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인간 실격

샌. 2023. 9. 22. 10:16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 저는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은 이렇게 시작한다. 젊었을 때 읽었더라면 공감되는 바가 더 있었을까, 사실 지금 나 같은 나에는 감정 이입이 쉽게 되지는 않는다. 전후 일본의 방황하는 젊은이를 그려냈다는 정도로 이해하면 될지 모르겠다.

 

소설의 주인공인 요조는 부유한 가정에서 자랐지만 태생이 인간 세상과는 어울리지 못하는 결함을 가지고 있다. 일종의 사회공포증이다. 이들은 사람의 심리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면서 대인 접촉을 기피한다. 많은 경우 격리된 삶을 살지만 요조는 자신의 내면을 숨기면서 도리어 적극적으로 '익살'을 부리며 인기를 얻으려 한다. 이런 이중적인 자기모순이 결국 절망에 빠져들며 방황하게 된다. 1940년대 후반의 일본의 사회적 분위기가 작품에 큰 영향을 미쳤으리라고 추측한다.

 

<인간 실격>은 작가인 다자이 오사무의 자전 소설처럼 읽힌다. 그의 실제 삶과 소설의 내용은 겹치는 부분이 많다. 그의 첫 번째 시도였던 한 여인과의 자살 미수 사건은 정황이 실제와 비슷하게 그려져 있다. 여인은 죽고 그는 살아남았다. 아마도 이 사건은 굉장한 트라우마로 남았을 것 같다. 다자이 오사무는 여러 차례의 자살 시도 끝에 결국 연인과 함께 투신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그의 나이 서른아홉이었다.

 

소설보다는 다자이 오사무의 삶과 생각에 더 관심이 간다. <인간 실격>에는 작가의 내면이 일정 부분 드러나 있는 듯하다. 그는 집안이 고리대금업으로 부자가 된 신흥 졸부라는 사실에 평생 동안 부끄러움을 느꼈다고 한다. 그래선지 대학에 입학한 뒤에는 좌익 운동에 가담하기도 했다. 1945년 일본이 패망한 후 정신적 공황 상태에 빠진 일본의 젊은이들에게 그의 소설은 열렬한 지지를 받게 된다. 그런 배경에서 이 소설을 이해해야 할 것 같다.

 

요조는 나름대로 이 세상을 살아내려고 발버둥을 쳤지만 나락으로 떨어져 갈 뿐이었다. 그의 무절제한 행동은 비판받을 수 있지만, 반면에 인간적인 호의와 순수성이 함께 있었다. 요조와 가까웠던 사람들 중 누구도 그를 비난하지 않는다. 소설 끝에 요조를 추억하는 말이 나온다. "우리가 알던 요조는 아주 순수하고 자상하고.... 술만 마시지 않는다면, 아니, 마셔도.... 하느님처럼 좋은 사람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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