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872

좋은 국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책 제목에 나오는 '좋은 국가'는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다를 것이다. 이 책의 내용으로 봤을 때 지은이가 말하는 '좋은 국가'는 '선진국' '강국' '선도 국가'의 의미로 쓰인 것 같다. 나는 '좋은 국가'를 노자의 소국과민(小國寡民)에 바탕을 둔 나라라고 생각한다. 현재 지구촌에서 찾는다면 부탄이 제일 비슷하지 않을까. 경제력이나 군사력이 아니라 국민의 행복을 최우선으로 해서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나라다. 그러나 대부분의 나라는 이미 돌아갈 수 없는 지점을 지나고 말았다. 는 스웨덴에서 정치학을 공부하고 스톡홀름 싱크 탱크인 '스칸디나비아 정책 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는 최연혁 선생이 쓴 책이다. 지나온 역사에서 세계의 중심 국가로 부상했던 여러 나라 - 스페인, 네델란드, 프랑스, 영국, 독..

읽고본느낌 2021.07.23

오쇼 라즈니쉬의 문제적 유토피아

1980년대 후반일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오쇼 열풍이 불었던 적이 있다. 내 책장에도 그때 사서 읽었던 오쇼 책이 10여 권 꽂혀 있다. 기성 종교나 체제에 만족하지 못하면서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던 사람들이 오쇼에 심취했다. 동서양의 철학과 종교를 넘나들며 펼치는 그의 화려한 필체에는 사람들을 매혹시키는 뭔가가 있었다. '오쇼 라즈니쉬의 문제적 유토피아'는 넷플릭스에서 만든 6부작 다큐멘터리다. 1981년에 오쇼는 인도 아쉬람을 정리하고 미국 오리건주 앤털로프에 새로운 공동체를 만든다. 주도적 역할을 한 사람은 오쇼의 비서였던 쉴라였다. 이 다큐멘터리는 유토피아를 건설하려는 공동체 실험의 시작부터, 주민과의 갈등으로 실패해서 1985년에 철수하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준다. 쉴라를 비롯해서 그때의 운동에 함..

읽고본느낌 2021.07.15

제법 안온한 날들

"사람은 일방적으로 불행하지 않다." 이 책에서 건진 한 문장이다. 병원 응급실에서 근무한 글쓴이는 수많은 죽음과 불행을 지켜보며 인간은 조건이 아무리 척박하더라고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기도 한다고 말한다. 이러이러하니까 타인이 불행하다고 재단하는 것은 나의 오만일 수 있다. 사람들은 각자의 슬픔을 안고 당당하게, 당연하게 살아간다. 정도의 차이일 뿐 모든 사람이 그러하다. 은 이대목동병원 임상조교수로 재직중인 남궁인 님이 병원 응급실에서 근무했던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인간의 삶과 죽음, 사랑을 감성적인 필체로 보여주는 책이다. 가슴 뭉클하고 눈시울이 붉어지는 사연들이 많다. 저자는 살벌한 응급실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싶을 정도로 여리고 따스한 분인 것 같다. 인간의 고통을 곁에서 접하며 그는 삶과 죽음에..

읽고본느낌 2021.07.11

탁월한 사유의 시선

최진석 선생이 2015년에 건명원(建明苑)에서 한 철학 강의를 묶은 책이다. 우리는 이때껏 남의 사상을 빌려서 살아왔다. 옛날에는 중국에서, 근대에 들어서는 서양의 생각을 수입해 종속적으로 살아온 것이다. 이래서는 독립된 나라라고 할 수 없다. 선도력을 가진 선진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만의 생각과 철학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이제 종속적인 단계에서 벗어나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삶의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국가뿐 아니라 개인도 마찬가지다. 은 이러한 시대정신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과제를 준다. 건명원은 해를 해로만 보거나 달을 달로만 보는 분열된 삶에서 벗어나 해와 달을 동시적 사건으로 장악하는 활동성[明]을 통해 아직 이름 붙지 않은 곳[苑]으로 건너가는 도전을 감행하고자 세워진[建] 인문-과학-예술 혁..

