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869

불꽃의 여자, 시몬느 베이유

“남을 구하기 위해서 사람은 자기 자신을 구원해야 하고, 자기 자신 속의 영혼을 해방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희생이 필요하다. 희생은 고통을 받아들이는 것이고, 자신 안에 있는 동물성을 거부하고 자발적인 고통을 통해 인간 모두의 고통을 구원하려는 자유로운 의지인 것이다. 모든 성인은 자신을 인간의 고통으로부터 분리시키는 모든 정의롭지 않은 재물을 거부했다.” 이것은 시몬느 베이유가 고등중학교 시절 철학 시간에 쓴 작문의 한 구절이다. 시몬느 베이유는 1909년 2월 3일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유대인 의사로 부유한 가정에서 자란 그녀는 총명했으나 늘 질병에 시달렸다. 이런 시절에 1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그녀에게는 인간의 고통에 대한 문제가 화두처럼 따라다녔다. 그 고통을 외면하지 ..

읽고본느낌 2005.08.24

2005 보도사진전

현재 서울갤러리에서 2005 세계 보도사진전이 열리고 있다. 한때 사진이 예술이냐 아니냐로 논란이 있었고, 사진 경향이 점점 사실에서 추상으로 변해가는 느낌이 있지만 아무래도 사진의 특징은 현실의 충실한 재현이 아닌가 싶다. 보도사진전에서 한 장의 사실적인 사진이 주는 감동을 접하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물론 사진 속에는 사진을 찍은 사람의 생각이나 의도가 반영되기 마련이다. 그것은 현실 고발일 수도 있고, 인간에 대한 연민,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한 찬미일 수도 있다. 한 장의 사진이 전해주는 지구촌의현실에 마음이 아프다. 이번 보도사진전에 나온 작품 중에서 몇 개를 골라보다. - Arko Datta (India) - 쓰나니메 희생된 친지를 보며 한 인도 여인이 오열하고 있다. 작년 12월 26일 수..

읽고본느낌 2005.06.30

수도자에게 보낸 편지

‘수도자에게 보낸 편지’를 읽으며 소로우의 향기를 다시 맡는다. 소로우의 글은 탁한 세상에서 머리를 맑게 해주는 청량한 솔바람이다. 삶에 지치고 답답할 때 그의 글을 읽으면 새로운 생기가 돋는다. 그의 글은 살아있다. 내용을 떠나 아름다운 영혼의 옆에 있다는 느낌만으로도 행복하다. 1847년 소로우의 나이 30세 때 그는 월든 호수에서의 오두막 실험 생활을 마치고 콩코드로 돌아온다. 그 1년 뒤부터 블레이크라는 친구와 13 년에 걸쳐 편지를 주고받았는데 소로우가 블레이크에게 보낸 편지를 모은 것이 이 책이다. 블레이크가 세속적인 삶에 환멸을 느끼고 영적으로 굶주려 있을 때 더 진실하고 더 순수한 삶의 방법을 묻는 편지를 소로우에게 부치면서 두 사람의 편지는 시작되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점은 진리를..

읽고본느낌 2005.06.04

존재하지 않는 세계

대림미술관에서 장 보드리야르 사진전을 보다.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지성이며 현대성에 대한 가장 뛰어난 해석자 중의 한 사람이라고 한다. 그런 사상가가 사진전을 연다고 하는 것이 우선 흥미로웠다. 장 보드리야르는 지난달에 열린 서울국제문화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우리나라를 찾았었다. 장 보드리야르는 그의 독창적 이론인 ‘시뮬라시옹(Simualtion)'을 통해 현대 사회의 본질을 설명하는데, 시뮬라시옹은 실재가 가상실재로 전환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리고 실재의 인위적인 대체물을 ’시뮬라크르(Simulacra)‘라고 부른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곳은 가상실재의 세계, 즉 시뮬라크르의 환상 속인 것이다. 장 보드리야르는 걸프전이 한창일 때 “걸프전은 일어나지 않았..

