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나무가 민중이다

샌. 2012. 4. 2. 07:43

나무와 풀 이야기로 민초(民草)의 삶을 실감이 나고 감칠맛 나게 그린 책이다. 40대 이상으로 시골에서 자란 사람이라면 지은이가 묘사하는 장면들에 가슴으로 공감할 것이다. 이 책은 서민들과 함께했던 나무와 풀을 통해 삶의 애환을 풀어내는 데 성공했다. <나무가 민중이다>라는 제목만큼이나 이런 종류의 책 중에서도 특별하다. 사대부들이 높이 평가했던 매화, 국화, 모란, 대나무 같은 건 아예 빠졌다. 소나무도 절개의 상징으로서가 아니라 민중의 삶의 동반자로서 풀어쓰고 있다.

지은이 고주환 님은 성황림이 있는 원주시 신림면 성남리가 고향이다. 성황림은 몇 년 전에 직장 동료들과 찾아간 적이 있다. 이 책을 읽고난 뒤였다면 아마 더 새롭게 보였을 것이다. 지은이는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며 주말마다 고향집(엉클한캐빈)에 내려가 텃밭농사를 짓는다. 글을 읽어보면 고향과 자연, 이웃에 대한 사랑이 절절히 느껴진다. 무척 행복한 분인 것 같다. 식물에 대한 지식과 함께 글솜씨도 뛰어나다. 재야에는 숨은 고수들이 무척 많다.

책에는 지은이의 유년 시절과 가난하게 살았던 부모님의 고단했던 삶의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그 이야기는 비슷한 시대를 살았던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또한, 수천 년을 면면히 이어져 온 우리 선조들의 삶이었다. 그러나 고작 몇십 년 사이에 세상은 천지개벽이 되었다. 그러나 아쉬운 건 자연이나 이웃과의 따스한 교감도 함께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 책을 읽으며 더욱 그런 걸 느낀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지은이의 글솜씨를 보여주는 대목을 여러 군데 인용했다.

몇 명의 아이들과 함께 당숲 건너 산으로 참꽃을 꺾으러 간다. 산은 멀리서보다 험하고 깊다. 꽃이 제법 실하고 무성한 바위절벽에 거의 다 이르러 숨이 턱에 찰 때쯤, "야, 참꽃 문데이(문둥이) 없을까?" 하는 한 녀석의 말에 모두들 갑자기 등골이 오싹해진다.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문데이가 참꽃 뒤에 숨어 있다가 어린애들이 오면 잡아서 간을 빼 먹는대."
"왜 먹는데?"
"싱싱한 애들 간을 먹어야 문데이병이 낫는대."
"야! 설마 이렇게 여러 명인데 어떻게 잡아 먹어?"
몇몇 겁쟁이 녀석들은 벌써 얼굴이 사색이다.
그래도 눈앞이 참꽃 천지라 여기까지 와서 그냥 가자는 말 먼저 꺼내는 녀석은 없다. 가까스로 숨죽이며 비탈길을 기어올라가는데 한 녀석이 말한다.
"저기 참꽃 많은 돌무덤이 애창(어린애 무덤)이다."
"네가 어떻게 알어?"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몇 해 전에 홍역 돌 때 애가 많이 죽었는데 전부 이 산에 묻었대!"
"돌은 왜 쌓아놨는데?"
"짐승의 파 먹을까봐 그랬대. 여기 참꽃문데이 많은 것도 금방 묻은 애창 파서 간 꺼내 먹으려다가 그게 없으니까 참꽃 뒤에서 어린애 오기를 기다리는 거래."
얼굴이 사색이 된 녀석들 중에 하나가 거든다.
"어제 우리 집에 동냥 왔던 집게팔 상이군인 어쩐지 수상하더라. 모자를 잠깐 벗는데 보니까 눈썹이 없었던 것 같아. 그리고 우리 누나가 그 상이군인이 저녁 때 이쪽으로 올라오는 걸 봤대."
"........."
이때 인기척에 놀란 꿩 한 마리가 푸드드 요란스럽게 날아오른다.
"문데이다!"