읽고본느낌 2021.07.03

무서운 의학사

인류가 지금과 같은 의학 지식과 의료 시스템을 갖추기까지 얼마나 많은 도전과 시행착오가 있었는지를 에피소드 중심으로 보여주는 책이다. 19세기 이전에는 의사들이 환자에게 도움을 주기는커녕 도리어 해악을 끼친 면이 더 많았던 것 같다.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현대 의학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겠다. 는 '무서운 병', '무서운 사람들', '무서운 의사', '무서운 의료'의 네 파트로 되어 있으며 짧은 에피소드로 소개하는 이재담 작가가 쓴 서양 의학사다. 책에 소개된 몇 개를 골라본다. # 1 독일의 프리드리히 2세(1194~1250)는 지식에 대한 끊임없는 갈증으로 유명한 왕이었다. 그는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은 절대로 납득하지 않아 주위 사람을 곤란하게 했다. 의학에도 관심이 많았던 왕은 의..

읽고본느낌 2021.06.28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

서울대병원에서 종양내과 전문의로 근무하고 있는 김범석 선생이 쓴 책이다. 암 환자를 담당하는 의사로서 만난 여러 죽음과 사연을 소개하며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성찰하게 한다. 부제가 '생의 남은 시간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것'이다. "Hodie Mihi, Cras Tibi" - 로마 시대 때 공동묘지 입구에 적혀 있었다는 글귀인데, '오늘은 나에게, 내일은 너에게'라는 뜻이다. 우리는 각자 다른 갈래의 인생길을 걸어가지만 끝은 똑같다. 오늘 누군가의 죽음이 내일 나의 죽음이 된다. 타인의 죽음은 바로 나의 죽음을 대면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 책에 나오는 사례들이 남의 이야기로 치부할 수 없는 까닭이며, 그래서 너무나 절절이 가슴을 울린다. 여러 사례 중에서 중환자실에서 마지막을 맞은 어느 할머니의..

읽고본느낌 2021.06.24

다읽(11) - 월든

이번에 수문출판사에서 안정효 선생의 번역본이 나왔다. 새로운 번역은 어떤 맛일까 싶어 책을 사서 읽었다. 책 제목은 소로우의 원제 그대로 써서 이다. 을 다시 읽으니 가슴이 두근거리면서 20여 년 전의 내 모습이 아련하게 떠오른다. 지금 책장에 있는 책 중에서 다섯 권을 남기라면 도 한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그만큼 나에게는 소중했으며 지금도 역시 귀한 책이다. 내 내면의 북소리가 울릴 때 그 울림을 외면하지 말라고 용기를 주는 책이 이다. 그리고 이 책에 스며 있는 '월든 정신'을 나는 사랑한다. '월든 정신'은 소로우가 숲으로 들어간 이유를 설명하는 대목에 잘 나와 있다. "내가 숲으로 들어간 까닭은 인생을 생생하게 의식하며 살아가고, 삶의 본질적인 면목들만 접하여, 인생이 가르치고자 하는 바를 내가..

읽고본느낌 2021.06.19

교실 안의 야크

처음 만나는 부탄 영화다. 부탄이라고 하면 불교 국가면서 은둔의 왕국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국민 행복을 국가 경영의 최우선에 두는 탓에 세계 행복도 조사에서 항상 상위권을 차지한다. 경제적으로는 가난하지만 마음이 부자인 나라다. 이 영화의 주제는 역시 행복이다. 유겐이라는 젊은 교사가 부탄에서도 가장 외진 벽지 학교로 발령을 받는다. 일주일을 걸어가야 하는 해발 5천 미터 되는 '루나나'라는 산골 마을이다. 호주로 이민을 꿈꾸는 유겐인지라 처음에는 모든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 도시 생활에 익숙한 유겐에게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고립된 오지 생활은 적응하기가 힘들다. 그러나 청정한 대자연 속에서 순박한 아이들과 주민을 만나면서 유겐의 마음은 조금씩 열린다. '교실 안의 야크'라는 제목대로 아이들이 수업을..

