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869

나는 나대로 혼자서 간다

이 책을 쓴 와카타케 치사코는 1954년생으로 55세부터 소설 강좌를 들으며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8년 후 이 작품을 집필했고, 2018년에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했다. 는 74세인 모모코의 일상과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며 노년의 내면을 잘 그려낸 작품이다. 모모코는 일찍 남편을 여의고 혼자 살면서 두 자식과도 관계가 소원하다. 이웃과 교류가 있는 것도 아니다. 외로움의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지만 모모코는 자신을 들여다볼 줄 안다. 자신과 끊임없이 대화하면서 고독을 즐긴다. 친구와 모임이 없어도 충분히 자족하며 즐길 수 있음을 보여준다. 모모코의 행복은 과거의 따스했던 추억에서 나오지만, 현실에서 의미를 발견하려는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모모코는 진지하게 의미를 추구하는 사람이며 이 점이 그..

읽고본느낌 2023.01.11

엄마의 마지막 말들

지은이의 어머니는 아흔 즈음에 말기암과 알츠하이머성 인지저하증으로 호스피스 병동을 전전하며 생의 끝을 보내셨다. 이 책은 아들이 엄마의 마지막 1년을 지켜보며 쓴 간병 기록이다. 엄마에 대한 극진한 사랑과 정성이 담겨 있다. 지은이는 서울대학교 국문과 교수인 박희병 선생이다. 이 책을 통해 죽어가는 시간도 귀하고 값진 인생의 일부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선생은 어머니만 아니라 여러 병실에서 만난 환자들을 통해서 지켜야 할 인간의 존엄성을 확인했다고 한다. 여기에는 물론 여러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가족만 아니라 의사와 간호사, 간병인, 그리고 적절한 의료체계가 뒷받침되어야 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선생의 어머니는 행복하신 분인 것 같다. 아들은 직장을 휴직하면서 어머니를 지켰다. 이라는 책 제목이 말하듯 ..

읽고본느낌 2023.01.06

어느 독일인의 삶

이 책의 주인공은 브룬힐데 폼젤(Brunhilde Pomsel)은 나치 선전부 장관이었던 요제프 괴벨스의 비서로 일하다가 독일 제국의 멸망을 곁에서 지켜본 사람이다. 책 표지에 실린 그녀의 프로필이다. "1942년부터 1945년까지, 인류 역사상 가장 중대한 범죄자들 중 하나인 요제프 괴벨스를 위해 일했다. 나치 선전부의 속기사였던 그녀가 풀어놓는 이야기는 악의 평범성에 대한 통찰을 보여준다. 폼젤은 자신이 나치 가담자였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는다. 하지만 자신은 철저히 비정치적이었고 그 당시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단지 직장, 의무감, 소속감에 대한 욕구였다는 것이 그녀의 항변이다. 나치 만해의 규모와 잔학성은 종전 뒤에야 알게 되었다고 한다. 2017년 106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폼젤은 그저 평범한..

읽고본느낌 2023.01.02

엔드 오브 타임

이런 류의 책을 읽을 때면 항상 두 가지 감정에 휩싸인다. 하나는 엄밀한 과학 법칙의 지배를 받는 우주의 맹목성에서 오는 무의미함과 공허다. 현재의 과학 지식으로 우주의 미래는 열역학적 죽음으로 귀결한다. 결국은 모든 것이 암흑의 차가움 속에 사라질 것이다. 다른 하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곳에서 가냘픈 생명으로 살아가는 경이와 기쁨이다. 우주의 관점으로 보면 참으로 하찮은 존재지만 호모 사피엔스의 지적 능력은 우주의 태초부터 미래까지를 그려 보일 수 있다. 우주와 함께 인간 자체도 경외롭다. 은 부제가 '브라이언 그린이 말하는 세상의 시작과 진화 그리고 끝>이다. 지은이인 브라이언 그린(Brian Greene)은 초끈이론을 대표하는 물리학자면서 저서와 방송을 통해 과학대중화에 힘쓰고 있는 인물이..