향이 강한 산초나무를 설명하면서 자연의 섭리와 인간 세상의 섭리가 다르다는 것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한다.

산초나무는 꽃이나 열매에서 나는 강한 향 때문인지 꽃잎이 없는 꽃을 슬그머니 피워도 늘 곤충이 끊이지를 않는다. 동물세계에서 힘이 약한 놈은 빠르고, 느린 놈은 맹독이 있고, 이도저도 없는 놈은 번식력이 좋듯, 식물세계에서도 화려한 꽃을 피우는 것은 향기가 덜하고, 꽃이 부실하면 진한 향으로 곤충을 유혹한다. 이는 치우치지 않고자 하는 자연의 섭리인 모양이다.
그렇다면 얼핏 이것도 되고 저것도 되고, 이것도 안 되고 저것도 안 되는 치우침이 날로 심해지는 인간 세상의 섭리는 어찌된 것인지..... 조물주 영감이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인간 세상을 만들었다가 자체 버전업되며 통제 한계
를 벗어나는 인간의 두뇌와 문명에 어이를 상실하고는 무거운 자책감에 손을 놓고 술독에 빠져 지내는 것이든지, 아님 "에라, 튀자!" 하고 200만 광년쯤 되는 옆동네로 자리를 옮긴 거 아녀?


대추나무에서는 TV 드라마 이야기가 나온다.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 장장 17년 동안 안방극장의 대명사로 사랑받다가 2007년에 종영된 전원드라마의 제목은 우리 전래의 속담 '대추나무 연 걸리듯'에서 패러디한 제목이다. 집 주변의 과수나무가 앙상한 가지만 남긴 한겨울에 연을 날려본 사람이라면 길가 어디에나 있는 대추나무에 걸려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밤나무나 배나무 등 올라가기도 쉽고 가지 끝이 매끈해서 줄만 끊으면 쉽게 수거할 수 있는 여느 나무와 달리, 가지 끝에 울퉁불퉁한 수피가 발달한 데다 가시까지 나 있는 대추나무는 연이 한번 걸리면 어찌어찌할수록 줄만 더 심하게 엉키니 포기하게 만드는데, 며칠 뒤면 한두 개 더 걸려 있기 십상이다. 그러니 '대추나무에 연 걸리듯'이란 말은 '하나를 잡아당기니 줄줄이 딸려나온다'는 '고구마 줄기 잡아당기듯'이란 의미와 달리, '뻔히 보면서도 해결하지 못하는 상황이 연이어 발생한다'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마당가의 대추나무에 '사랑'이 걸리면 옴짝달싹 날아가지 못하고 걸려 있어야 할 테니. '대추나무에 사랑 걸렸네!"는 국민 안방드라마의 정서에 딱 들어맞는 제목인 셈이다.


엄나무를 보면서는 제비와 아버지에 얽힌 옛 추억을 꺼낸다.

어릴 적 봄 농사철의 풍경이다. 모내기를 위해 논을 갈아엎은 뒤에는 물을 대고 써래질하기 전에 물이 새지 않도록 논바닥 흙을 떠올려 논둑을 새로 바른다. 물 밴 논바닥 흙을 둑에 퍼올려놓으면 기다렸다는 듯이 제비들이 나뭇가지와 마른풀이 섞인 진흙을 물어가느라 부산을 떤다(그놈들 그거 안 해놨으면 어쩌라고 그랬는지).
우리 집에 집을 짓겠다는 제비는 늘 안방 문 위쪽에 흙을 붙이기 시작했다. 그놈의 제비 똥이 앞마루에 떨어지는 게 싫어서 저 한쪽 옆으로 판자를 매달아두고(거기다 집 지으라고) 안방 문 위에 붙이는 흙을 삽으로 자꾸 긁어내도 또 물어다
붙였던 제비들..... 그놈 고집이 꼭 안방 문 위에다 짓겠단다. 아버지 또한 한 고집 하시니 그놈들하고 며칠 동안 실랑이를 벌인다. 급기야는 붙인 흙 긁어내고 거기다 엄나무 가시를 걸쳐놨는데 그 제비들도 막무가내 그 가시에다 흙을 붙이
고 있다.
"즈들 좋으라고 저쪽 한적한 데 지으라는 건데 원 사람이라 말귀나 알아들으면 조목조목 일러주기나 하지, 쯧쯧."
이러시다가 며칠 못 가 결국 엄나무 가지 치우시고 그 밑에 똥이 떨어지지 않도록 널빤지를 받쳐 못질을 해주셨다. 내가 어른이 되어 세 자식을 성글게 키우다보니 엄한 듯 하면서도 제비 고집에 슬그머니 엄나무 가지를 치워주시던 아버지 마음이 생각나 숙연해진다. 자식들에게도 번번이 그러셨으니 말이다.


