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872

카가야의 밤하늘

카가야의 작품 중에서도 나는 이 그림이 제일 좋다. 석양에 물든 하늘에 초생달이 떠 있고 옆에는 금성이 빛나고 있다.하루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일까, 소녀의 어깨에 걸친 수건과 헝클어진 머리칼이 하루의 고단함을 말해주고 있다. 그러나 개와 함께 나란히 앉아 저녁 하늘을 바라보는 뒷모습이 따스하고 평화롭다. 주황색의 색감도 그런 분위기를 더해준다. 1968년 일본 사이타마에서 태어난 카가야는 어릴 적부터별을 좋아해 밤하늘 그림을 즐겨 그렸다고 한다. 중년에 접어든 나이에도 여전히 별을 사랑하는 소년의 감수성이 살아 있어, 그의 그림은 사람들을 동화와 환상의 세계로 안내한다. 얼마 전에 카가야의 '천문 일러스트 전시회'가 국립과학관에서 열렸다. 그의 그림을 통해 아름다운 신화와 판타지의 나라에 빠져..

읽고본느낌 2009.08.28

UP

휴가 마지막 날, 아내와 시내 나들이를 했다. 먼저 대한극장에서 영화 '업'(UP)을 보았다. 픽사에서 만든 애니메이션인데 그림이나 내용이 기대 이상으로 좋았다. 모험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과 단절되어 살아가는 할아버지 '칼'에게 극적인 순간이 찾아온다. 이 영화에서 가장 멋진 장면, 수천 개의 풍선으로 집을 하늘로 들어올리며 드디어 미지의 땅으로 날아간다. 그러나 이때부터 고난이 시작되고, 소년 '러셀'과 함께웃고 울리는 대모험이 시작된다. 재미와 감동을 함께 주는 동화 같은 애니메이션이다. 영화가 주는 메시지는 인생의 진정한 성공은 모험이나 성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 속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얻어진다는 것이다. 할아버지는 평생의 꿈을 쫓아 세상으로부터 탈출하지만 결국 다시 세상으로 돌아온다..

읽고본느낌 2009.08.21

르누아르

밝고 화사한 세계를 만나고파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르누아르전을 찾았다. 고등학교 미술 교과서에서 처음 접했던 르누아르 작품은 밝은 색감과 명랑한 분위기, 곱고 아름다운 소녀의 모습들로 내 눈을 사로잡았다. 그뒤로 르누아르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서양화가가 되었다. 얼마 전에도 뱃놀이하는 즐거운 풍경을 담은 그의 그림의 복제본을 사기도 했다. 그러나 삶의 밝은 면만 부각시키는 귀족풍의 화려한 그림은 현실 인식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는다. 그가 그린 것은 비현실적인 이상향일 뿐이다. 이런 것이 그의 그림의 한계이기도 하지만 인간의 꿈, 특히 여성들의 로망을 아름답게 표현했다는 점에서 인정을 해 주어도 무방하다고 본다. 그것 역시 우리 내면 모습의 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르누아르 전시회가 열린다는 소식..

읽고본느낌 2009.08.18

무탄트 메시지

호주에 ‘참사람’이라 불리는 원주민 부족이 있다. 그들은 아메리카 인디언들처럼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모든 생명체가 한 형제임을 믿으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우리 같은 문명인들을 ‘무탄트’라고 부른다. ‘무탄트’는 돌연변이라는 뜻으로, 인간의 기본구조에 내적 변화가 일어나 본래의 모습을 상실한 존재라는 의미다. 문명의 이기를 내세워 자신의 욕망 추구를 위해 물과 공기를 오염시키고 나무를 베어내는 행위는 그들의 눈으로 볼 때 암세포와 같은 돌연변이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문명이라는 마취약에 취해 자신과 세상을 파멸시키는지도 모르고 살아가고 있다. 그들이 볼 때 우리는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것이 아닌지도 모른다. 그들의 지혜를 말해주는 ‘무탄트 메시지’라는 책이 있다. 호주 원주민 이야기는 사실이 아닌 픽션..

