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나침반

장자[203]

샌. 2012. 4. 15. 10:55

"우리가 들은 바로는 옛 선비들은

치세를 만나면 벼슬을 피하지 않고

난세를 만나면 구차한 삶을 구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제 천하가 어두워지고

주나라 덕은 쇠미하니

주나라에 병합되어 내 몸을 더럽히기보다는

속세를 피하여 내 행실을 깨끗하게 하는 것이 낫겠다."

그들은 북으로 수양산에 이르러

이윽고 굶어 죽었다.

백이숙제를 따르는 자는

부귀를 구차하게 얻을 수 있다 해도

반드시 취하지 않을 것이며

고고한 절의와 엄정한 행실로

자기 뜻을 홀로 즐거워하며

속세를 섬기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두 사람의 절조다.

 

吾聞古之士

遭治世不避其任

遭難世不爲苟存

今天下闇

周德衰

其竝乎周以塗吾身也

不如避之以潔吾行

二子北至於首陽之山

遂餓而死焉

若伯夷叔齊者

其於富貴也苟可得已

則必不賴

高節戾行

獨樂其志

不事於世

此二子之節也

 

    - 讓王 11

 

장자의 초월적 세계관에 따르면 백이숙제나 도척이나 마찬가지다. 백이숙제는 헛된 명분에 목숨을 걸었고, 도척은 탐욕에 눈이 멀어 무고한 사람을 해치고 도적질을 했다. 이 둘의 삶은 겉으로 보기에는 극과 극이지만 본질에서는 같다. 둘 다 천성에 어긋나고 본성에 위배된 삶을 산 것이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백이숙제 역시 하늘이 내린 생명을 훔친 도둑놈이다. 백이숙제는 수양산에 숨어 들어가 고사리마저 주나라의 것이라고 먹지 않다가 굶어 죽었다. 유가에서는 이들을 충의(忠義)의 모범으로 칭송한다. 그러나 수양산 고사리가 어찌 주나라의 것이겠는가. 하늘이 내린 걸 가지고 내 것, 네 것으로 가르는 건 인간의 좁은 소견일 뿐이다. 장자의 넓은 시각으로 보면 주나라도 없고 은나라도 없다.

 

여기 <장자> 양왕편에 소개되는 백이숙제 일화는 백이숙제의 양왕(讓王)과 절의(節義)를 기리는 뜻으로 나와 있다. 부귀와 명예라는 세속적 가치를 거부하는 그들의 행위를 높게 평가한 것이다. 그러나 장자의 원래 사상은 그렇지 않다. 인간이 만든 명분과 이념에 갇히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도 없다.

'삶의나침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장자[205]  (0) 2012.05.03
장자[204]  (0) 2012.04.22
장자[202]  (0) 2012.04.08
장자[201]  (0) 2012.03.28
장자[200]  (0) 2012.0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