층층나무에서는 서울로 수학여행 간 촌놈들 얘기가 나온다.

가난의 땟국물이 질질 흐르던 화전민촌 성황림마을의 초등하교 6학년 시절. 40여 명 중에 천오백 원이던 여비를 낼 수 있었던 열한 명에 끼어 기차를 타고 서울로 수학여행을 갔다. 당시 최고이자 시골에까지 명성이 자자했던 삼일빌딩 아래에서 산골 꼬맹이들은 "야! 진짜 높다! 당나무보다 더 높은 거 같아!" 하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고개가 꺾어지도록 쳐들고는 일제히 시커먼 빌딩의 층수를 셌다.
"일칭, 이칭, 삼칭, 사칭" 하다간 다시 손가락 꼽기를 반복하던 모습들..... 가방이 몸집보다 크던 시오리 중학교 하교 길에 비가 구죽죽이 내리는 저녁 무렵 울창한 칭칭나무 그늘에 가려 빛 한 줌 들어오지 않던 성황당 숲길을 걸음아 날 살
려라 하고 올려뛰던 아득한 시절을 떠올려주는 나무!
빨리 크는 만큼 목질부의 재질도 연약해 농경문화에서는 그늘 이외에 딱히 쓸 용도가 없다보니 우리 산하에 적지 않은 개체수를 지켜온 훤칠한 미인나무 '층층나무!' 아니, 휘영청 드리운 그늘에 '가지가 칭칭나네'가 절로 흥얼거려지는 '칭칭
나무!'
쓰임새보다는 '보임새'가 상위의 가치로 자리매김한 요즘에 물 만나 고기 같은 나무이다.


복분자딸기는 그이름에 문제를 제기한다.

생활 속의 풀과 나무를 언급해가다보니 이름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지적하게 되는데, 가장 불만스런 이름이 바로 '복분자딸기'이다. 곰딸기, 멍석딸기, 줄딸기, 산딸기 등 10종이 넘는 딸기에 모두 우리말 이름이 붙어 있는데, 유독 상업재배가 활성화된 이것만 '한약재로 쓰기 위해 덜 익은 딸기를 말려놓은 상태'을 이르는 생약명인 '복분자'로 이름이 굳어가고 있다. 단지 꽃받침에서 분리해 움푹 팬 삭과의 모양이 화분을 엎어놓은 모양이라 붙여진 이 생약명에 견강부회하여 하나같이 '요강이 엎질러질 정도의 정력'으로 비약시키고 있다. 그것 또한 감각적, 통설적인 표현에 귀뜨름한(솔깃한) 국민성을 파고드는 상술이다.
길가에 밭 언저리에 나무딸기나 멍석딸기가 지고, 고야(강원도 토종 자두)나 자두 등 일찍 익는 과일들이 하나둘씩 익어가는 늦여름에 여름내 빨갛던 열매가 까맣게 익어가니 그 까만 색깔이 까막고무신을 닮아서일까? 우리는 복분자딸기를 고
무딸기라 불렀다. 헌데 사전에 검색해보니 고무딸기가 '복분자딸기의 다른 이름'이라고 나오는 것을 보면, 다른 지방에서도 그렇게 불려 그것이 본래 이름이 맞는 듯하다. 이제라도 그 앙증맞은 이름을 되찾을 수 없을까?


