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자유롭지만 고독하게 / 이문재

샌. 2022. 3. 5. 18:02

자유롭지만 고독하게

자유롭지만 조금 고독하게

 

어릿광대처럼 자유롭지만

망명 정치범처럼 고독하게

 

토요일 밤처럼 자유롭지만

휴가 마지막 날처럼 고독하게

 

여럿이 있을 때 조금 고독하고

혼자 있을 때 정말 자유롭게

 

혼자 자유로워도 죄스럽지 않고

여럿 속에서 고독해도 조금 자유롭게

 

자유롭지만 조금 고독하게

그리하여 자유에 지지 않게

고독하지만 조금 자유롭게

그리하여 고독에 지지 않게

 

나에 대하여

너에 대하여

자유롭지만 고독하게

그리하여 우리들에게

자유롭지만 조금 고독하게

 

- 자유롭지만 고독하게 / 이문재

 

 

자유와 고독, 어떻게 보면 서로 대척점에 선 말 같다. 그렇다면 둘을 잘 조화시키는 문제가 남는다. 그러나 조금만 살펴보아도 둘은 서로 분리할 수 없다. 고독만이 나를 자유롭게 한다. '자유롭지만 고독하게'가 아니라 '자유로워서 고독하게'가 맞지 않을까. 더 정확하게는 '고독해서 자유롭게'다.

 

흔히 하는 오해가 외로움과 고독을 동일시하는 것이다. 외로움은 갈증이고, 고독은 충만이다. 고독은 관계의 단절이 아니다. 관계에 아랑곳없이 하나의 세계로 우뚝 서는 것이다. 고독이 없는 자유는 없다.

 

민주주의 앞에 꼭 '자유'를 붙여야 한다고 하는 무리가 있다. 내가 볼 때 이들의 '자유'는 에고의 부르짖음이다. 자유는 내가 가진 기득권을 마음껏 누리는 것이 아니다. 나를 비움으로써  남을 채워주는 고독으로부터 나오는 자유가 진정한 자유가 아닐까. 내가 생각하는 자유와 고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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