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 28

당구 명언

PBA가 생기면서 우리나라는 당구의 중심국이 되었다. 그러나 당구가 일본을 통해 우리나라에 들어온 관계로 용어는 대부분이 일본어다. 가라꾸, 나미, 다마, 다이, 레지, 무당, 빠킹, 삑사리, 오시, 짱꼴라, 쫑, 황오시, 후루꾸, 히까기, 히끼, 히네루, 히로 등 많다. 이중에 다수는 지금도 당구장에서 쉽게 들을 수 있다. 빨리 바로잡아야 할 텐데 습관의 힘은 그렇게 무서운 것이다. 용어만이 아니라 당구 이론도 제대로 정립되지 않아 보인다. 물리 이론으로 설명하려 하는데 엉터리로 적용하는 게 많다. '힘'이나 '충격량', '운동량'에 대한 기본 개념이 결핍되어 있으면서 공의 운동을 설명하려고 하니 억지가 심하다. 그렇다고 당구가 이론으로 되지도 않는다. 이론에 정통한 사람이 당구를 잘 친다면 물리학자나..

길위의단상 2024.04.28

내가 봐도 우습다 / 안정복

늙은이 나이가 팔십에 가까운데날마다 어린애들과 장난을 즐기네 나비 잡을 때 뒤질세라 따라갔다가매미 잡으러 함께 나가네 개울가에서 가재도 건지고숲에 가서 돌배도 주워오지 흰머리는 끝내 감추기 어려워남들이 비웃는 소리 때때로 들려오네 翁年垂八十 日與小兒嬉捕蜨爭相逐 점蟬亦共隨磵邊抽石해 林下拾山梨白髮終難掩 時爲人所嗤 - 내가 봐도 우습다(自戱效放翁) / 안정복(安鼎福)  순암 안정복 선생은 18세기를 살았던 유학자였다. 이웃 동네에 선생이 학문을 연구하고 후학을 가르쳤던 '이택재(麗澤齋)'라는 서재가 있다. 앞에는 영장산이 있고 뒤에는 국수봉이 감싸고 있는 아늑한 동네다. 선생은 성호 이익(李瀷)을 스승으로 모시고 배우며 영향을 받았다. 실학자로 분류되지만 보수적이어서 평생 주자학을 신봉하며 새로운 학문을 추구..

시읽는기쁨 2024.04.27

사기[17-1]

공자(신릉군)는 사람됨이 어질고 선비들에게 예의로 대우했다. 선비가 어질든 그렇지 않든 구별하지 않고 누구에게나 겸손하게 예를 갖추어 사귀고, 자기가 부귀하다고 해서 교만하게 구는 일이 없었다. 그의 어짊에 선비들이 수천 리에서 앞을 다투어 몰려와 공자에게 몸을 의지하여 식객이 3000명이나 되었다. 그 무렵 제후들은 공자가 어질고 식객이 많음을 알고 섣불리 위나라를 공격하려 하지 않은 지 10여 년이나 되었다. - 사기(史記) 17-1, 위공자열전(魏公子列傳)  4 공자 중에서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 사람이 위나라 신릉군(信陵君)이다. 신릉군은 위나라 소왕의 막내아들로 이름은 무기(無忌)였다. 사마천은 신릉군이 어질고 겸손하며 선비들을 존경하면서 사사로운 이익보다 나랏일을 중시한 것을 높게 평가한다. ..

삶의나침반 2024.04.26

중대동 느티나무

경기도 광주시 중대동에 있는 느티나무다. 중대동 (中垈洞)은 국수봉 산줄기로 둘러싸인 아늑한 마을이다. 광주 안씨 세거지라는 표지판이 있는데 광주 안씨의 시조가 이곳에 살았다고 한다. 18세기 실학자였던 안정복(安鼎福) 선생이 세운 서재인 '이택재(麗澤齋)'가 있다.  이 나무는 마을에 있는 여러 느티나무 고목 중 하나로 시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나무는 마을 길 쪽으로 너무 붙어 있어 가지가 많이 잘려나가고 몸체도 기울어져 있어 힘겨워 보인다. 수령은 250년이고, 나무 높이는 15m, 줄기 둘레는 3.4m다.

