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좋은 친구

샌. 2004. 2. 10. 10:52

어제 저녁 인사동에 친구를 만나러 나간 길에 선(選)화랑에서 열리고 있는 <매그넘> 사진 전시회에 들렀다.

※ 매그넘 Magnum; 50여명으로 이루어진 세계 최고의 보도사진 작가 그룹. 한 장의 사진으로 `이것이 바로 현실`이라는 사실을 인류에게 일깨워주고 있다.

전쟁 고발, 문명 비판이 주조를 이루고,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도 밝은 면보다는 억압받고 고난에 찬 내용으로 많이 그려지고 있었다.

주제가 묵직해서 여러 가지로 깊은 생각에 젖게 되었고, 서구 문명의 팽창이나 경제 성장의 이면에 숨어 있는 삶의 또 다른 모습을 되돌아보게 되는 좋은 전시회였다.

그런데 어제 만난 친구는 나에게는 특별하면서 참 좋은친구이다. 만난지는 3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얘기를 나누면 많은 부분에서 서로 공감을 하게 되고 또한 격려를 받는다.
환경 단체에서 일하고 있는 여친인데 보통 이성 친구는 여러 번 만나다 보면 생물적 욕망이 생기고 감정의 혼란을 겪기도 하지만 이 친구는 전혀 그렇지 않고 마치 동성처럼 거리낌없고 편안하다.

좋은 친구란 무엇일까?

일본 진종불교(眞宗佛敎)의 승려였던 키요자와 만시가 쓴 `참된 친구`라는 에세이가 있다.
거기에서 그는 네 가지 조건을 제시했는데 그 첫째가 참된 친구 관계는 그 바탕을 종교에 두어야 한다고 했다. `자아를 초월한 자(The Power beyond Self)`에 대한 통찰을 함께 나누어야만 참된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특정 종교를 같이 신앙해야 된다는 편협한 사고는 물론 아니고, 내 식으로 말한다면같은 진동수에 공명하는 영혼의 떨림이라고 해석하고 싶다. 굳이 종교인이 되어야 할 필요도 없다.
여러 종류의 소리굽쇠를 놓고 하나를 울리면많은 중에서 같은 진동수 특징을 지니는 소리굽쇠만이 진동하게 된다. 이 현상을 공명이라고 하는데 사람 사이에도 같은 영혼의 떨림을 공유하게 되는 관계가 있을 것이다.
이런 사이야 말로 키요자와가 말한 참된 친구의 조건이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사랑이란 함께 있는 것이 아니라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이라고 했다.
이 말도 비슷한 의미일 것인데 부부 사이에도 단순한 외피적 삶의 동반자가 아니라 이런 참된 친구가 될 수 있다면 그 가정은 늘생기로 넘쳐날 것이다.

물론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사이는 여러 가지가 있으리라.
술 친구, 수다 친구, 고향 친구, 학교 친구.... 보통 사람들은 공유하는 무엇이 있을 경우 친구가 된다. 또는 한 번도 만나지 않고도 친구가 될 수도 있다.
그런 친구가 불가능하지는 않겠지만, 그러나 참된 친구 관계는 무엇보다 서로 영혼의 공명을 느끼는 사이에서 성립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서로 마음이 통한다는 의미 이상이다. 그것은 속알끼리의 부딪침이며 깨어남이다.
그들은 위대한 도(道)에 함께 머물며함께 자라날 것이다.

이런 친구 한 명만 있다면 어떤 험한 세파라도 큰 장애가 되지는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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