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세상이 이런 걸 어떡하냐고

샌. 2023. 7. 23. 11:12

B 고등학교에 있을 때였다. 교실 붕괴 등의 용어가 등장하며 현장이 시끄러울 때였다. 학생들 통제가 안 되고 수업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었다. 대놓고 교사에게 달려드는 아이도 나타났다. 이런 문제에 대해 토론하며 해결책을 찾아보자고 자발적인 교사회의가 열렸다. 현실을 폭로하는 자유발언이 이어졌다. 드러내지 않아서 그렇지 모두들 같은 문제로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나 뾰족한 답이 나올 수 없었다. 두어 시간의 난상토론이 끝나고 고작 내린 결론이 교사끼리의 정보 공유나 벌점제 등 사소한 것이었다. 다들 교사들만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무력감을 느꼈다. 회의가 끝나고 흩어지며 누군가가 이렇게 중얼거렸다. "세상이 이런 걸 어떡하냐고!" 20년 전 일이었다.

 

며칠 전 서울 강남에 있는 한 초등학교에서 경력 2년차의 젊은 교사가 교실에서 목숨을 끊는 사건이 일어났다. 아직 정확한 원인은 모르지만 동료 교사들에 따르면 학부모의 언어폭력과 협박으로 엄청난 압박을 받았다고 한다. 그 며칠 전에는 역시 초등학교 교사가 반 아이한테 폭행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작금의 한국 교육의 현실이 이렇다. 20년 전에 우려하던 사태가 고등학교에서 중학교로 전이되고, 지금은 초등학교에까지 만연해 있는 것 같다. 초등학생이 선생님을 폭행한다는 것은 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내 동기 하나는 수업 중에 학생한테 밀치기를 당하고 충격을 받아 조기 퇴직을 했다. 나도 물리적인 접촉이 없었을 뿐 무시나 모욕을 당한 사례가 있었다. 특히 강남에 있는 학교에 근무할 때에 인간에 대한 환멸을 많이 느꼈다. 상류층에 해당하는 학부모들의 꼴불견도 다수 접했다. 문제 학생 뒤에는 문제 부모가 있다 - 선생을 해 보면 이 말이 대체로 옳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다고 모든 원인을 학생이나 학부모에게 돌리려는 것은 아니다. 선생 집단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문제의 근본은 우리 사회가 타인에 대한 배려와 존중이 결여된 데 있다. 지나친 경쟁 사회가 가져다 준 인과응보다. 학창 시절에 감명 깊게 들었던 일화가 있다. 일본 강점기 때 유명한 식물학자가 있었다. 중학생인 아들이 희귀한 식물을 가지고 와서 이름을 묻더란다. 나는 잘 모르니 내일 학교에 가서 선생님한테 물어보라고 학자는 말했다. 그리고는 아들 모르게 선생님에게 연락해서 이러이러한 사정이 있었으니 잘 설명해 달라고 부탁했다. 식물 이름과 관련 내용을 몰래 알려주었음은 물론이다. 다음날 아들이 선생님에게 물었고 선생님은 흔쾌히 대답해 주었다. 박사 학위를 가진 아버지가 모르는 걸 선생님이 알고 있으니 아들은 선생님을 더욱 존경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 학자는 자기 아들이 선생님을 존경해야 바르게 클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던 것이다. 지혜롭고 겸손한 분이 아닐 수 없다. 이에 비하면 "내가 국회의원이야" "내가 변호사야" 라고 큰소리 치는 위인들은 얼마나 조무래기인가.

 

얘기를 들어보면 요즘 학교에서는 아이들을 조금만 나무라도 아동 학대로 항의를 받는다고 한다. 이런 사건도 있었다. 서로 싸우는 아이를 선생님이 말리면서 팔을 잡다가 아이게게 손톱자국이 난 모양이다. 그 선생님은 폭행 혐의로 아이 어머니한테서 고소를 당했다. 잘못을 지적하면 아이에 대한 정서 학대가 된다. 수업을 방해하는 아이를 제지할 방법이 없다고 한다. 차라리 잠을 자던가 혼자 딴 짓을 하면 교사는 모른 체한다. 이런 분위기에서 교사만 아니라 다수의 학생이 피해를 입는다. 제 자식만 이뻐하다가 도끼로 제 발등을 찍는 꼴이다.

 

시각을 돌려 생각해 보면 현재의 학교라는 시스템이 시대를 따라가지 못해서 나온 어쩔 수 없는 결과인지 모른다. 세상과 인간의 의식은 빠르게 변화하는데 교육의 틀은 백 년 전 그대로다. 여름이 되었는데 여전히 겨울 외투를 입고 있는 꼴이다. 권위가 깨지는 세상에서 학교와 교사가 옛날의 위치에 안주할 수는 없다. 구체적인 각론은 모르지만 뭔가 대대적인 개혁이 필요해 보인다. 요즘 즐겨보는 당구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젊은이를 보면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당구에 전념하는 선수들이 있다. 옛날에는 고등학교는 나와야 한다, 대학교는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이제는 꼭 제도가 차려준 학교 과정을 거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다. 교육의 패러다임이 변해야 할 시점이 되었다.

 

여전히 현실의 학부모는 제 자식이 법대, 의대에 가서 떵떵거리며 살길 바란다. 그래서 사교육이 번창하고 선행학습이 판을 친다. 학원에서 미리 다 배웠는데 학교 수업이 무슨 흥미를 끌겠는가. 공부를 못하는 아이나 잘하는 아이나 학교에서 재미를 느낄 요소가 없다. 따져보면 잘못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고 우리 사회 시스템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현재의 학교 교육은 기득권층을 더욱 공고히 하는 역할을 할 뿐이다. 나머지는 어쩌면 들러리다. 제도든 의식이든 판을 뒤엎지 않고서는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다. 사방을 둘러보지만 온통 무력감과 좌절감만 든다. 그날 한 선생님이 넋두리처럼 한 말이 떠오른다. "세상이 이런 걸 어떡하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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