천년의나무 2024.04.25

봄날의 동네 걷기

봄이 한창인 때, 동네 걷기에 나섰다. 우리 동네는 현대와 과거의 모습이 공존하고 있다. 집에서 살짝만 벗어나도 옛날 시골 마을 풍경과 만난다. 전에는 과수원, 논밭이 있었지만 몇 년 전에 논이 사라지고 아파트가 들어섰다. 그래도 아직은 농촌 모습이 적게나마 남아 있어 다행이다. 과수원의 복사꽃은 막바지다. 꽃잎은 대부분 낙화하고 일부만 가지에 달려 있다.  걷는 중에 겹벚꽃이 핀 벚나무를 세 그루 만났다. 늦게 보는 벚꽃이 솜사탕 마냥 풍성하고 달콤했다. 꽃그늘 아래에서 위를 쳐다보니 "와"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예쁜 창문을 가진 집은 유치원 건물이다.  마을을 지나 신록 가득한 뒷산으로 올라갔다.  뒷산을 넘어 건너편에 있는 이웃마을까지 가려한다. 이번에..

사진속일상 2024.04.24

만지고 싶은 기분

뮤지션이자 작가인 요조의 산문집이다. 요조 작가는 '책, 이게 뭐라고'라는 팟캐스트에서 목소리로 친근해진 터여서 쉽게 다가갈 수 있었다. 여기에는 음악을 하고 글 쓰는 여성의 섬세한 감성을 느끼고 싶은 면도 있었다. 일흔 넘어 자꾸 무디어지는 감성을 이런 식으로라도 보충하지 않으면 내 생각과 삶이 너무 삭막해질 것 같아서였다. 예상한 대로 따스하면서 여린 작가의 마음씀을 글을 통해 접할 수 있어 좋았다. 글은 상당 부분 글 쓴 사람의 인격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작가는 기본적으로 사람을 좋아하는 분 같다. 그러면서 작고 연약한 것에 대한 애정이 잔잔하게 흐른다. 제주도에 '책방 무사'라는 서점을 연 연유도 여기에 있지 않나 싶다. "익숙하게 싫어하던 대상에 낯설게 임해보면 싫어하는 마음이 슬그머니 묘연해질..

읽고본느낌 2024.04.23

반에 반의 반

가끔 여자가 되어 보고 싶을 때가 있다. 여자의 속성이 부러워서라기보다 여자가 바라보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가 궁금해서다. 여자가 바라보는 남성, 여자가 바라보는 가족, 여자가 바라보는 생명 등은 남자의 관점과는 다를 것 같다. 우리는 이성(異性)과 섞여 살지만 어쩌면 죽을 때까지 상대를 알지 못하고 살아가는지 모른다. 천운영 작가의 소설 은 여성의 입장에서 여성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연작의 형식으로 작가 자신의 체험에서 나온 사연들을 담고 있다. 딸조차도 어머니를 오해하는데 남성이 여성을 이해하기는 훨씬 더 어려운 일이다. 남성은 체화한 인습과 관념의 색안경을 끼고 여성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물론 그 반대도 마찬가지겠지만.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인간을 더 깊이 이해하려는 노력이라고 생각한다. 소설에서..

읽고본느낌 2024.04.22

홍세화 선생의 마지막 당부

대표적인 진보 지식인이자 활동가였던 홍세화 선생이 지난 18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77세였다. 선생은 1970년대 남민전 사건에 연루돼 프랑스에 망명했다가 라는 책을 내며 일반에 알려졌다. 내가 선생을 알게 된 것도 이 책을 통해서였다. '똘레랑스'라는 말을 이때 처음 접했지 않나 싶다. 그 뒤 귀국해서 저술과 강연, 정치 등 너무 물질적으로 경도되는 우리 사회를 경고하며 다양한 활동을 했다. 20년 전 쯤 선생을 강연장에서 뵀던 기억이 난다. 전교조 서울지부에서 주최한 강연회였는데 잠실에 있는 여성회관에서였다. 교사들 대상이었으니 강연 주제는 한국 교육의 현실 진단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프랑스 교육 제도와 비교하면서 아동 학대에 다름없는 우리의 입시 체제를 비판하면서 교육 운동을 격려했다. 그때 ..

