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다시 꿈꾸기

샌. 2012. 3. 21. 07:20

여기로 이사 오면서사오년 정도는 살 예정이었다. 도시와 산골의 중간 단계에 필요한 휴식 시기로 생각했다. 그런데 일 년도 지나지 않아 자꾸 탈출을 생각하게 된다. 다시 전원병(田園病)이 도진 것이다. 내 컴퓨터 즐겨찾기에는 전원과 시골살이에 관련된 사이트가 수십 개 등록되어 있다. 아내는 전에 뜨거운 맛을 봤으면 됐지 또 혼나려고 하느냐며 걱정이 크다.

내 앞에는 네 갈래의 길이 있다.

첫째, 조용한 시골 마을에 터를 구해 조그만 흙집을 직접 짓는다. 터는 동네에서 떨어진 곳에, 넓이는 200평 내외면 좋겠다. 위치는 이곳에서 1시간 정도면 닿을 수 있어야 한다. 충청북도쯤이 적당할 것 같다. 가까울수록 좋지만 경기도는 땅값이 너무 비싸다. 집은 10평 정도면 된다. 방은 반드시 온돌이어야 한다. 이미 흙집 짓는 법을 가르치는 학교까지 알아두었다. 그렇게 되면 두 곳을 왔다갔다하며 생활할 수 있다. 나중에는 그곳에 완전히 정착할 수도 있다. 문제는 내 마음에 드는 땅을 만날 수 있느냐의 여부다.

둘째, 이곳을 떠나 근교에 있는 전원주택 단지로 들어가는 방법이 있다. 도시와 시골 생활을 안전하게 절충한 것이다. 내 철학에는 맞지 않지만, 아내와 가족이 있으니 어쩔 수 없는 타협책이다. 양평에서 분양되고 있는 예쁜 전원주택 단지가 하나 있다. 이곳을 지금 관심 있게 지켜보는 중이다.

셋째, 고향에서 어머니의 농사일을 도우며 지내는 길이다. 고향에는 집도 있고 텃밭도 있으니 마음만 먹으면 간단하게 시골살이를 할 수 있다. 지금 당장 내려갈 수도 있다. 그러나 아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번거롭게 살기가 싫다. 나는 어느 정도 독립적인 생활 방식을 원한다. 만약 거기서 내 스타일로 살다가 동네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면 그보다 더 괴로운 일은 없다.가장 바람직하지만 가장 꺼려지는 길이다.

넷째, 그냥 이대로 살게 될 수도 있다. 이도 저도 안 된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여기도 소음만 참을 수 있다면 그런대로 살기는 괜찮은 동네다.

10여 년 전에 여주에 땅을 사고 집을 지어 꿈에 부푼 삶을 살았던 적이 있다. 결과는 참담한 실패로 끝났다. 다시 떠올리기도 싫다. 그때처럼 열정에 휩싸여 일을 저지르고 싶지는 않다. 이제는 위의 네 길 중 어느 길을 가더라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지금 바라는 건 첫번째 길이지만 인연이 없다면 안 되는 일이다. 기대를 품고 바라면서 단지 기다릴 뿐이다.

가장 바라는 바는 산골로 은둔하는 것이다. 세상과 관계를 정리하고 몰래 숨고 싶다. 그러나 성급히 서둘 일이 아니다. 이것이 과거로부터 배운 경험이다. 첫번째 정도라면 나로서는 상당히 온건하고 무난한 선택이다. 좋은 인연을 만난다면 좋겠다. 느긋하게 기다려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