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펌] 전원생활 선배의 충고

샌. 2012. 3. 12. 14:29

첫째, 전원주택을투기의 대상으로 삼지마라!

전원생활이란? 나와 내 가족의 삶에 윤기를 나게 하는 생활, 나와 내 가족의 삶에 여유를 가져다주는 생활, 나와 나의 가족을 건강하게 만드는 생활. 곧 요즘 유행하고 있는 웰빙이다. 웰빙이란 ? 건강하고, 안락하고, 만족한 인생을 살자는 의미란다. 행복, 안녕, 복지 등의 삶의 질을 강조하는 용어로서, 물질적 가치나 명예를 얻기 위해 달려가는 삶보다는 신체와 정신이 건강한 삶을 행복의 척도로 삼는 것이다.

이 용어는 어쩌면 전원생활하고 딱 맞아 떨어지는 용어다. 그래서 나와 나의 가족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또 유지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거기에서 우리는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아주 커다란 행복을 덤으로 얻게 될 것이다. 그러니 건강한 생활을 영위하면서 거기에 투자의 의미도 찾을 수 있다면 일석이조(一石二鳥)가 아닌가?

6개월만 살아보라. 본인들은 잘 모르지만 보는 이들로 하여금 인사말을 자주 듣게 된다. 얼굴이 좋아 졌다던가. 건강해 보인다는 말들을 많이 듣게 된다. 전원생활을 하는 사람들 중에는 담배를 끊는 이들을 자주 본다. 필자도 어릴 때 배운 담배를 끊은 지 오래지만....이 맑은 공기를 마시며 사는 사람이 어떻게 내 몸이 더러워지고 또 대기도 더럽히는 담배연기를 내뿜을 수 있단 말인가?

필자는 한 달이면 몇 번씩 서울로 볼일을 보러 가는 일이 자주 있다. 그러나 그 시간을 두 시간 정도로 정해 놓았다. 그것은 서울에 가서 그 이상은 버티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눈이 찝찝해지고, 코가 막히며, 심지어는 마구 짜증까지 난다. 도시의 길을 걸으면서, 운전을 하면서도 매연의 숨 막힐 것 같은 내음을 맡을 수 있을 정도로 이젠 시골 공기에 푹 빠져 버렸나 보다. 그러나 도시에서의 지친 몸도 전원으로 돌아오면 또 다시 생기가 나는 것은 웬일일까?

아주 오래 전 서울 살 때 일이다. 시골의 친지 어른께서 방문하셨는데 삼 일도채 되지 않았는데 “난 도저히 숨을 쉴 수가 없어 내려가야겠다.”고 하신다. 그때만 해도 왜 그러시는지를 몰랐다. 그러나 이젠 실감이 난다. 전원생활을 하는 분들 중에는 몸이 불편한 분들이 많다. 처음엔 옆에서 보기 안쓰러울 정도로 보이던 그 분들의 건강이 점점 좋아지는 걸 직접 우리 눈으로 보는 경우가 많이 있다. 그만큼 맑은 공기가 얼마나 우리 몸에 좋은가를 새삼 느끼게 하는 일면이다.

내친 김에 우스개 소리를 한마디 해야겠다. 필자는 잘 안되는 게 한 가지 있다. 그것은 술을 끊을 수가 없다는 거다. 그 끊기 어렵다는 담배도 끊었는데 말이다. 허기야 끊으려고 하는 노력도 해 보지 않았지만. 자연 속에 파묻혀 자연과 같이 숨을 쉬고 있노라면 술 생각이 난다. 그 자연을 안주삼아 마시는 몇 잔의 술맛이란 마셔본 사람들만이 아는 특별한 체험 일게다. 이런 얘기하니까 꼭 주태백이 같이 생각하시는 것 같아 은근히 걱정이 되지만 독자들은 너무 걱정하실 건 없다. 도시에서 마시던 주량보다 조금 과해도 술이 깨는 속도는 도시의 그것과는 완연히 다르다. 술이 빨리 깬다는 말이다.