읽고본느낌 2021.06.12

경계에 흐르다

최진석 선생의 철학 산문집이다. 철학이란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묻는 것일진대, 제목처럼 이 책의 중심 주제는 '경계적 삶'이다. 여러 매체에 발표한 글을 모은 탓에 산만하긴 하지만 선생이 말하려는 바는 명료하게 읽힌다. '경계, 비밀스러운 탄성'이라는 서문에서 선생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경계에 있을 때만 오롯이 '나'다. 경계에 서지 않는 한, 한쪽의 수호자일 뿐이다. 정해진 틀을 지키는 문지기 개다. 경계에 서야 비로소 변화와 함께 할 수 있다. 변화는 경계의 연속적 중첩이기 때문이다. '진짜 나(眞我)'는 상相에 짓눌리지 않는 존재다. 이러면 부처가 되는 필요조건은 일단 채워진다. 동네 부처라도 될 요량이면 경계의 흐름 속으로 비집고 스며들어야 한다. 경계에 서 있으면 과거에 붙잡히지..

읽고본느낌 2021.06.06

일곱 해의 마지막

김연수 작가가 북한에서의 시인 백석을 그린 소설이다. 소설에서는 본명인 백기행으로 나온다. 해방 뒤 북한에 남은 백석은 전쟁을 거치고 숙청의 파도에서 살아남아 러시아 문학을 번역하며 살아간다. 여기서 '일곱 해'란 백석이 동시를 쓰기 시작한 1956년부터 삼수에 있는 관평협동조합으로 추방되어 완전히 절필하게 된 1962년까지를 말한다. 백석의 북한 생활에 대해서는 알려진 게 거의 없으므로 은 많은 부분이 작가의 상상으로 그려져 있다. 전쟁 뒤 북쪽은 김일성의 유일사상만 통하던 통제된 사회였다. 문학도 혁명의 도구일 뿐이어서 백석 같이 감성이 풍부한 순수시를 썼다가는 반동분자로 몰리는 세상이었다. 생존하기 위해서 백석은 옛 시를 잊고 혁명과 증오를 부추기는 동시를 써야 했다. 백석이 그때 쓴 동시를 보면 ..

읽고본느낌 2021.06.01

자산어보

"양반도 상놈도 없고, 임금도 신하도 없는 세상을 꿈꾼다." 영화에 나오는 정약전의 독백이다. 그렇다면 정약전은 동생인 정약용보다 훨씬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성향을 가졌는지 모른다. 조선 시대 유학자가 이런 사상을 품었다고 보기 어렵지만, 사실 여부를 떠나 정약전의 캐릭터를 드러내는 멋진 대사다. 실제로 노론 사이에서는 정약용보다 정약전이 더 위험한 인물이라는 평이 있었다. 그래서 정약전의 유배지가 절해고도로 결정되었을 것이다. 1801년, 정조라는 방패막이 사라지자 남인을 향한 신유박해의 피바람이 불고 정약종은 순교를 한다. 정약전과 정약용은 겨우 목숨을 부지하고 각각 흑산도와 강진에 갇힌다. 잘 나가던 집안이 하루아침에 폐족이 된 것이다. 정약전은 16년간 흑산도와 우이도에서 유배 중 죽었고, 정약용은..