참살이의꿈 2024.04.21

종달새의 하루 / 윤석중

하늘에서 굽어보면 보리밭이 좋아 보여 종달새가 쏜살같이 내려옵니다. 밭에서 쳐다보면 저 하늘이 좋아 보여 다시 또 쏜살같이 솟구칩니다. 비비배배거리며 오르락내리락, 오르락내리락하다 하루 해가 집니다. - 종달새의 하루 / 윤석중 소년 시절에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가자면 벌판을 지나야 했다. 가운데에 둑방이 있었는데 왼쪽으로는 하천 언저리의 터가 넓었고, 오른쪽으로는 논과 밭, 과수원이 있었다. 우리는 둑방 위로 날 길을 따라 학교를 오갔다. 봄날이면 벌판에 아지랑이가 피어나고, 하늘에서는 종달새가 우짖으며 바삐 날아다녔다. 아지랑이와 종달새 노랫소리로 아련하게 떠오르는 내 어릴 적 봄 풍경이다. 하지만 종달새를 가까이 볼 수는 없었다. 멀리 작은 점으로 하늘에 떠 있거나 빠른 속도로 날아가는 모습으로만 ..

시읽는기쁨 2024.04.20

괴물 부모의 탄생

교사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밖에 나가는 소풍이나 체험 학습을 꺼려한다는 보도를 보았다. 작은 사고만 나도 고소를 당하고, 심지어는 자기 아이에게 독방을 달라고 요구하는 극성 학부모도 있다고 한다. 작년에는 학부모의 항의와 민원으로 고통을 받던 교사가 자살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사회문제가 되었다. 지나치게 제 자식만 챙기면서 교사를 괴롭히는 학부모를 일본에서는 '괴물 부모'라고 부르는 것 같다. 은 우리보다 먼저 이런 병증을 겪고 있는 일본과 홍콩 사례를 중심으로 괴물 부모가 생겨난 원인과 내재한 심리, 대안을 모색하는 책이다. 담임이 말하는 괴물 부모의 악행을 보면 기가 차는 사례가 많다. 소풍을 갔다왔는데 제 딸 사진이 잘 나오지 않았다고 다시 소풍을 가라고 요구한다든지, 담임의 액세서리나 아이폰을 본 아..

읽고본느낌 2024.04.19

소래풀

소래풀꽃은 유채꽃과 비슷한 시기에 핀다. 겉보기로는 유채와 닮은 점이 많아 '보라유채'라고도 불린다. 유채와 소래풀은 같은 십자화과에 속하니 계통상으로는 근연관계에 있는 종이다. 유채처럼 나물로 먹을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소래풀도 유채처럼 넓은 면적에 대량으로 기르면 비슷한 분위기를 낼 것 같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유채와 섞어서 꽃밭을 만들면 좋을 듯하다. 유채나 소래풀이나 낱개보다는 군락으로 있어야 더욱 빛이 나는 꽃이다. 전주천에서 처음 만난 소래풀이었다.

꽃들의향기 2024.04.18

9년 만에 대모산을 걷다

수서에서 점심 약속이 있던 차에 겸하여 대모산(大母山) 길을 걸었다. 9년 만이었다. 대모산입구역에서 내려 10여 분 걸어가면 산으로 올라가는 입구를 만나고, 산길은 일원터널 위를 지나간다. 일원터널 위에서는 재건축된 스타힐스아파트가 보였다. 5층 짜리 허름한 서민 아파트가 있던 자리인데 어느새 모던하게 일변했다. 공무원 임대아파트에 살던 친구집에 바둑 두러 자주 갔던 기억을 떠올리며 한참을 서 있었다. 30년도 더 전이니까 까마득한 옛날이다. 나에게 대모산은 3, 40대 때의 추억이 오롯이 담긴 산이다. 집에서 걸어 다닐 정도로 가까웠으니 뒷산처럼 수시로 오갔다. 그 뒤로 대모산과 멀어진 것이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된 셈이다. 산 중턱에 있는 불국사(彿國寺)를 찾아보았다. 얼마나 변했을까, 궁금했는데 의..

