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872

동무와 연인

김영민 씨의 글을 읽으면 이름 그대로 영민함이 번뜩인다. 사물을 보는 관점이 신선하고 색다르다. 우리의 통속적인 관점을 가차 없이 또는 잔인할 정도로 조롱하고 가면을 벗긴다. 약간은 현학적인 냄새가 나기도 하지만 그의 글에는 사람을 끄는 매력이 있다. 이번에 이라는 책을 읽었다. 한겨레에 연재되었던 내용을 묶은 것이라고 한다. 역사상에서 주목할 만한 동무나 연인, 사제 관계를 통해 인간관계의 진실을 얘기한 책이다. 서문은 이렇다. ‘동무는 불가능한 것을 가리킨다. 가능하지만, 오직 타락했으므로, 닿을 수 없으므로 가능해지는 사연들을 일컬어 연인이라고 부른다. 가족을 버리지 않으면 스승을 따를 수 없었던 경험처럼, 스승, 혹은 그 지평으로서의 동무의 불가능성을 증명해주는 세속의 덕으로 우리 모두는 친구를 ..

읽고본느낌 2008.05.30

순교자

세종문화회관에서 연극 ‘순교자’를 관람했다. 아내가 공짜 티켓 두 장을 구해 와서 선택의 여지없이 보게 된 연극이었다. 2층에 좌석을 배정받았는데 관객이 없어서 연극 시작 전에 1층 앞줄로 내려와 가까이서 관람했다. 워낙 무거운 주제를 다루다보니 찾는 사람이 적은 것 같았다. 연극의 무대는 6.25 전쟁 당시의 평양이다. 유엔군의 북진으로 평양에 주둔하게 된 정보부의 이 대위는 공산당 치하에서 순교한 목사들 중 유일한 생존자인 신 목사의 비밀에 의문을 품게 되고 그 비밀을 파헤친다. 결국 죽은 목사들이 순교를 한 것이 아니라 비겁하게 생을 마감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나 신 목사는 그런 사실에 입을 다물고 순교한 목사들을 찬양하며 거짓말을 한다. 이 과정에서 신 목사의 인간적 고뇌가 토로되고, 관객들..

읽고본느낌 2008.05.21

삶을 이길 수는 없죠

'44 년이라는 긴 시간을 함께 한 부부 그랜트(고든 빈센트)와 피오나(줄리 크리스티)에게 뜻하지 않은 불행이 찾아온다. 아내 피오나가 알츠하이머 병에 걸린 것. 피오나는 자진해서 요양원에 입원하고, 그랜트는 어쩔 수 없이 그녀의 결정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기억을 잃은 피오나가 요양원에서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지게 되고 그랜트는 피오나에게서 잊혀진다. 그는 둘을 바라보며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신에 절망한다. 아무리 애써도 아내의 기억을 되살릴 수 없음을 알게된 그랜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마지막 일이 아내를 보내주는 것임을 깨닫게 되는데....' 미로스페이스에서 영화 'Away from Her'를 보았다. 70대의 노부부 사랑 이야기지만 영화를 보고난 느낌은 그리 간단하지 않았다. 이 영화는 산다는 것..

읽고본느낌 2008.04.02

무서록

H의 자리에 찾아갔더니 책상 위에 이있다. 몇 해 전에 가보았던 '수연산방'의원 주인이었던 상허(尙虛) 이태준(李泰俊)이 쓴 수필집이라고 한다. 아직 다 읽지도 않은 H의 양해를 얻고 책을 빌린 뒤이번 주말에 집에서 읽었다. 이태준의 는 한 번 읽어본 적이 있으나 그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별로 없다. 그것은 그가 월북작가이기 때문에 교과서에 소개가 되지 않아서 그렇다고 한다. 1930 년대에는 '상허의 산문, 지용의 운문'이라 할 정도로 그는 이름난 문장가였다고 소개되고 있다. 은 말 그대로 '두서없이 기록한 글'이라는 뜻이니, 지금 말로는 수필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감히 그의 글을 품평할 수는 없으나, 글이 담백하고 정갈하며 고전적인 아취를 풍긴다는 것은느낄 수가 있다. 다만 일말의 브루주아적인 고..

