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액땜

샌. 2018. 2. 7. 20:43

근심 걱정 없는 집이 있을까, 어디를 둘러봐도 일가일우(一家一憂)다. 어느 집이나 한 가지 이상의 걱정거리를 가지고 있다. 팔자 편해 보이는 사람도 예외가 아니다. 없는 걱정도 만들어 내는 게 인간이다.

 

가끔 '근심이 없는 십오초'가 찾아오기도 한다. 그러면 무슨 재앙의 전조가 아닌지 두려워진다. 차라리 자잘한 근심 속에서 살아가는 게 마음 편하다. 작은 근심은 감사하며 받아들여야 한다. 큰 근심의 액땜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중국 속담이던가, 집안이 잘 나갈 때는 대문 위에 큰 돌을 올려놓고 지낸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조심하고 근신하며 지내야 한다는 뜻이리라. <보왕삼매론>도 이렇게 가르침을 주고 있다. "세상살이에 곤란함이 없기를 바라지 말라. 세상살이에 곤란함이 없으면 업신여기는 마음과 사치한 마음이 생기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근심과 곤란으로 세상을 살아가라' 하셨느니라."

 

우리네 삶의 현장은 풍랑이 휘몰아치는 거친 바다다. 언제 어느 방향에서 폭풍이 닥쳐올지 모른다. 뻐기고 자만하다가는 더 큰 파도를 뒤집어쓴다.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있다가는 갑판에 먼저 나뒹굴게 된다.

 

액땜은 '앞으로 닥쳐올 모질고 사나운 운수를 다른 고생으로 미리 대신한다'는 뜻이다. 그리되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재앙을 다른 고생으로 대신할 수 있다면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세상살이의 곤란함을 액땜의 차원으로 받아들인다면 한결 마음이 편해진다. 이 또한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다.

 

큰 경제적 손실을 본 지인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액땜했다고 생각하지 뭐. 아니었으면 다른 큰일이 생겼을지 모르잖아." 어찌할 수 없음에 대한 쓸쓸한 체념과 함께 자신을 다독이는 말이었다.

 

 

우리 모두는 연약한 존재다. 인생이 어떤 얼개로 짜여지는지 아무것도 모른다. 사물과 현상이 어떻게 연관이 되고 인연을 맺는지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열심히 애쓸 뿐, 결과는 하늘의 몫이다. "액땜했다고 생각할 거야." 좌절을 이겨내는 힘을 이 말은 가지고 있는지 모른다. 그렇다고 너무 자주 사용해서는 안 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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