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위로받고 싶은 날들

샌. 2017. 12. 13. 09:46

다른 이의 살아온 궤적 흥미롭다. 나와는 완전히 다른 길을 산 사람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길이 있고, 내가 걸어온 길은 극히 일부일 뿐이다. 내가 가보지 못한 수많은 인생의 길이 있다. 남의 떡이 커 보이듯, 가 보지 못한 길이 더 멋있게 보인다.

 

<위로받고 싶은 날들>은 조재호 선생의 자전소설이다. 교직에서 명퇴를 하고 난 뒤 본인의 일생을 정리한 글이다. 나와 비슷한 시기를 살았고, 같은 교직에 있었던 분이라 더 관심이 갔다. 그러나 학교와 사회의 범생이였던 나와는 딴판이었다. 파란만장의 불꽃 같은 삶이 책 속에 있었다.

 

선생은 어두운 청소년기를 보냈다. 멋대로 살았을 수도 있고, 세상에 대한 저항을 온몸으로 했을 수도 있다.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 교실에는 소위 노는 아이들이 서너 명은 있었다. 그들은 나와는 다른 부류였고, 그들이 나에게 관심 없었듯 나 또한 그들 생활에는 관심이 없었다. 철이 덜 든 나는 늦게서야 다른 세계도 있음을 알게 되었다. 불량 행동만으로 그들을 쉽게 재단할 수 없음도 이해하게 되었다.

 

누구나 자기 인생을 관통하는 키워드가 있을 것이다. 선생은 '운동, 문학, 청소년'으로 정리한다. 이 책도 세 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엮어져 있다. 험한 중고등 시절을 보내고도 선생은 공주사대 국문과에 입학한다. 고3 때는 여자와 동거도 했다는데 재주가 비상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교사를 하면서는 교육 민주화 운동에 열정을 바친다. 여러 차례 해직도 당했다. <위로받고 싶은 날들>은 험한 시대를 헤쳐나간 한 인간의 고군분투기다.

 

아이들을 위한, 그리고 교육 민주화를 위한 선생의 노고에 감사와 존경을 보낸다. 이런 분을 보면 부끄럽다. 나도 같은 현장에 있었으면서 어정쩡한 방관자로 보냈다. 그때 투쟁의 일선에 섰던 사람들 중 일부는 암으로 세상을 일찍 떴다. 지금도 그런 소식이 가끔 들린다.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은 탓이다. 책을 읽고 제목을 보니 가슴이 뭉클해진다.

 

책 머리말에 이런 내용이 있다.

 

"나도 나에게 '장하다'는 말을 해 주고 싶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크고 작은 여러 일들을 견뎌냈다는 것. 상처 속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매일 조금식 꼼지락거리며 앞으로 나아갔다는 것. 그런 나에게 '장하다'는 위안의 말을 건네고 싶다."

 

선생은 이 책을 쓰면서 치유의 과정을 경험했을 것 같다. 글을 쓴다는 것, 더구나 자신의 과거를 드러내 보이는 자전소설을 쓴다는 것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사소할지라도 자신의 일생을 한 번 정리해 본다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위대한 사람만이 자서전을 쓰는 것은 아니다.

 

이 세상에는 사람 수 만큼이나 많은 삶이 있고, 그만큼의 아픔이 있다. 들어가 보면 모든 삶은 다 의미가 있고, 나름대로의 가치가 있다. 책 마지막은 이렇다.

 

"이제 나는 지금까지 타고 온 배에서 내려 생의 다른 언덕에 가 닿으려 한다. 다른 언덕. 내 인생의 또 하나의 모자이크 조각이 예비되어 있는 곳. 그 모자이크 조각 그림이 어떤 것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그곳에도 해가 뜨고 바람은 불고 사람들과의 어울림, 부대낌이 있을 것이다. 그러니 살아 보자. 천천히. 천천히 걸을수록 인생은 커지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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