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부탄, 행복의 비밀

샌. 2022. 9. 13. 10:38

"첫눈이 오면 학교나 일터로 가지 않고 집에서 가족과 함께 낭만을 즐긴다. 모든 공교육과 의료 서비스를 무상으로 제공한다. 아이를 낳으면 6개월 유급휴가를 받을 수 있고, 아이가 만 두 살이 될 때까지 근로시간을 하루 2시간 줄여준다. 전 국토의 70%를 숲으로 보전한다. 고을마다 며칠씩 전통 축제가 열린다."

 

<부탄, 행복의 비밀>의 첫머리에 나오는 글이다. 부탄은 면적이 39,000㎢(한반도의 1/3), 인구가 80만, 일인당 국민소득이 3,000달러 정도인 아시아의 가난한 소국이다. 부탄은 '가난하지만 행복한 나라'로 유명하다. 부탄은 국가 운영의 첫째 지표가 경제 성장이 아닌 행복이다. 그래서 국내총생산(GDP, Gross Domestic Product)이 아닌 국민총행복(GNH, Gross National Happiness)이 정책 수립의 우선순위가 되는 나라다.

 

이 책을 쓴 박진도 선생은 여러 차례 부탄을 방문하며 행복의 비밀을 우리나라에도 접목시키려 노력하고 있는 분이다. 책은 부탄의 국민총행복 정책에 대한 설명, 부탄의 현실, 부탄이 넘어야 할 과제 등 3부로 되어 있다.

 

부탄은 불교국가로 불교적 가치관이 지배하는 입헌군주국이다. 특이한 점은 왕이 스스로 절대권력을 내려놓고 민주주의 제도를 도입했다는 점이다. 세계사에서 전쟁이나 혁명 없이 이런 절차를 진행한 것은 부탄이 유일하다고 한다. 민주주의에 대한 강한 신념을 갖고 있던 4대 왕 지그메 싱기에 왕추크는 국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절대군주제를 입헌군주제로 바꾸고 51세에 스스로 왕좌에서 물러났다. 그때 국민들을 이렇게 설득했다고 한다. "미래의 부탄 왕들이 모두 좋은 왕이 될 것이라는 보증은 없다. 좋은 왕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왕도 있을 수 있다. 그런 왕이 내린 결단은 나라를 한 순간에 붕괴시킬지도 모른다. 국가는 왕보다 중요하다."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에서 부탄은 서양이나 서양의 가치관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나라들과 차이가 있다. 이는 부탄의 불교적 전통과 세계관을 떠나서는 이해할 수 없을 것 같다. GDP를 중시하는 선진국들도 국민의 교육과 건강, 행복에 신경을 쓴다. 그러나 GDP에 초점을 맞추면 교육은 노동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수단에 불과해진다. 한때 있었던 우리나라의 '교육인적자원부'라는 명칭이 이를 잘 말해준다. 그러나 부탄의 사고방식은 다르다. 한 관리의 말이다. "GDP를 지향하면 인간을 기계처럼 더 많이, 더 잘 생산하도록 만드는 정책이 나온다. 문화도 상품이 되고, 환경도 산업이 된다. 삶은 고단해지고 고통스러워진다. 우리는 부탄 사람들이 주변 사람들에게 더 관심을 갖고 자신의 인생을 의미 있게 보내고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우리는 그 바람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한다."

 

부탄이라고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니다. 나라가 빠른 속도로 개방되면서 서구의 소비문화와 물질문명의 공격을 받고 있다. 이농과 도시화, 빈부 격차, 개인주의 만연, 전통문화의 훼손 등 개발도상국가가 겪는 성장통이 시작되고 있다. 부탄 정부가 어떻게 현명하게 대처할지는 지켜볼 일이다. 부탄은 우리처럼 오로지 경제 성장 지상주의는 아니다. 박정희 시대를 돌아보면서 사회적 균형 발전의 아쉬움을 지적하는데, 부탄이 개발도상국들의 세계화에 새로운 모델이 되었으면 좋겠다.

 

작은 불교국가를 우리와 단순 비교하기는 무리가 있다. 하지만 너무 물질을 중시하고 정신을 경시하는 우리가 부탄을 통해서 배워야 할 점도 분명 있을 것이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성장이 아니라, 사회 시스템을 국민행복의 관점에서 새롭게 개조해야 한다. 지은이는 이렇게 제안한다.

 

첫째, 성장만을 좇는 '경제 성장 지상주의'에서 '국민총행복의 증진'으로 우리 사회의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둘째, '아직 행복하지 않은 사람'의 빵(기본적인 의식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분배와 재분배가 획기적으로 개선되어야 한다.

셋째, 의료 및 교육 등 기본적인 사회 서비스는 무상으로 제공되어야 한다.

넷째, 일과 여가의 균형이 필요하다. 부탄 정부는 국민들에게 하루 8시간 노동하고, 8시간 잠자고, 나머지 8시간은 가족이나 이웃과의 관계에 사용할 것을 권고한다. "우리가 일을 더 많이 하면 소득은 늘어나겠지만 행복을 해친다."

다섯째, 문화적 자긍심을 높여야 한다.

여섯째, 환경을 보전하고 기후 변화 시대에 대응해야 한다.

일곱째, 공동체 문화를 회복하고 사회적 유대를 강화해야 한다. 부탄에서는 가족, 이웃, 친구 사이의 사회적 유대와 안전망이 부탄의 행복을 지탱하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

여덟째, 굿 거버넌스를 구축해야 한다. 한국이 민주주의 모범국이라지만 2/3는 정부를 신뢰하지 않는다. 제도는 갖추어졌어도 내용에서는 낙제점이다.

아홉째, 사람들의 행복한 삶이 실현되는 현장인 지역사회를 복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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