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위기의 한국 교육

샌. 2023. 6. 20. 10:22

일전에 지인으로부터 우리나라 교육 현실을 한탄하는 소리를 들었다. 지인의 딸이 초등학교 교사여서 학교 상황을 있는 그대로 들을 수 있는 모양이다. 교실 붕괴라는 말은 내가 현장에 있을 때부터 쓰였지만 지인의 말을 들어보면 차마 교육이란 말을 쓸 수가 없을 정도로 참담하다.

 

우선 아이들이 통제가 안 된다. 수업 중에 제멋대로 돌아다녀도 제어할 수단이 없다. 요사이는 벌을 준다고 교실 뒤나 복도에 세워놓는 것도 인권침해라고 항의가 들어온다고 한다. 아이의 다리를 아프게 하고 학습권을 박탈했다는 것이다. 아이들의 잘못을 지적해도 수긍하지 않을뿐더러 심하면 아동 학대로 고소당하기도 한다. 내 아이만 귀한 줄 아는 학부모의 행태는 보도에서도 심심치않게 볼 수 있다. 단체여행을 가는 아이 뒤를 따라와 제 아이의 잠자리가 불편할까 봐 따로 숙소를 잡는 학부모도 있다고 한다. 정말 그럴까 싶은 사례들이 너무 많다.

 

교사들은 수업을 제대로 할 수 없다고 탄식한다. 수업을 안 듣고 잠을 자는 것은 차라리 양반이다. 수업을 방해하며 고의로 교사의 비위를 건드리는 아이들은 어찌할 것인가. 문제가 생겨도 일이 확대되지 않기 위해 모른 척 넘어가는 교사들이 대부분이다. 뚜렷한 방책이 없으니 어쩔 수 없을 것이다. 교사가 아이들을 통제하지 못하면 제대로 된 교육이 될 수 없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아이들은 천방지축으로 커간다. 어쩌면 가정과 학교가 합작해서 괴물을 양산하고 있는지 모른다.

 

나는 서울의 강북과 강남에서 선생을 해 봤다. 두 지역은 생활 수준의 차이만큼이나 아이들의 심성이 대비되었다. 강북 아이들은 공부에는 열의가 적지만 심성은 착했다. 반면에 강남 아이들은 성적이 좋지만 영악하고 이기적인 측면이 강했다. 학부모의 극성도 한 몫 했다. 어쩌다 강남에 있는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담임을 맡았다가 학을 뗀 경험이 있다. 학부모의 사회적 지위나 교육 수준이 상위권일수록 아이들은 무례하면서 자기만 아는 성정을 가졌다. 그 배경에는 아이들을 앞세워 이전투구하는 엄마들의 꼴불견이 있었다. 지금은 이런 분위기가 모든 학교로 확산된 것 같다.

 

한국 교육의 문제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지나친 경쟁과 이기주의에 있지 않나 싶다. 경쟁이 치열해지고 살기가 팍팍해지면 나와 가족만 챙기려는 욕구가 강해진다. 단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의대 열풍 현상이 아닐까. 이제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의대반도 있다고 한다. 의사가 되면 편한 삶이 보장되고 존경도 받으면서 떵떵거리며 살 수 있다. 통계를 보면 고소득 회사원의 평균 연봉이 8천만 원인데 의사는 2억 원이 된다고 한다. 여느 학부모든 내 자식을 의사로 만들려고 애쓴다. 이런 편향된 경향은 사회 전제적으로 보면 큰 부작용으로 나타날 수 있다.

 

우리 시절에 공부를 잘 하는 아이는 의례 물리학과나 전자공학과를 지망했다. 그때도 물리학을 공부한다고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물리학 같은 기초학문 연구의 길에 들어서는 걸 자랑으로 여겼다. 어느 신부님한테서 씁쓸한 이야기를 들었다. 예비신학생을 면담하는 자리에서 왜 신부의 길을 가려하느냐고 물으니 이렇게 대답하더란다. "아빠가 그랬어요. 신부가 되면 먹고살 걱정이 없다고요." 설마 농담은 아니었겠지. 어떻게 된 게 이만큼 살게 되었는데도 끝없이 먹고사는 염려뿐이다. 인간의 탐욕은 끝이 없다. 그리고 있는 자, 가진 자가 더하다.

 

우리나라는 의사 숫자가 부족한데도 의대 정원은 18년째 동결되고 있다. 의사협회가 반대하기 때문이다. 의사 숫자가 늘어나면 자신들 처우가 영향을 받을 것은 불문가지다. 국민의 건강을 담보로 한 기득권의 집단 이기주의가 아닐 수 없다. 사회를 개혁하는 데는 부동산과 함께 의료의 공공화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빈부의 격차를 줄이지 않고서는 나라가 건강할 수 없다.

 

바른 나라는 바른 교육을 바탕으로 한다. 교육 개혁은 항상 시대의 화두였다. 늘 교육이 위기라는 말이 있었다. 그러나 최근의 교육 위기는 질이 다르다. 서열화 된 사회 체계를 공고하 하는데 교육이 한 축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없다. 얼마 전에 윤 대통령이 수능에서 소위 '킬러 문제'를 없애라고 해서 시끄럽다. 그는 '약자인 우리 아이들 갖고 장난치는 것'이라는 표현을 썼다. 킬러 문제를 없앤다고 입시 경쟁이 완화되고 아이들의 부담이 줄어들까. 지엽적인 처방으로는 언 발에 우줌누기일 뿐이다. 대국적인 차원에서 교육 개혁을 바라봐야 한다.

 

사람을 사람답게 키우는 참된 교육은 고사 직전이다. 교육은 우리 사회의 모든 병리 현상과 연관되어 있다. 교육에만 메스를 들이댄다고 문제가 해결될 리 없다. 사회 구조 개혁과 다불어 국민 의식의 변화도 따라야 한다. 가장 시급한 것은 대학의 서열화와 지나치게 경쟁을 유도하는 시스템, 이기성의 극복 등이다. 또한 계층간의 격차를 줄이는 정책이 최우선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한국은 지금 소비적인 이념 대립과 정치 다툼으로 겨를이 없다. 정작 중요하면서 시급한 담론은 도외시한다. 교육의 위기는 미래 한국의 위기에 다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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