읽고본느낌 2009.08.17

시민의 불복종

헨리 데이빗 소로우는 1846년 7월에 노예제와 멕시코 전쟁을 반대하면서 세금 납부를 거부하다가 감옥에 들어간다. 세급 납부를 거부한 이유는 자신이 낸 돈이 노예를 사는데 쓰이거나, 사람을 죽이는 총을 만드는데 쓰이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었다. 친척이 세금을 대납해서 그는 하루 만에 풀려났지만 이 일은 국가에 대한 국민의 저항권을 상징하는 중요한 사건이 되었다. 이 사건에 관계된 그의 강연 내용을 후에 책으로 출판한 것이 유명한 '시민의 불복종'(Civil Disobedience)이다. '시민의 불복종'에 나타난 그의 사상은 톨스토이나 간디에 영향을 미치면서 정권의 폭력에 대한 저항 정신의 원류가 되고 있다. 지금 이 시대에 다시 소로우의 글을 읽어보고 싶은 이유는 현 정권의 폭력이 도를 지나친다는 느낌..

읽고본느낌 2009.07.08

착하게 사는 것은 쉬운 일이다

돌프 페르로엔이 쓴 ‘2백 년 전 악녀일기가 발견되다’는 14살 마리아의 일기 형식으로 된 작은 책이다. 1시간 안에 읽을 수 있지만 책이 시사하는 바는 결코 가볍지 않다. 마리아의 부모는 마리아가 열네 살이 되자 생일 파티를 성대하게 열어준다. 마리아는 멋진 선물을 많이 받는다. 그러나 제일 놀라운 선물은 어린 노예 소년 꼬꼬와 채찍이다. 꼬꼬는 접시에 담겨져 식탁에 올려진다. 이 책의 시대 배경은 19세기이고, 마리아는 네델란드의 식민지였던 네델란드령 가이아나에서 대규모 커피 농장을 경영하는 부유한 농장주의 외동딸이다. 천진난만한 소녀 마리아와 가족들이 노예를 경멸하고 인종적 우월감에 젖어 있는 것은 그 시대의 일반적인 의식이라고는 하지만 너무나 안타깝다. 백인들에게서 노예는 사람이 아니라 ‘그것’으..

읽고본느낌 2009.07.03

생명의 본능

‘21세기에는 남자도 화장을 한다’라는 책은 새로운 여성의 세기가 다가왔음을 알려주고 있다. 그 책 내용 중에 동물세계에서는 암컷의 바람기가 보편적인 현상임을 보여주는 예들이 나온다. 새들 새끼의 유전자를 검사했더니 반 이상이 자신의 짝이 아닌 다른 수컷과의 관계로 태어난 것이 밝혀졌다. 일부일처제를 지킨다고 알려진 원앙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현상은 진화생물학적으로 볼 때 당연한 일이다. 다양하고 질 좋은 유전자를 확보하는 것이 생명의 목적일진대 평생을 한 파트너와 관계한다는 것이 도리어 비정상적으로 보인다. 다양한 유전자를 가진 자식이 훨씬 더 환경 변화에 적응하고 생존할 확률이 높다. 인간세상도 별로 달라 보이지 않는다. 다만 남자의 바람기가 쉽게 드러나는 것에 비해 여자의 바람기는 은폐되어 있고 또..

읽고본느낌 2009.06.29

슬플 때는 난 시골길을 걸어요

“슬플 때는 난 시골길을 걸어요. 그리고 나무를 가만히 껴안죠.” 영화 ‘세라핀’에 나오는 대사 중에서 유난히 이 말이 기억에 남는다. 영화 ‘세라핀’은 실존했던 비운의 화가 세라핀 루이(Seraphine Louis, 1864-1942)의 일생을 그리고 있다. 그녀는 수도원에서 생활하던 중 그림을 그리라는 신의 계시를 받고 수도원을 나온다. 그리고 남의 집 허드렛일을 해서 생계를 유지하며 밤에는 그림을 그린다. 정규 교육이나 그림 수업을 전혀 받지 않은 그녀의 내부에서는 마치 하늘의 명령처럼 그림에 대한 열정이 분출되어 나온다. 그녀의 그림 소재는 꽃과 나무다. 가난한 그녀는 흙이나 천연염료로 물감을 만들어서 그림을 그린다. 심지어는 교회의 성모마리아상 앞의 촛농을 훔치기도 하고, 동물의 피를 구해서 자..