읽고본느낌 2021.05.25

노매드랜드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을 받은 영화다. '노매드랜드(Nomadland)'는 '유목민의 땅'으로 번역할 수 있겠다. 자본주의 미국의 어두운 이면을 보여주는 영화다. 여자 주인공인 펀은 석면 원료를 생산하는 탄광이 문을 닫으면서 수입이 끊기고 집까지 잃는다. 2008년 미국의 경제 위기는 우리나라 IMF처럼 많은 사람들을 길거리로 내몰았다. 밴에 살림살이를 싣고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며 단기 일자리를 얻으면서 살아간다. 현대판 유목민의 삶이다. 그렇다고 펀이 절망하는 것은 아니다. 같은 처지의 이웃들을 만나면서 서로 아픔을 공유하고 도와주며 꿋꿋하게 살아낸다. 무리를 이끌고 지도하는 밥 웰스를 비롯해 영화에 나오는 인물 다수는 배우가 아닌 실제 유목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읽고본느낌 2021.05.23

빈곤을 보는 눈

며칠 전에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최근 3년간의 국가 행복지수를 발표했다. 조사 대상인 OECD 37개 국가 중에서 한국의 행복지수는 35위였다. 우리 밑으로는 그리스와 터키만 있었다. 상위권을 차지한 나라는 핀란드, 덴마크, 스위스, 아이슬란드, 네덜란드, 스웨덴 등이었다. 우리나라의 빈곤율 수치도 행복지수와 마찬가지로 하위권이다. 빈곤율은 약 15% 정도 되는데 우리 아래로는 미국과 일본 정도가 있다. 특히 노인의 빈곤율은 40%가 넘어서 심각한 수준이다. 세계 10대 경제대국은 경제 규모만 그렇다 뿐이지 삶의 질은 형편 없다. 나라는 부자여도 국민은 힘들게 살아간다. 자칭 진보적 가치를 내세우는 이 정권에서도 빈부격차나 빈곤율은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커지고 있다. 부동산 폭등으로 상대적 박탈감에..

읽고본느낌 2021.05.22

정약용의 여인들

다산 정약용 선생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다가 선생이 강진에서 유배 생활을 할 때 한 여인의 시중을 받았고 딸까지 낳았다는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다. 여인의 이름은 진솔이고 딸은 홍임이다. 다산이 18년 간의 유배를 마치고 마재로 돌아올 때 진솔과 홍임도 동행했다고 한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불명확하지만 다산에게 소실이 있었다고 해서 그분의 학문이나 인격에 흠이 되지는 않을 텐데, 후학들이 몰랐던 것인지 아니면 알고도 쉬쉬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에 흥미를 느끼던 차에 찾아본 책이 최문희 작가의 소설 이다. 소설에는 다산의 유배 생활을 중심으로 부인인 혜완(惠婉), 그리고 유배지에서 만난 진솔과 홍임의 이야기가 얽혀서 나온다. 혜완은 명문가의 따님으로 다산보다 한 살 위였다. 혜완은 선비집 안방마님으로서의 위엄..

읽고본느낌 2021.05.09

다읽(10) - 좀머씨 이야기

20년 전에 이 책을 읽었을 때는 좀머씨에 감정이입이 많이 되었다. 무작정 걸어야 하는 좀머씨에 연민을 느끼면서 "좀 제발 그냥 놔두시오!"라는 좀머씨의 외침이 가슴에 와 닿았다. 그만큼 절박하지는 않았겠지만 그때 내 마음 상태가 좀머씨와 닮은 바 있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따스한 손길을 그리워했을 것이다. 이번에 다시 읽는 는 좀머씨 개인의 불행보다는 한 소년의 성장소설로서 더 비중 있게 읽힌다. 어른을 위한 동화라고 할까, 따스하게 읽힌 이야기였다. 특히 화자와 관련된 두 개의 에피소드가 재미있고 공감이 되었다. 두 개의 에피소드는 마음속으로 좋아하는 카롤리나와, 미스 풍켈이라는 피아노 선생님에 관계된 일화다. 둘 다 어떤 상실감과 관련되어 있다. 잔뜩 기대했던 카롤리나와의 만남이 깨진 허전함, 그..