읽고본느낌 2005.06.02

나무, 그 품에 안기다

세종문화회관 앞 보도에서 '나무, 그 품에 안기다'라는 제목으로 사진전이 열리고 있다. 환경재단과 그린페스티발이 주관해서 매년 열고 있는 환경사진전인데, 올해는 나무와 숲을 주제로 해서 세계의 사진 작가 16명이 참여하여 84점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 자연의 소중함, 안타까움, 또 생명에 대한 깨우침을 주는 인상 깊은 사진들이 많다. 그 중에서 몇 가지 작품을 모아 보다. [미국 뉴욕시 점심시간 / Thomas Hoepker] 한 남자가 발가벗은 채 바닥에 누워 있다. 빨리 점심을 먹어치우고 다시 숨가쁘게 일에 매달려야 할 텐데, 남자는 바쁜 세상을 잠시 접어두고 한가롭게 오후의 휴식에 빠져 있다. 나무와 남자가 이 거대한 문명의 도시에서 알몸으로 마주한다. 서로간에 대화는 없지만, 미풍의 달콤함을 맛..

읽고본느낌 2005.04.22

값싼 은혜

며칠 전 개신교계의 지도적 목회자들이 모여서 참회 기도를 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 날 여의도에 있는 한 대형 교회의 목사는 이런 내용의 고백과 다짐을 했다고 한다. "47년 목회 활동을 했다. 목회 활동을 하면서 70에 이르니 회한이 많다. 그동안 값싼 은혜를 가지고 살아왔다. 옳은 것을 옳다 말 못하고, 나쁜 것을 나쁘다고 지적 못하며 사회악에 침묵했다. 나는 죄인의 괴수라고 할 수밖에 없다. 예수님은 자연과 우주 모두를 위해서 십자가를 들었지만, 나는 사람만 사랑했다. 지금이라도 사회악을 교정하고, 진실된 은혜를 실천하며 살아가겠다." 원로 목사님의 이런 모습은 아름답고 신선하다. 이런 일을통해 한국 교회가 새로워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정말 좋겠다. 그러나 마음 한 편에는 참회가 행동으로 이어질지에 ..

읽고본느낌 2005.04.12

너는 누구니

노르웨이의 작은 마을에 사는 열네 살짜리 소녀 소피에게 어느 날 한 통의 편지가 온다. 거기에는 단지 이렇게 적혀 있다. ‘너는 누구니?’ ‘소피의 세계’는 이 질문에서부터 시작해 이야기가 전개된다. ‘너는 누구니?’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질문을 받고 의문을 가지기도 하지만 결국 모든 질문은 이 물음표 하나로 귀결된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온갖 지식 중에서 나를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10대 후반에 열병을 앓으면 천착했던 ‘진리란 무엇인가’라는 철학적 의문도 ‘너는 누구니’라는 질문과 같은 것이었다. 그것들은 모두가 근원에 관한 질문들이다. 개인적으로는 40대 중반에 다시 한 번 이런 질문의 회오리에 말려 들어갔고, 그래서 인생관의 대전환이 생겼다. 옳다고 믿었던 것에 고개를 ..

읽고본느낌 2005.03.30

상실

깨달음을 얻은 붓다를 만나 가르침을 받기 위해 한 구도자가 히말라야 설산을 향해 갑니다. 그는 깨달음에 관한 결정적인 한 마디를 듣고 싶었던 게지요. 걷고 또 걷고, 오르고 또 오르기를 반복하며 그는 하나씩 무거운 짐을 버려가며 산꼭대기를 향해 나아갑니다. 가진 것을 거의 다 버리고, 수십 만 번 가쁜 숨을 몰아쉰 다음 마침내 세속적 집착도 거의 다 놓아버렸습니다. 최후의 능선을 오른 그는 동굴에 다다라 안쪽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거기엔 붓다처럼 보이는 도인이 앉아 있었습니다. 구도자는 기쁨에 넘쳐 물었지요. “이 세상 최고의 진리를 알려주십시오. 가장 중요한 진리는 무엇입니까? 생애 최대의 중요한 순간을 맞이한 구도자는 이제 막 깨달음의 문턱에 들어서려는 찰나에 있습니다. 앞으로 자신의 전부를 바쳐 성찰..