읽고본느낌 2009.06.24

아미엘의 일기

고독한 철학자 아미엘이 40여 년 동안 쓴 일기는 세계와 인생에 대한 한 개인의 명상록이라 할 수 있다. 그는 독신으로 살면서세속적 욕망을 포기하는 대신 영혼의 평화를 얻고자 했다. 맑은 영혼을 가진 그의 일생은 소박했고 청빈했다. 반면에 어쩔 수 없이 외롭고 우울한 측면도 있었는데 그것은 일기의 기본 색조로 나타나서 일기를 읽는 내내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아미엘에게 있어 일기는스스로 말한 대로고독한 인간의 위안이자 치유자다.일기를 쓰는 행위는 펜을 든 명상이라고도 했다. 그가 남긴 일기를 통해 성찰하고 고뇌하는인간으로서의 동질감을 느끼게 된다. 밑줄을 치며 읽었던 '아미엘의 일기'에서 인상적이었던 구절들을 아래에 옮겼다. 다만 번역이 매끄럽지 못했다는 것은 아쉬웠다. 왠지 일본어로 중역된 느낌이 자..

읽고본느낌 2009.06.23

여자에 대하여

'아미엘의 일기'를 읽고 있다. 평생을자신의 내면을 관찰하면서 인생의 의미에 대해서명상을 한 고독한 철학자 아미엘, 그도 사회적 통념에 따른 편견을 벗어나지 못한 부분이 있다. 바로 여자에 대한 관점이다. 아미엘이 살았던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은여성에 대한 왜곡된 의식이 지배하던 시기였다. 여자를 동등한 인격체라기보다는 남자에 종속된 존재, 또는 정신적 미숙아 정도로 여겼던 것 같다. 그렇더라도 시대의 고정관념과 내적 싸움을 한아미엘의 여성관은 이해하기 힘들다. 그가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다는 사실과 연관지어 볼 때 아마 성장 과정에서의어떤경험이 관계되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아미엘의 여성관을 엿볼 수 있는 일기내용 중 일부는 다음과 같다. '여자는 수수께끼다. 여자는 멀리 도망치기를 좋아하며,..

읽고본느낌 2009.06.06

신비하고 아름다운 우주

삶이 초라하고 비루해질 때, 인간과 자신에 대한 실망으로 낙담 될 때, 우주로 눈을 돌린다. 작은 산등성이에만 올라도 속세의 풍경을 내려다보며 가슴을 펼 수 있거늘 하물며 저 광대무변한 우주의 광경이라면 어떠하리. 지상에서 꽃이 피듯 천상에서는 별들의 꽃이 핀다. 꽃들이 화원을 이루듯 별들도 무리를 지어 빛난다. 그들 역시 나고죽음을 반복하지만 인간세계와는 스케일이 다르다. 위대한 존재 앞에서 하루살이인 우리는 그저 침묵할 뿐이다. 아, 얼마나 다행인가. 아직도 별이 빛나고 찬란한 하늘이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니! '신의 눈'(Eye of God)이라 불리는 행성상성운 NGC7293. 지구에서 650 광년 떨어져 있는 이 성운은 태양 같은 별이 최후에 바깥쪽으로 기체를 뿜어내 생겨난 것이다. 아마 태..

