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페트롤리우무스의 전설

샌. 2012. 4. 14. 11:05

록펠러는 석유를 '악마의 눈물'이라고 불렀다. 석유왕이었던 그는 검은 황금의 어두운 그늘을 인식하고 있었던 것 같다. 석유 없는 현대 문명을 상상하기 어렵다. 인류에게 엄청난 물질적 부와 발전을 가져다주었지만, 동시에 재앙도 선물했다. 만약 석유가 없었다면 대규모 살육이 일어난 세계대전이나 핵개발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지금도 강대국의 패권 싸움에는석유를 차지하기 위한 욕망이 깔려 있다.

세상 모든 것이 그렇지만 석유 역시 두 얼굴을 하고 있다. 우리가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따라 축복이 되기도 하고 저주가 되기도 한다. 화려한 기술 문명을 꽃피웠으나파괴하는 힘도 함께 가지고 있다.

김진송님의 책을 보다가 석유의 어두운 면을 드러낸 전설을 접했다. 고전적인 전설의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아마 이분이 만들어낸 이야기 같다. 석유를 '악마의 피'로 해석한 발상이 재미있어 여기에 옮긴다.

천지가 창조될 무렵, 우리가 알고 있는 하느님과 암흑의 신 페트롤리우무스 간에 한판 싸움이 일어났다. 물론 신의 승리. 죽은 암흑의 신은 석 달 열흘 검은 피를 쏟았다. 끈적끈적하고 참을 수 없는 악취를 풍기는 피는 대지 위에 흘러넘치다 마침내 땅 속으로 사라졌다. 악마와 싸우느라 지친 하느님은 흙을 한 줌 퍼 자신과 비슷한 형상을 만들고 생명의 숨을 불어넣어 인간을 만들어놓고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신의 보살핌을 받지 못한 채 벌거벗은 인간의 처참하고 고독한 생존 투쟁이 시작되었으니 그게 인간의 역사가 되었다.

인간은 그로부터도 매우 오랜 세월의 흐른 뒤에야 가까스로 자신들의 문명을 만들어냈다. 문명이 시작되자 인간들은 그 어느 시절보다 분주해졌다. 상업과 교역이 활발했으며 부자의 삶은 풍요로워지고 가난뱅이의 삶은 더욱더 비참해졌다. 연이어 새로운 문명이 도래했으니 도시에 사람들이 몰려들고 매일같이 어마어마한 건물들이 들어섰으며 집채만한 기계들이 만들어져 쉴 새 없이 물건들을 쏟아냈다. 물건을 팔기 위한 다툼이 일어났고 그럴 때마다 도시는 번창했다.

어느 날, 땅속 깊은 곳으로 흘러들었던 페트롤리우무스의 검은 피가 지상으로 스며 나왔다. 처음 악마의 피가 고인 늪을 멋모르고 건너던 동물들은 발을 담그기가 무섭게 끈적끈적한 늪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사람 역시 마찬가지였다. 악마의 늪에 대한 소문은 연금술사이자 암흑의 신을 신봉하는 자에게 흘러들어갔다. 그는 검은 피가 틀림없이 마법을 일으키는 신비의 물일 것으로 확신했다. 연금술사는 악마의 피를 찾아 길을 나섰다.

수십 년이 흐른 뒤, 그는 마침내 반달 모양의 마른 계곡에서 검은 늪을 찾아냈다. 늪을 지키고 있던 마을 사람들에게 주문을 외워 마을에 퍼진 악귀를 몰아내고 약초로 사람들의 병을 치료하고 사람의 묘약을 만들어 젊은이들의 욕망을 채워준 연금술사는 그 대가로 엄청난 양의 검은 피를 얻었다. 고향으로 돌아온 연금술사는 제단을 짓고 검은 피를 정화하는 의식을 치렀다. 마법의 약재를 넣은 검은 피가 끓기 시작했고 푸른 연기가 솟아오르며 악마의 영혼이 향긋한 냄새를 풍겼다. 맨 처음 흘러나온 페트롤리우무스 영혼의 적자는 거스올리누스, 두 번째 영혼은 케로세노스였다. 그 뒤로도 수십 가지에 이르는 암흑의 신이 부활했다. 모든 정화의식이 끝나고 마지막으로 더럽고 추한 악마의 육질이 그 모습을 드러냈으니 그것이 바로 아스팔티로스였다.

연금술사는 정화된 악마의 피를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기 시작했다. 아무도 그것이 페트롤리우무스의 피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 냄새는 한번 맡아보면 도저히 잊을 수 없는 깊은 향기를 냈고, 단 한 번이라도 악마의 피로 불을 밝혔던 사람은 도저히 그 유혹을 떨쳐버리지 못했다. 악마의 그림자는 검은 그을음이 되어 세상에 퍼져나갔다.

한편, 사람들은 점점 더 바빠졌다. 해가 다르게 새로운 대륙이 발견되고 그때마다 큰 싸움이 일어났으며 달마다 새로운 발명이 이루어지고 날마다 새로운 물건이 쏟아졌다. 수많은 연금술사들은 어느새 과학자와 기술자의 옷으로 갈아입고 새로운 기계와 새로운 물질을 만들어냈다. 엄청난 물건이 쏟아졌고 이를 위해 수많은 기계가 만들어졌다.

마침내 몇 사람이 새로운 기계를 만들어냈으니 바로 쇠로 만든 심장이었다. 검은 피로 기계를 돌리는 방법을 찾아낸 것이다. 정화된 악마의 피를 넣은 기계심장은 터질 듯이 박동했고 곧이어 거침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새로운 심장을 단 기계들의 괴력에 놀라고 기계심장을 단 수레의 엄청난 속도에 경탄한 사람들은 악마의 피를 정화한 연금술사와 손을 잡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람들은 앞을 다투어 검은 피를 찾아다녔다. 세상 끝 어디나 검은 늪이 발견되면 달려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손에 넣었다. 검은 늪을 발견한 사람은 너나 할 것 없이 큰 부자가 되었다. 악마의 피가 한번 세상에 번지자 모든 것은 걷잡을 수 없어졌다. 페트롤리우무스의 영혼을 가득 채운 철갑수레는 세상 끝에서 끝가지 가지 않는 곳이 없었고 수레가 가는 곳마다 암흑의 영혼이 푸른 연기가 되어 대기를 떠돌았다. 사람들은 악마의 피를 정화시켜 모든 것을 만들었다. 집과 가구와 옷과 심지어 식량까지, 모든 것이 거기서 나왔다. 사람들은 검은 피가 그 옛날 자신들을 만들어놓고 사라진 하느님의 선물이라고 굳게 믿었다.

이제 사람들은 악마의 피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었다. 물 한 방울 없는 사막에서 얼음이 덮인 북극까지, 풀이 우거진 밀림에서 깊은 바다에 이르기까지 긴 대롱을 박아 넣고 검은 피를 빨아들였다. 악마의 피를 빼앗기 위한 전쟁은 멈추지 않았다.

악마의 영혼이 대기에 가득하자 땅이 꿈틀거리기 시작했고 하늘이 요동쳤다. 비바람들이 갈 곳을 찾지 못해 이리저리 몰려다녔으며, 수만 년 된 얼음들이 녹아내려 육지를 향해 기어 올라오고 바다에서는 끊임없이 해일이 일어나 섬들을 집어삼켰다. 그러나 아무도 그 불행이 악마의 저주에 의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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