멈칫거리며 "그냥 가도 되냐?"고 묻더란다. 거기에 또 '그냥'이 있는 것이 우스워 "그래, 그냥 가"라고 말하며 서로 웃었단다.

 

학생의 "그냥요" 라는 말은 교사와 대화하기 싫다는 신호다. 그러면 교사는 화를 내고 닦달한다. 그러나 교사가 학생의 말을 그대로 인정하자 변화가 생겼다. 이것이 관계의 출발이라고 지은이는 설명한다. 가슴 찔리는 대목이다.

 

학교는 다시 가르침의 공간이 될 수 있을까? 타자와 만나지 않고는 교육은 불가능하다. 학교가 배움의 공간이 되기 위해서 어떤 교사가 필요한지 고민을 해야 한다. 지은이는 교육의 주체인 교사들의 자기 성찰을 우선 주문한다. 가르치는 사람이란 이야기를 통해 학생들에게 아직 그들이 생각해보지 못한 어떤 것을 제안하며 이야기를 이어가는 사람이다. 지금 학교에서 부족한 존재는 이런 이야기꾼으로서의 교사다. 그러나 입시 위주의 경쟁 시스템, 만연한 냉소주의 속에서 이런 교사가 버텨낼 수 있을까. 고개를 흔들 수밖에 없다. "학교는 망하더라도 가르치는 이가 아직 그곳에 있어야 하는 이유가 있다." 지은이의 마지막 말이다.

 

'읽고본느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  (0) 2017.12.19
위로받고 싶은 날들  (0) 2017.12.13
죽여주는 여자  (0) 2017.12.01
발레리안 : 천 개 행성의 도시  (0) 2017.11.26
지연된 정의  (0) 2017.1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