가끔 야유회를 가서 술을 드셔 본 사람이라면 충분히 이해가 되리라. 이것도 우리는 잘 느끼지 못하지만 공기의 고마움일 게다. 그래서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이 오면 술이 안 취한다는 말을 자주 한다. 마당에 모여 서서 삼겹살에 상추, 케일로 쌈을 싸고, 쑥갓과 마늘, 풋고추를 곁들여 입이 찢어지게 벌리고 먹는 맛이란?!!! 아! 여기에 어찌 술이 없을 소냐! 그러나 이것을 쓰면서 이젠 술도 더 줄여야겠다고 마음을 도사린다. 이 좋은 세상을 끝마칠 때까지 건강하게 살고 싶은 마음뿐이기에. 오래 못살면 어떤가? 건강하게 여생을 보낼 수 있다면 최고의 행복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전원생활을 하면 자연스레 생기는 좋은 버릇 하나가 있다. 도시에선 그렇게도 안 되던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기”가 저절로 된다는 말이다. 거리관계상 아침은 더 부지런해야 되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먼동이 트기도 전부터 움직이는 농사일하는 분들을 자주 접하다 보면 자연히 일찍 일어나게 되고 그러니 일찍 자게 될 수밖에 없다. 일찍 일어나 텃밭을 손질하는 일이나 새벽에 뒷동산에 올라 약수 한 컵을 마시는 일. 이런 추억들은 죽을 때 까지는 잊을 수 없는 시간들이 될 것이다.

얘기가 조금 다른 방향으로 흐른 것 같은데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 이렇게 삶의 질만 가지고 따지다 보니 전원주택은 전혀 투자가치가 없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 농지를 사서 전원주택을 짓는 그 자체만으로도 투자가치는 급상승된다. 우리가 구입하는 토지는 대체적으로 농지나 임지일 경우가 많은데, 이런 토지들은 지목이 대지인 땅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가격이 많이 저렴하다.

그러므로 이 땅에 전원주택을 건축하게 되면 농지나 임지가 대지화(垈地化)된다는 점을 염두에 두시기 바란다. 다른 것은 다 차치하고 이것 자체만으로도 재산의 증식 효과를 가지고 오지 않았는가!더군다나 손해 볼 이유는 하나도 없다. 이렇게 건강을 위한 투자와 재산의 증식을 환하게 보여주는 투자라면 확실한 투자가 아니겠는가! 그러나 서두에서도 말씀드렸듯이 투기를 목적으로 한다면 전원주택을 선택하시는 것은 삼가시는 편이 좋을 것이다.

둘째, 집도 너무 크면 짐이다.

“우와! 저 집은 식구가 많은 집인가 보다!“ ”저렇게 큰 집을 짓는걸 보면.“ 이곳저곳을 다니다 보면 필자의 생각으로는 집이 너무 크다는 생각이 들만큼 규모가 큰 집을 짓는 것을 흔히 본다. 온 식구가 다 와서 살 것처럼 1층, 2층에 60평 정도를 짓는 분들을 자주 보게 되는데 단독주택의 경우는 아파트와 달라서 거의가 전용 면적이란 걸 잊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아파트 80평형 정도를 상상해 보시라! 얼마나 큰지! 커도 너무 크다! 전원에서는 더욱 더 그렇다. 대개의 경우 두 식구가 사는 것이 보편적일 경우가 많다.

전원에서 오래 살다 보니 집을 크게 계획한 것에 대해서는 이해가 간다. 처음에는 같이 오겠다던 큰 아들네가 슬그머니 아이들 교육을 핑계 삼아 꽁무니를 빼고 안 따라왔고, 둘짼 애시 당초 그냥 콘도로만 쓸 생각이었으니까. 결국엔 아들, 손자, 며느리는 다 안 오고 늙은 노친네들만 내려왔기 때문인 경우도 있고, 건축을 하는데 건폐율이나 용적률을 맞추다보니 어쩔 수 없이 면적이 늘어난 경우도 있다.

그런데 처음엔 자주 찾아오던 친지들이랑 친척들의 발걸음도 전원생활 1년쯤 지나면 뜸해 지고 마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러니 그 큰집엔 머리 허연 두 양주(兩主)만 덩그렇게 남는다. 이렇게 될 줄을 누가 알았으랴! 그래서 그런지 벽에는 커다란 거북이 껍데기도 와서 살고 있고, 또 호랑이 가죽도, 커다란 어항에는 눈이 툭 불거진 붕어 몇 마리도지느러미를 흔들며 이리 저리 왔다 갔다 한다. 심지어는 청둥오리의 박재까지도 같이 사는 것을 많이 본다.