읽고본느낌 2008.03.31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동화 같은 꿈을 꾸는 사람을 만나면 반갑고 행복하다. 세상 물정 모르는 허황된 사람이라고 대중들로부터는 빈축을 사지만 그런 사람들의 꿈으로 인하여 세상은 맑아지고 환해진다. 러스킨이 쓴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를 읽은 뒤의 느낌도 이와 같았다. 마태오 복음서에는 포도밭 일꾼에 대한 비유가 나온다. 포도밭 주인은 하루 종일 일한 사람이나 늦게 와서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않은 사람이나 한 데나리온의 똑 같은 보수를 준다. 이런 처사는 일견 합리적이지도 공정하지도 않아 보인다. 그러나 예수님은 포도밭 주인의 이런 행동을 합당하다고 말씀하신다.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는 러스킨이 포도밭 비유에서 인용한 것인데, 노동자는 공평한 보수로 생존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이것은 능력과 경쟁이 최우선시..

읽고본느낌 2008.03.26

화성인과 금성인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를 읽었을 때, 아는 것 같으면서도 잘 모르거나 소홀히 하고 지냈던 남자와 여자의 차이에 대해서 새로운 인식을 할 수 있었다. 오래전에 읽어서 기억이 희미해졌지만 책의 내용 중에서 지금 기억나는 것은 화성인은 문제나 고민거리가 생겼을 때 자신만의 동굴로 숨어든다는 설명이었다. 반면에 금성인은 그런 화성인의 태도를 자신을 사랑하지 않거나 관심이 없다는 쪽으로 해석해서 자꾸만 동굴 밖으로 끌어내려 한다. 금성인은 수다나 남에게 하소연을 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려 하기 때문이다. 그런 차이가 남녀간에 오해와 갈등의 씨앗이 된다. 아무런 간섭도 받지 않는 동굴 속으로 숨으려는 화성인의 심리에 대해 정확히 지적한 책 내용에 무척 공감을 했다. 그 당시 동굴로의 도피는 나에게 심..

읽고본느낌 2008.03.13

소화의 사랑

동료들과 남도여행을 갔을 때 소설 의 무대인 벌교를 찾았다. 소설의 배경이 된 여러 장소들 중에 현부자네 집이 있었다. 벌교읍내와 중도벌판을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양지 바른 곳에 개인집으로서는 으리으리한 기와집을 재현해 놓았는데, 그 옆에 모두가 화장실로 착각한 초라한 집 한 채가 있었다. 나중에 그것이 소화의 집인 줄 알고는 모두가 실소를 했다. 을 읽은 동료들이 하나같이 소화와 정하섭의 사랑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소화라는 이름난 기억날 뿐그들의 사랑에 대해서는 떠오르는 게 없어 답답하기만 했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와 다시 을 꺼내 들었다. 동료들이 이념 대결보다는 사랑 이야기에 관심을 더 가졌 듯이 나 역시 이번에는 소화와 정하섭의 사랑, 그리고 쫄깃쫄깃한 겨울꼬막 맛이라는 외..

읽고본느낌 2008.03.01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이해와 오해 '이해'란 가장 잘한 오해이고, '오해'란 가장 적나라한 이해다. "너는 나를 이해하는구나"라는 말은 내가 원하는 내 모습으로 나를 잘 오해해준다는 뜻이며, "너는 나를 오해하는구나"라는 말은 내가 보여주지 않고자 했던 내 속을 어떻게 그렇게 꿰뚫어 보았느냐 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사랑과 신앙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큰 두 거짓말. 사랑이라는 단어와 신앙이라는 단어는 묵음으로 발음되어야 옳다. 허사(虛辭)로 통용되어야 맞다. 기의를 완전하고도 정밀하게 소외시키고 있는 이 기표들.시니피앙과 시니피에의 전혀 연관 없음. 사랑이라는 해묵은 단어는, 일찍이 그리스도 이후, 이천 년 전에 유명무실해졌다. 신앙이라는 오래도록 포르말린에 절여놓은 단어 역시 마찬가지다. 바람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폭풍 ..