읽고본느낌 2005.03.10

학교대사전

요즈음 인터넷에서 '학교대사전'이 인기라고 한다. 이번에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학생들이 만들었다는데 지금의 입시 위주의 학교 현실을 시니컬하고 유머러스하게 묘사한 일종의 현실 고발적인 사전이다. 그러나 그냥 웃고 넘길 수 없는 것이 거기에는 우리 모두가 공감할 수밖에 없는 교육의 아픈 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읽으면서 미소 짓게도 되고, 고개를 끄덕이게도 되고, 또 어떤 것은 너무 심한 표현이다 싶은 것도 있지만 이 사전을 만든 학생들의 재치와 현실 너머를 보는 통찰력에는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하여튼 웃으면서 자신과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게 하는 사전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교육 문제를 지금의 틀 안에서 해석하고 있다는 것이다. 교육의 또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변화없이 이런 암담한 현..

읽고본느낌 2005.03.08

청소부 베포

옛 수첩을 뒤적이다가 보니 ‘모모’에서 옮겨 쓴 다음과 같은 글귀가 눈에 띈다. ‘한 걸음 - 한 숨 - 한 번 비질’ ‘모모’에 나오는 인물 중에서 나에게 가장 인상적인 사람은 청소부 베포 할아버지다. 베포 할아버지는 원형경기장에서 살고 있는 열 살 소녀 모모의 가장 친한 친구이다. 작은 키에 허리는 구부정하고 흰 머리칼에 안경을 쓰고 있는데 초라한 오두막에서 살고 있는 그의 직업은 도로 청소부다. 사람들은 그를 정신이 온전치 못한 사람으로 생각하는데 그 이유는 뭐라고 물어봐도 대답 대신 웃기만 할 뿐이기 때문이다. 그의 대답을 듣는데 어떤 때는 두 시간이 걸리기도 하고, 하루 종일 기다려야 할 때도 있다. 그만큼 그는 생각이 깊다. 대답이 필요 없다고 여겨지면 침묵을 지킨다. 그런 그를 이해해 주는 ..

읽고본느낌 2005.02.16

톨스토이와 만나다

톨스토이의 생애에서 가장 주목되는 점은 그의 나이 50대 초반에 겪었던 정신적 격변이다. 어쩌면 종교적 회심(回心)과 비슷한 경험이었을 텐데, 그는 이때 깨달은 진리를 평생을 통해 삶으로써 실천하려고 노력했다. 금주, 금욕, 육식 거부 같은 생활상의 변화도 이때부터 나타난다. 톨스토이가 위대한 점은 명문 귀족이며 유명 작가라는 자신의 기득권에 안주하지 않고 실천을 통해 구도자적 삶을 살았다는 것이다. 그는 교회로부터 파문을 당했고, 가족의 몰이해라는 아픔도 겪는다. 열성적 추종자들에게 둘러싸이기는 했지만 그가 걸은 길은 좁고 외로운 길이었다. 톨스토이에게 기존 종교의 모습은 신(神)에게 가까이 가기에는 너무나 위선적이었으며, 정신적 방황 뒤에 그를 구원한 것은 민중의 소박한 신앙과 사랑이었다. 그들과 함..

읽고본느낌 2005.01.27

너무 가난해서 너무 행복한 삶

사람이 살아가는 삶의 양식은 각양각색입니다. 내가 살아가는 나의 삶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삶이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선택했다기보다는 어쩔 수 없이 주어진 삶을 살아간다는 표현이 맞을 것입니다. 크고 작은 꿈을 꾸지만 이내 현실의 벽에 부닥치면서 이상과의 괴리만 느끼며 부득이 꿈을 접을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네 삶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일부의 사람들은 주체적으로 자신의 삶을 살며 만들어 갑니다. 참으로 존경스러운 분들이지요.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세상의 보편적 가치관이나 인간이 만든 제도, 물질의 구속에서 벗어난 사람들입니다. 물처럼 바람처럼 자유롭게 살아가는 사람들이지요. 오늘 아침에는 김미순님이 쓴 ‘너무 가난해서 너무 행복한 삶’이라는 책을 다시 읽어 보았습니다. 이 책을 손에 잡으면 맑은 솔바..