읽고본느낌 2009.06.02

안토니아스 라인

좋은 영화를 한 편 보았다. 10여년 만에 재개봉한 '안토니아스 라인(Antonia's Line)'이다. 안토니아와 그 아래로 이어지는 여성 4대의 연대기로 네델란드 농촌 마을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내용이 인생의 의미에 대해 숙고하게 한다. 이 영화는 여러 시각에서 볼 수 있겠으나 나에게는 여성성에 의한 자유와 해방의선언으로 읽혀졌다. 종교나 지성이나 가정의 틀보다 우선되는 것은 자연의 싱싱한 생명력이다. 그런 점에서는 자연주의를 찬양하는 영화라고 할 수도 있겠다. 여성성과 자연주의는 상통하는 바가 많다. 자유와 해방을 상징하는 여러 장면들이 있다. 신부가 위선적인 강론을 할 때 당당히 퇴장하는 안토니아, 강의중인 교수를 향해 더 배울 것이 없다고 뛰쳐나가는 테레사의 행동 등은 기존의 체제에 대한 항거라고..

읽고본느낌 2009.05.11

그때 이랬다면

세상사는 뒤엉킨 실타래처럼 얽히고설켜 있다. 한 사건이 일어나는데는 온 우주가 관계한다. 그것을 어떤 사람은 우연이라고 하고, 어떤 이는 필연이라고 한다. 우연이 겹치면 필연이 된다. 지구별에 호모사피엔스가 나타나게 된 것도 기적 같은 사건들이 겹쳐서였다. 그중 하나만 없었어도 우리 존재는 어떻게 되었을지 모른다. 마치 벽돌 하나가 빠지면 전체 건물이 붕괴되는 경우와 같다. 우리는 인과의 그물망이라는 시공간에서 존재하고 있다.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에 그런 장면이 있다. 한 남자가 늦잠을 잔다. 그가 급히 택시를 타는 바람에 한 여자가 택시를 놓치고 그녀는 커피를 마시며 다음 택시를 탄다. 길을 가던 택시가 화물차에 막혀 신호를 기다리고, 이때 연습실에서 나온 데이시의 신발끈이 풀린다..

읽고본느낌 2009.04.03

`워낭소리`를 보는 다른 시각

독립 다큐멘타리 영화인 '워낭소리'가 400만 가까운 관중을 동원하는 기적을 일으켰다. 감동은 입소문을 타고 번졌고 주로중년 관객들의 향수와 눈물샘을자극했다. 나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그러나 '워낭소리'를 다른 시각에서 볼 수도 있다는 것을 K 씨의 글을 읽고야 알았다. 언제나 그렇듯 새로운 관점은 늘 신선하다. 사물이나 현상에는 다양한 측면이 있기 때문에 내가 보지 못하는 부분을 지적해주는 것은 시야를 넓히는데 도움이 된다. '워낭소리'에 대한 K 씨의 짧은 소감은 이렇다. '나는 궁금하다. 지난 여름 내내 내 새끼에게 미친 소를 먹일 순 없다며 두 눈 부릅뜨고 소리치던 사람들이, 한우라면 없어서 못 먹는다는 사람들이, 평균 수명의 곱절을 살며 죽도록 일해야 했던 한우 이야기에 그토록 눈물을 흘리는 ..

읽고본느낌 2009.03.31

2009 기상사진전

올해의 기상사진전은 과천 국립과학관에서 열리고 있다. 지난 해에는 경복궁 지하철역에 있는 메트로 전시실에서 본 기억이 난다. 이 전시회를 보러 일부러 국립과학관까지 찾아갔지만 사정상 직접 보지는 못하고 대신 서울대공원 뒤의 청계산길을 산책했다. 아쉽지만 기상청 자료실에 올라있는 사진으로 대신한다. 렌즈운 / 김완기 / 울산광역시 태화강 청명한 아침에 태화강 위로 형성된 렌즈운으로 볼록렌즈 세 개를 겹쳐 놓은 듯 하다. 번개를 잡다 / 인경호 / 전남 영광군 영광군 녹사리 덕유산의 브로켄 / 유지훈 / 덕유산 브로켄; 태양을 등지고 설 때 앞에 있는 안개입자가 반사되어 그림자 주위에 생기는 광륜 현상. 구름폭포 / 한인자 / 설악산 하늘이 열리고(채운) / 이상우 / 필리핀 세부 역고드름 ..

