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갑신년의 세 친구

샌. 2018. 1. 6. 13:21

전체적으로 역사에 무지하지만 그중에서도 우리나라의 19세기와 한일합방이 되는 20세기 초까지는 더욱 모른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 내가 배운 역사 교과서에서도 그리 비중 있게 다루어진 것 같지 않다. 우리의 어두운 부분이라 그냥 대충 넘어간 게 아닌가 싶다.

 

사실은 정확히 교육을 시켜 반면교사로 삼아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그저 매국노 몇 명을 비난하는 것만으로는 역사의 진전을 기대하기 힘들다. 지금의 한반도 상황이 구한말과 비슷하다는 주장이 자주 나온다. 정신을 똑바로 차릴 때다. 그런 점에서 그때의 상황에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

 

<갑신년의 세 친구>는 갑신정변을 주도한 김옥균, 홍영식, 박영효를 중심으로 당시의 급박했던 시대 상황을 그린 소설이다. 안소영 작가가 썼다. 1884년 12월 4일에 일어난 갑신정변은 삼일천하로 끝났다. 준비나 당일 거사 과정이 너무 어수룩했다. 근본적으로는 외세를 믿고 의존하려는 데 문제가 있었다. 내 힘이 바탕이 안 되면 성공하더라도 강자에 먹힐 수밖에 없다. 정변에 성공했더라도 개혁 과정이 순탄할 리가 없었다. 소설에 묘사된 대로 당시는 나라 꼬락서니가 말이 아니었다.

 

이 소설의 특이한 점은 고종을 개혁 군주로 그리고 있다는 점이다. 나라를 혁신하려 하지만 유생으로 대표되는 저항 세력에 부딪혀 좌절한다. 고종을 비롯한 왕실이 나라보다는 자기들의 기득권만 챙기려 한 것이 망국의 제일 큰 원인이라고 나는 알고 있다. 민비가 대표적이지만 고종도 우유부단한 왕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그런데 <갑신년의 세 친구>에서는 나름대로 흔들리는 나라를 바로 세우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많이 나온다.

 

세 친구는 정변 실패 후 각자 다른 길을 간다. 홍영식은 자기 뜻을 굽히지 않고 왕을 호위하다 현장에서 피살되며 지사의 모습을 보인다. 반면에 김옥균과 박영효는 일본으로 도망간다. 박영효는 합병 후 한국에 돌아와 후작 작위를 받고 고위직을 지내는 기회주의적 처신을 한다. 셋은 같은 뜻으로 의기투합했지만 뒤의 길은 완연히 달랐다.

 

청과 일본, 러시아의 각축장이었던 당시와 중국과 미국, 일본이 헤게모니를 다투는 지금의 상황이 너무 비슷하다. 남과 북으로 갈라져 주력 외세를 등에 업고 힘이 분산되고 있는 것도 닮았다. 과거의 역사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웠는가? 중국을 종주국으로 모신 수 천 년 누습된 적폐는 언제나 없어질까? 쉽고 재미있게 읽었지만 한편으로는 답답했던 <갑신년의 세 친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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