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부러진 사다리

샌. 2022. 9. 6. 11:41

불평등이 인간에게 끼치는 폐해를 보여주는 책이다. 불평등의 거시적 원인이나 경제적 영향보다 개인적인 차원에서 인간 심리에 부정적으로 작용하는 요소들을 드러낸다. 부제가 '불평등은 어떻게 나를 조종하는가?'이다.

 

인간은 절대적 가난보다 상대적 빈곤감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 소유량보다는 남들과 비교했을 때의 내 위치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 미국을 비롯한 일부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사다리는 길어지고 중간에 부러지기까지 한 상태다. 점점 심해지는 양극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사회의 실상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좀 더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 지은이의 희망인 것 같다.

 

<부러진 사다리>는 미국의 심리학자인 키스 페인(Keith Payne)이 썼다. 책은 많은 심리 실험 사례와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불평등이 인간 심리에 미치는 폐단을 밝힌다. 불평등은 인간의 정치 성향, 수명, 신앙, 범죄, 인종 차별 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사람을 좌파로 기울게 하는 요인들 중에 부와 가난, 불평등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조사한 것도 흥미롭다. 선거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를 대변하는 정당을 지지하는 아이러니에 대해 지은이는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걸 미국 대선 투표 결과를 보여주며 주장한다. 분명한 것은 불평등과 사회적 양극화는 동시에 이념의 양극화를 낳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불평등이 심해지면서 반대 정당에 '아주 적대적인' 일반 미국인들의 비율이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고 한다. 응답자의 1/3 정도가 반대 정당 당원들은 잘못된 생각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국가의 안녕에 위협적인 존재라고 답했다. 정치적 양극화 현상은 미국과 같은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도 똑같이 나타나고 있다. 또한 가난과 불평등은 인간의 수명을 단축하고 종교에 의지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불평등의 중요 원인인 사다리 위와 아래의 임금 차이는 어떨까. 최고경영자는 일반 근로자의 몇 배를 벌어야 이상적일까? 조사한 결과를 보면 사람들은 불평등 수준을 대체로 과소평가한다. 사람들은 10배 정도라고 생각하지만 실제 미국에서는 350배 차이가 난다(2012년 기준). 사람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시나리오는 5배 정도 차이라는 조사가 있다. 이 응답에는 진보와 보수, 연령이나 교육 수준에 관계없이 비슷한 답변이 나왔다고 한다. 임금 수준의 극단적인 불평등은 직업 만족도나 팀의 실적을 떨어뜨린다. 인간의 행복은 가구의 실제 소득보다 소득의 불평등에 더 많이 좌우된다. 불평등은 불신을 낳고 사회 전체가 불행해진다.

 

불평등은 우리의 행동에 영향을 끼치고, 행동의 차이는 불평등을 더 심화시키는 악순환에 빠진다. 반면에 현재와 같은 시스템이라면 부유층은 선순환에 들어가서 계급사회가 될 가능성이 크다. 사태가 더 악화하는 걸 막자면 불평등을 줄이는 길로 나아가야 한다. 불평등을 줄이는 것은 사회적 사다리의 아래층을 올리고 위층을 내린다는 의미다. 최저 임금 인상, 무상교육 확대, 임원 연봉 상한선 제정, 노조 강화, 유급 육아 휴직 확대 등의 정책이 필요하다. 지은이는 불평등은 본질적으로 공중보건의 문제와 같다고 강조한다.

 

세상은 하루 아침에 변하지 않는다. 불평등이 깡그리 없어지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지나친 유토피아적 이상은 디스토피아적인 현실이 되기 쉽다. 따라서 한 걸음 한 걸음 불평등의 수위를 조절하는 정책이 긴요하다. 승자독식이 아니라 공정한 경쟁을 통해 사람들이 더 나은 삶으로 올라갈 수 있는 여지를 충분히 주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사회 시스템의 근간을 바꾸어야겠지만 지금 당장 우리들 개인이 할 일은 사회적 비교를 현명하게 선택하는 일이다. 비교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겪는 생활의 일부다. 잘못하면 상향 비교를 통해 분수에 넘치는 삶으로 끊임없이 내몰리게 된다. 비교를 멈출 수는 없지만 현명하게 해서 삶의 만족도를 높여야 한다.

 

두 번째는, 자신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성찰하는 것이다. 인생을 살면서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생각한다면 사다리를 오르는 일은 뒤로 처지게 되고 타인의 시선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게 된다.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한다면, 무의식적으로 남들과 자신을 비교하여 자신의 가치를 평가절하하는 패턴을 끊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인간의 본성과 행동은 지위의 사다리리와 깊숙이 뒤얽혀 있다. 우리 인간들이 불평등 속에서 번영하기 위해서는 사다리를 개조하는 수밖에 없다. 그 전에 불평등의 행동과학을 이해한다면 이 수직 세계에서 좀 더 품위 있게 사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지은이는 말한다. 행복한 세상을 위해 사회 시스템의 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동시에 자신의 내면을 살피는 작업도 게을리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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