읽고본느낌 2009.03.22

지구의 밤

종로에 나간 길에 '청계창작스튜디오'에서 열리고 있는 천체 사진전을 보았다. 올해가 세계 천문의 해다. 갈릴레이가 망원경으로 천체를 관측한지 400 년이 되는 것을 기념해서 2 년 전에 유엔 총회에서 결정되었다. 이번 전시회의 주제는 '지구의 밤'(The World at Night)인데 지상의 아름다운 배경과 함께 별, 달 등의 천체를 찍은 42 점의 사진이 전시되고 있다. 주로 밤하늘의 별사진이 많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세계 각국의 천체사진가들의 뛰어난 작품들이잊고 지낸 밤하늘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한때 별사진을 찍는다고 동분서주해 본 사람으로서 이런 사진들을 보니 옛날의 열정이 되살아나는 듯 감회가 새로웠다. 다른 사진과 달리 별사진은 끈기와 인내가 필요하다. 아무리 준비를 해도 기상 조건이 맞지 ..

읽고본느낌 2009.03.20

강익중의 <멀티플/다이얼로그> 전시회

서울대공원 산림욕장 길을 걸은 뒤에 국립현대미술관에 들렀다. 마침 어제부터 강익중의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미술관 램프코어에 있는 백남준의 작품 '다다익선(多多益善)' 주위의 나선형 벽을 따라 60,000여 개의 소형 타일작품들과 오브제, 영상물이 가득 붙어 있었다. 전에는 '다다익선'만 가운데 달랑 놓여 있어 썰렁했는데 강익중의 작품이 더해지니 '다다익선'이 다시 생명을 얻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동적인 비디오 영상과 정적인 강익중의 작품이 서로 조화를 이루면서 유쾌한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작은 소품들로 이루어진 규모의 거대함이 전혀 부담이 되지 않았다. 이 전시회는 작가 강익중이 1980 년대부터 진행하고 있는 '3 인치' 연작들이 총망라된 회고전이라고 한다. 또한 자신의 스승인 백남준의 작고 3 ..

읽고본느낌 2009.02.07

워낭소리

감동적인 영화를 한 편 보았다. 이충렬 감독의 다큐멘타리 영화인 '워낭소리'다. 워낭은 소의 목에 매다는 방울인데, 맑게 딸랑거리는 워낭소리는 주술처럼 우리를 유년의 고향으로 안내해 준다. 경북 봉화에 사시는 여든 살의 최 할아버지에게는 30 년을 함께 살아온 늙은 소가 있다. 소의 수명은 보통 15 년이라는데 이 소는 나이가 40 살이나 되었다. 할아버지와 소는 사람과 가축 이상의 끈끈한 정으로 맺어져 있다. 할아버지는 소를 위해서 농약도 치지 않고 농사를 짓는데 할머니보다 소를 더 챙긴다고 할머니로부터 늘 불평을 듣는다. 그리고 소는 다리가 불편한 할아버지의 수족이 되고 농기구가 되어 온 몸을 바쳐 헌신한다. 소에게도 할아버지에게도 삶은 힘들고 고통스럽기만 하다. 잘 걷지도 못하는 소는 죽기 직전까지..

읽고본느낌 2009.02.05

임형주의 송년 음악회

어제 저녁은 아내와 함께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임형주의 송년 음악회'에 다녀왔다. 수술 후 병원 진료를 제외하고는 아내로서는 첫 나들이였다. 이런 큰 음악회에 가리라고는 상상도 안했는데 마침 티켓 두 장을 아내의 친구가 선물로 보내왔다. 임형주의 고운 목소리를 좋아하는 아내에게는 가장 큰 연말 선물인 셈이었다. 더구나 그 표가 장당 13만 원이나 하는 VIP석권이었다.나 같은 사람이 돈을 내고 그런 자리에 앉을 기회는 아마 일생에 한 번도 없을 것이다. 연주회장이라면 잠만 청하는 나로서는 아내의 좋아하는 모습을 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함께 자리를 같이 했다. 공연은 저녁 8 시부터 3 시간 가까이 계속되었다. 임형주 씨는 5 번의 앙콜곡을 포함하여 혼자서 26 곡이나 열창을 했다. 잔잔하게 이어지던 노래..

