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다읽(19) - 싯다르타

샌. 2023. 9. 9. 09:33

대학생 때 한 친구는 좋아하는 여학생과 가까이하고 싶어 불교 동아리에 들어갔다. 그 여학생은 독실한 불교 신자였다. 친구는 여학생한테서 수시로 불교 관련 서적을 빌려왔다. 나도 따라서 읽게 되었는데, 나중에는 친구보다 내가 더 열심이게 되었다. 이 <싯다르타>도 그때 읽었지 않았나 싶다. 아니면 당시 상황과 관계없는 나중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헤세는 인간의 문제, 그중에서도 인간 성장과 완성의 길을 다루는 작가다. 그의 작품에는 동양 사상도 짙게 배어 있다. <싯다르타>는 나를 찾아가는 여정으로서의 헤세의 특징이 잘 나타난 소설이다.

 

바라문 계급의 싯다르타는 요사이 말로 하면 금수저로 태어났다. 더구나 잘 생기고 총명했다. 그러나 이 세상이나 제도 종교에서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는 없었다. 고뇌하던 싯다르타는 친구 고빈다와 함께 모든 것을 버리고 가난한 수행자가 되어 자아를 넘어서는 길을 찾으러 나선다.

 

이 소설은 이런 싯다르타의 일생을 그리고 있다. 그 과정에서 기원정사의 부처를 만나고 고빈다와는 다른 길을 가게 된다. 고빈다는 부처의 제자가 되었지만, 싯다르타는 자기만의 길을 간다. 깨달음은 스승의 가르침이 아니라 - 깨달음은 언어로 전수되는 것이 아니다 - 자신만의 체험에서 나온다는 걸 믿었기 때문이다. 싯다르타는 세속의 쾌락에 빠져 삶의 허무를 극한까지 경험한다. 싯다르타는 죽음 직전에서 강의 목소리를 듣고 또 다른 싯다르타로 태어난다. 타락했던 세속 생활이 결국은 자아의 죽음으로 이끈 것이다.

 

싯다르타가 부처를 만나고 대화까지 나누지만 종내 부처를 떠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부처의 교단에 속하면서 가르침을 따른다는 것은 또 다른 구속이고 매임일 수 있다는 사실을 싯다르타는 간파했다. 그것은 자아를 초탈하는 길이 아니라 오히려 자아를 강화할 뿐이라고 싯다르타는 믿었다. 이런 싯다르타의 생각은 우리들에게도 해당하는 말이 아닌가 싶다. 신앙이든 사상이든 어떤 패러다임에 묶이면서 오히려 자유를 잃어버릴 위험이 있다. 스스로 새장 속으로 들어가 생명력이 고갈되는 새와 비슷하지 않을까. 소설에도 새장 속의 새 이야기가 나온다. 싯다르타는 알아차렸지만 우리는 자신이 새장 속의 새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안주한다.

 

마지막에 고빈다는 싯다르타를 만나고 싯다르타한테서 부처의 얼굴을 본다. 싯다르타는 고빈다에게 돌멩이를 보여주며 말한다.

"여기 있는 이것은 한 개의 돌멩이네. 이 돌멩이는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아마도 흙이 될 것이며, 그 흙에서는 식물, 아니면 짐승이나 사람이 생겨나게 될 거야. 이제 나는 이렇게 생각해. '이 돌멩이는 돌멩이다. 그것은 또한 짐승이기도 하며, 그것은 또한 신이기도 하며, 그것은 또한 부처이기도 하다. 내가 그것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까닭은 그것이 장차 언젠가는 이런 것 또는 저런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이미 오래전부터 그리고 항상 모든 것이기 때문이다.'"

 

싯다르타에게는 모든 존재가 신이고 부처였다. 차안과 피안, 성(聖)과 속(俗), 너와 나의 구별이 없어졌다. 싯다르타는 불이(不二)/범아일여(梵我一如)의 세계에 이른 현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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