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손자병법

샌. 2018. 1. 26. 11:06

중국 사상은 크게 두 줄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손자와 법가로 대표되는 실리 중심의 사상과, 유가와 묵가로 대표되는 도덕과 윤리 우선의 사상이다. 우리가 명분과 이념을 중시하는 후자의 영향을 받고 있다면, 중국인의 의식과 사유는 전자가 지배하고 있다. 그 사상의 원류가 손자라 할 수 있다.

 

임건순 선생이 쓴 <손자병법>에서는 손자를 단순한 병법 연구가가 아니라 중국의 중요한 사상가이자 철학자로 보고 있다. 손자를 모르고서는 중국인과 중국 문화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손자는 근원적 원리에 대한 통찰과 함께 노자, 한비자, 상앙 등 다른 사상가에게 영향을 준 사상사의 거목이었다. 많은 <손자병법> 해설서가 이 책을 실용서나 자기계발서로 소비하는 것에 대한 비판도 담고 있다.

 

손자는 살아남기 위한 전략적 사고와 지성, 혜안을 강조한다. 손자가 살았던 춘추시대를 감안하면 손자의 발상은 혁명에 가까웠다. 손자는 전쟁에서 이기기보다는 지키기를 우선한다. 백전백승이 아니라 백전불태(百戰不殆)다. 손자는 신전론자(愼戰論者)라고 해야 맞다.

 

<손자병법>을 이해하는 키워드는 세(勢)다. 세란 형(形)에 내재된 힘이다. 아군이 우세하게 싸우도록, 전세를 유리하게 만들도록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세가 필요하다. 싸우기 전에 세를 키우는 것이 우선이다. <손자병법>은 세를 우세하게 지키는 방법에 대한 책이라고도 볼 수 있다. 세 개념은 서예와 시, 그림 같은 동양의 예술과 미학 그리고 풍수지리와 같은 동양학으로 뻗어갔다. 동아시아의 문화와 문명을 다룰 때는 세를 빼놓고는 논의할 수 없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손자병법>이 적용되어 성공한 사례로 임 선생은 고구려를 들고 있다. 고구려의 전쟁 사례를 많이 볼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특징이다. 또 하나 노자를 손자 사상을 이어받는 사상가로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아예 노자를 손자의 제자라고 말하고, <도덕경>을 <노자병법>으로까지 명명한다.

 

의외로 <손자병법>과 <도덕경>은 공통되는 부분이 여럿 있다. 예를 들면, 불태(不殆)와 천장지구(天長地久), 신전론(愼戰論), 불신과 속임수, 무(無)와 현(玄), 변화, 상황논리, 존재감 없는 리더 등에서 그렇다. 지은이는 <도덕경>을 <손자병법>의 시적 표현이라고 말한다. 심지어는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를 용병의 원칙,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필요한 자세를 말하는 것이라고까지 한다. 지나치게 그런 방향으로 몰아가는 것은 아닌지 고개가 저어진다. 그러나 다음에 <도덕경>을 읽을 때는 손자의 관점도 참고해야겠다.

 

<손자병법>을 단순히 전쟁에서 이기는 방법을 가르치는 병법서로만 생각했는데 잘못된 것이었음을 알겠다. 인간에 대한 통찰을 얻게 하는 사상서이기도 하다. 실제 세상에 적용되는 아주 현실적인 가르침이다. <손자병법>에는 인간에 대한 불신이 바탕으로 깔려 있다. 세상을 살아가는 냉철한 지혜를 담고 있는 책이다.

 

 

'읽고본느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노인과 바다  (0) 2018.02.06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  (0) 2018.01.31
다시 태어나도 우리  (0) 2018.01.21
구원으로서의 글쓰기  (0) 2018.01.16
고대 로마제국 15,000킬로미터를 가다  (0) 2018.0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