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모든 요일의 여행

샌. 2022. 9. 23. 10:50

예전 책에

'여기서 행복할 것'

이라는 말을 써 두었더니

누군가 나에게 일러주었다.

 

'여기서 행복할 것'의 줄임말이

'여행'이라고.

 

나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 글을 만난 것만으로도 책을 든 본전은 뽑은 셈이다. 나에겐 '여행'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문장이면서, 사람마다 여행의 색깔이 다르다는 점도 다시 확인시켜 주었다. "각자의 여행엔 각자의 빛이 스며들 뿐이다." 지은이가 모든 여행의 끝에 내린 결론이란다. 분명 같은 곳으로 떠났지만 우리는 매번 다른 곳에 도착한다.

 

<모든 요일의 여행>은 카피라이터인 김민철 작가가 쓴 여행기다. 유명 관광지나 풍물을 소개하는 대신 여행지와 나와의 내면적인 만남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의 기록이다. 낯선 뒷골목, 우연히 만난 사람, 의외의 풍경이 주는 기쁨 등이 정감 있는 사진과 함께 지은이의 여행에 동참하게 한다. 뒤로 갈수록 글의 내용보다 필름 카메라로 찍었을 법한 감성적인 사진에 눈길이 오래 머문다.

 

나는 혼자서 떠난 여행이 없었다. 늘 여러 사람과 북적이며 함께 다니는 여행이었다. 여행이라기보다는 관광이라는 이름이 더 어울리겠다. 내 성격상 한 장소에서 느긋하게 쉬고 싶어도 끌려다니듯 일행의 꽁무니를 따라다닐 수밖에 없었다. 단체 여행에서 개인의 취향을 드러내면 타박을 받는다. 그러러면 혼자 다니지 뭣 하러 끼였느냐고, 맞는 말이다. 나는 지은이의 여행에 상상의 동반자가 되어 같이 걷는다. 나는 현실의 딜레마에서 자유롭지 못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책의 마지막 꼭지는 '망원동 여행'이다. 지은이가 살고 있는 망원동의 변화 과정을 안타까운 심정으로 전하면서 이렇게 적고 있다. 

 

"매일 더 부지런한 동네 여행자가 되자고 마음을 먹는다. 멀리 떠나는 것만이 여행은 아니니까. 멀리 여행을 떠나 비싼 수업료를 내고 배운 것은 결국 여행자의 마음가짐이니까. 그 마음가짐으로 내 고향을 여행해보자고 마음을 먹는다. 내 고향은 망원동인까. 내가 내 고향의 가장 충실한 여행자가 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의무인 것이다."

 

그렇다, 여행이 비행기 타고 외국으로 날아가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앞에 나온 말대로 '여행'은 '여기서 행복할 것'의 줄임말이 아니던가. 동네에서 가장 게으른 목련을 알고, 가장 부지런한 은행나무도 알고, 길고양이가 새끼 고양이 다섯을 낳은 소식도 듣고, 새롭게 피어나는 꽃 같은 이웃의 얼굴들도 알아가고, 이런 모든 것이 여행이 아니겠는가. 결국은 '우리 동네 여행자'가 되는 일, 어쩌면 내가 할 수 있는 일 역시 그뿐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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