읽고본느낌 2021.05.05

내가 사랑한 지구

고등학교에서 과학을 가르치면서 아름다운 이론이라고 감탄한 것 중 하나가 판구조론이다. 판구조론은 지구 표면은 여러 개의 판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판들의 상호작용에 따라 지구에서 일어나는 지진이나 화산 등의 자연현상을 명쾌하게 설명한다. 이렇게 잘 들어맞아도 되는 거야,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깔끔한 이론이다. 이제 판구조론을 떠난 지질학은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 책 는 판구조론이 등장하는 과정을 19세기 지질학의 초창기에서 시작하여 한 편의 드라마를 보듯 생생하게 보여준다. 스테노, 허턴, 스미스, 라이엘 등의 초기 지질학자들의 노력이 쌓여 베게너의 대륙이동설을 낳고, 치열한 논쟁과 검명을 거치며 판구조론이라는 이론이 나오기까지 과정이 드라마틱하게 전개된다. 지질학자인 최덕근 선생이 썼다. 일반인이..

읽고본느낌 2021.04.29

나이트폴

대상포진에 걸려 집에 있으면서 본 넷플릭스 드라마다. 시즌 2까지 총 18편으로 되어 있다. 시대 배경은 14세기 초의 프랑스로 템플 기사단을 다루고 있다. 제목인 '나이트폴(KNIGHTFALL)'은 드라마 내용으로 볼 때 '기사단의 몰락' 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다. 템플 기사단은 예루살렘 성지 수호와 순례자 보호를 위해 12세기 때 만들어진 무장 조직이다. 이슬람 세력에게 예루살렘을 빼앗기고 유럽으로 돌아와서는 종교적 권위와 세속의 부를 쌓으면서 막강한 힘을 가지게 되었다. 왕권과의 충돌이 불가피했을 것이다. 당시 프랑스는 미남왕이라 불린 필리프 4세가 통치하고 있었다. 초기에는 템플 기사단과 상부상조하는 관계였으나 나중에는 적대적이 되고 결국에는 기사단을 해체시킨다. 이 과정에서 온갖 음모와 배신, ..

읽고본느낌 2021.04.27

문버드

몸무게가 100g 남짓하지만 평생 523,000km를 넘게 날았다. 지구에서 달까지 갔다가 다시 반쯤 돌아오는 거리다. 그래서 별명이 '문버드(Moon Bird)다. 이 새는 붉은가슴도요의 아종인 루파로 발에 찬 플랙에 적힌 이름은 'B95'다. B95는 산꼭대기만큼 높은 상공에서 먼 옛날부터 쓰였던 하늘길을 날아 번식지를 오간다. 매연 2월이면 B95는 남아메리카의 끝 파타고니아에서 캐나다 북극권으로 날아가 번식한 뒤 늦여름에 다시 남쪽으로 돌아온다. 는 20년을 살면서 50만 km를 넘게 비행한 B95라는 한 작은 새에 대한 관찰 기록이다. 이렇게 작고 연약한 생명이 어쩌면 그렇게 강할 수 있는지, 이 책을 읽으면 절로 경외감이 인다. 얘들은 무엇 때문에 매년 지구의 끝에서 끝까지 긴 여행을 할까? ..

읽고본느낌 2021.04.20

풍운아 채현국

사나이의 배짱과 스케일이 이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나 싶은 분이 채현국 선생이다. 오척단구 거한, 당대의 기인, 인사동 낭인들의 활빈당주, 가두의 철학자, 발은 시려도 가슴은 뜨거웠던 맨발의 철학도, 해직기자들에게 집을 한 채씩 사준 파격의 인간, 민주화 운동의 든든한 후원자, 이 시대의 어른 등 채현국 선생을 지칭하는 수식어는 많다. 한 마디로 부귀를 초개 같이 여기고 거침없이 인생을 산 자유인이 채현국 선생이 아닌가 싶다. 이 책 은 2014년에 김주완 기자가 선생과 나눈 대화록이다. 선생의 말씀은 시원시원하면서 정곡을 찌른다. 김형석 교수를 멘토로 여기는 친구들이 많은데 나는 이런 삐딱한 분에 끌린다. 선생의 언행은 마치 그리스인 조르바를 연상시킨다. 선생은 젊었을 때 여러 병으로 시달렸던 것 같다..

