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이세돌의 일주일

샌. 2018. 2. 11. 12:46

5,000년 바둑 역사에서 제일 충격적인 사건이 재작년에 있었던 인간과 알파고의 대결이었다. 결과는 인간 대표로 나선 이세돌 구단이 1:4로 졌다. 일부 컴퓨터 전문가를 제외하고는 누구도 예상 못한 쇼킹한 사건이었다.

 

바둑은 직관과 창의력이 중요하다. 컴퓨터가 따라올 수 없는 인간만의 능력이라고 누구나 믿었다. 컴퓨터가 아무리 빠른 계산력을 갖추어도 인간을 이기기는 힘들 것이라고 본 이유였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인간을 뛰어넘는 감각적인 수에서도 컴퓨터가 앞섰다.

 

바둑은 알파고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정석이나 포석, 반면 운영에서 고정관념이 깨지고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요사이 프로기사 대국을 보면 알파고의 수를 흉내 내기 바쁘다. 작년에는 더 진화한 알파고가 세계 1위인 커제 구단을 완파했다. 몇 달 전에는 다른 인공지능 프로그램에게 커제가 두 점을 깔고도 대마가 잡혀 돌을 던졌다. 이제 인간과의 실력 비교는 무의미해졌다.

 

<이세돌의 일주일>은 2016년 3월 9일부터 15일까지 벌어졌던 이세돌과 알파고의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를 취재한 정아람 기자가 당시의 분위기를 생생하게 전해주는 책이다. 이미 2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그때의 두근거렸고 놀라웠던 순간을 다시 되살려볼 수 있다.

 

이세돌 자신도 설마 컴퓨터에 지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컴퓨터는 '딥 러닝'이라는 학습법으로 이미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고 있었다. 구글 팀만 알고 있었다. 커제와 붙었던 '알파고 제로' 버전은 아예 인간의 기보는 무시하고 제 스스로 바둑의 원리를 터득해 신의 경지 가까이에 올랐다. 그것마저 며칠 걸리지 않았다. 앞으로 인공지능이 펼칠 미래가 무시무시하게 느껴진다.

 

책 뒷부분은 이세돌의 인간적인 면을 소개하고 있다. 이세돌은 솔직하고 반골적인 기질이 있어 매력적이다. 관행적인 한국기원의 운영 방식에 반기를 든 몇 사건이 있었다. 이런 것도 실력이 뒷받침되기에 호소력이 있지 않았나 싶다.

 

이세돌은 1995년 12세의 나이로 프로 입단에 성공한다. 함께 객지 생활을 하던 형 이상훈 구단이 군대에 가고 혼자 남게 된 이세돌은 과도한 스트레스로 말을 못 할 정도가 되었다. 이때 기관지 염증에 걸렸고 치료 시기를 놓쳐 기관지 신경이 마비되었다.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갈라진 목소리는 이렇게 아픈 과거를 가지고 있다.

 

이 책을 통해 승부사의 고독을 일부나마 바라볼 수 있다. 화려해 보이는 외양 뒤의 이면에는 뼈를 깎는 고통과 노력이 숨어 있는 것이다. 비록 컴퓨터에 졌어도 바둑의 장래는 어둡지 않다. 도전과 성취라는 투혼이 빛나는 한 인간 바둑의 드라마는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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