그래도 쓸쓸할 것 같은 노인네들을 달래려고 멍멍이 몇 마리가 털을 휘날리며 노인네들 발에 채이면서까지 자식 노릇을 대신하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달팽이의 집'을 한번 생각해 보기로 하자! 달팽이의 집(껍데기)이 달팽이 알맹이보다 많이 크다고 가정해 보자. 먹이를 찾으려 움직이기도 버거울뿐더러 다른 놈들이 들어와 실례도 하고, 하물며 어떤 놈은 거기다 둥지를 트는 놈도 있지 않겠는가?? 그러니 그 달팽이한테는 지금의 그 집이 꼭 맞는 집이다.

이렇게 하찮은 미물마저도 과욕은 부리지 않거늘......... 우리도 달팽이의 지혜를 배워야 한다. 식구들이 많은 가족이라면 몰라도 집은 너무 커서는 안 된다는 말을 몇 번이고 강조하고 싶다. 그 많은 일을 누가 감당 하겠는가? 며칠만 그냥 두어 보라! 집 꼴이 어떻게 되는가를! 실내는 실내대로, 밖은 밖대로 엉망진창이 되고 만다. 잔디는 수북하게 자라있고, 잡초는 잔디보다 더 잘 자란다. 2층엔 언제 올라갔는지 먼지만 쾌쾌히 쌓여 있어 청소할 엄두조차 나지 않는다. 겨울 난방비는 왜 이리 많이 드는지! 난방을 안 하면 배관들이 얼어 터질까봐 안 넣을 수도 없다. 아! 아! 너무 큰집이 원망스럽다.

셋째, 텃밭도 30평 정도면 충분하다.

전문 영농인도 아닌 도시민들은 전원생활을 하려고 계획을 세울 때부터 텃밭에 대해 더러 욕심을 내는 분이 있다. 도시민들의 전원생활에선 영농을 한다 해도 키우기 쉬운 밭작물이 대부분인데, 막 이주해 온 전원생활의 초보자들은 텃밭에 대한 욕심이 처음부터 대단해서 제법 큰 면적을 경작하려고 시도하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그 영농이라는 것이 그리 호락호락하지가 않다. 힘이 드는 노동이라는 건 물론이고 농사에 숙달된 농민들처럼 시간 맞추어 씨 뿌리고, 약도 주고, 잡초도 뽑고, 거름도 주고, 잎도 쳐주고 하는 등의 일들을 잘 알지도 못하려니와 안다고 해도 때맞추어 다 해낼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필자의 경험도 이와 다를 게 없다. 첫해엔 100평 정도를 고집하던 텃밭을 다음해엔 반(半)으로 줄이고 그 다음해엔 더 줄여야 했다. 도저히 해 낼 수가 없었다는 것이 솔직한 고백이다. 그렇게 시행착오를 거듭하다보니 필자의 힘으로는 30평 정도가 적당하다는 걸 알았다. 이것도 영농(?)을 시작한지 3년 정도가 흐른 뒤에야 얻을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봄에는 상추, 숫갓, 케일, 고추, 가지, 부추........등의 채소들을 심지만 이것들이 자라나서 먹을 수 있을 때가 되면 한꺼번에 크기 때문에 결국엔 다른 사람들이나 동기간들에게 처분을 부탁하는 수밖에 없다. 물론 그것도 흐뭇한 보람이라고 생각하지만, 다 뽑아 간 텅 빈 밭을 보면서 “무엇 하러 욕심을 냈는가?”를 후회한 적이 몇 번이나 있다. 그러면서도 다음 해가 되면 또 다시 마음은 변하고 만다. 힘만 닿는다면 많이 심어서 알고 지내는 친지들한테 골고루 다 나누어 주고 싶을 정도로 마음이 풍부해 지는 것이 전원에 사는 사람들의 풍요로울 수밖에 없는 마음일 게다.

넷째, 남이 만든 집이 나에게 잘 맞을 리 없다!

