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딸을 위한 시 / 마종하

샌. 2023. 3. 20. 10:53

한 시인이 딸에게 말했다

착한 사람도, 공부 잘하는 사람도 다 말고

관찰을 잘하는 사람이 되라고

겨울 창가의 양파는 어떻게 뿌리를 내리며

사람은 언제 웃고, 언제 우는지를

오늘은 학교에 가서

도시락을 안 싸온 아이가 누구인지를 살펴서

함께 나누어 먹으라고.

 

- 딸을 위한 시 / 마종하

 

 

지난 주말에 손주가 다녀갔다. 손주가 지하철을 탔는데 한 할아버지가 귀엽다면서 이것저것 말을 시키고 용돈까지 만 원을 주더라고 자랑했다. 할아버지가 마지막에 한 말이 공부 열심히 해서 꼭 1등을 해야 한다고 당부하더란다. 우리는 "지금이 어느 시댄데" 하면서 같이 웃었다.

 

구세대는 반공 이데올로기와 1등주의의 세뇌를 받으며 살아왔다. 다들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었지만 화석화된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우리 후손들에게 어떤 유산을 남겨줘야 하는지에 대한 성찰이나 고민이 부족하다.

 

딸을 위한 시인의 말이 가슴 뭉클하다. 무엇보다 세상을 '바로 볼' 줄 아는 사람이 되라는 의미가 아닐까. 타자를 배려하고 공감하는 능력이 없다면 과연 지식은 어떤 쓸모가 있을까. 학교 다닐 때 똑똑하고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고시 패스하고 판검사가 되어서 하는 행태는 무엇을 말하는 걸까. 자랑스런 검사 딸을 둔 친구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딸이 힘든 검사 노릇 그만두고 변호사를 개업할 의향이 있는 것 같다고. 변호사가 되면 몇 년 동안은 전관예우가 있으니 그때 돈을 왕창 모으면 된다고. 그러면 평생 먹고살 돈을 벌 수 있다고. 젊었을 때 사회 정의를 외치던 친구의 입에서 아무렇지 않게 나오는 '전관예우'라는 말이 놀라웠다. 예나 지금이나 착하고 인정 많은 친구인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