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나침반

장자[204]

샌. 2012. 4. 22. 11:54

그자는 노나라 협잡꾼 공구가 아니냐?

내 말을 그대로 전해라.

너는 함부로 문왕, 무왕을 팔며 거짓말을 지어내고

나뭇가지 같은 관을 쓰고 죽은 쇠가죽으로 띠를 두르고

번다한 요설을 꾸며

밭 갈지 않고 베 짜지 않으면서 호의호식한다.

혀와 입술을 놀려 제멋대로 옳고 그름을 만들어

천하의 임금을 홀리고

천하의 선비를 근본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하고

그릇된 효제를 지어내어

요행으로 벼슬과 부귀를 노리는 자이니

너의 죄는 크고 지극히 막중하다.

빨리 돌아가라. 만약 그렇지 않으면

네 놈의 간을 내어 점심 반찬으로 먹으리라.

 

此夫魯國之巧僞人孔丘非邪

爲我告之

爾作言造語 妄稱文武

冠枝木之冠 帶死牛之脅

多辭繞說

不耕而食 不織而衣

搖脣鼓舌 擅生是非

以迷天下之主

使天下學士 不反其本

妄作孝悌

以僥幸於封侯富貴者也

子之罪大極重

疾走歸 不然

我將以子肝益晝鋪之膳

 

    - 盜跖 1

 

<장자> '도척'편에는 공자와 도척이 만나는 긴 얘기가 나온다. 도척이라는 허구의 인물을 내세워 공자와 유가를 비판하는 내용이다. 천하의 못된 도둑놈인 도척 앞에서 공자는 일장훈계를 듣는다. 유교의 형식적이고 위선적인 예교주의(禮敎主義)를 도둑의 입을 빌려 비난하는 것이다. 공자를 이만큼 망신 주는 장면도 없다.

 

공자는 친구인 유하계(柳下季)의 소개로 도척을 교화시키기 위해 찾아간다. 도척은 유하계의 동생으로 구천 명의 도적 떼를 거느리고 사람의 간을 회 쳐 먹을 정도로 악랄한수괴였다.온갖 아부성 발언을 한 끝에 도척과 대면하지만 도리어 질책을 당한다. 요지는 네가 더 큰 도둑놈이라는 호통이다. "공구야! 네가 말한 것은 모두 내가 버린 것들이다. 빨리 떠나 집으로 돌아가 다시는 말하지 말라. 너의 도는 신실치 못하고 부족할 뿐 아니라 속임수와 거짓들이며 참된 자신을 온전하게 하는 것이 아니니 어찌 논할 가치가 있겠는가?" 도척의 불호령에 공자는 정신을 잃어버리고 줄행랑을 친다. 도척을 교화하러 갔다가 도리어 봉변을 당한 것이다.

 

도덕성 회복을 통해 세상을 바르게 하려고 한 공자나, 약탈과 살생으로 자신의 욕망만 추구한 도척이나 도가(道家)에서 볼 때는 마찬가지다. 공자는 쓸데없는 명분에 집착함으로써 시비의 분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오히려 도척보다 공자가 끼친 해가 더 크다. 도척은 당 시대에만 피해를 줬지만, 공자는 후대 수백 년에 걸쳐 사람들을 그릇된 길로 이끌었기 때문이다.

 

유가(儒家)의 일면만 비판한 도가의 주장이 전적으로 옳을 수는 없다. 그리고 장자 자신이라면 이렇게 유치하게 공자를 비하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장자 사상이 그렇게 편협하지 않다. 높은 하늘에서 보면 내 집, 네 집이 서로 구별되지 않는다. 땅에서는 도둑이 다른 도둑에게 네가 진짜 도둑이라고 나무란다. 그런 시비에서 벗어나자는 것이<장자>에서 배우는 바다.

 

 

'삶의나침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장자[206]  (0) 2012.05.11
장자[205]  (0) 2012.05.03
장자[203]  (0) 2012.04.15
장자[202]  (0) 2012.04.08
장자[201]  (0) 2012.0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