사진속일상 2024.04.17

문수사 겹벚꽃

서산시 운산면에 있는 문수사(文殊寺)는 겹벚꽃으로 유명하다. 전주에서 올라오는 길에 마침 겹벚꽃 때와 맞아 문수사를 찾았다. 봄비 내리는 평일이라 겹벚꽃 명소지만 드문드문 사람들이 보일 뿐이었다. 비를 맞은 벚꽃 색깔이 더 진해 보여 나에게는 안성맞춤의 날이었다. 겹벚꽃은 벚꽃이 지고나서 핀다. 꽃 색깔은 분홍색이다. 문수사 겹벚꽃은 대략 4월 중순에서 하순 사이에 활짝 핀다. 같은 종류지만 겹벚꽃은 벚꽃과는 완연히 느낌이 다르다. 화려하고 풍성한 복사꽃을 보는 듯하다. 올해는 이곳저곳 아름다운 봄꽃을 자주 만나고 있다.

꽃들의향기 2024.04.16

장모님을 뵙고 오다

장모님을 뵈러 전주에 내려가서 3박4일간 있었다. 아내는 자주 내려가지만 함께 가기는 오랜만이었다. 어쩌다 보니 각자 자신의 어머니를 주로 챙기게 되었다. 아무래도 마음씀이 내 혈족만 하겠는가. 아내가 내 어머니를 대하는 마음이 나와 같기를 바라는 것은 욕심임을 안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마음이 일어나는 대로 자연스레 살아가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과거에는 그렇지 못해서 자주 부딪치며 부부싸움의 원인이 되었다. 이젠 어느 정도는 의무감의 속박에서 벗어났다. 첫째 날은, 내려가면서 대전에 있는 계족산 황톳길에 들렀다. 요사이 맨발 걷기가 유행인데 그 원조가 장동산림욕장 안에 있는 이 황톳길이다. 계족산 황톳길은 2006년에 임도 14.5km에 황토 2만여 톤을 투입하여 조성한 맨발 걷기의 명소다. 임도..

사진속일상 2024.04.16

용두회에서 남한산성 걷기

용두회의 이번 달 월례 걷기는 남한산성이었다. 넷이 남문에서 시작하여 수어장대, 서문, 북문을 거쳐 산성마을까지 걸었다. 수어장대 옆에서 자라는 소나무에는 원형 지지대를 설치하는 공사를 하고 있었다. 이제 우리 걷기는 노인들의 산책 수준이 되었다. 전 같았으면 응당 씩씩한 성곽 한 바퀴였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도 말을 꺼내지 않는다. 좀 더 지나면 이마저도 힘겨워서 아랫동네에서만 놀려고 하겠지. 그날이 멀지 않았다는 사실이 애잔하다. 바꿔 말하면 오늘 이렇게 걸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 일인지를 알겠다. 어제 22대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이 있었다. 범야권이 190석에 이르는 대승을 했다. 국민이 윤석열 정권에게 매운 회초리를 든 셈이다. 내심 생각은 많겠지만 우리 사이에서 선거 결..

사진속일상 2024.04.12

정충묘 자목련

경기도 광주시 초월읍에 있는 정충묘(精忠廟)는 병자호란 때 나라를 위해 순국한 장군들의 절의를 기리고 제를 드리기 위해 세운 사당이다. 당시 남한산성에 포위되어 있는 인조를 구하기 위해 이곳에서 청나라 군사들과 맞서 싸우다가 전사한 경상좌도 병마절도사 허완을 비롯한 4명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정충묘에는 자목련 숲이 있어 봄이 되면 목련을 구경하러 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차를 타고 지나다가 갓길에 세우고 들르는 사람도 많다. 우리나라에서 이만한 목련 숲을 만나기가 흔치 않다. 마침 때가 제일 잘 맞을 때 찾아본 정충묘 자목련이었다.