읽고본느낌 2005.01.25

하울의 움직이는 성

가족과 함께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보다. 며칠 전 저녁 식사 자리에서 영화 이야기가 나왔는데, 이 영화를 보고 싶다고 했더니 큰 아이가 표를 끊어온 것이다. 오래 전이었다. 아이들이 유치원에 다닐 나이였으니까 20년 전쯤 되었을 것이다. 그때 ‘미래소년 코난’이라는 만화 영화가 일요일 아침에 방송되었는데, 얼마나 재미있었던지 코난의 다음 편 때문에 일요일이 무척 기다려졌었다. 지금은 줄거리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대전쟁을 치르고 난 뒤의 살아남은 사람들 사이의 이야기였는데 아름다운 색채로 그려진 자연과 동심의 순수함과 문명 비판 등이 어우려져 영화가 주는 메시지가 무척 감동적이었다. 그래서 지금도 만화 영화하면 나에게는 코난이 제일 먼저 연상된다. 영화관에 자주 가는 편이 아닌데 ‘하울의 움직이는 성’..

읽고본느낌 2004.12.31

페이터의 산문(散文)

며칠 전, 일간지에 재미있는 광고가 실렸다. ㅎ 정수기 회사에서 이양하 님의 '페이터의 산문'을 70년대 국어 교과서에 나온 그대로 전면 광고로 실은 것이다. 30여년 전에 공부했던 교과서를 다시 보게 되니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절의 교실로 되돌아간 것 같다. 저 부분에 밑줄을 긋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기억이 새롭다. 그때에 나는 국어 과목을 제일 좋아했다. 국어 선생님은 작은 키에 목소리가 낭낭하셨는데 시를 낭송해 주던 목소리가 지금도 들리는 것 같다. 그때는 국어 시간이 얼마나 기다려졌는지 모른다. 그 시간이면 선생님 따라서 환상의 나라로 여행을 하곤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그랜드케년 기행기였다. 얼마나 실감나게 설명해 주시는지 나중에 그랜드케년은 꼭 가보리라고 다짐을 했었다. 그래서 지금도 미..

읽고본느낌 2004.11.24

사람만이 희망이다

일민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최민식 사진 전시회에 다녀오다. 다큐멘타리 사진작가로서 최민식 님은 흑백사진을 통해서 5, 60년대의 가난하고 소외된 우리 이웃들의 삶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세상이 너무나 변했지만 사진 속의 모습들은 사실 우리들 어제의 모습이었다. 거기에는 궁핍과 삶의 무게에 찌들었던 우리의 모습이 있어 보는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그러나 사진을 오래 들여다보면 왠지 가슴이 뭉클해지는 감동을 받는다. 사진 속에서 따스한 인간애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가난하지만 천진한 아이들의 얼굴, 자갈치 시장 아줌마의 건강한 웃음, 아이를 꼭 껴안고 국수를 먹이는 야윈 엄마의 행복한 미소 등 아무리 가난하고 어려워도 결코 절망에 무너지지 않을 희망과 사랑이 사진에는 있다. 사진을 보며 나는 역설적..

읽고본느낌 2004.11.15

라마크리슈나 어록

갈등은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분열과 투쟁을 일으키는 파괴적인 성향도 가지고 있다. 지금 시대는 정치,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갈등이 표출되면서 몹시 불안정하다. 이때는 서로의 다름을 확인하기보다는 같음을 찾아서 인정하고 공존하는 방향으로 상호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데올로기나 이념이 생명보다 더 소중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반대 입장에 서있는 상대방은 나를 비쳐보는 거울이 될 수 있다. 특히 종교의 세계에서 그럴 필요를 더욱 느낀다. 보편적 종교의 지혜는 시간, 장소, 교리의 차이를 떠나 인간 영혼에 공명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손을 맞잡고 팔레스타인 지역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만들지 못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나만의 진리 독점주의는 우리 모두를 파멸시킨다. ..

읽고본느낌 2004.11.04

겨울 부채

이 터와의 만남은 마을 안에 있는 S 수녀원에 피정을 온 것이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지나고 보니 그때의 일들이 우연이기보다는 필연적인 무엇이 있었다고 느끼게 된다. 그렇다고 구체적으로 증명을 할 수는 없다. 그런 심정적인 느낌은 나이가 들면서 점점 운명론적으로 기울게 되는 탓인지도 모른다. 침묵 피정에 들어오며 가방 속에는 몇 개의 옷가지, 일용품들과 함께 책으로는 '성서'와 '겨울 부채'가 들어있었다. '겨울 부채'는 일본의 진종불교(眞宗佛敎) 승려인 키요자와 만시(1863-1903)의 짧은 종교 에세이 9편이 들어있는 소책자이다. 번역은 이현주 목사님이 했다. 불교 승려가 쓰고 개신교 목사가 번역한 책을 천주교 수녀원에 피정을 들어와서 탐독을 한 것이 별스럽게 보일 수도 있지만 이 책은 내 신앙에..