읽고본느낌 2022.12.30

파친코

두 권으로 된 이민진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이민진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1970년대 중반인 일곱 살 때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간 한국계 미국인이다. 예일대 역사학과와 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 일을 하다가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는 1910년부터 1989년까지를 시대적 배경으로 4대에 걸친 재일교포 가족의 처절한 생애를 다룬 소설이다. "역사가 우리를 망쳐 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이야기는 이런 강렬한 문장으로 시작한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선자라는 여인이 있다. 선자는 아무리 밟혀도 기어코 다시 일어나는 잡초처럼 강인한 생명력을 보여주는 여인이다. 무너지지 않는 꿋꿋한 정신력은 한민족을 닮았다. 일본이라는 낯선 땅에서 그녀는 일가의 중심이 되어 시대의 풍파를 견뎌낸다. 인생은 ..

읽고본느낌 2022.12.20

불편한 편의점

도서관에 갈 때마다 이 책이 있는지 확인해 보지만 항상 대출 중이었다. 심지어는 예약까지 여러 명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었다. 김호연 작가가 쓴 은 올해의 가장 핫한 소설이다. 인기에 힘입어 얼마 전에 2권까지 나오고, 100만 부 이상 판매되었다는 보도도 보았다. 마침 지인이 책을 빌려줘서 읽어보게 되었다. 소설은 사람이 살아가는 온기로 가슴 뭉클한 감동을 전한다. 울컥해지는 장면이 곳곳에 대기하고 있다. 삭막한 세상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따스한 위안을 주면서 현실에서는 체험하기 힘든 경험을 소설에서 하게 된다. 이 소설이 왜 인기가 있는지 알겠다. 어른을 위한 동화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소설적으로는 구성이나 내용에서 뛰어나 보이지는 않는다. '올웨이즈'라는 편의점을 중심으로 여러 사람들이 등장하..

읽고본느낌 2022.12.17

더 원더

넷플릭스에서 영화 '더 원더(The Wonder)'를 봤다. 19세기 중반, 대기근 직후의 아일랜드가 무대다. 땅도 사람도 피폐해진 상태에서 시골의 외딴집에 살고 있는 애나라는 소녀가 넉 달 동안이나 음식을 먹지 않고도 생존해 있다는 것이 알려지기 시작한다. 하느님의 기적을 보기 위해 방문객들이 줄을 잇고 지역 사회나 종교계도 호응한다. 간호사 엘리자베스는 현장으로 가서 실상을 조사하는 임무를 받는다. 엘리자베스에 의해 애나가 생존한 비밀이 밝혀지고 가족의 흑역사가 드러난다. 그러나 잘못된 길을 간 가족과 주변 사람들은 인정하지 않는다. 애나를 살리기 위한해 엘리자베스의 고군분투 끝에 결국은 탈출을 감행하고 성공한다. 한 소녀를 살리면서 사기극이 마무리된다. '더 원더'는 종교색이 짙은 영화다. 기독교의..

읽고본느낌 2022.12.12

소설 무소유

소설 형식을 빌려 정찬주 작가가 쓴 법정스님의 일대기다. 초판이 2010년에 나왔으니 스님이 돌아가신 해에 출판한 책이다. 작가는 스님과 가까이 지내면서 여러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다. 한 인물을 그릴 때 대체로 미화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 책에는 보이지 않는다. 스님의 생각과 삶이 사실 그대로 실려 있다. 법정스님 하면 누구나 무소유를 떠올린다. 스님이 봉은사 다래헌에 계실 때인 1976년에 쓴 는 국민의 필독서가 되었고 무소유의 정신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스님 자신이 무소유의 삶을 실천했기 때문에 울림이 더욱 컸을 것이다. 이 소설에는 법정스님이 통영 미래사에서 효봉스님 시자로 있을 때 무소유의 가치를 깨닫는 일화가 나온다. 어느 날 효봉스님의 걸망을 빨려고 하다가 걸망 안에서 비누조각을 발견했..

읽고본느낌 2022.12.07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새롭게 떠오르는 일본의 사상가 사사키 아타루가 쓴 책이다. 부제가 '책과 혁명에 관한 닷새 밤의 기록'으로 책 읽기의 혁명성을 고찰하는 내용이다. 현재 일본 사상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이는 단연 사사키 아타루라고 한다. 그는 1973년생으로 문학과 철학을 전공했다. 은 서가에서 강렬한 제목에 끌려 꺼내 보았다. 제목은 어느 서양 시인의 시에서 따온 문구라고 한다. 책 내용과 상응하는 좋은 제목인 것 같다. 책은 전체적으로 니체 톤의 목소리가 울린다. 우리 시대를 두고 문학이나 예술이 끝났다고 쉽게 말하지만 지은이는 강하게 반박한다. 문학은 반정보며 변혁이다. 지은이가 정의하는 문학은 범위가 상당히 넓다. 어쨌든 문학이 살아남아야 혁명이 살아남고 인류가 살아남는다. 우리는 혁명으로 왔고 존재하기 때문이다. ..

