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노인과 바다

샌. 2018. 2. 6. 08:15

젊었을 때 읽었던 느낌은 어슴푸레하다. 고기와의 사투 장면만 남아 있는 걸 보니 그 부분이 제일 인상적이었던 것 같다. 이번에는 체념이랄까, 자연과 인생을 대하는 노인의 마음이 각별히 다가온다.

 

산티아고 노인에게 자연은 정복 대상이 아니라 친구며 형제다. 삶의 터전인 바다도 여성성을 가진 존재로 인식한다. 며칠 동안 청새치와 밀고 당기는 싸움을 벌이지만 바탕에는 생명에 대한 연민이 깔려 있다. 배로 찾아온 휘파람새나 거북을 대하는 마음도 마찬가지다. 삶의 현장으로서의 바다는 사납고 거칠지만 삶을 대하는 마음은 따스하다.

 

고기를 잡으러 홀로 바다로 나간 노인은 고독하다. 고독을 벗 삼아 치열하게 살아가야 하는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다. 큰 청새치를 잡았지만 귀항 도중에 상어의 습격으로 뼈만 남긴 채 빈손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결과에 관계없이 불굴의 의지와 용기로 세상과 맞섰기에 노인은 패배하지 않았다. 꼴찌 마라토너에게 더 큰 박수를 보내는 이유이기도 하다.

 

"난 그저 너무 멀리 나갔을 뿐이야." 노인의 이 말은 운명에 대한 긍정이고, 체념의 미라고 부를 수 있겠다. 모든 것을 잃었지만 결코 상어를 원망하지 않는다. 고기잡이를 나갔다가 돌아오는 과정을 한 편의 인생으로 비유해 볼 수도 있다. 소설 후반부에서 노인의 모습은 어디에도 집착하지 않는 초월한 경지를 보여준다.

 

헤밍웨이 하면 남성적이고 서구적인 이미지가 우선 떠오른다. 노인이 청새치를 잡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은 역동적이며 도전 정신으로 충만하다. 반면에 수확물을 다 앗기고 빈손이 되었지만, 어찌할 수 없음을 받아들이는 모습은 동양 정신에 가깝다. 도전과 순명은 서로 상치하는 것이 아니다. <노인과 바다>는 둘의 조화를 잘 그려내고 있다.

 

나이 들어서 읽는 <노인과 바다>는 아무래도 후자 쪽으로 기운다. "사람은 파멸 당할 수는 있을지언정 패배하진 않아." 싸우지 않았는데 패배란 없다. 그리고 미워할 대상 역시 어디에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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