읽고본느낌 2004.10.13

꾸뻬 씨의 행복 여행

꾸뻬 씨는 파리 한복판에 진료실을 갖고 있는 정신과 의사이다. 그의 진료실은 상담을 원하는 사람들로 넘쳐나고 그는 의사로서의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다. 그런데 어느 날 꾸뻬 씨는 자신이 행복하지 않다고 여긴다. 마음의 병을 안고 자신을 찾아오는 사람들을 진정으로 행복하게 만들어 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불행하지도 않으면서 불행해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는 점점 더 피곤해졌고, 마침내는 자신 역시 불행해져 간 것이다. 다른 곳보다 훨씬 더 많은 혜택을 누리는 사람들이 사는 지역에, 다른 모든 지역을 합한 것보다 더 많은 정신과 의사들이 있다는 사실도 아이러니였다. 마침내 꾸뻬 씨는 진료실 문을 닫고 전 세계로 여행을 떠난다. 행복을 찾기 위한 여행이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을 돕기 위한 여행..

읽고본느낌 2004.09.19

우울에 대한 변명

“한낮의 우울‘이라는 책을 읽었는데 내용 중에서 우울증을 생물의 진화와 관련시켜 설명한 부분이 흥미가 있었다. 우울증이 진화의 단계에서 생식에 이롭게 작용한 메커니즘의 하나로 보는 특이한 관점이었다. 그렇다면 우울은 제거되어야 할 정신의 어두운 면이 아니라 종족 보존이나 개체의 생명 유지 측면에서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물론 중증의 우울증은 사람을 파멸시키기도 하지만 보통 멜랑콜리라고 부를 때 그 어감이 가지는 조금은 낭만적인 느낌처럼 우울은 도리어 인생을 다양하고 풍요롭게 해주는 기능을 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첫째, 우울증이 과거에 이루어졌던 유익한 기능의 잔재라는 해석이 있다. 즉 어떤 유형의 우울증은 원시적 계급 사회 형성에 꼭 필요한 것이었다고 한다. 집단 생활에..

읽고본느낌 2004.08.10

아홉살 인생

비디오로 ‘아홉살 인생’을 보았다. 6, 70년대쯤 되는 경상도 어느 중소도시의 작은 초등학교 3학년 아이들 이야기인데, 서울에서 우림이라는 예쁘고 똑똑한 여자아이가 전학을 오고 그동안 아이들의 대장 노릇을 해 온 여민이 우림을 좋아하게 되면서부터 벌어지는 아이들 사이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이다. 40대 이상의 어른들이라면 대부분 옛 추억에 잠기게 하는 내용으로 각자의 아홉살 시절을 되새겨 보게 한다. 다만 이 영화에서도 어른같은 아이들과 철없는 어른들의 대립 구도가 신경을 좀 거슬리게하는데 아이들을 소재로 하는 영화에서는 꼭 모자라는 어른들이 아이들과 대비되어 그려지는지 모르겠다. 나는 60년대에 경상도 산골 지방에서 초등학교를 다녔다. 한 학년에 두 학급씩 있었는데 유교적 전통이 강해서 그랬는지 항상 ..

읽고본느낌 2004.08.08

그리스도의 수난

어제 밤에 본당에서 '그리스도의 수난'(The Passion of the Christ)을 상영했다. 많은논란과 화제가 된영화라서 보고 싶었는데 마침 좋은 기회가 되었다. 조금은 소란스러운 분위기, 작고 선명하지 못한 화면 등이 흠이었지만 꼭 옛날의 시골 극장같은 분위기여서 색다른 맛이 있었다. 영화는 그리스도의 체포로부터 죽음까지 하루도 못 되는 마지막 시간을 다루고 있는데 성서에 충실하게 당시 상황을 재현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사람들의 말이 당시에 사용되었다는 아람어와 라틴어로만 되어 있어 더욱 실감이 났다. 미국에서논란이 되었다는 예수의 죽음에 대한 유대인의 책임에 대해서는 별다른 문제점을 찾지 못했다. 대체로 성서에서 묘사한 것과 차이가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성서의 기술을 그대로 따라 영화를..