뽕나무를 보고는 어머니를 그리워한다.

뽕나무는 내게는 어릴 적 어머니의 '창(窓)'이다. 매번 한 장씩 치던 누에를 어머니의 욕심으로 반 장을 늘려 한 장 반을 치던 어느 해였다. 석잠 잘 때쯤 며칠 동안 계속 비가 와서 할 수 없이 비 맞은 뽕을 먹였더니 누에가 그만 병이 들어버렸다. 구들장이 꺼져라 쉬던 한숨과, 그리고 어찌어찌 회복이 되어 막잠 잘 때쯤에는 집뽕이 바닥나 산으로 뽕 따러 가실 걱정으로 지새우던 밤.
고치가 '수등(秀等)'을 맞으면 사준다고 약속한 신발에, 족대에 들떠 온 식구가 모여 앉아 장기판 위에 철사를 설치해 돌리며 다듬던 누에고치. 그리고는 해가 중천에 걸렸을 때부터 당숲 어귀에 나가 멀리 미루나무 길 신작로를 응시하던 눈
동자만 하얀 꼬맹이. 꼬맹이가 기다리던 고치를 팔러 가신 어머니 생각에 목이 멘다.
다시 돌아갈 수 없고 느껴볼 수 없는 어머니의 숨결. 무심한 세월은 그 자리에 뽕나무 버섯을 따는 철녀들을 데려다주었지만. 뽕나무, 오디, 누에고치..... 참 그리운 말들이다.


서민들의 애환과 함께 한 지게도 있다.

지게 작대기는 키만 한 길이에 끝부분이 갈라져 받침 턱이 있는 막대에 불과하지만, 농부의 손에 늘 들려 있는 물건이라 그 쓰임새도 다양했다. 우선 꽉 차게 꾸린 지게짐을 지고 일어설 때에 버팀개로 없어서는 안 되고, 짓누르는 무게에 가쁜 숨 몰아쉬며 옮기던 걸음이 인고의 한계에 이르러 쉬어갈 때 지게를 괴어주는 역할을 하며, 풀섶으로 사라지는 뱀을 눌러 잡기도 하지만, 때로는 닭장을 넘보는 이웃집 개를 쫓을 때나 야밤의 의심스런 인기척이 일 때도 우선 잡고 나서는 놈이다. 때로는 과년한 딸년의 늦은 귀가나 노름에 정신 팔린 아들놈의 '다리몽댕이'를 분질러버린다고 엄포를 놓은 데 등장하기도 한다.
그래서 가볍기는 개옻나무가 제격이지만 단단하기로는 물푸레나무가 제일이었던 지게 작대기. 그놈이건 저놈이건 막걸리 두어 사발 흥이 오르면 한쪽 밀삐만 걸머져 비스듬해진 지게 목발을 두드리며 "석탄~ 백탄 타는 데는 연기나 펄~펄 나지
요!" 사발가에 실은 신세타령을 주절거리는 농부에게는 북채나 장구채로 둔갑하기엔 마찬가지였으니.
이것은 '동바'라 부르는 꼬리도 있다. 기적의 끄나풀 나일론이 등장하기 전에는 피나무 껍질이나 삼으로 꼬아져 '물거리 나뭇단'(어린 잡목을 낫으로 쳐내서 만든 나뭇단)이나 꼴짐 등을 한 지게 단단히 꾸릴 때 없어서는 안 됐지만 생활고에,
노름빚에, 부부싸움 홧김에, 못 이룰 사랑에, 뒤란의 늘어진 뽕나무 가지에 슬그머니 이놈으로 목을 맨 인생 또한 적지 않으니, 농약병과 함께 격변기 농촌의 생목숨께나 앗아갔던 존재이기도 했다.


방아 이야기 또한 우리를 슬프게 한다.