꽃들의향기 2024.04.11

마름산을 걷다

산길을 걷기에는 지금이 제일 좋은 때가 아닌가 싶다. 그래서 발걸음이 자꾸 산으로 향한다. 오늘은 마름산을 걸었다. 백마산까지는 가지 않고 중간에서 빠져나와 초월읍사무소로 하산했다. 정충묘의 적목련을 보기 위해서였다. 너른골 풍경은 해가 다르게 바뀐다. 내가 이사 올 때만 해도 앞에 보이는 아파트는 없었다. 지금은 바로 밑에서 종합운동장 공사가 시작되었다. 앞으로 역 주변으로는 상업 시설물이 엄청나게 들어설 것이다. 아직 남아 있는 진달래와 산벚꽃을 품고 숲은 연초록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산자락에 있는 닻미술관 벚꽃이 눈부셨다. 화사한 벚꽃 아래 벤치에 앉아 꽃비도 맞았다. 걷기의 끝인 대로변에는 자목련으로 유명한 정충묘가 있다. 이곳 자목련은 절정을 지나고 있다. 작은 배낭을 메고 봄 산길을 걷는 걸..

사진속일상 2024.04.11

남한산성 얼레지(2024/4/8)

얼레지가 지고 있다는 소식에 부랴부랴 남한산성을 찾았다. 사기막골에서 계곡을 타고 올라 능선 왼쪽으로 가면 검단산이 나오는데 이 주변에 얼레지가 핀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서 피는 얼레지다. 얼레지를 처음 본 것이 30년 전 천마산에서였다. 그때 첫 느낌이 "참 당돌한 꽃이구나"라는 것이었다. 고개를 숙이고는 있지만 꼿꼿이 서서 자신의 아름다움을 당당하게 과시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꽃 모양이 연 날릴 때 실을 감는 도구인 얼레와 비슷하다고 해서 얼레지란 이름이 붙었다고 옆의 선배가 설명해 주었다. 나는 내심 마를린 먼로가 떠올랐다. 지하철 환풍구 바람에 치마가 위로 올라간 명장면 말이다. 얼레지의 젖혀진 꽃잎이 꼭 그러했다. 그 뒤로 거의 매해 여러 산에서 얼레지를 만났다. 얼레지는 언제 봐도 찬..

꽃들의향기 2024.04.09

사기막골에서 오르다

남한산성에 난 길은 대부분 걸어보았으나 성남의 사기막골에서 오르는 코스는 이번이 초행이었다. 아무래도 접근성이 떨어지다 보니 발길이 멀어졌다. 이번에는 작심하고 찾아갔다. 버스에서 내리면 황송공원을 지나 사기막골근린공원에서 산에 들게 된다. 산은 춘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사기막골에서 오른 목적은 남한산성의 얼레지를 보기 위해서였다. 얼레지가 나타나기 전에 만개한 진달래가 먼저 반겨주었다. 검단산 부근에서 시들기 시작하는 얼레지를 만났다. 며칠만 늦었어도 얼레지를 보지 못하고 올해를 넘길 뻔했다. 제비꽃 종류로는 태백제비꽃(?)이 많았다. 꽃에 대한 관심이 시들해지니 꽃 이름 불러주는 것도 자신이 없다. 사기막골에서 검단산까지 올라 얼레지를 보고 뒤돌아나와 망덕산을 거쳐 이배재까지 걸었다. 이배재터널이 ..

사진속일상 2024.04.09

사랑인 줄 알았는데

일본은 재미있는 나라다. 매년 노인들을 대상으로 실버타운협회에서 주관하는 센류 공모전이 있다. 어느덧 20년이 넘었다. '센류(川柳)'란 5-7-5 음률의 정형시로 풍자나 익살이 특징이다. 하이쿠와 비슷한데 자연을 소재로 하는 하이쿠와 달리 센류는 인간 삶의 애환에 중점을 둔다. 이 공모전이 노인들에게 얼마나 인기가 있는지 매해 1만 수가 넘는 작품이 출품된다고 한다. 고령자의 생활상과 심정을 읊은 '실버 센류' 작품을 보면 웃음이 나오면서도 슬프고 애잔하다. '웃프다'라는 말이 딱 어울린다. 수상작은 책으로도 출판되는데 우리나라에서도 번역되어 있다. 그중 몇 수를 골라보았다. 확인한다 옛날에는 애정 지금은 숨소리 할멈 개한테 주는 사랑 나한테도 좀 주구려 손주 목소리 부부 둘이서 수화기에 뺨을 맞댄다 ..