읽고본느낌 2021.04.16

새의 노래, 새의 눈물

새에 관심을 가지다 보니 새에 관한 책도 이것저것 찾아보게 된다. 이번에 본 책은 이다. 국립환경과학원에서 연구관으로 일하는 박진영 선생이 썼다. 어릴 때부터 새를 좋아했고, 그래서 대학도 새를 공부할 수 있는 생물학과로 진학했다는 지은이는 평생을 새와 함께 살아가는 게 행복하다고 말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아 살아가길 누구나 소망할 것이다. 이해득실을 따지기보다 자기가 좋아하는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지은이 같은 분이 부럽다. 책에는 지은이가 전국 방방곡곡으로 새를 찾아다니며 경험한 얘기가 사진과 함께 실려 있다. 실제 탐조하는 데 도움이 되는 내용이 많다. 갯벌에서 도요새를 관찰하기 위해서는 만조 두세 시간 전에 도착해서 기다리라고 말한다. 바닷물에 밀려서 점차 육지 쪽으로 다가오는 도요..

읽고본느낌 2021.04.11

다산, 행복의 기술

다산 정약용(丁若鏞, 1762~1836) 선생은 누구보다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임금의 총애를 받으며 정사의 중심에 있었으나 정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18년간 유배 생활을 해야 했다. 형제들도 죽거나 유배를 가면서 뿔뿔이 흩어지고 그야말로 폐족이 되었다. 이런 고난 속에서 다산은 자신의 내면적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노력했고, 그만의 행복을 찾아나갔다. 은 다산의 삶과 고난을 따라가며 어떻게 내면의 상처를 극복하고 행복으로 나아가게 되었는지를 살핀다. 다산은 갑작스러운 권력 상실의 트라우마, 배신감, 모욕감, 유배지에서의 고독, 부자유의 고통, 경제적 고통 등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남들 같으면 포기하고 좌절했을지 모르나 다산은 고통에 굴복하지 않고 그 가운데서 의미를 찾으며 행복으로 가꾸어 나갔다. 인간..

읽고본느낌 2021.04.08

다읽(9) - 무소유

"나는 가난한 탁발승(托鉢僧)이오. 내가 가진 거라고는 물레와 교도소에서 쓰던 밥그릇과 염소젖 한 깡통, 허름한 요포(腰布) 여섯 장, 수건 그리고 대단치도 않은 평판(評判) 이것뿐이오." 법정 스님의 수필 '무소유' 첫부분은 이같은 간디의 말로 시작한다. 에서 이 구절을 읽고 당신이 무척 부끄러웠다고 고백한다. 당신이 가진 것이 너무 많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몇 달 전에 H 스님의 무소유 논란이 일었고, 인기 스타였던 스님은 한 순간에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수도자의 세속적인 소유를 어떻게 봐야 하는지에 대한 논쟁이 한참동안 이어졌다. "무소유란 물질을 소유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다. 자신이 소유한 물질에 대한 애착이 무(無)라는 얘기다." 공공연히 이런 생각을 밝히는 수도자도 있다. 잘못하면 ..

읽고본느낌 2021.03.25

새들에 관한 짧은 철학

작은 책이지만 내용은 알차다. 프랑스의 조류학자인 뒤부아(P. J. Dubois)와 철학자인 루소(E. Rousseau)가 함께 썼다. 새는 1억 5천만 년 전에 공룡에서 생겨난 아주 오래된 생명체다. 저자들은 새를 '작은 철학자'라고 부른다. 가볍고 조용히 살아가는 새들에게서 그들이 가진 철학을 발견한 것이다. 은 새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나 가르침을 열린 마음으로 들으면서 전하고 있다. 이 책에는 오리를 비롯해 22종의 새가 등장한다. 사랑, 번식, 싸움, 절제, 열정 등 각각이 가진 특징이 재미있고 묘사되어 있다. 오리의 털갈이 이클립스(eclipse), 암탉이 모래 목욕을 할 때의 행복, 바위종다리 부부의 유별난 바람기, 새장 밖을 떠날 줄 모르는 카나리아, 거위의 정신적 젖떼기, 도요새의 신비한..