읽고본느낌 2004.05.07

뮤지컬 `넌센스`를 보다

어제는 연강홀에서 뮤지컬 `넌센스 잼보리`를 보았다. `넌센스 잼보리`는 91년부터 시작된 `넌센스` 시리즈의 세 번째 버전이라고 한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을 싫어하는 터라 극장이나 공연장은 거의 가지 않는데, 어제는 어쩔 수없이 아내와 동행하게 되었다. 그러니 뮤지컬을 직접 본 것은 난생 처음이었다. 사실 별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내용은 재미있고 즐거웠다. 역동적인 무대의 열기와 관객들의 뜨거운 호응도 인상적이었고, 특히 출연진들의 끼와 재능에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이런 방면에는 문외한인지라 잘 모르긴 하지만 춤, 노래, 연기 실력을 어쩌면 그렇게 고루 갖추고 있는지 부럽기만 했다. 로버트 앤 수녀역을 한 노현희는 SBS의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프로에서 볼 때와 달리 그녀의 다재다능한새로운 ..

읽고본느낌 2004.02.12

좋은 친구

어제 저녁 인사동에 친구를 만나러 나간 길에 선(選)화랑에서 열리고 있는 사진 전시회에 들렀다. ※ 매그넘 Magnum; 50여명으로 이루어진 세계 최고의 보도사진 작가 그룹. 한 장의 사진으로 `이것이 바로 현실`이라는 사실을 인류에게 일깨워주고 있다. 전쟁 고발, 문명 비판이 주조를 이루고,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도 밝은 면보다는 억압받고 고난에 찬 내용으로 많이 그려지고 있었다. 주제가 묵직해서 여러 가지로 깊은 생각에 젖게 되었고, 서구 문명의 팽창이나 경제 성장의 이면에 숨어 있는 삶의 또 다른 모습을 되돌아보게 되는 좋은 전시회였다. 그런데 어제 만난 친구는 나에게는 특별하면서 참 좋은친구이다. 만난지는 3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얘기를 나누면 많은 부분에서 서로 공감을 하게 되고 또한..

읽고본느낌 2004.02.10

의식 혁명

데이비드 호킨스가 쓴 `의식혁명`(원제; Power vs Force)이 있다. 그는 인간 정신의 진화를 설명하고 우리가 왜 자기 실현의 길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밝히는데, 운동역학이라는 단순하고 어찌 보면 황당해 보이는 방법으로 인간이나 사회 의식을 수치화해서 나타내었다. 우주에는 보이지 않는 잠재의식의 에너지 장이 있고 그것이 각 개인의 의식 수준에 따라 여러 가지 감정이나 인식, 태도, 세계관 등에 상응하여 나타난다고 한다. 그가 제시한 의식의 지도는 다음과 같다.(IQ나 EQ가 유행하듯 CQ라는 의식 지수를 사용할 때가 올지도 모르겠다) 잠재의식에너지→ 700 ~ 1000 --- 깨달음, 언어 이전 600 ------- 평화, 축복 540 ------- 기쁨, 고요함 500 ------- 사랑, 존경..

읽고본느낌 2004.02.05

희망

얼마 전에 영화 `쇼생크 탈출`을 보았다. 영화를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이번에는 내용에 흠뻑 빠질 정도로 감명 깊게 보았다. 탈출에 성공한 후 쏟아지는 소낙비를 맞으며 환호하는 모습도 멋졌지만, 앤디가 방송실 문을 잠가놓고틀어준 음악이 교도소 감방에, 작업장에, 운동장에 울려퍼질 때 죄수들이 넋을 잃고 그 소리를 따라 위로 시선을 모으던 장면이 최고의 명장면이 아니었는가 싶다. 그런데 이 영화가 주는 메세지는 `희망`이었다. 무고한 앤디가 20년 옥살이를 견디게 된 것도, 또 가석방된 레드가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는 것도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간난한 이 현실에서 인간을 살리는 것은 빵도 쾌락도 아닌 바로 희망임을 영화는 말해준다. 만약 사람들에게서 희망을 빼앗는다면 인간의 삶은 흑백의 우중충한..