읽고본느낌 2008.12.31

마당놀이 공연을 보다

삼삼회의 송년 모임으로 11 명의 회원이 마당놀이 '심청전' 공연을 보았다.7 명은 부부 동반이었다. 마당놀이는 극단 미추에서 20여 년 째 이어져 오고 있는 송년의 단골공연인데 직접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늘 장충체육관에서 공연이 있었는데 올해는 월드컵 경기장 한 켠의 임시 공연장에서 열렸다. 실내는 아담하면서 무대와 거리가 가까워 오히려 큰 체육관보다 나은 것 같았다. 좌석은 가득 찼고 관중들의 호응도도 높았다. 공연을 보면서 마당놀이의 터줏대감이라 할 수 있는 윤문식, 김성녀 두 배우의 힘을 다시금 느꼈다. 지난 번 '남사당의 하늘'이라는 연극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공연 성공의 비결은 두 사람의 맛깔나는 연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뺑덕어멈 역을 맡은 김성녀의 간드러지는 연기는 일품이었다. 마당놀..

읽고본느낌 2008.12.07

아내가 결혼했다

어렸을때 고향 마을에는 두 부인을 데리고 산 친구 아버지가 있었다. 작은집을 따로 둔 게 아니라 한 집에서 두 여자가 같이 살았는데 두 사람의 사이도 좋았다.전형적인 일부다처제의 모습이라 할 수 있는데 당시는 별로 이상하게 생각되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던 것 같다. 철저한 유교 신봉국가인 조선에서 능력 있는 남자들은 알게 모르게 둘 이상의 여자를 거느리고산 게 사실이다. 일부일처제는 여자들에게만 족쇄로 작용했는지 모른다. 현모양처나열녀에 대한 칭송과 교육은여성은 오로지 가정과 남편에만 충실해야 한다는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를 강화시키는기재들이 아니었을까. 아무 의심 없이 받아들이며 살았지만 가끔씩은 회의를 해보게 되는 것 중에 일부일처제가 있다.젊어서 부부가 된 두 사람이 평생을 한 눈 팔지 않고 사랑하..

읽고본느낌 2008.11.01

인생

최근에 중국 소설 세 권을 읽었다. 다이호우잉의 , 그리고 위화(余華)의 와 이었다. 다이호이잉이 문화대혁명이 지식인에게 준 상처를 그렸다면, 위화는 역사에 짓밟힌 민중의 아픔을 그렸다. 그 중에서도 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을 읽는 동안 여러 대목에서 눈시울이 붉어졌고 가슴이 먹먹해졌다. 소설은 푸구이라는 노인이 자신의 파란만장했던 인생 역정을 들려주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부잣집 아들로 태어난 푸구이는 도박으로 전 재산을 탕진하고 가난뱅이가 된다. 고난의 삶은 재산뿐만 아니라 가족마저도 모두 앗아간다. 착하기만 한 아내 자전과 두 자녀 유칭과 펑샤, 사위인 얼시와 손자 쿠건이 각자 기막힌 사연들로 차례로 죽고 노인은 혼자 남는다. 푸구이의 삶은 국공내전과 대약진운동, 문화혁명을 거치며 거친 역사의 물..

