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핸드메이드 라이프

샌. 2012. 3. 18. 08:27

며칠 전에 마트에서 산 물건이 한 보따리 배달되었는데 아내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참 좋은 세상이다!" 방에 앉아 인터넷으로 클릭 몇 번을 하면 약속된 시간에 집에까지 갖다 준다. 너무 편하다. 그러나 아내의 '좋은 세상'이라는 말은 액면 그대로의 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 '정말 좋은 세상일까?'라는 의문과, '이렇게 살아도 되는가'라는 두려움이 '좋은 세상'이라는 말 속에 들어 있다. 가능하면 대형 마트를 이용 안 하려 하지만 가격과 편리함 때문에 무너지고 만다. 도시에 살게 되면 머리와 몸이 따로따로 놀게 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세상은 살기 좋아지고 편리해졌지만 우리는 전보다 더 공허해졌다. 뭔가 근본에서 멀어진 것 같고, 우리 자신이 삶의 주인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이러한 때에 기계문명의 시스템을 거부하고 실험적이고 새로운 삶을 시도하는 사람들이 있다. <핸드메이드 라이프>(A Handmade Life)를 쓴 윌리엄 코퍼스웨이트(William Coperthwaite)도 그런 사람들 중 하나다.

그는 메인 주 북부 해안에 있는 농가에서 소박한 삶을 추구해 온 교사이자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이자 작가다. 소로, 간디, 디킨슨, 니어링 부부의 정신을 이어받아 거의 아무것도 사지 않고 필요한 것은 직접 만들어 사용한다. 자연 속에서 땅에 사는 모든 생명과 건강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고 있다. 하나하나에 역사와 땀과 애정이 깃든 물건을 사용하고, 동력에 의존하지 않으면서 땔감을 만들고 풀을 베고, 배를 저어가서 장을 보아 오고, 자신이 살 집은 손수 짓는다. 그는 자신의 철학을 삶을 통해 실천하고 있다. 코퍼스웨이트는 한 개인이 얼마나 독창적이고 온전한 삶을 살 수 있는지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은 그가 정의와 아름다움과 희망이 가득한 세상을 창조할 수 있는 삶의 방식을 평생 추구해 온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책의 목차를 이루는 교육, 비폭력, 소박한 삶, 자발적 가난, 디자인, 민주주의 등이 다루는 주제다. 인간은 소박하고 단순한 삶, 그리고 자연과의 친화를 통해서만 아름답고 조화로운 삶을 이룰 수 있다. 풍족에 대한 갈망이 클수록 가난한 사람은 더욱 비참해지고,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사이의 틈은 더 벌어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폭력은 불가피해진다. 우리는 인간답고 민주화된 새로운 삶과 사회 시스템을 디자인해야 한다.

책 제목이 나타내듯 삶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자기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삶을 살아야 한다. 직접 씨앗을 심고, 집을 짓고, 필요한 생활 도구를 만듦으로써 돈에 지배당하는 삶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는 문명을 거부하는 소박한 삶의 모범을 보여준다. 특이한 점은 미(美)의 가치를 굉장히 중요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가 말하는 '디자인'은 물건의 형태가 가지는 기능성과 아름다움만이 아니라 소박하고 민주적인 사회를 만드는 행위도 포함된다. 따뜻하고 인간적인 새로운 사회를 만드는 디자인에 우리의 노력을 모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런 점에서 '핸드메이드'는 단순히 물건을 직접 만든다는 뜻을 넘어 내 손으로 만드는 인생, 내 손으로 만드는 새로운 세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산업문명은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다. 자연과 인간에 대한 착취가 이대로 계속된다면 우리는 머지않아 문명의 종말을 경험할 것이다. 기계문명의 시스템을 벗어나 대안적인 삶을 찾아 애쓰는 사람들을 통해 인류의 미래를 희망차게 그려보게 된다. 윌리엄 코퍼스웨이트도 그런 큰 줄기를 이루는 사람 중 하나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극단적인 삶의 형태로 보일지라도 두려워 말고 자신의 길을 가라고, 메테를링크의 글을 인용해 이렇게 격려한다.

'미래로 뻗어 있는 갈림길에 선 모든 진취적인 영혼은 그 길을 가로막는 숱한 사람들의 반대에 부딪히게 되어 있다. 부디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그래야만 그들이 전에 쌓아놓은 거창한 금자탑을 본의 아니게 보존해주는 일이 없을 터이니. 우리들 중 가장 소심한 자라 할지라도 할 수 있는 최소의 일이란, 자연이 지금까지 끌고 온 어마어마한 짐에 부담을 주지 않는 것이다.

최선의 진리는 언제나 온건함에 있다고, 근사한 평균에 있다고 우리 스스로를 속이지 말도록 하자. 오늘의 평균, 근사한 온건함이란 내일에 보면 가장 비인간적인 것이기 십상이다. 스페인 종교재판에서 건전한 양식과 건전한 균형을 갖춘 사람들의 의견은 이단자들을 너무 많이 태워 죽여서는 안된다는 식이었다. 한편 그보다 훨씬 더 극단적이고 상식 밖이라는 평을 받은 사람들의 의견은 사람을 태워 죽여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인간의 운명을 영원으로 싣고 가는 보이지 않는 거대한 배가 있다고 상상해보자. 한정된 해양을 떠다니는 우리의 배들처럼 이 배에도 돛과 밸러스트가 있다. 배가 정박지를 떠난 뒤 전후좌우로 흔들릴 것이 겁나서 멀쩡한 돛들을 배 밑바닥의 짐칸에 채워 넣어 밸러스트를 늘릴 필요는 없다. 돛은 컴컴한 배 밑바닥의 짐칸에 쳐박혀 자갈돌 옆에서 썩으라고 만들어놓은 것이 아니다. 밸러스트는 어디서나 구할 수 있다. 어느 항구에 가도 있는 조약돌, 어는 해변에 있는 모래도 밸러스트로 쓸 수 있다. 하지만 돛은 드물고도 귀한 물건이다. 그것이 있어야 할 자리는 배 밑바닥의 컴컴한 창고 속이 아니라 탁 트인 바깥의 바닷바람을 안을 수 있는 햇살 가득한 높다란 돛대 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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