방아는 아낙에게는 일탈이기도 했다. 절구질을 하다가 이따금 허리를 펴고 넘겨다보던 내 집 울안을 벗어나 몇 가지 방앗거리를 챙겨 동네에 있는 몇 집의 방아를 기웃거려보다가, 선점해 방아를 찧고 있는 이웃 중에 맘이 가는 곳에 방앗거리를 내려놓고 어울려 수다를 떨며 신세한탄을 했다. 이따금씩 드나드는 방아 걸린 집 주인 남정네의 걷어붙인 중우적삼 사이의 어깨를 흘끗 훔쳐보기도 하고, 주인 남정네 또한 이웃 아낙의 모습이나 어쩌다 앞태 뒤태가 곱기로 소문난 새댁이라도 올라치면 맥쩍게 빈 지게 바람으로 한 번 더 얼씬거려 봤다. 그러다가 방아 확을 쓸어 젖느라 머리가 땅에 닿도록 몸을 숙인 남의 아낙의 허리춤 맨살이라도 보게 되면 나무 하러 가는 지게 작대기 장단에 괜하게 힘이 들어가기도 하는 그것으로 내 집 방아 사용료는 되었다.
"이 방아 저 방아 다 버리고 철야 삼경 깊은 밤에 우리 님은 가죽방아만 찧고 있네"라는 경기민요 '방아타령'의 가사처럼 방아는 남녀의 교접 행위에 비유되었고, '물레방아'나 '메밀꽃 필 무렵' 등의 단편에서는 방아가 암시하는 행위를 수반
하는 장소로서, 에로티시즘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오십여 호가 옹기종기 보여 있던 성황림마을의 본동에도 대여섯 집에 디딜방아가 있었다. 다른 집 대부분의 아이들처럼 어린 나이에도 소바라지에 한몫해야 했던 나는 겨울에는 행랑채와 디딜방아와 마주해 있는 소죽가마에 불을 때느라 늘 방
아 찧는 이웃 아낙들의 수다를 등 뒤로 들어 꾸러기들의 소식통이기도 했다. 가령 누구네 엄마가 돌아노는 신림오일장에 갈 것인지 등의 정보를 미리 알려주기도 했고, 마을부녀회가 운영하는 생필품 가게인 '생계'가 다음번에는 누구네 집으
로 넘어가는지도 남보다 먼저 알 수 있었다.
"내가 열두 살 먹어 이 집에 와 몇 해 동안은 저 방아가 올라가질 않아 넓직한 돌을 머리에 이고 찧었단다."
어릴 적 가끔 어머니를 조르면 쌀을 불려 빻아 시루떡을 해주셨는데, 그때 방아를 같이 밟아주던 내게 하시던 말씀이 아득하다.
"쿵! 더꿍~ 쿵! 더꿍~"


병꽃나무를 통해서는 고무줄 새총을 떠올린다.

성황림마을의 꾸러기들에게 병꽃나무는 고무줄 새총의 가달(Y자 모양의 몸체를 이르는 사투리)로 제격인 나무였다. 산 초입에 지천인 병꽃나무는 낫으로 베어다 땔감을 하기 때문에 베인 자리에서 두 가달이 양쪽으로 동시에 올라와 크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면 밑동은 엄지손가락 굵기에 양쪽 가지는 새끼손가락만 한 놈으로 골라 자른 뒤 두 가달을 안쪽으로 보기 좋게 휘어지도록 끈으로 묶어 타지 않을 만큼만 불에 구워 말린다.
고무줄은 애기 기저귀용 노랑고무줄이 최고이지만 워낙 귀해 붉은색 찰고무줄이라도 있으면 더 바랄 것이 없겠지만, 그것들도 오매불망 꾸러기들의 희망사항일 뿐이다. 구할 수 있는 고무줄이라야 기껏 엄마 머리카락 모아둔 것을 엿장수와 바
꾸거나 여자애들 고무줄놀이 때 기습해서 끊어온 까만 뚝고무줄뿐이었으니, 그나마도 군데군데 삭지 않았으면 감지덕지였다. 문제는 늘 돌을 감싸는 부분이었다. 조악한 품질의 헝겊이나 비닐가방 망가진 것을 쓰다보니 늘 귀퉁이가 찢어져 중
학교 다니던 형들의 가방 뚜껑 끝에 달린 구멍 뚫린 까만 가죽을 호시탐탐 노리기도 했다.
병꽃나무로 만든 고무줄 새총도 물푸레 활과 뺑대화살처럼 연신 만들어 새를 잡는답시고 돌아치기를 했지만, 역시나 '눈 깨물어진 새'를 잡아본 기억은 없다.