읽고본느낌 2022.12.04

만약은 없다

'응급의학과 의사가 쓴 죽음과 삶, 그 경계의 기록'이라는 부제 그대로 병원 응급실에서 일어난 사건과 사연들을 날것 그대로 기록한 책이다. 긴박한 죽음을 마주하는 응급실 의사는 환자를 살리기 위해 매순간 선택에 직면한다. 만약 다른 처치를 했다면 결과가 어땠을까, 라는 의문과 후회는 늘 따라다닐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는 일회성인 인간의 삶과 죽음을 대변하는 제목이라고 할 수 있다. 고려대학교에서 응급의학과를 전공한 남궁인 선생이 썼다. 책에 실린 38개의 이야기는 인간의 고통과 실존에 대한 질문으로 가득하다. 수많은 죽음을 직접 접하면서도 지은이는 죽음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고 고백한다. "죽음에 대해 쉽게 왈가왈부하는 것은 미친 짓이다. 그것이 타인의 문제이건 혹은 자신의 문제이건 간에 아무도 ..

읽고본느낌 2022.11.28

그리스도의 탄생

"인간 예수는 어떻게 그리스도가 될 수 있었는가?" 이 질문에 대한 엔도 슈사쿠의 해석을 담은 책이다. 어이없는 스승의 죽음을 본 제자들은 황망한 가운데 스승을 배신하고 도망쳤다. 그렇게 나약한 제자들이 어떻게 스승을 재인식하게 되고 삶이 변화되며 담대하게 되었는지를 성서를 기반으로 합리적으로 추론해 간다. 엔도 슈사쿠는 제자들의 변화를 예수의 사랑에서 찾는다. 자신을 배신했던 제자들을 미워하기는 커녕 십자가 상에서도 끝까지 사랑하려고 한 예수의 모습을 보며 인간의 죄를 대신 지려 한 예수의 이미지가 생겨났다. 자책하면서 굴욕을 느끼던 제자들에게 새로운 예수의 모습은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또한 예수는 자신들과 함께 할 것이라는 믿음과 다시 제자들 곁으로 올 것이라는 신념이 생겼다. 기독교의 핵심 교..

읽고본느낌 2022.11.23

다만 죽음을 곁에 두고 씁니다

삶과 죽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다. 이 책을 쓴 사람인 로버트 판타노는 삼십대 중반에 악성 뇌종양 진단을 받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삶과 죽음에 대한 단편적인 사색을 일기 형식의 에세이로 기록했다. 이 문서는 그가 죽고난 뒤 그의 노트북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원제는 '모든 것들의 끝에서 남긴 메모(Notes from the End of Everything)'다. 죽음을 앞둔 사람이 쓴 글이라 책은 전체적으로 우울하면서 세상에 대한 비관이 담겨 있다. 그는 존재의 불안, 인생의 혼란과 부조리를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직시한다. 인간으로 태어난다는 것은 두 가지 필연적인 경험을 대동하는데 바로 삶과 죽음이다. 실로 이 두 가지는 살벌하고 무시무시하다. 그러면서 세상의 끝에서 어떤 가치와 ..

읽고본느낌 2022.11.15

고백의 형식들

이성복 시인의 산문집이다. 1976년부터 2014년까지 씌어진 글이 모여 있다. 젊은 시절 시인의 고뇌가 오롯이 드러나 보이는 글들이다. 글 쓰는 작업이 마치 오체투지를 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순례자의 여정 같다. 문학은 종교이며, 작가는 수행자에 다름 아니라는 사실을 시인은 보여준다. 특히 2004년에서 2013년 사이에 쓴 '공부방 일기'는 치열한 수행 기록이다. 문학이 이토록 진지하고 엄숙한 것인지 두려움마저 인다. 글쓰기는 '사람 되기'와 마찬가지인 것 같다. 나 역시 글쓰기는 - 비록 일기라 할지라도 - 자신과 만나는 여정이라고 생각한다. 타인에게는 하찮게 보여도 본인에게는 하나의 우주를 펼쳐내는 것이다. 인간에게는 자신의 내면을 바깥에 드러내려는 욕구가 있는 것 같다. 일종의 인정욕구인지도 모른..