이것은 남의 옷이 나에게 안 맞는 이치와 다를 게 없다. 그 분들은 그 분들의 칫수에 맞는 집을 지었을 테니까. 그렇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지역에서 남이 지어 놓은 전원주택을 고르기는 많은 인내를 요구한다. 전원주택이 많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매물의 숫자가 많지 않고 개인 건축업자(일반 집장사)가 지은 집은 믿을 수 없다는 이유 때문에 대개는 주인이 직접 살려고 지었다가 피치 못할 사정으로 다시 이주하는 분들의 집을 고르는 것이 좋은 방법이긴 한데, 그런 집을 찾는 것도 쉽지 않고 매물자체도 많지 않다는 것이 흠이다.

전에도 말했듯이 그런 집이 있다 손 치더라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전원주택을 구입할 때는 아파트를 구입할 때와는 많이 달라서 식구 수에 맞춰서 평형을 고르고, 구조를 선별하는 문제만 해결하면 되는 것이 아니다. 집의 구조뿐 아니라 외관도 천태만상이란 점을 염두에 두셔야 한다. 건축주의 가족의 수나, 취미 등으로 주택의 외모는 물론이고, 실내 구조가 각양각색이다.

구조적으로 보면, 너무나 부부 중심적으로 지어서 다른 식구들과는 생활하기가 어려운집. 식구는 적은데 쓸데도 없는 방의 숫자만 많은 집. 다른 구조는 다 조그마한데 거실만 너무 큰집. 땅의 넓이 보다 집만 덩그렇게 큰 집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다. 하여튼 같은 건 하나도 없다. 나와는 동 떨어진 그런 집들이 많다는 거다. 구조는 그렇다 손 치더라도 인테리어는 더욱더 나와는 이질감이 나는 그런 집들이 많다. 결국 이런 연유로 전원주택을 내 집으로 맞이하기 위해선 나에게 맞게 새로 집을 짓지 않으면 안 되는 경우가 많다.

다섯째,전원주택을 싸게 지을 수 있는 땅은 어떤 땅인가?

우선 전원주택을 지을 땅을 말하기 전에 전원주택을 마련하는 방법부터 집고 넘어가기로 하자. 그 방법을 대별하면 땅을 사서 짓는 방법과 지어 놓은 주택을 구입하는 방법으로 양분할 수 있겠다. 요즘 같으면 전원주택 부지를 전문으로 개발하여 분양하는 전문 업체에서 구입하여 짓는 방법도 있고, 또 완전히 지어 놓은 업체의 전원주택을 구입 할 수도 있다. 물론 개인들이 지어 놓은 집을 바로 구입 할 수도 있다. 농지(관리지역)를 사서 허가절차를 거쳐서 집을 짓는 방법도 있고, 다 쓸어져 가는 옛날 집을 사서 리모델링해서 사는 방법도 있고, 농업용 창고나 심지어 축사를 개조하여 사용하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전원주택을 싸게 지을 수 있는 방법 중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것은 농지나 임지(林地)를 구입하여 전원주택을 건축하는 방법이 제일 보편화된 방법이라 할 수 있는데, 농지나 임지는 다른 토지에 비해 값이 싸다는 장점 대신에 땅의 규모가 너무 크거나 모든 인허가의 번거로움을 감내할 수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고생한 만큼 금전적인 면에선 이익을 볼 수 있지만 어쩌면 많은 인내를 감수해야 한다는 각오를 새롭게 해야 할 것이다.

만약 농지를 구입할 때에는 논보다는 밭을 사는 게 유리하다. 논은 대부분 낮은 곳이나 평지에 위치하고 있어, 집을 지으려면 성토(盛土)작업을 수반해야 하기 때문이다.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뒤편으론 인접한 야산이 있는 곳이라면 최적이다. 그리고 여기에도 조심하고 명심해야할 부분이 있다. 전원주택을 지을 부지를 조금 싸게 구입했다고 해서 전원주택 자체를 싸게 구입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 구입한 땅에 건축을 시작 할 때까지 들어갈 돈이 얼마인가를 잘 따져 보지 않으면 안 된다. 어떤 땅들은 절토를, 성토를, 축대를, 옹벽 등을 설치해야 할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때 들어가는 토목공사비가 만만치 않다. 이런 돈들이 추가로 들어가는 땅이라면 조금 비싸더라도 애초에 그런 비용이 덜 들어가는 땅으로 선택하는 편이 훨씬 나을 수 있다.