싸리나무의 쓰임새는 이렇게 다양했다.

집나간 아내가 혹여 올세라, 빼꼼이 열어놓은 어느 홀아비 집 사립문이며 담장도 싸리였고, 채소밭에 닭이며 가축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둘러친 나지막한 울타리도 싸리였으며, 변소간 흙벽 바를 때 수숫대와 겨릅대 사이사이에 서너 개씩 엮어주던 뼈대도 싸리, 솔개나 족제비, 새매로부터 병아리를 보호하기 위해 마당가 헛간 처마에 나지막이 매달려 있던 병아리 집도, 비오는 날이면 자리틀을 마루에 놓고 고드랫돌(발이나 돗자리 따위를 엮을 때 날을 감아 매어 늘어뜨리는 조그마한 돌) 덜걱거리며 뼈만 앙상한 아버지의 손에 발로 엮이던 것도 싸리였다.
아버지 지게 위에 얹혀 거름을 내고 각종 농산물을 져 나르도록 받쳐주는 바소고리(바소쿠리)도 싸리였고, 남들 놀 때 뛰어놀지 못하고 한몫 일을 거들어야 했던 어린 시절 듣기만 해도 경기 나는 그놈의 쇠풀을 뜯어 채우던 다래끼도, 여물을
퍼 나르던 삼태기도 싸리였다. 품앗이로 하던 모내기 날 모 찌랴 나르랴 모내기하랴 정신없이 일하다 출출하던 참에, 멀리 어머니의 머리 위에 얹혀 국시 새참을 담아내오던 놈도 싸리광주리였다.
자정 넘긴 당고사 끝나기만을 기다리던 눈동자만 하얗던 꼬맹이들에게 나누어주던 산적꼬치 몇 점을 꿴 나무도 싸리였고, 옥수수 속에 꽂아 등긁개로 쓰던 막대도, 꺼먹장화 옆판 오려 묶어 만든 파리채의 자리도, 잡히면 요절을 낸다고 만이
누나를 쫓아가던 만이 엄마 손에 들린 불붙은 부지깽이도 싸리였다.
명절 전이면 흰 가래떡을 뽑으러 신림장에 가신 어머님을 기다리느라 오누이는 당숲 밖 너럭바위에 점심때부터 걸터앉아 멀리 미루나무길 신작로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가물가물 나타나 가까워지던 어머니 머리에서 받아 내린 커다란 싸리광
주리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광목보자기를 들치고 꺼내주시던 흰 가래떡이 생각난다.


책에는 총 55개의 나무와 풀 이야기기 나온다. 이것들이 전부 어린 시절에 뛰놀던 고향에서의 추억과 연관되어 있다. 내 유년 시절도 지은이의 고향과 거리가 가까워서인지 사용하는 말이나 풍습이 거의 비슷했다. 이미 기억에서 많이 사라졌는데 이 책을 읽으며 옛 추억이 새록새록 되살아났다. 그런 정겹고 아름답던 것들이 너무짧은 시기에 대부분 사라졌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젊은 사람은 젊은 사람대로, 나이 든 사람은 나이 든 사람대로 이 책을 통해 많은 것을 느끼게 될 것 같다. 아무리 바쁜 세상이지만 잠깐 길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는 것도 의미 없는 일은 아니리라. 이 책을 읽고 나면 나무와 풀이 다른 각도에서 보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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