읽고본느낌 2022.11.08

모든 것은 그 자리에

올리버 색스의 글을 모은 책이다. 신경의학자인 저자가 경험한 여러 의학적 사례와 함께 말년에 쓴 글이 묶여 있다. 부제가 '첫사랑부터 마지막 이야기까지'이다. 바로 전에 빌 헤이스의 책을 통해 올리버 색스의 성 정체성을 알았던 터라 그의 첫사랑 얘기가 궁금했다. 역시 여자는 아니었다. 올리버가 열두 살이었을 때 도서관에서 만난 조너선 밀러라는 소년이었는데, 함께 화학 실험이나 생물 탐사를 하며 재미있게 지냈던 이야기가 그의 첫사랑에 적혀 있다. 글 중에서 흥미로웠던 부분은 올리버 색스가 병원에서 근무하며 만난 환자들의 임상 사례다. 그는 신경과 전문의로 일하면서 인간의 뇌와 정신 활동의 신비한 영역에 대해 뛰어난 필치로 책을 써서 일반인들에게 소개해줬다. 오래전에 를 읽으며 신기해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

읽고본느낌 2022.11.02

인섬니악 시티

책 내용이나 지은이인 빌 헤이스(Bill Hayes)에 대해서는 아무런 정보 없이 읽었다. 그러다가 엉뚱한 데서 깜짝 놀랐다. 처음에는 눈치를 못 채고 그나마 책의 뒷부분에 가서였다. '십육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나는 아기처럼 자는 남자하고 살았다.' 책의 초반에 나오는 문장이다. 그러니 지은이를 당연히 여자라고 생각할 수밖에. 그 남자를 남편이 아닌 '파트너'라고 지칭하는 게 약간 이상하긴 했으나 서양 사람이니 그럴 수도 있다고 여겼다. 책의 부제가 '뉴욕, 올리버 색스 그리고 나'다. 파트너였던 스티브가 죽고 뉴욕으로 주거를 옮긴 지은이는 올리버 색스를 만나고 서로 사랑하게 된다. 는 - '불면의 도시'라는 뜻으로 뉴욕을 가리킨다 - 흥미로운 뉴욕 생활과 올리버 색스와의 일화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쳐..

읽고본느낌 2022.10.27

정치적 부족주의

"인간에게는 부족 본능이 있다. 우리는 집단에 속해야만 한다. 우리는 유대감과 애착을 갈구한다. 그래서 클럽, 팀, 동아리, 가족을 사랑한다. 완전히 은둔자로 사는 사람은 거의 없다. 수도사나 수사도 교단에 속해 있다. 하지만 부족 본능은 소속 본능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부족 본능은 배제 본능이기도 하다. 어떤 집단은 자발적이고 어떤 것은 그렇지 않다. 어떤 부족은 즐거움과 구원의 원천이고 어떤 것은 권력을 잡으려는 기회주의자들의 증오 선동이 낳은 기괴한 산물이다. 하지만 어느 집단이건 일단 속하고 나면 우리의 정체성은 희한하게도 그 집단에 단단하게 고착된다. 가령 개인적으로는 얻는 것이 없다고 해도 내가 속한 집단 사람들의 이득을 위해 맹렬하게 나서고, 별다른 근거가 없는데도 외부인에게 징벌적인 위..

읽고본느낌 2022.10.23

소년

"어른인 척하는, 늙고 덩치만 큰 어린아이들은 많습니다. 하지만 소년을 품은 어른을 만나기란 쉽지 않습니다. 어른이 되지 못하는 이유는 소년을 망각했기 때문입니다. 소년을 잘 간직한 채 성장하여, 어느 한 계절도 빈 곳 없이 속이 탄탄한 나무처럼, 섬세하고 집요한 어른이 되기를 바랍니다. 소년의 아름다움과 도도함을 고이 잘 간직하면 좋겠습니다." 정신분석가인 이승욱 선생이 쓴 의 서문에 나오는 말이다. 은 지은이가 자신의 소년 시절을 정신분석가답게 고스란히 드러내고 해석을 한다. 지은이의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자연스레 내 소년 시절이 겹쳐졌다. 처음 나오는 이야기는 최초의 기억인 원체험(原體驗)이다. 이 기억이 한 사람의 정서를 구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그냥 기억으로만 머무는 게 아니라 ..

