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담배 연기처럼 / 신동엽

샌. 2010. 10. 21. 15:26

들길에 떠 가는 담배 연기처럼

내 그리움은 흩어져 갔네.


사랑하고 싶은 사람들은

많이 있었지만

멀리 놓고

나는 바라보기만

했었네.


들길에 떠 가는

담배 연기처럼

내 그리움은 흩어져 갔네.


위해주고 싶은 가족들은

많이 있었지만

어쩐 일인지?

멀리 놓고 생각만 하다

말았네.


아, 못다 한

이 안창에의 속상한

두레박질이여.


사랑해 주고 싶은 사람들은

많이 있었지만

하늘은 너무 빨리

나를 손짓했네.


언제이던가

이 들길 지나갈 길손이여


그대의 소매 속

향기로운 바람 드나들거든

아파 못다 한

어느 사내의 숨결이라고

가벼운 눈인사나,

보내다오.


- 담배 연기처럼 / 신동엽


가을이어선지 이 시가 더 애절하다. 온 몸으로 시대에 저항했던 시인은 서른아홉 아까운 나이에 세상을 떴다. 젊었을 때 생긴 간디스토마에서 끝내 회복되지 못했다. 이 시는 아마 시인의 삶 말년에 쓰였을 것이다. 죽음을 앞두고 쓴 시라 그리움과 회한으로 가득하다. 솔직하고 진솔하기에 더욱 공감이 된다.


작은 떠남을 준비하는 나도 마찬가지다. 더구나 큰 떠남이라면 어떠하겠는가. 사랑하고 싶은 사람 사랑하지도 못했고, 위해주고 싶은 가족 아껴주지도 못했다. 사랑해주고 싶은 사람도 있었지만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누구나 그럴 것이다. 더구나 시인은 너무 이른 나이였다. 시에는 삶에 대한 그리움과 아쉬움이 진하게 배어 있다.

 

가을은 떠남과 죽음을 사유하는 계절이다. 내 가는 것 아깝지 않으나 사랑해야 될 사람을 사랑하지 않은 죄는 지워지지 않을 것 같다. 바라보기만 했고, 멀리 놓고 생각하기만 했다. 어쩐 일이지? 우리는 모두 같은 나그네들이다. 길 떠나기 위해 신발을 맬 즈음이 되어야 아파하고 회한에 잠긴다. 엉뚱한 걸 사랑하느라 너무 바쁘기만 했다고, 그래서 진짜 사랑해야 할 것에는 무심했다고, 하늘이 손짓할 때에야 깨닫는다. 쓸쓸한 가을이 짙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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