여섯째, 동호인 주택이 어려운 까닭은?

필자의 업소엔 만 8년이 넘는 세월동안 수없이 많은 분들이 동호인주택을 지을 목적으로 방문했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필자는 동호인 주택을 짓는 팀을 볼 수가 없었다. 마음 맞는 친구들, 학교 동창들, 동문들, 직업이 같은 분들, 직장이 같은 분들, 형제, 자매들, 친목회 회원들 등등 마음이 맞는 사람들 끼리, 취미가 맞는 사람들 끼리, 지금도 이웃에서 같이 살지만, 전원으로 가서도 같이 살자고 모인 이웃들.

참으로 많은 분들이 동호인 주택을 짓겠다고 찾아 왔었는데 지금까지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라도 동호인 주택을 지었다는 소문을 들어 보기가 힘들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여러 사람들이 모이면 배가 산으로 올라간다고 했잖은가? 입지 선정에서부터 티격, 태격이다. 같이 모이긴 했어도 성격들은 백인백색(百人百色)이기 때문에 쉽게 의견의 통일을 가져 올 수도 없다. 그리고 여러 사람들의 자금사정도 모두가 다 다를 수 밖에 없다. 이렇게 공동으로 추진하는 사업은 일관성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추진력 있고, 실력 있는 사람이 이 모든 일들을 기획하고, 추진해야 되는데, 전문능력을 가진 사람도 없거니와 시간적으로 많은 여유를 가진 사람들은 더욱 없기 때문이다. 처음엔 여러 가지 토지의 규제 때문에, 산림의 형질변경이나 농지의 전용허가가 까다로워서, 모든 일(허가, 건축 등)을 같이 시작해야하는 번거로움이, 결국은 포기 하게 하는 줄로만 생각했었다. 물론 그런 것들도 동호인 주택이 어려운 까닭 중에 하나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그런 것들 보다도 더 중요한 문제는 아주 간단한 곳에 있었다. 어렵게 입지선정까지 마치고 부지의 계약을 앞둔 시점에서 벌어진다. 시골에서 주택을 지을 때는 앞서 말씀드린바와 같이 산림은 형질변경을, 농지는 전용허가(개발행위허가)를 득하여야 하는데, 이 땅들의 면적이 들쑥날쑥 고르지 못하다보니 큰 것은 잘라야 하고, 작은 것은 붙여야 하기도 하고, 부지의 높고 낮음이 다르므로 위, 아래로 또는 옆으로 필지가 나누어지게 되어서 이런 작업을 하는 자체도 어렵거니와, 억지로 작업이 끝날 시점이면, 누가 보아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좋은 필지와 나쁜 필지로 구분되게 마련이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렇게 친하던, 죽을 때 까지 같이 살자고, 옹기종기 모여서 천년만년 살자고 해놓고 이 문제에 봉착하면 누구라도 일보의 양보가 없는 것이 우리 민족의 속성인가 보다. 돈 많은 친구는 돈 많은 친구대로 좋은 부지를 갖고 싶어 하고, 돈 없는 친구는 오기로라도 안 빼앗기려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인간들의 본성은 나타나게 마련이고 결국 어떤 모임은 이 일로 사이가 벌어져 모임마저도 깨어지고 마는 모습을 씁쓸하게 본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는 모든 인허가와 건축을 거의 같은 시기에 해야 한다는 점이다. 각자의 모든 사정들이 다른 사람들끼리 모여서 시기를 맞춰야 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필자가 생각하기엔, 동호인 주택은 어느 한 사람이 주도하여 한 명씩 점차적으로 나누어 갖는 방법이 가장 좋은 방법이고, 그렇게 할 수 없다면 업자들이 개발한 단지에 가서 서로 서로 마음에 맞는 부지를 고르는 방법이 현명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일곱째, 농가주택(구옥, 폐가)의 리모델링

얼마 전 다 쓸어져 가는 구옥 한 채를 의뢰인에게 소개했다. 물론 그 의뢰인은 처음부터 그런 집을 원했었다. 누가 보아도 을씨년스러웠던 그 집. 여러 사람들이 보았건만 대책이 없던 그 집. 이렇게 옛날에 지어 지금은 낡아버린, 그냥 바람만 조금 세게 불어도 쓸어 질 것 같아 보였던 집을 보면 보통의 의뢰인들이면 거의 다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기 마련이다. 그런데 요번의 의뢰인은 달랐다. 본인이 꼭 원하던 물건이라는 거다.