읽고본느낌 2022.10.20

지적 행복론

"소득은 일정 수준을 넘으면 행복과 비례하지 않는다." 이스털린의 역설이다. 돈이 많으면 정말 더 행복해지는지 알아보고자 데이터를 연구했고, 이 데이터는 행복과 소득의 역설을 보여줬다. 이스털린은 행복통계학을 연구한 최초의 경제학자다. 이 책 은 97세의 이스털린이 쓴 행복에 관한 보고서다.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강의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책 내용은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적인 수준이다. 다만 그의 이론은 과학적 조사에 의한 객관적인 데이터에 근거하기 때문에 바탕이 탄탄하다. 행복이 무엇이고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아야 우리가 행복에 접근하는데 유리한 건 사실이다. 이 책은 '어떻게 하면 행복을 증진할 수 있는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누구나 인정하듯이 인간 행복의 조건은 소득, 건강, 가정생활의 세..

읽고본느낌 2022.10.11

사물들

프랑스 작가인 조르주 페렉의 장편소설이다. 1960년대 프랑스 파리가 배경으로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가 잘 들어 있다. 대신에 파리의 생소한 골목과 가게 등 다양한 지명이 나와서 파리 사람이 아니라면 어딘지 몰라 좀 혼란스럽다. 은 제롬과 실비라는 두 젊은이가 주인공으로, 오직 물질적으로 나은 삶을 꿈꾸며 살아간다. 이 작품의 의도가 자본주의 체제에서의 부평초 같은 삶을 그리려는 것 같다. 제롬과 실비, 그리고 친구들은 상품들의 유혹과 현란한 광고의 공세에 덧없이 휩쓸려가는 군상들이다. 이 소설은 건조한 문체와 특이한 시제가 흥미롭다. 마치 사회과학자가 사회 현상을 냉정하게 분석하는 글 같다. 60년 전의 소설이지만 지금 우리 시대에도 해당하는 경고로 읽힌다. 그저 주어진 일상에 매몰될 때, 아무런 철학과..

읽고본느낌 2022.10.10

그리고 모든 것이 변했다

임사 체험 후 깨닫게 된 인생에 대한 통찰을 담은 책이다. 지은이인 아니타 무르자니(Anita Moorjani)는 인도 여성으로 어린 시절부터 싱가포르와 홍콩에서 살면서 다양한 문화와 종교를 접하며 성장했다. 결혼한 후에 임파선암이 발견되어 4년간 힘겨운 투병 생활을 하던 중 마지막에 신체의 기능이 멈추었고 임사 체험 상태에 들어갔다. 30시간 동안의 임사 체험은 삶에 대한 시각을 바꾸었고 병도 기적적으로 완치되었다. 는 이 모든 과정을 기록한 책이다. 의학적으로 사망 선고를 받은 사람이 또 다른 감각에 눈을 떠서 주변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지각한다는 임사 체험은 많이 알려져 있으며 대체로 비슷한 패턴을 띄고 있다. 아니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죽은 자신을 객관적 시선으로 바라보며 평안과 행복에 잠..

읽고본느낌 2022.10.06

날마다 구름 한 점

자신을 '구름추적자'라고 부르는 개빈 프러터피니(Gavin Pretor-Pinney)의 구름 책이다. 책 제목처럼 365장의 구름 사진이 실려 있다. 지은이는 2005년에 '구름감상협회'를 설립해 회장을 맡고 있는데, 이 책의 구름 사진의 다수는 구름감상협회의 회원들이 찍은 것이다. 은 구름에 관한 종합세트와 같다. 구름 종류에 따른 생성 원리와 여러 광학 현상에 대한 친절한 설명이 사진마다 붙어 있다. 또한 문학 작품에서 인용한 구름에 관한 글, 명화 속에 그려진 구름 등 다양한 구름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나도 한 때 구름 사진에 빠진 적이 있었다. 구름을 찍은 필름이 몇 박스가 되었다. 구름 책을 내고 싶은 꿈이 있어서 모아 두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인생의 전환기에 살림을 단촐하게 정리하면서 전부 ..