읽고본느낌 2021.03.14

완벽한 타인

개봉한 지 벌써 2년 반이나 지난 영화다. 그때 지인한테서 재미있는 영화라고 추천받았는데 극장에 가지는 못했고, 느지막이 넷플릭스를 통해 봤다. 고향 친구 넷이 부부동반으로 집들이 모임을 갖는다. 한 사람의 제안으로 각자의 휴대폰을 테이블 중앙에 내놓고 연락 오는 내용을 모두 공개하기로 한다. 서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너나 할 것 없이 감추고 싶은 비밀을 하나씩 가지고 있었다. '믿을 놈 하나 없다'는 걸 현장에서 확인하면서 서로의 관계는 파탄 나기 시작한다. 인간은 상상 이상으로 복잡하고 응큼하다. 만약 속마음을 고스란히 드러낸다면 대부분의 인간 관계는 파국을 맞을 것이다. 그만큼 우리는 가면을 쓰고 산다. '완벽한 타인'은 그런 인간의 본질을 코믹하게 잘 드러내 주는 영화다. 흔히 부부를 일심..

읽고본느낌 2021.03.12

블랙 미러

가까운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세상의 모습을 다룬 넷플릭스 드라마다. 각각 독립적인 이야기로, 전체가 19편으로 되어 있다. 대부분의 SF는 먼 미래를 다루어서 황당한 내용이 많지만 '블랙 미러'는 몇 년 뒤의 세상이라고 해도 괜찮을 정도로 현실감이 있다. 현재에서 조금만 더 기술이 발전하면 충분히 가능한 상황들이다. 두 달 전쯤에 본 것이지만 상당히 재미있었고, 일부는 충격적이기도 했다. 그중에서 기억에 남는 게 몇 편 있다. 하나는 '아크 엔젤'이다. 어린 딸을 안전하게 지키고 싶은 한 어머니가 딸의 머리에 칩을 이식한다. 그러면 집에서 컴퓨터로 위치뿐 아니라 아이가 보는 것을 직접 볼 수 있다. 밖에서 어떤 위험에 노출되는지 확인 가능하다. 심지어는 스트레스 필터를 통해 아이의 시각도 통제한다. 위..

읽고본느낌 2021.03.10

새를 기다리는 사람

새를 사랑하는 김재환 화가의 이태 동안의 탐조 일기다. 책은 사진 대신 화가가 직접 그린 그림으로 되어 있다. 같은 대상이지만 사진보다 그림은 훨씬 더 감성적이고 따스하다. 그래선지 새와 자연을 아끼는 화가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온다. 올해 들어 경안천에서 황새를 보면서부터 새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다른 사람은 어떻게 새를 관찰하고 기록하는지도 궁금해졌다. 책 제목처럼 새를 보는 데는 무엇보다 기다림의 인내가 필요한 것 같다. 어떤 경우에는 종일 같은 장소를 지키기도 한다. 마치 낚시를 하듯 느긋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운칠기삼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새를 관찰하는 데도 해당하지 않을까 싶다. 은 새를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한 책이다. 되도록이면 새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애쓰는 마음이 느껴져서 좋다. ..