길위의단상 2024.04.08

어른의 어휘력

"언어는 나다. 나의 세상은 언어의 한계만큼 작거나 크다." 책을 읽다가 순간 멎어버린 강렬한 인상의 문장이다. 인간이 언어를 통해 사고하고 인식한다면 어휘력이야말로 우리가 보는 세상의 넓이를 결정한다고 할 수 있다. 마음속 생각을 드러낼 어휘가 부족하다면 세상과의 소통에 그만큼 장애를 겪을 것이다. 그러므로 어휘력을 키운다는 것은 세상을 보는 힘과 시각을 기르는 일이다. 지은이인 유선경 작가는 에서 책 읽기, 글쓰기, 말하기, 공감, 소통과 관련한 어휘력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오랫동안 라디오 방송 작가로 일한 경험을 토대로 작가는 아름다운 우리말도 소개한다. 주석에는 보석 같은 예쁜 단어들이 많이 나온다. 메모해 두었다가 언젠가는 써먹어 보고 싶은 말들이다. "나는 한갓진 게 좋고, 잠포록한 날씨를 좋..

읽고본느낌 2024.04.07

바람의 집 / 이종형

당신은 물었다 봄이 주춤 뒷걸음치는 이 바람이 어디서 오는 거냐고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4월의 섬 바람은 수의 없이 죽은 사내들과 관에 묻히지 못한 아내들과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잃은 아이의 울음 같은 것 밟고 선 땅 아래가 죽은 자의 무덤인 줄 봄맞이하러 온 당신은 몰랐겠으나 돌담 아래 제 몸의 피 다 쏟은 채 모가지 뚝뚝 부러진 동백꽃 주검을 당신은 보지 못했겠으나 섬은 오래전부터 통풍을 앓아온 환자처럼 살갗을 쓰다듬는 손길에도 화들짝 놀라 비명을 질러댔던 것 4월의 섬 바람은 뼛속으로 스며드는 게 아니라 뼛속에서 시작되는 것 그러므로 당신이 서 있는 자리가 바람의 집이었던 것 - 바람의 집 / 이종형 어제가 제주 4.3 사건 76주년이었다. TV로 추념식을 보며 이념 갈등으로 벌어진 우리 현대사의 ..

시읽는기쁨 2024.04.04

예봉산의 봄맞이

다시 찾아온 봄을 맞으러 예봉산에 들었다. 계곡의 노루귀가 제일 궁금했고, 다른 꽃들과도 눈맞춤할 생각에 들떴다. 지난 가을 이후 산행은 다섯 달만이다. 예봉산은 높이가 683m지만 능선의 경사가 급해 만만찮은 산이다. 이번에는 계곡을 타고 올라가서 능선을 따라 내려오기로 한다. 산은 진달래가 한창이고 초입에는 제비꽃을 비롯해 많은 야생화가 피어나기 시작했다. 꽃들을 구경하면서 느릿느릿 정상에 올랐다. 등산객이 놓아준 먹이에 곤줄박이는 신이 났다. 사람이 가까이 있으면 먹이를 물고 날아갔다가 눈치를 봐서 다시 오기를 반복했다. 새로서는 엄청 용기 있는 행동이다. 그나마 곤줄박이니까 가능하지 다른 새들은 감히 접근을 못한다. 예봉산 정상은 조망이 좋다. 북서 방향으로는 서울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멀리 ..

사진속일상 2024.04.03

떨림과 울림

과학 도서가 초판 30쇄를 했다는 사실이 반가우면서 놀라웠다. 이마저 2022년 기준이니 지금은 더 올라갔을 것이다. 은 물리학의 기초 이론을 설명하지만 내용이 쉽지만은 않고 상당히 철학적인 책이다. 인기 요인 중에는 지은이인 김상욱 선생의 유명세 덕분도 있을 것이다. 은 우주에서 시작하여 힘과 에너지, 시공간에 대한 해석, 엔트로피와 양자역학 등 우리가 세계를 이해하는 물리학의 틀과 이론을 보여준다. 기존의 과학서적과는 다른 접근법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물리 이론이 세상의 구조를 밝히는 걸 넘어 인간의 삶에 대한 통찰과 연결될 때 물리학은 따스한 학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김상욱 선생의 역할이 크다고 할 수 있다. 한 예로 원자를 설명하면서 우리가 죽음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어떠해야 하는지..

읽고본느낌 2024.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