읽고본느낌 2022.10.01

다정소감

책 제목인 '다정소감'이 무슨 뜻인지 궁금했다. 다정소감(多情小感)이라고 짐작하며 책을 읽어나갔다. 책 내용도 내 짐작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세상 속에서 살아가지만 세상에 휩쓸리지 않는 마음을 이런 단어로 표현한 게 아닌가 싶었다. 그런데 책 말미에서 작가는 자신의 글이 '다정에 대한 소감이자, 다정에 대한 감상이자, 다정들에서 얻은 작고 소중한 감정의 총합'이라고 말한다. 작가의 말대로라면 다정소감(多情所感)이다. 내 엉뚱한 추측에 실소를 했다. 은 김혼비 작가의 산문집이다. 글에서는 글을 쓴 사람이 보인다. 지은이는 어떤 사람일까, 상상도 해 본다. 김혼비 작가는 따스한 마음을 가졌으면서 다이내믹한 분 같다. 정과 동을 겸비한, 그래서 만나면 무척 재미있을 분으로 느껴졌다. 풋풋한 햇사과를 먹는 것..

읽고본느낌 2022.09.30

모든 요일의 여행

예전 책에 '여기서 행복할 것' 이라는 말을 써 두었더니 누군가 나에게 일러주었다. '여기서 행복할 것'의 줄임말이 '여행'이라고. 나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 글을 만난 것만으로도 책을 든 본전은 뽑은 셈이다. 나에겐 '여행'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문장이면서, 사람마다 여행의 색깔이 다르다는 점도 다시 확인시켜 주었다. "각자의 여행엔 각자의 빛이 스며들 뿐이다." 지은이가 모든 여행의 끝에 내린 결론이란다. 분명 같은 곳으로 떠났지만 우리는 매번 다른 곳에 도착한다. 은 카피라이터인 김민철 작가가 쓴 여행기다. 유명 관광지나 풍물을 소개하는 대신 여행지와 나와의 내면적인 만남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의 기록이다. 낯선 뒷골목, 우연히 만난 사람, 의외의 풍경이 주는 기쁨 등이 정감 있는 사진과 ..

읽고본느낌 2022.09.23

조선의 뒷골목 풍경

우리는 왕조나 위인 중심으로 역사를 배운다. 살아간 사람들의 이야기가 역사라면, 정사(正史)란 역사 스토리의 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긴 시간 우리 역사를 만들어 간 수많은 평민, 상놈들의 땀내 나는 사연은 통째로 잊혀 있다. 왕이나 양반, 위인들이 아니라 일반 민중들의 삶을 드러내는 작업도 역사가의 책무라고 본다. 은 일반 백성들의 삶의 현장을 재현한 사람 냄새 나는 생활의 역사서다. 지은이인 강명관 선생은 한문을 전공한 교수로 옛 서적에 나오는 장삼이사들의 이야기를 재구성했다. 백성을 살린 이름 없는 민중의, 군도와 땡추, 유흥가를 지배한 무뢰배들, 조선의 오렌지족, 투전 노름에 골몰한 도박꾼, 술과 풍악으로 일생을 보낸 탕자, 족집게 대리시험 전문가, 금주령과 술집, 가부장 체제에 반기를 든 여인 등..

읽고본느낌 2022.09.18

러빙 어덜츠

넷플릭스에 혹시나 볼 만한 게 있는지 들어갔다가 우연히 보게 된 영화다. 많은 경우 실망을 하지만 이 영화는 지루하지 않게 볼 수 있다. 제목이 '러빙 어덜츠(Loving Adults)'인데 번역하면 '사랑스런/사랑하는 어른들' 쯤 될까, 그러나 내용은 제목과 반대로 끔찍한 살인을 소재로 한 치정물이다. 영화는 미제 살인 사건을 담당했던 형사가 결혼을 앞둔 딸에게 이 사건을 설명하면서 사랑과 결혼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알려주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사건의 진행과 두 부녀의 대화가 교차하며 스토리는 전개된다. 사랑이라는 외피를 쓴 애착과 질투가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는지 영화는 잘 보여준다. 두세 차례 반전도 나온다. 청순해 보이는 아내 레오노라가 뒤로 갈수록 섬뜩한 여자로 변한다. 불륜을 저지른 어리바..

읽고본느낌 2022.09.16

부탄, 행복의 비밀

"첫눈이 오면 학교나 일터로 가지 않고 집에서 가족과 함께 낭만을 즐긴다. 모든 공교육과 의료 서비스를 무상으로 제공한다. 아이를 낳으면 6개월 유급휴가를 받을 수 있고, 아이가 만 두 살이 될 때까지 근로시간을 하루 2시간 줄여준다. 전 국토의 70%를 숲으로 보전한다. 고을마다 며칠씩 전통 축제가 열린다." 의 첫머리에 나오는 글이다. 부탄은 면적이 39,000㎢(한반도의 1/3), 인구가 80만, 일인당 국민소득이 3,000달러 정도인 아시아의 가난한 소국이다. 부탄은 '가난하지만 행복한 나라'로 유명하다. 부탄은 국가 운영의 첫째 지표가 경제 성장이 아닌 행복이다. 그래서 국내총생산(GDP, Gross Domestic Product)이 아닌 국민총행복(GNH, Gross National Happi..