읽고본느낌 2008.02.14

마지막 선물

무료한 겨울 오후, 아내가영화를 보러 가자고 했다. 딱히 보고 싶은 영화도 없었지만둘이서 집가까이 있는영화관으로 나갔다.상영되는 여러 편의 영화중에서 고른 것이 '마지막 선물'... '마지막 선물'은 눈물샘을 자극하는 가족 영화라 할 수 있다. 마치 안방에서 TV 드리마를 보는느낌이 들었다. 얘기의 전개나 설정에 작위성이 나타나지만 가족의 의미를 진지하게 생각하게 하는 영화였다. 늘 함께 있지만 그 소중함을 잊게 되는 가족, 그러나 결정적 순간에는 목숨까지 내어줄 수 있는 관계가 가족이다. 한 마디로 딸을 살리기 위한 두 아빠의 노력이 눈물겹다. 감정이 둔한 나도 몇 번인가 눈물이 주루룩 흘러 내렸다. 고등학교 친구 사이인 영우(허준호)와 태주(신현준)는 한 명은 경찰로, 한 명은 살인죄를 지은 무기수로..

읽고본느낌 2008.02.13

정의의 길로 비틀거리며 가다

세상에는 보통사람이 흉내내기 어려운 용기를 가진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 중의 하나가 ‘정의의 길로 비틀거리며 가다’를 쓴 리 호이나키다. 녹색평론사에서 최근에 나온 이 책을 읽으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하여 다시 새 빛을 보았고, 그리고 현재의 무기력한 내 모습이 그 빛에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서 부끄러웠다. 리 호이나키는 1928년에 미국에서 나서 학교교육을 마치고 1951년에 도미니크 수도회에 들어간다. 9년 동안 빈민촌에서 사목활동을 하다가 푸에르토리코로 갔고, 거기서 이반 일리치를 만나 평생의 벗이 되었다. 그 뒤 칠레와 멕시코에서 생태적 삶에 대한 연구 활동을 했다. 1967년에 미국으로 돌아와 결혼을 하고, 대학원에서 정치학 박사과정을 밟던 중, 베트남 전쟁으로 인한 미국의 제국주의 정..

읽고본느낌 2008.02.05

Fur

잘 나가는 패션잡지 사진사인 남편 '앨런'의 조수이자 헌신적인 가정주부로 살아가던 '디앤'은 평온하지만 왠지 갑갑한 일상을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아파트 윗층에 기이한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신비로운 남자 '라이오넬'이사를 오고 그에게 아찔한 호기심과 매력을 느끼게 된 '디앤'은 그를 만나기 위해 이웃들의 사진을 찍고 싶다는 핑계로 윗층을 찾게 된다. 차츰 '라이오넬'과 그의 기이한 친구들과도 가까워진 '디앤'은 한없이 다정하고 독특하며 예술적인 '라이오넬'에게 친구 이상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라이오넬' 역시 자신을 특별한 한 남자이자 인간으로 대하는 '디앤'을 열혼으로부터 사랑하게 되지만 그는 선천적인 특이함으로 인해 호흡곤란으로 죽어가고 있었다. 이런 사실을 모르는 '디앤..