읽고본느낌 2021.03.08

우리는 모두 외계인이다

'외계 생명체를 찾아 떠나는 과학 여행'이라는 부제대로 외계 생명체를 탐색하는 과학계의 현황과 전망을 다룬 책이다. 이 책을 쓴 제프리 베넷은 생물물리학과 천체물리학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이 분야의 적임자라 할 수 있다. 저자는 철저히 과학적인 관점에서 외계 생명체에 관한 여러 논쟁을 다루고 있다. 책의 내용은 고등학생만 되어도 충분히 이해할 정도로 평이하면서 흥미진진하게 쓰여 있다. 태양계에서는 미생물 형태의 생명체가 곧 발견될 가능성이 높다. 첫째 후보는 화성이고, 그다음으로 목성이나 토성의 위성에서 우리는 지구 밖 생명체를 볼 지 모른다. 지구에서도 극한 환경에서 생존하는 미생물이 있으며, 지구의 첫 생명체도 심해 분화구 부근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만약 다른 행성이나 위성에서 생명체를 찾는다면 ..

읽고본느낌 2021.02.19

말할 수 없어 찍은 사진, 보여줄 수 없어 쓴 글

최필조 선생의 사진 에세이로 부제가 '힘껏 굴러가며 사는 이웃들의 삶'이다. 124편의 작품이 우리 이웃의 애틋한 사연과 함께 어우러져 있다. 사진과 글이 절묘한 앙상블을 이루며 감동의 화음을 만들어 낸다. '뒷모습', '손', '밤골', '길 위에서' 등 4개의 파트로 되어 있다. 작가는 교사 생활을 하며 틈틈이 사진을 찍는다고 한다. 우리는 가볍게 책장을 넘기지만 사진 한 장에 얼마나 많은 땀과 노력이 담겨 있을지를 생각한다. 다른 동네의 낯선 사람을 만나고, 얘기를 듣고, 친해지면서 카메라에 담기까지 발품은 또 얼마나 될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일입니다. 사진을 찍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담아내는 일입니다. 둘은 다르지 않습니다." 작가의 말처럼 사진은 테크닉이 아니라 진정성 있는 마음이..

읽고본느낌 2021.02.11

꽃으로 세상을 보는 법

구성이 재미있는 책이다. 꽃을 주제로 인문학자와 자연과학자인 두 친구가 얘기하듯 이야기를 풀어낸다. 전공이 다르고 살아가는 환경이 같지 않으니 같은 꽃이라도 보는 관점이 다른 건 당연하다. 두 사람의 글을 비교하며 읽어보는 것이 흥미롭다. 을 쓴 사람은 이명희와 정영란 선생이다. 한 분은 국어국문학을 전공했고, 다른 분은 약학을 공부했다. 어릴 때부터 친구였다는데 성인이 되어서 이런 공통된 작업을 할 수 있다는 게 부럽다. 함께 책을 만들면서 둘은 서로를 더 잘 알게 되었을 것이다. 지음(知音)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두 분이다. 관심을 갖고 바라보면 세상 만물이 스승 아닌 것이 없다. 거기에 애정이 더해진다면 친구면서 생의 동반자가 될 수 있다. 두 분에게 꽃과 나무는 그러한 존재일 것 같다. 부제가 ..

읽고본느낌 2021.02.09

나라 없는 나라

전봉준과 대원군의 밀회로 소설은 시작한다. 둘의 속은 달라도 상대가 가지고 있는 명분이나 힘이 필요했을 것이다. 이 소설은 1894년에 일어난 동학농민운동의 시작에서부터 전봉준이 체포되던 마지막까지를 다룬다. 이광재 작가가 썼고, 혼불문학상을 받은 작품이다. 19세기 후반부는 급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사회 밑바닥에서부터 불만과 요구가 터져 나오던 시기였다. 동시에 외세는 호시탐탐 조선반도를 노리고 있었다. 나라의 중심을 잡을 힘 있는 세력은 없었다. 도리어 일본이나 청나라에 의존함으로써 한 줌 권력을 유지하려 했다. 전봉준과 대원군이 암묵적으로 손을 잡은 것은 외세를 몰아내야 한다는 공통된 목표가 있었을 것이다. 1894년 3월에 고부 백산에서 1차로 봉기할 때 동학농민군은 네 가지 강령을 만들었다. ..

읽고본느낌 2021.0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