읽고본느낌 2008.10.21

로드

대재앙을 겪은 지구는 종말을 맞았다.뜨거운 불길이 전 지구를 태웠고 세상은 잿빛이 되었다. 짙은 구름이 태양을 가리고 기온은 내려갔다. 대부분의생물은 멸종했다. 살아남은 소수의 생존자들은 극한상황 속에서 처절하게 살아간다. 파괴된 지구보다 더 무서운 것은 서로를 잡아먹는 인간들이다. 그중에 한 남자와 아들이 있다. 그들은 온갖 고초를 겪으며 따뜻한 남쪽을 향해 길을 나선다. 코맥 매카시의 소설 '로드'[The Road]를 단번에 읽었다. 가슴이 먹먹해지는 소설이다. 지구의 종말을 그린이야기는 많았지만 이렇게책 속으로 빨려들어간 적도 드물었다. 우리가 철석같이 믿고 있는 사실이나 신념들이 산산조각난 상태, 신이나 진리라는 말 조차 꺼낼 수 없는 비참한 상황은 문명이나 인간의 본모습에 대해 숙고하게 한다. ..

읽고본느낌 2008.10.05

사람 풍경

'사람 풍경'은 김형경의 심리 여행 에세이집이다. 저자는 수 년간 정신분석을 받은 뒤, 자신을 찾기 위해집을 팔고 해외여행을 떠났다. 이 책은 여행에서 만난 풍경이나 사람들 얘기면서 자신의 내면을 성찰한 기록이다. 이 책을 들면 저자의 여행 얘기를 들으면서 심리학 용어나 심리학의 기초 개념들을 쉽게 익힐 수 있다.사람들의 마음이나 그런 행동을 하는 배경에 대해 솔직하고 객관적인 분석을 할 때는 거북하기도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이 많다. 저자는 특히 유년 시절에 어머니와의 관계를 통해 형성되는 인성을 중요시하고, 그 시절의 억압이나 왜곡된 콤플렉스가 무의식의 세계를 만든다고 본다. 그런 관점에서 인간의 감정과 의식을 해석하는데 프로이드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다. 첵은 3 장으..

읽고본느낌 2008.09.17

널 만나 나를 사랑하게 되었어

"널 만나 나를 사랑하게 되었어!" - 영화 '누들' 포스터에 적혀 있는 말이다. 영화에 나오는 대사인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주인공 미리의 마음을 이만큼 잘 나타낸 말도 없을 것 같다. 전쟁으로 남편을 두 번이나 잃은 미리에게중국인 아이가 맡겨진다. 그러나 아이 엄마는 불법체류자 단속에 걸려중국으로 강제추방되었다. 말도 통하지 않는 아이와 동거하게 되며 미리는 아이와 인간적 교감을 나눈다. 거기에는 둘 다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라는 공감대가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미리는 나이와 언어를 뛰어넘는 따스한 인간애를 보여주고,누들 또한 자신에게 사랑과 배려를 아끼지 않는 미리를 믿고 따른다. 너무나 거칠어진 세상이어선지 이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약자에 대한연민과 보살핌이 더욱 가슴 따스하게 다가온다. 미리와..

읽고본느낌 2008.09.08

지구

결혼기념일을 맞아 아내와 외식을 하고 영화 '지구'를 보았다. 아내는 '맘마미아'를 보고 싶어했으나, 나는 자연 다큐멘타리가 좋아서'지구'를 선택했다. 그러나 보고 나서는 입장이 반대로 바뀌었다. 영상을 어디서 많이 보았다 싶었는데, 이 영화는 BBC에서 촬영한'살아있는 지구'라는 제목의 DVD와 내용이 중복되었기때문이다. 차라리 '맘마미아'를 보았으면 더 좋았을텐데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큰 화면으로 보는 자연 다큐의 감동은 새로웠다. 화면은 지구를 북에서 남으로 훑어내려가며 웅장한 풍경과 다양한 동식물들을 보여준다. 특히 나이아가라 폭포와 남극의 오로라는 장관이었다. 그리고 생존을 위해 싸우는 동물들의 모습에서는 가슴이 아팠다. 배가 고파 바다코끼리를 공격하는 북극곰, 물을 찾아 이동하는 아프리..

