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어머니를 돌보다

샌. 2023. 12. 21. 12:06

정상뇌압수두증(正常腦壓水頭症)이라는 희귀병에 걸린 어머니를 간병하며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관찰한 기록이다. '1994년 말, 어머니가 병을 얻었다'로 책은 시작한다. 뇌에 생긴 이상으로 인지장애가 생긴 어머니는 11년 동안 세 딸과 간병인들에 의지하며 자신의 뉴욕 아파트에서 지내다가 생을 마감했다. 지은이인 린 틸먼(Lynne Tillman)은 미국의 소설가로 병든 어머니를 돌봐야 하는 혼돈스러운 심경을 아프게 고백한다. 원제는 <MOTHERCARE>다.

 

지은이는 어머니를 요양원에 보내지 않고 집에서 케어했다. 그 과정에서 생기는 가족과의 마찰, 의사와 간병인과의 갈등, 불안, 낙담, 우울감 등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여타 간병 기록이 어두운 면보다는 긍정적인 부분에 비중을 두지만, 지은이는 부정적인 감정을 숨기지 않고 드러낸다. 어머니를 돌보는 것이 진심이 아니라 양심에 의한 것이었다고도 밝힌다. 변기를 비울 때는 역겹고 구역질이 났다고 토로한다. 현대 의료 시스템에 대한 비판도 따른다. 다행히 어머니와 딸들에게는 경제적인 여유가 있었다. 상주 간병인을 쓰고(주당 600불) 의료비를 지출해도 큰 부담이 되지 않았던 것 같다.

 

육칠 년째가 되었을 무렵 환자를 돌보는 일에 지치고 원통해져서 어머니를 요양원에 보내고 싶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단을 못 내린 것은 어머니와 딸 사이의 어떤 유대감이 아니었나 싶다. 양가감정에 시달리며 지은이는 어머니의 고통을 옆에서 함께 했다. 책의 내용 중 한 부분이다.

 

"우리 자매들은 모두 어머니에게 시간을 내줘야 했다. 우리가 사는 방식을 바꿔야 했다. 뉴욕에 사는 언니와 나는 근처에 살았고, 그래서 더 자주 불려갔다. 나는 어머니에게 대체로 연민을 표했지만, 그럴 때마다 시간 외의 것, 내 정서 건강을 희생해야 했다. 어머니의 곤경이 내게는 짐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 모두에게 짐이 되었다. 내가 놓치지 않고 포착한 아이러니는 정작 어머니는 타인의 감정을 배려하지 않는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나는 모범적인 병사였지만 비참했다. 연민은 내게 도움이 되지 않았고 오히려 스스로를 더 불쌍히 여기게 되었다. 너무나 많은 문제가 있었지만 바꿀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 가족의 미래는 어머니의 미래에 구속되어 있었다. 이런 상황이 얼마나 더 지속될 것인가."

 

어머니는 집에서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임종을 맞았다. 어머니를 집에서 죽음을 맞이하도록 함으로써 짊어지게 된 책임감의 정서적 심리적 무게는 상상을 훨씬 뛰어넘는 엄청난 것이었다고 지은이는 고백한다. 지은이는 어머니의 죽음을 지켜보는 순간을 이렇게 말한다.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지켜보는 일도 죽는 것만큼 힘듦에 틀림 없다.

 

"나는 움직일 수도, 말을 할 수도, 뭔가를 물을 수도 없었다. 나는 붕 뜬 채로 멈춰 있는 상태였다. 내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 한 여자가 죽어가는 일은 일어나지 않고 있기도 했다. 나는 그 일을 관찰했다. 어머니가 느린 속도로 해체되는 것을. 임종은 피할 수 없는 일이지만, 당신이 아는 그 무엇과도 동떨어진 죽음의 과정을/임종 과정을 지켜보는 일은 미친 짓처럼 느껴진다. 죽음은 언제나 뜻밖의 사건이다. 예상하고 있을 때조차 그렇다. 그리고 이 너무나도 인간적인 사건은 여전히 불가피하고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이다. 당신이 보고 있는 것을 보고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고, 또한 당신은 당신이 보고 있는 것을 보지 못한다. 그러다 그 일이 일어난다."

 

어머니를 보내고 지은이는 '11년이라는 짐, 어머니라는 짐이 떠났다'라고 쓴다. 자신이 좋은 딸 노릇을 한 것을 후회하고, 그 11년을 어머니를 위해 보내지 않았더라면 하는 심경도 밝힌다. 돌봄에 따른 짐과 시간 낭비가 과도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어머니와의 화해나 사랑의 교감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나는 어머니를 몰랐다. 그 모든 일을 겪었음에도."

 

고향에 노모가 계시는 입장에서 남 일 같지 않게 이 책을 읽었다. 언젠가는 보내드려야 하는 때가 나에게도 닥칠 것이고, 내가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감이 잡히지 않는다. 나 자신의 죽음도 마찬가지다. 누구에게나 다가오는 죽음이지만 그 죽음에 이르는 경로는 천차만별이다. 제발, 고통 없이, 험하지 않게 맞을 수 있기를, 보편적인 죽음에서 나만 특별하기를 바라는 것이 가당키나 한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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