읽고본느낌 2008.01.27

마음사전

사람을 지성적인 사람과 감성적인 사람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면난 지성적인 쪽에 속한다고 해야겠다. 이제껏 살아온 길이 그러했다. 감성은 애써 무시했고, 오직 이성만이 믿고 따를 만하다고 생각했다. 애초 감성이 발달하지도 않았지만, 안개처럼 피어오르는 감성의 감촉은 견디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나 자신이 점점 감성적인 사람으로 변해가는 것을 느낀다. 감성의 미묘한 촉감을 즐길 수도 있게 되었고, 불분명하긴 하지만 감성이 가리키는 길에서 빛을 찾을 수 있다는 믿음도 생긴다. 사람에게 존재하는 남성성과 여성성의 양면성이 바로 지성과 감성을 대표한다고도 할 수 있다. 하나는 얼음처럼 차갑고, 하나는 섬세하며 따스하다. 하나가 부성적이라면, 하나는 모성적이다. 지성이 산문이라면, 감성은 시다. 지..

읽고본느낌 2008.01.26

빼기의 진보

더글러스 러미스는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라는 책에서 '대항발전'(counter-development)이라는 개념을 사용했다. 대항발전은 20세기의 경제성장 이데올로기에 의문을 제기하고 새로운 삶의 이데올로기로 제시한 것이다. 경제는 무조건 성장해야 한다는 것이 일종의 확신으로 현대인들에게는 심어져 있다. 그것은 곧 발전을 뜻하고 인류가 풍요롭게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경제발전 이데올로기에 숨겨져 있는 폭력성이 야기하는 문제는 심각하다. 그뿐만 아니라 경제성장을 통해서는 절대로 빈곤을 해결할 수 없다. 발전하면 모두가 부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은 환상일 뿐이다. 대신에 환경과 인간성 파괴라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만 낳는다. 빈곤에는 네 종류가 있다. 첫 번..

읽고본느낌 2007.12.22

어거스트 러쉬

부원들과 같이 단성사에서 영화 '어거스트 러쉬'를 보았다. 가족애를 바탕에 깐 음악 영화인데 몇 장면에서는 눈물이 글썽거릴 정도로 감동적이었다. 끝나고 나니 미국 영화답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스토리 전개에서억지스러운 점이 보인 것, 그리고주제의 깊이가 보여지지 않은 것은 아쉬웠다. 어거스트 역을 맡은 주인공 소년의귀여운 연기도 좋았다. 음악의 천재인 그는 무엇이든지 두드리면 음악이 된다. 우리가 무심코 흘러 지나치는 소리에서 리듬을 발견하고음악으로 연결하는 재능은 무척 부러웠다. 음악이야말로 신의 목소리라고 한 말이 결코 과언이 아님을 실감했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음악이 아름답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실감했다. 어거스트 러쉬의 말, "음악은 항상 우리 곁에 있어요. 귀 기울기만 하면 되요."

읽고본느낌 2007.12.15

불안사전

현대를 읽는 키워드는 아무래도 '불안'이라고 할 수 있다. 미래에 대한 불안이 모든 사람들 무의식에 자리잡고 있어 작금의 우리나라 사회 현상의 원인은 여기서 찾을 수 있지 않나 싶다. 직장의 불안정은 심리적 불안정을 가져오고 그것은 국민의 집단적인 공포심으로 나타난다. 믿을 수 있는 것은 돈밖에 없다는 것을 사람들은 체험적으로 알게 되었다. 그래서 더욱 돈에 매달리고 현실주의자가 되어 간다. 낭만의 시대는 이제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멀리 사라졌다. '지식네트'에서 '불안사전'이라는 이름으로 말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수집하고 있다. 마치 예전의 '악마사전' 같은 신선한 발상이다. 같은 말이라도 시대에 따라 사람들이 느끼는 어감은 다르다. 불안사전에서 나오는 새로운 정의들을 보면서 이 시대 의식의 한 단편을..