읽고본느낌 2008.09.07

인간 없는 세상

에는 인류가사라진 후 지구에 어떤 변화가 생길지 예상한 연대기가 실려 있다. 이 책은 인간이 지구의 주인이 아니며, 그리고 언젠가는 인간 역시 사라질 운명이라는 것을 일깨워주고 있다. 만약 지금 이 순간 지구에서 인간만 사라진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인간이 생태계에 가한 압박이 없어지면 지구는 어떻게 반응할까? 확실한 것은 인간이 사라져도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세상은 잘 돌아갈 것으로 보인다. 인류의 멸종을 슬퍼할 종도 별로 없을 것 같다. 도리어 대부분의 생물 종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인간의 부재를 환영하지 않을까? 그리고 우리 문명의 구조물들도 오래지 않아 숲 속에 묻히게 될 것이다. 인간이 오염시킨 땅과 대기도 정화될 것이다. 몇 가지를 제외하고는 지구가 인간의 흔적을 지우는데 그리 오..

읽고본느낌 2008.09.03

Wall-E

영화 'Wall-E'를 보았다. 대부분의 SF 영화가 무자비한 살륙전을 벌이는 우주인과의전쟁터를 무대로 하는데, 이 'Wall-E'는따스하고 희망적인우주를 그리고 있다.인간에 의해서 지구가 황폐화되었지만, 사랑은 로봇에 의해 되살아나 지구는 다시 초록빛 행성으로 변한다. 영화는 두 로봇 'Wall-E'와 'Eve'의 가슴 따스한 사랑 이야기면서 문명 비판적인 메세지를 담고 있다. 'Wall-E'는 인간이 떠난 지구에남아 묵묵히 쓰레기를 치우는 일을 한다. 지구는 황폐화 되었고 온통 문명의 폐기물로 가득하다. 그런데 'Wall-E'는 사랑도 느낄 줄 아는 감성적인 로봇이다. 어느 날 하늘에서 내려온 하얀색의 귀여운 탐사 로봇 'Eve'와 마주친 순간 사랑에 빠진다. 'Eve'를 뒤쫓아 우주로 날아가는 'W..

읽고본느낌 2008.09.02

님은 먼 곳에

씨너스 이수에서 영화 '님은 먼 곳에'를 보았다. 경상도 종갓집 며느리인 순이(수애)는 손자를 바라는 시어머니 등살에 매달 군대 간 남편을 면회 간다. 그러나 애인이 따로 있는 남편은 순이를 무시하고 잠자리도 같이 하지 않는다. 어느 날 남편은 연락도 없이 베트남으로 떠나고, 순이는 어쩔 수 없이 시어머니 대신 베트남으로 가야하는 처지가 된다. 나중에는 기필코 남편을 찾겠다는 오기가 생겨군 위문단의 일원이 되어 베트남에 상륙한다. '써니'라는 예명을 가진 가수가 되어우여곡절을 겪으며 결국 전쟁터 한가운데서 남편을 만나는데... 이 영화는 관객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여러 가지로 해석이 가능한 영화다. 나는 이 영화를 통해 세상을 구원하는 여성성(女性性)을 읽었다. 영화는 ..

읽고본느낌 2008.07.26

포카라에서의 열흘

‘데자뷰’라는 현상이 있다. 처음 가본 곳인데 전에 와본 적이 있다고 느끼거나, 처음 하는 일인데 전에 똑같은 일을 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현상이다. 현대과학에서는 뇌의 이상으로 생긴다고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전생의 증거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어찌 되었든 아직은 해명하지 못한 뇌의 신비라 할 수 있다. 꼭 전생과 관계되었다고 할 수는 없더라도 우리는 생활하면서 특정의 장소나 사람에 대해 특별한 친근감을 갖는 경우가 있다. 첫눈에 반하는 것과 같은 돌발적인 호감과 끌림은 사실 논리적으로는 잘 설명되지 않는다. 그러면 전생에서부터의 인연이 있지 않았는가를 자연스럽게 상상하게 된다. 또한 전생을 믿지 않는 사람일지라도 인간이 이해하지 못하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신비에 감싸이게 된다. ‘포카라’라는 말을 들..

읽고본느낌 2008.0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