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통하지 않으면 아프다

샌. 2012. 4. 24. 07:03


지난 4.11 총선에서 국회의원을 배출한 정당을 색깔로 표시한 지도다. 부끄러운 우리의 현주소다. 내가 선거권을 가지고 투표를 시작한 이래 동쪽 지역은 언제나 이랬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강산이 네 번이나 변할 세월이 흘렀는데도 똑같다. 패거리 의리도 이만하면 알아줄 만하다. 그나마 서쪽은 알록달록 물이 들고 있다.

 

인간을 움직이는 힘이 뭘까를 생각한다. 나도 고향이 동쪽이지만 고향 사람을 이해하기 어렵다. 인물론이나 정치적 냉소주의는 핑계다. 단순한 지역색 이상의 무엇이 인간을 좌우하고 있는 게 틀림없다. 인간은 떼로 움직이게 되면 멍청해지도록 설계되어 있는지 모른다. 지역, 파벌, 민족으로 갈라져서 겪을 수밖에 없었던 불행한 역사는 수도 없이 많다.

 

선거만 끝나면 뒤를 덜 보고 나온 것처럼 늘 찝찝하다. 내가 지지하는 정파가 이기고 지는 차원이 아니다. 한 가지 색깔로만 그리는 그림이 이젠 질릴 만도 할 텐데, 정신적 미숙아도 아니고 이게 뭐람. 교활한 정치꾼들이 뒤에서 킬킬거리고 있음을 눈치도 못 채는 걸까?

 

이 지도는 우리나라의 MRI 사진으로 봐도 되겠다. 영락없는 동맥경화에 걸린 환자의 모습이다. 기(氣)가 막혀 통하지 않으면 마비가 오고 병이 된다. 통하지 않으면 아픈 게 어디 몸만이겠는가. 동서가 통하지 않으니 나라가 아프다. 東西不通 不通則痛!

 

통한다는 말, 이 말처럼

사람을 단박에 기분 좋게 만드는 말도 드물지

두고두고 가슴 설레게 하는 말 또한 드물지

그 속엔 막힘없이 들고 난다는

내적으로 연계되고 외적으로도 이어진다는

관계맺음이며 소통이라는

웅숭깊게 출렁인다는 뜻이 담겨 있지

혈관을 타고 흐르는 붉은 피도 통한다하고

물과 바람과 공기의 순환도 통한다하지 않던가

그 속엔 뜨거운 눈빛과 암묵적 연대

이해와 화해와 평화가 살아 꿈틀거리지

지금껏 끼리끼리 내통해온 우리

이젠 경계를 허물어야할 때

오래 기다려온 더 많은 당신께로 성큼 다가서야할 때

피부색과 언어와 종교와 관습이 다르면 좀 어때

관점이 좀 다르면 뭐 어때

서로의 처지에서 눈 맞추고 귀 기울이다보면

다른 듯 보이나 그리 크게 다르지않다는 걸 알게 될 터

어느새 하나로 통해있을 터

통한다는 말, 이 말처럼

북받치는 연민으로 늑골이 통째로 묵지근해지는 말도 드물지

답답한 숨통 툭 터 모두를 살려내는 말 또한 드물지

 

- 통하다 / 손세실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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