읽고본느낌 2007.12.11

원스

신촌 메가박스에서 영화 '원스'를 보았다. 금년은 영화를 많이 보고 있다. 몇 년 가야 한 편의 영화를 보기도 힘들었는데, 올해는 벌써 여섯 편인가의 영화를 보았다. 원스는 음악 영화인데 전체적으로 잔잔하고 따스하다. 연인과의 이별이라는 아픈 과거를 가진 두 젊은 남녀가 만나고 좋아하고, 그리고 나중에는 각각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이야기가 소박하게 전개되고 있다. 특별한 스토리도 없고, 감동을 주는 장면도 별로 없는 어찌 보면 밋밋하기까지한 영화다. 영화가 끝나는 순간에는 깜짝 놀랐다. 이렇게 끝난단 말이야 하는 느낌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중에 생각해 보니 이 영화만의 매력이 분명히 있다.인생은 요란하기만 한 것이 아니다. 이 영화에서는 감미로운 음악과 함께 인생의 뭔가 쓸쓸한 면이 아름답게 그려져 있다..

읽고본느낌 2007.12.04

라비앙 로즈

최근에 음악을 소재로 한 영화 두 편을 보았다. 하나는 ‘카핑 베토벤[Copying Beethoven]’이었고, 다른 하나는 ‘라비앙 로즈[La Vie en Rose]'이었다. ‘카핑 베토벤’은 친구가 워낙 강력히 추천하여 보게 되었는데 기대가 컸던 탓이었는지 실망을 했고, 우연히 보게 된 ‘라비앙 로즈’에서는 의외의 감동을 받았다. 영화를 자주 보지 않으니 구체적으로 영화를 평가할 자격이 없지만, 앞의 영화는 인간의 내면 묘사나 스토리 전개 과정에서 뭔가 부족함이 느껴졌다. 비하여 ‘라비앙 로즈’는 한 인간에 대한 감동과 함께 탄탄한 짜임새가 있어 좋았다. 사실 에디트 삐아프라는 가수도 그녀의 노래에 대해서도 무지한 가운데서 영화를 보았는데, 파란만장한 그녀의 일생은 인간으로서의 연민과 공감을 불러일으..

읽고본느낌 2007.11.25

현대인을 위한 신 십계명

올해 인문서적 중 가장 인기를 끈 책이 리처드 도킨슨의 '만들어진 신'[The God Delusion]이다. 6만 부가 넘게 나갔으니까 인문학 서적으로서는 상당히 많이 판매된 셈이다. 이런 결과에는 아프카니스탄에서 인질 사태가 생기고 반기독교 정서가 팽배했던 시기와 겹쳐서 상승효과가 더해진 것으로 보인다. 도킨슨의 견해는 예상한 것보다도 훨씬 강력하며 반종교적이다. 그는 기본적으로 눈에 보이는 현상과 증거만을 믿고 따르는 자연과학자의 눈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다위니즘의 근본주의자 같은 그의 종교관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책 표제에 적혀있는 '누군가 망상에 시달리면 정신 이상이라고 한다. 다수가 망상에 시달리면 종교라고 한다.' 라는 말이 책의 내용을 잘 대변해주고 있다. 책 내용 중에 십계명이 당시의 시..

읽고본느낌 2007.11.22

보살예수(3)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 선과 그리스도교의 통로 불교와 그리스도교의 만남 종교는 시대와 환경에 따라 끊임없이 성장하고 변화하는 유기체와 같다. 우리는 흔히 종교를 명확한 교리나 사상체계, 그리고 뚜렷한 울타리를 지닌 공동체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으나, 사실상 종교는 그러한 고정된 정체성을 지닌 물체라기보다는 변하는 역사적 환경에 적응하면서 발전해가는 역동적 실재이다. 그런 역사적 변천 과정 속에서 현대에 당면하고 있는 새로운 사건이 불교와 그리스도교의 본격적인 만남이다. 서구 사상가들이나 그리스도교 신학자들은 불교를 단지 학문적 연구 대상이 아니라 깊은 공감적 이해를 바탕으로 진지한 종교적 대화의 상대로 관심을 갖는다. 불교 또한 마찬가지다. 그에 비하여 두 종교가 공존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이렇다 ..

