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샌. 2023. 9. 16. 13:30

김영민 선생이 신문에 발표한 칼럼을 모은 책이다. 신문 칼럼이 다루는 다양한 소재의 글감을 일상, 학교, 사회, 영화, 대화의 5부로 나누어 실었다. 선생의 세상을 보는 시니컬하면서 유머러스한 글맛을 느낄 수 있다.

 

5년 전 이맘때 경향신문에 실렸던 '추석이란 무엇인가'라는 칼럼은 세간의 화제를 끌었던 모양이다. 선생은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물음을 추석에 만나는 친척들에게도 원용해보라고 충고한다. 명절을 핑계로 집요하게 당신의 인생에 대해 캐물어 온다면, 그들이 평소에 직면하지 않았을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라는 것이다. 당숙이 "너 언제 취직할 거니"라고 물으면, "곧 하겠죠 뭐"라고 얼버무리지 말고 "당숙이란 무엇인가"라고 대답한다. 엄마가 "너 대체 결혼할 거니 말 거니"라고 물으면, "결혼이란 무엇인가'라고 대답하고, "얘가 미쳤나"라고 말하면, "제정신이란 무엇인가"라고 대답한다. 선생의 글에는 이런 위트가 가득하다.

 

책 제목에 '죽음'이 들어갔듯 인간의 필연적인 조건이 죽음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선생은 말한다. 죽음을 외면하지 말고 정면으로 직시하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 자신을 괴롭히던 정념으로부터 다소나마 풀려날 것이다. 더 나아가서 미래의 죽음이 아니라 이미 죽었다고 과거완료형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는 이렇게 시작한다.

 

"아침을 열면서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얼굴에 비누를 가득 칠한 채 중얼거리는 거다. "나는 이미 죽었고 내가 속한 정치공동체도 죽었다"라고. 무슨 말이지? 나는 멀쩡히 살아서 이렇게 세수를 하고, 정부는 어김없이 세금을 걷어가고, 국회 인사청문회에서는 변함없이 그다지 질이 높지 않은 쇼가 상연되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침을 열면서 공동체와 나의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일단 실제로 자신과 자신의 공동체가 이미 죽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부고는 늘 죽음보다 늦게 온다. 밤하늘의 별이 반짝여도, 그 별은 이미 사라졌을 수 있다. 별이 폭발하기 전에 발산한 빛이 지구까지 도달하는 데 거리는 시간 때문에 우리가 그 별을 지금 보고 있을 뿐, 나와 공동체는 이미 죽었는데 현재 부고가 도달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것일 뿐."

 

'죽을 것이다'보다 '이미 죽었다'가 훨씬 더 강력한 메시지다. 깨달음의 목표가 무아(無我)에 닿는 것인데, '이미 죽었다'라는 사실을 체현한다면 그는 이미 최고의 경지에 오른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는 그저 흉내만 내며 살아가겠지만.

 

선생은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의 프롤로그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시한부 인생이라는 것을 자각한다면 우리는 좀 더 다르게 살 수 있을 가능성이 있다. 근심을 버리고, 해야 할 일을,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어려운 시절이 오면, 어느 한적한 곳에 가서 문을 닫아걸고 죽음에 대해 생각하곤 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나면, 불안하던 삶이 오히려 견고해지는 것을 느꼈다. 지금도 삶의 기반이 되어주는 것은 바로 그 감각이다. 생활에서는 멀어지지만 어쩌면 생에서 가장 견고하고 안정된 시간. 삶으로부터 상처받을 때 그 시간을 생각하고 스스로에게 말을 건넨다. 나는 이미 죽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버티고 살아갈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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