그동안 여러 의뢰인에게 이 집은 뼈대가 튼튼하여 리모델링만하면 얼마든지 마음에 드는 집으로 변신시킬 수 있다는 얘기를 수도 없이 했건만 도무지 용기가 안 나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요번 의뢰인은 쾌히 구입하고자 하는 의사를 표시했고 가격도 적당하다고 하여 쉽게 거래가 성립되었다. 그리고 이내 공사를 시작했고, 벽채가 헐리고, 용마루와 기둥만 남았다. 너무 낮은 옛집을 그대로 뼈대를 키워 요즘 주택의 키로 변신시켰고, 차양이 있던 곳에 버팀목을 써서 평수도 늘렸다. 조그마한 창문을 큰 창문으로 바꾸었고, 지붕에는 예쁜 기와를 올렸다. 지금은 이 집이 얼마나 예쁜 집으로 변신을 했는가는 아는 사람만이 아는 일이다.

이렇게 너무 낡아서 쓸모없어 보이는 시골집을 고쳐 전원생활을 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새로 지은 집에서는 느낄 수 없는 풋풋한 분위기와 투박한 질감이 마음을 사로잡는다. 집이 없는 그냥 대지 값만을 쳐서 주고 샀으니 땅 값은 같다고 치더라도 집을 짓는데 평당 300만원은 든다고 생각하면 30평짜리 집이면 9000만원인데 단돈 3000만원에 고풍(古風)스럽고 아담한 흙집을 완성했다. 가장 중요한 집의 뼈대를 그냥 사용했기 때문이다. 옛것을 버리지 않고 살려서 쓰는 지혜! 얼마나 멋진 생각이며, 얼마나 값진 투자인가? 사람의 머리는 쓸수록 빛이 나나 보다. 그래서 누가 “용불용설(用不用說)”을 제창 했던가!

여덟째, 시골에서 살려면!

1) 다른 사람의 마음을 두드려라!

내 마음을 두드려 주길 기다리지 말고, 먼저 시골 사람들의 마음을 두드려라! “내 마음을 먼저 열어라“는 말 대신 필자는 ”열고만 있지 말고, 직접 가서 두드려라” 라고 외치고 싶다. 전원에 와서 생활을 시작하다보면 예전부터 그곳에 살던 분들의 살가운 정(情)을 느낄 수 없을 뿐더러 오히려 배타적임을 금새 알 수 있다. 지금 와선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할 수 있는 이곳 원주민(단어 표현이 좀 이상 한 것 같지만 읽는 분들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현지인 대신 이 단어를 쓴다.)의 얘기를 들어보면 도시 사람들한테 너무 많이 속아서 그렇게 무뚝뚝해졌단다.

무엇이든 나누고 싶어하고, 거들고 싶어하는 순박한 시골 사람들을 도시 사람들이 많이도 괴롭혔나 보다. 최소한 이곳 사람들이 느끼기엔 도시에서 온 사람들을 좋은 눈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은 확실한 사실이다. 저리도 마음의 문을 안 여는 걸 보면...... 사실 무뚝뚝하단 표현은 좀 나은 표현이다. 아주 냉정하다고나 할까? 아니면 건방지다고나 할까? 사실 말투 자체가 위, 아래가 없는 말투고, 외모로 봐서 나이 차이가 비슷하게 느껴지면 그냥 맞먹고 놀자는 투다.

이 글을 쓰는 필자도 처음엔 무척이나 당황스럽다 못해 황당하기 까지 했다. 옛날에는 순박하고 정이 많았던 시골 사람들이었다는데 지금은 그 상황이 많이 다르다. 고도로 발달된 매스미디어는 도농간의 격차를 좁히는 구실을 많이 했기 때문에 시골 사람들은 도시인에 비해 때가 묻지 않았다고 생각하다가 실제로 겪어본 시골 사람들의 배타적이며, 도시인들 뺨칠 정도로 똑똑한 것에 많이들 놀라곤 한다. 아니! 시골 사람들이 똑똑하고 아는 게 많다기 보다는 도시 사람들이 시골 사람들이라고 무시해 보았기 때문이 아닐까?