읽고본느낌 2007.11.03

보살예수(2)

제 6강. 열반과 하느님나라 6-1. 현생 열반과 하느님나라 계, 정, 혜 삼학을 닦아 완전해진 인격이 도달하는 경지, 경험하는 세계 혹은 실재(reality)가 열반이다. 하느님나라가 그리스도교의 존재 이유이듯, 열반은 불교의 존재 이유이다. 열반은 탐(貪), 진(瞋), 치(痴)의 삼독(三毒)으로 대표되는 번뇌와 망상이 사라진 상태, 욕망의 불이 완전히 꺼진 상태, 즉 완전한 무욕과 평안의 상태를 가리킨다. 생사윤회의 과정이 더 이상 굴러가지 않도록 무지와 갈애와 업이 사라진 세계로서, 생사의 유전과 흐름이 완전히 정지될 때 실현되는 초월적 경지다. 고의 종식인 열반에는 유여의(有餘依) 열반, 무여의(無餘依) 열반 두 종류가 있다. 현세에서 몸을 가진 채 부처님이나 아라한이 증득하는 것이 유여의 열반(..

읽고본느낌 2007.10.25

보살예수(1)

길희성 님이 쓴 '보살예수'라는 책을 읽고 있다. 이 책은 3년 전에 있었던일요신학강좌에서 저자가 '불교와 그리스도교'라는 제목으로 한 강의 내용을 모은 것이다. 제목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거부감이 들 정도로 도발적이겠지만, 책의 내용은 불교와 그리스도교의만남을 주제로 하여 두 종교를 비교하며 공통되는 점이 무엇인지를 밝히고 있다. 나로서는 불교에 대해 다시 공부하게 되고, 좀더 넓은 시각으로 그리스도교를 바라보는 데에도도움이 되고 있다. 저자가 강조하는 대로 교리와 사상보다는 사랑과 자비가 우리를 구원하는 힘이라는 것을 다시 깨닫는다. 아래에 책의 내용을 요약, 정리해 본다. --------------------------------------------------------------------- 제 ..

읽고본느낌 2007.10.23

외면한 자의 부끄러움

'화려한 휴가'를 보았다. 영화의 몇 장면에서는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기 어려웠다. 당시 실제 상황은 영화의 묘사보다도 더 비참했다고 하니 할 말이 없다. 영문도 이유도 모른 채 죽고 다친 수많은 사람들의 고통을 생각하면 가슴이 저민다. 거대한 폭력 앞에서 그저 평범하게 살고 싶었던 작은 소망들은 산산히 부서진다.마음을 먹먹하게 하는 영화다. 1980년 그때에 내 나이는 스물여덟,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다. 보도로 접하는 광주의 모습이 사실인 줄만 알고 믿었던 여느 사람과 똑 같았다. 그 뒤로 광주의 실상을 전하는 사진전을 보고얘기도 들었지만 반신반의하며 애써 외면했다. 그저 남의 땅의 나와는 관계없는 일이었을 뿐이었다. 지금은 그것이 한없이 부끄럽다. 당시 작전에 투입되었던 군인들이 2만 명 가까..

읽고본느낌 2007.08.14

파피용

'파피용'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최신작 SF 소설이다. '개미'와 '타나토노트'를 통해 베르베르의 기발한 착상과 상상력에 감탄한 바 있기에 이 소설에 대한 기대가 컸다. 그러나 너무 컸었던 기대 탓일까, 앞에서와 같았던 신선한 충격을 받지는 못했다. 그래도 읽는 사람을 집중하게 만드는 힘이 있어 역시 베르베르의 이야기라는상찬을 받을 만한 내용이다. 천재 과학자 이브는 종말을 향해 치닫는 지구를 탈출하기 위해 대형 우주선 파피용을 건조한다. 크기는 길이가 32km, 지름이 500m인 원통형으로, 인공중력을 만들어 지구 환경을 재현한다. 그리고 144000명을 선발해서 2광년 떨어져 있는 미지의 행성을 향해 출발한다. 이 우주선의 추진력은 광자의 압력을 이용한 것으로 두 개의 거대한 돛이 달린 우주 범선이다..

