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종이달

샌. 2022. 8. 25. 10:08

가쿠다 미쓰요(角田光代)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은행원 리카가 연하남 애인과 불장난을 하면서 고객 돈을 횡령하는 범죄의 늪에 빠지게 되는 줄거리인데, 돈에 지배당하며 살아가는 현대인의 불행을 그린 작품이다. 주인공인 리카 외에도 여러 친구들이 등장하는데 하나 같이 돈에 휘둘리는 군상들이다. 지리하고 우울한 삶을 소비로 만족하려 하지만 돈은 잠깐의 단맛을 줄 뿐 내면은 점점 황폐해져 간다. 기승전'돈'일 수밖에 없는, 무자비한 자본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가련한 인간의 모습이 슬프다.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모두가 행복하지 않다. 예외적으로 근검절약하면서 살아가는 유코도 마찬가지다. 돈에 휘둘리지 않겠다고 돈에서 멀어지려 하지만 그럴수록 돈의 위력 앞에서 무너진다. 돈을 마구 써대도 아껴도 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 소설에는 쇼핑중독에 걸린 여성들의 모습이 자주 나온다. 돈과 어떤 관계를 맺으며 살아야 할지를 작가는 묻는다.

 

가쿠다 미쓰요가 여성작가여서이겠지만 여성의 심리를 그려내는 데 탁월한 것 같다. 조곤조곤 속삭이듯 펼쳐 나가는 이야기 전개도 좋다. 다른 작품도 찾아서 읽어봐야겠다. <종이달>은 영화로도 만들어졌다고 한다. 소설의 느낌과 어떻게 다를지 궁금하다.

 

옮긴이의 설명으로는 옛날에 일본에서는 사진관에서 행복한 얼굴로 가족사진을 찍을 때 배경으로 종이달을 썼다고 한다. 종이달은 '가짜'이면서 '행복했던 한때'를 의미하는 말이다. 이 소설 내용과 잘 들어맞는 것 같다.

 

평범한 은행원이였던 리카는 우연히 대학생인 고타를 만나면서 삶이 180도로 변한다. 고타를 위해서라면 그녀의 씀씀이는 거침이 없다. 리카는 쾌락을 맛보지만 그것이 행복이었을까. 그때 리카의 기분을 작가는 '만능감(萬能感)'으로 표현한다. 어디든 갈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자유를 처음으로 손에 넣은 기분으로 리카는 어떤 죄책감이나 불안도 느끼지 않았다. 일상의 굴레에서의 해방을 리카는 엉뚱한 데서 찾았다. 그러나 리카 개인에 대한 비난보다는 인간에 대한 가련함이 앞선다. 마지막에는 태국으로 도피한 리카가 제발 붙잡히지 않기를 바랐다.

 

'일 - 수입(돈) - 소비'는 현대인의 생활 패턴이다. 여기에 별 의문을 품지 않는다. 부지런히 일 해서 돈 많이 벌고 멋지게 쓰고 싶은 게 현대인의 욕망이다. 그러나 무엇을 위한 일이고 소비인지는 묻지 않는다. 다람쥐 쳇바퀴를 열심히 굴릴 뿐이다. <종이달>은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이고 바르게 사는 것인지 돌아보게 한다. 해답은 각자 찾아야 할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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