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고향집 강아지

샌. 2011. 1. 18. 09:43


고향집에 동생이 엄마의 노리개라면서 강아지를 데려왔다. 강원도 홍천에 있는 동생집 앞에 버려진 새끼 강아지를 가져온 것이다. 하얀 색깔의 순하게 생긴 강아지였다.


그동안 고향집에서는 고양이를 길렀다. 8년 전에 역시 동생이 새끼 고양이를 데려다 놓았다. 이름이 '엔쥬‘였는데 어릴 때부터 사람과 함께 지내선지 사람을 무척 따랐다. 고향에 내려가면 야옹, 하면서 다가와 제 몸을 비벼댔다. 장난을 치다가 손이 할퀴기도 했다. 두꺼운 장갑을 끼고서 고양이를 약 올리며 노는 게 재미있었다. 좀 짓궂게 장난치면 금방 앙칼진 반응을 보였다.


엔쥬는 발정 때를 제외하고는 늘 집 주변에 있었다. 어머니가 부르면 어디선가 금방 나타났다. 어머니가 밭에 가면 밭에까지 따라다녔다. 그렇게 한 식구처럼 지내던 엔쥬가 2년 전에 사라졌다. 어디 갔다 곧 오겠지, 했으나 감감무소식이었다. 두 해나 소식이 없었으니 이젠 죽었을 것이라고 다들 생각했다.


그런데 엔쥬가 얼마 전에 집을 찾아왔다고 한다. 바싹 야윈 몸에 엉덩이 쪽은 털이 다 벗겨진 몰골이었는데 어머니를 보며 야옹 야옹, 연신 힘없이 울더란다. 음식과 고기를 갖다 주어도 하나도 먹지 못했다고 한다. 엔쥬는 죽을 때가 되어서 자신이 살았던 집으로 찾아온 것이다. 다음 날 아침에 보니 엔쥬는 집 앞 텃밭에서 죽어 있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가슴이 찡했다. 내 안에 있는 엔쥬의 기억 때문이 아니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생명이 가지는 슬픔과 외로움이 가슴을 울렸다. 고양이에게 인연의 끈은 어떤 것이었을까. 단순히 본능만으로 해석하기 어려운 어떤 갈망이 죽음을 앞두고 엔쥬를 옛 집으로 이끌지 않았을까.


고양이가 가고 개가 들어왔다. 나는 개를 좋아하지 않지만 이번에 들어온 강아지와는 친해질 것 같다. 저도 어떤 인연의 연결 고리가 닿아서 여기까지 찾아온 것인지 강아지의 눈망울이 깊고도 슬프다. 고양이가 가고 나서 바로 강아지가 들어왔다. 지금은 비닐하우스 안에서 임시로 지내고 있는데 이번 설에 동생이 개집을 만들어 오기로 했다. 아직은 짖지도 못하는 어린 나이지만 그래서 더욱 귀엽다. 옆에만 지나가면 관심을 가져 달라는 듯 꼬리를 치며 강중강중 뛴다.



고향의 겨울은 반갑다. 밖에는 칼바람 소리가 마당을 휩쓸고 지나간다. 추우니 이웃들도 두문불출이다. 뜨겁게 군불을 때놓고 하루 종일 방에서 빈둥거려도 눈치가 보이지 않는 것은 겨울의 특권이다. 해가 지면 잠자리에 들고 해가 떠야 일어난다. 고향에 내려와서 하루 평균 10시간은 잠을 잔다. 그래도 잠은 한없이 달콤하다. 아무 방해를 받지 않고 원 없이 게으름을 부려보는 곳이 겨울 고향집이다.


올 겨울 들어 가장 매서운 추위를 고향에서 맞는다. 세찬 바람에 뒷산의 나무들이 밤새 울었다. 아침에 나가니 수은주가 영하 20도 밑으로 떨어져 있다. 강추위는 방안에 들어박혀 지낼 명분을 주니 고맙다. 작은 동네에서 겨울이면 모두 자신의 방에 갇힌다. 겨울이면 골목에 더욱 인적이 끊어진다. 점심으로 순대에 소주를 했다. 어머니는 한 잔을, 나는 두 잔을 마셨다. 그리고 내 유년의 때, 동화 같은 시절 얘기를 들었다. 인고의 세월에 흘린 여인들의 눈물 무게는 얼마나 될까. 이후로 세상은 많이 변했다. 다만 달라지지 않은 것은 농촌은 여전히 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것이다. 고향에 오면 외면했던 그 눈물이 선명히 보인다.



고향을 떠나는 날은 쓸쓸하기 그지없다. 자식은 혼자 남은 노모가 안쓰러운데 떠나는 자식을 바라보는 노모의 마음은 그에 더할 것이다. 어머니의 눈가에 이슬이 맺혀 있다. 천륜은 이렇게도 질기고 강하다. 이 우울한 마음이 며칠은 갈 것이다. 그래도 아직은 어머니가 건강하시니 다행이고 고마운 일이다. 더 바라지 말자. 오늘부터 날씨가 풀린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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