읽고본느낌 2007.08.12

인간 폐지

C. S. 루이스의 책을 읽어 보고 싶었던 차에 동료의 책꽂이에서 ‘인간 폐지’를 발견하고 빌려 보았다. 이 책은 루이스가 1943년에 한 강연의 내용인데, 상대주의 문명을 비판하면서 교육이나 세상의 기초가 절대적인 가치 기준의 인정에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내가 ‘절대’라는 개념을 위험시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행해진 인간의 만행들이 늘 그런 이름으로 자행되었기 때문이다. 상대주의보다 더 위험한 것이 어떤 면에서는 절대주의이다. 특히 종교에서 ‘절대’라는 말이 붙으면 배타적이 되고 편협해진다. 진리독점주의의 폐해는 현재도 곳곳에서 관찰할 수 있다. 지금 분당에 있는 한 교회에서 아프가니스탄에 파견한 봉사 단체가 탈레반에게 납치되어 나라가 시끄럽다. 개신교의 공격적인 선교 방식은 문제가 있는 것..

읽고본느낌 2007.07.24

콘스탄티누스의 비극

시오노 나나미가 쓴 ‘로마인 이야기’ 13권은 콘스탄티누스 황제 이야기다. 기독교 역사뿐만 아니라 세계사적으로도 콘스탄티누스 시대는 무척 중요한데, 이 시기에 밀라노 칙령으로 기독교가 공인되고 니케아 공의회로 지금과 같은 기독교의 틀이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콘스탄티누스 개인의 역할이 지대했음은 물론이다. 그래서 기독교에서는 콘스탄티누스를 은인으로 여기며 12사도 다음의 성인으로 대하기도 한다. 그러나 책을 읽으며 콘스탄티누스 개인에 대해서는 다른 황제들과 마찬가지로 권력욕에 사로잡힌 잔인한 측면이 많았음을 알게 되었다. 아마 그렇지 못했다면 대제국의 황제 노릇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었을 것이다. 위인이라는 인물들의 행태가 대부분 다 그러했지만 말이다. 콘스탄티누스는 자신이 황제가 되기 위해서..

읽고본느낌 2007.07.02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는 김혜자 님이 쓴 책제목이다. 책을 읽어보지 않았는데도 책제목이 인상적이어서 가끔씩 이 말이 떠오르곤 한다. 그리고 나에게는 이 말이 폭력의 충동을 억제시켜 주는 긍정적인 작용을 한다. 원래 이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는 서양의 어느 교육철학자가 쓴 책제목인데, 그걸 김혜자 님이 인용한 것으로 알고 있다. 교육 방법이 많이 개선되기는 했지만 아직도 일선 학교에서는 사랑의 매라는 이름으로 폭력적 방법이 사용되고 있다. 아이들을 지도할 때 매가 필요하냐 아니냐는 지금도 논란거리이고 각 나라마다 사정이 각기 다르다. 그리고 학교만 따로 떼어놓고 볼 수도 없다. 부모에 의한 가정폭력, 그리고 사회폭력이 존재하는 한 학교에서의 교사에 의한 체벌만 논의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그렇더라도..