읽고본느낌 2004.01.13

조나단의 고독

조나단 곁을 모든 갈매기들이 떠나갔다. 아니 그 전에 별나게 행동할 때부터 조나단은 이미 외톨이가 되었다. 가족도, 가까웠던 동료들도 그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고독했다. 조나단이 관심을 가진 것은 먹고 사는 일이 아니라 얼마나 멋지게 비행을 하느냐였다. 어부들이 던지는 썩은 고기 냄새에 길들여진 다른 갈매기들에게 조나단의 행동은 미친 짓으로밖에 여겨지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의 힘으로 하늘을 멋지게 날려고 하는 모험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는 배가 고팠고 외로웠다. 패배감과 좌절감에 시달리기도 했다. 행복을 위해서 평범한 갈매기로 만족하며 살아가려는 유혹도 있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내적인 충동이 그를 높은 하늘로 내몰았다. 결국 그는 자유를 얻는다. 동료들의 몰이해와 비난 가운데 그는 혼자서 비..

읽고본느낌 2003.12.27

바보 이반의 나라

`바보 이반`은 톨스토이의 단편이다. 우리 눈으로 볼 때 이반은 바보이고, 그 나라에 사는 사람들도 다 바보라고 부를 만 하다. 그들은 권력도 모르고, 부자가 될 줄도 모른다. 그 나라는 군대도 없다. 그래서 외국 군대가 침략해 와도 대항할 줄을 모른다. 물건이 필요하면 누구에게나 다 가져가라고 한다. 자기 것이라고 모으지 않고, 남의 것을 탐하지 않는다. 그들은 모두 육체적 노동으로 살아간다. 그래서 육체 노동이 가장 신성하게 대우받는다. 손에 굳은 살이 박인 자는 식탁에 앉지만, 그렇지 않은 자는 남은 찌꺼기를 먹어야 한다. 일상으로서의 노동은 즐거움과 행복의 원천이 된다. 노동이 곧 삶이요, 오락이다. 이반이 그 나라의 임금님이지만 일상의 생활은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 없다. 이름만 임금이지 하는 ..

읽고본느낌 2003.12.19

전혜린의 가을

......... 긴 여행 - 돌아오지 않는 여행, 깨어남 없는 깊은 잠, 이러한 것들이 가을이면 매년 나의 고정 관념으로 되어 버린다. 여름의 모든 색채와 열기가 가고 난 뒤의 냉기와 검은 빛과 조락은 나에게는 너무나 죽음을 갈망하는 자태로 유혹을 보내 온다. 그래서 매년 가을이면 몇 주일이나 학교도 못 나오게 되고 앓아 눕게 된다. 의사는 신경의 병이라지만 나 자신은 내가 `존재에 앓고 있다`고 생각하고 싶을 만큼 절실하고 긴박하게 생과 사만을 집요하게 생각하고 불면 불식의 나날을 보내게 된다. 생과 사에 대한 생각이라기보다는 사에 대한 생각이 나를 사로잡아 버린다. 가을은 토카이의 시 속에서처럼 저녁 노을에 박쥐가 퍼덕거리는 숲을 지나서 오솔길을 한없이 걸어가다가 길목에 있는 선술집에 들어가 `어린..

읽고본느낌 2003.11.10

본회퍼의 `옥중서간`을 읽고

이번 주말 집에서 쉬면서 본회퍼의 `옥중서간`을 다시 읽어보다. 그의 신학적 사상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다만 그의 삶이 나에게는 자극제가 되고 성찰이 된다. 그의 삶 자체가 무언의 메시지이다. 우리가, 특히 신앙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어떻게 고민하고 살아야 하는지를 묻고 있기 때문이다. 본회퍼는 독일의 촉망받던 신학자며 목사였다. 히틀러가 집권한 후 그는 고국으로 돌아와 반나찌 운동에 가담한다. 1943년 봄에그는 체포되고 히틀러 암살 계획에 연루되어 종전을 몇 달 앞두고 처형되었다. 많은 위대한 사람들이 그러하듯 그는 자신의 모든 기득권을 포기하고 시대가 요구하는 소명에 몸을 던진 사람이었다. 그의 용기와 사랑,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신앙이 편지에 잘 나타나 있다. 종교의 ..

읽고본느낌 2003.1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