읽고본느낌 2022.09.13

부러진 사다리

불평등이 인간에게 끼치는 폐해를 보여주는 책이다. 불평등의 거시적 원인이나 경제적 영향보다 개인적인 차원에서 인간 심리에 부정적으로 작용하는 요소들을 드러낸다. 부제가 '불평등은 어떻게 나를 조종하는가?'이다. 인간은 절대적 가난보다 상대적 빈곤감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 소유량보다는 남들과 비교했을 때의 내 위치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 미국을 비롯한 일부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사다리는 길어지고 중간에 부러지기까지 한 상태다. 점점 심해지는 양극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사회의 실상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좀 더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 지은이의 희망인 것 같다. 는 미국의 심리학자인 키스 페인(Keith Payne)이 썼다. 책은 많은 심리 실험 사례와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불평등이 ..

읽고본느낌 2022.09.06

고독의 매뉴얼

이 책의 절반 정도는 카페에서 읽었다. 카페에서 책 읽기는 색다른 경험이었다. 카페에서 업무를 보고 공부를 하는 젊은이들은 생활 소음이 일에 집중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나는 조용하지 않으면 몰두할 수 없다. 늘 조용한 데서 책을 보는 게 습관이 되었기 때문이다. 왔다갔다 하는 사람들이며 옆자리 손님들의 대화 소리까지 들리는 마당에 책에 온전히 집중할 수 없었다. 은 정신분석학자인 백상현 선생이 쓴 책이다. 부제가 '라깡, 바디우, 일상의 윤리학'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를 근본 문제를 다루고 있다. 지은이는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제 모두가 삶의 허망함에 관하여 알고 있으며, 그것을 잊기 위해 가족을, 연인을, 동지를, 술과 텔레비전을, 때로는 애꿎은 신을 욕망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이 모든..

읽고본느낌 2022.08.30

종이달

가쿠다 미쓰요(角田光代)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은행원 리카가 연하남 애인과 불장난을 하면서 고객 돈을 횡령하는 범죄의 늪에 빠지게 되는 줄거리인데, 돈에 지배당하며 살아가는 현대인의 불행을 그린 작품이다. 주인공인 리카 외에도 여러 친구들이 등장하는데 하나 같이 돈에 휘둘리는 군상들이다. 지리하고 우울한 삶을 소비로 만족하려 하지만 돈은 잠깐의 단맛을 줄 뿐 내면은 점점 황폐해져 간다. 기승전'돈'일 수밖에 없는, 무자비한 자본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가련한 인간의 모습이 슬프다.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모두가 행복하지 않다. 예외적으로 근검절약하면서 살아가는 유코도 마찬가지다. 돈에 휘둘리지 않겠다고 돈에서 멀어지려 하지만 그럴수록 돈의 위력 앞에서 무너진다. 돈을 마구 써대도 아껴도 돈에서 벗어나지..

읽고본느낌 2022.08.25

폰 쇤부르크씨의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법

지은이인 알렉산더 폰 쇤부르크는 언론인이자 칼럼니스트로 일하다가 독일 경제가 어려워지자 직장을 잃었다. 수입이 끊어진 가운데서도 의연함을 잃지 않고 우아하게 살기 위한 방법을 모색해 나갔다. 돈이 아니라 인생을 대하는 올바른 태도가 삶의 우아함을 결정한다는 확신을 갖고 쓴 책이 이다. 이제 풍요의 시대는 지나갔다고 하는 지은이의 말은 불안한 국제 정세나 전세계적인 경제 위기를 보면 동감이 된다. 전과 같은 고성장의 호황기는 다시 올 것 같지 않고 절약이 불가피한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 과거와 같은 성장과 자원 낭비가 계속되면 지구가 여러 개여도 부족할 것이다. 환경 파괴도 심각하다. 우리는 새로운 시대에 적응해 나가야 한다. 이 책은 공허한 이론이 아니라 실제로 살아가는 자신의 삶..

읽고본느낌 2022.08.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