읽고본느낌 2007.06.22

후흑론(厚黑論)

책을 좋아하는 탓인지 나는 책선물을 받는 것이 가장 좋다. 그리고 내가 선물을 할 때도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책을 주로 한다. 그만큼 책이 주고받기에 무난하기도 하고 누구나 부담 없이 좋아할 수 있는 선물이다. 받는 사람의 취향을 고려해서 책을 골라야겠지만 그 과정도 다른 물건에 비하여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책선물은 다른 것에 비해 기억에도 오래 남는다. 수십 년 전에 받았건만 책장에 꽂혀있는 그 책을 보면 그 사람과 그때의 정황이 선명히 떠오른다. 아마 다른 사람들도 내가 준 책을 보관하고 있다면 가끔씩 나를 기억해낼 것이다. 내가 선물 받은 책 중에 특이한 경우가 있었다. K가 생뚱맞게도 '마키야벨리'를 선물한 것이다. K는 나를 처음 만났을 때 그렇게 해서 어떻게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

읽고본느낌 2007.06.18

내 안에 나무 이야기

서울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이상벽 님의 사진전 '내 안에 나무 이야기'에 다녀왔다. 우선 TV를 통하여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이상벽이라는 사람이 사진전을 열었다는 것에 대한 호기심과, 그리고 사진전의 소재가 내 관심 분야인 나무에 대한 것이라서 더욱 기대가 컸다. 방송에서 여러 프로그램의 진행자로만 알고 있던 분이 갑자기 사진전을 열었다고 하니 처음에는 무척 놀랐다. 참 재주가 많은 분이구나 싶기도 했지만, 2년 남짓 되는 기간 동안 아무리 열심히 찍는다고 한들 과연 전시회를 할 정도의 작품 수준이 나올까 하는 의구심도 있었다. 그러나 알고보니 님은 예전에 사진을 부전공으로 하고 늘 사진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그런 탄탄한 바탕에서 이번과 같은 좋은 전시회가 열리지 않았나 싶다. 노력 없이 하루 아침에 ..

읽고본느낌 2007.06.14

현의 노래, 칼의 노래

김훈의 소설 '현의 노래'와 '칼의 노래'를 읽었다. 미려한 문체로 소문난김훈의 글을 그동안은접하지를 못했는데, 이는 김훈에 대한 선입견도 한 원인이었다. 그분의 인터뷰를 기사나 TV로 보았을 때 지나치다 싶은 솔직성과 현실주의가 왠지 거리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세상을 해석하는 그분의 견해가 옳다고 느껴지는 일면이 있지만 나에게는 부담이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번에 두 소설을 읽어보면서 김훈 특유의 글맛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바탕에 깔린 사상이랄까, 작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도공감되는 바가 많았다. 그것을 어떤 사람은 탐미적 허무주의라고 부르는 것 같은데, 삶의 비극이랄까 눈물겨움 같은 것, 개인이 감당해야 하는 삶의 애상이 두 편의 소설에 공통적으로 녹아 있었다.낭만과 서정의 포장을..

읽고본느낌 2007.06.12

밀양

중앙시네마에서 영화 ‘밀양’을 보았다. ‘밀양’은 올해 칸 영화제에서 전도연이 여우주연상을 받은 작품이다. 그만큼 화제작인데다 인간의 고통과 구원에 대한 메시지가 들어있다고 해서 관심이 컸다. 그런데 왠 일, 300석 가까운 좌석에 고작 10여명이 앉아서 영화를 보았다. 아무리 이른 저녁 시간이지만 텅 빈 좌석이 너무 쓸쓸했다. ‘밀양’은 고통과 용서라는 무거운 주제를 그런대로 잘 소화해 낸 작품이었다. 직접적으로는 한 인간에게 가해진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의 무게에 가슴 아팠고, 더 나아가서는 고통을 대하는 종교와 종교인들의 태도와 한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만들었다. 전도연이 분한 신애는 극한의 고통에 몰리고 결국 신앙에서 도피처를 찾는다. 그러나 유괴범을 면회 갔을 때 유괴범이 천연덕스럽게 하나님으..

읽고본느낌 2007.06.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