특히나 부동산과 관계된 일에 대해선 그냥 아는 정도가 아니다. 최소한 도시인들 보다는 경험이 많기 때문에 부동산과 관계되는 일에 대해선 말조심, 입 조심하라고 당부 드리고 싶다. 알아도 모르는 척, 조심하시고 그 분들에게 한 수 배운다는 마음으로 임해 주시길 바란다. 또 도시인들은 대체적으로 사교적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도시에서 생활한 사람들에 비해 시골사람들은 비사교적이고 약간은 폐쇄적인 것도 사실이다. 물론 사람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필자도 처음 내려왔을 때, 보는 사람마다 먼저 인사를 하고 말을 건네 보려고 여러 번 노력 한 적이 있다. 그러나 반응은 “왠 놈이 인사를 하는 거야?” 식으로 의아스런 표정들뿐이었다. 나이가 한 참이나 적은 사람들한테도 얼마나 많고 깍듯한 인사를 했던가!

상당한 시간이 지나서야 서로 위, 아래를 찾고, 허심탄회한 사이가 되었다. 다음은 필자가 이곳에 처음으로 이주했을 당시의 대화 내용의 일례이다. 부근에 사는 아저씨께 “고추는 언제 심으면 되죠?“하고 물었다. 시큰둥한 표정으로 ”남이 심을 때 심어!“가 그 대답이었다. “남이 똥 장군 지면 너도 지라”는 그런 뜻일 거라는 건 알겠지만, 그리 기분 좋은 답변은 아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오래 살다 보니까 그 말뜻을 통감하게 되었다. 그 말뜻을 다시 한번 잘 음미해 보자! 얼마나 함축성 있는 대답인가! 고추는 몇 월 며칠쯤에 심으라고는 할 수 없지 않겠는가? 어떨 땐 기후 탓으로 며칠 차이가 날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 경험 있는 우리가 심을 때를 눈 여겨 보고 있다가 심으라는 그런 뜻이었을 텐데, 그 때는 무척이나 불쾌하기까지 했던 게 사실이다.

시골 사람들은 책임지는 말을 잘 하려들지 않는다. 공연히 안 해도 될 말을 했다가 쓸데없는 구설수에 휘말릴 것을 염려하는 마음에서 그럴게다. 얼마 동안을 그렇게 지나다 보니 “너는 너!” “나는 나!” 서로가 시큰둥하게 생각했지만 그것이 시간이 흐르면서, 서로의 심중을 조금씩 알게 되고부터는, 도타운 정으로 변해갔다. 나중에 온 사람들이 이 고장에 대대로 사는 사람들에게 먼저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한 발짝 다가갈 수 있는 마음의 자세를 낮추는 것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 하겠다.

2) 마을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인정받아라!

또 시골에 살려면, 반드시 마을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마을을 위해 최소한의 헌신이라도 하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가볍게 생각하면 토지나 전원주택을 취득할 때, 또는 처분할 때를 위해서도 주위의 도움이 꼭 필요하지만, 마을 구성원으로 인정받지 못할 때 가져오는 불이익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잘 모르리라. 집을 지었을 때는 물론이려니와 땅을 구입한 후라도 곧 바로 돼지 한 마리쯤 잡아 (돼지가 값도 싸고 여럿이 먹을 수 있어 좋다.) 동네잔치를 벌이면 좋다. “어떻게 돼지를 잡느냐?”고 물으실 필요는 없다. 그런 것쯤은 큰 돈 안 들어도 다 해결할 수 있고 마을 분들 중에는 그 방면에 전문가가 꼭 한, 두 명씩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마을 분들의 경조사에도 될 수만 있다면 빠짐없이 참석하는 것이 마을 사람들과의 유대관계를 넓히는데 많은 기여를 한다는 것도 명심하시길 바란다. 전원생활에는 이른 아침 마을 확성기에서 이미자씨 노래나 주현미씨 노래가 귀가 따갑게 흘러나올 때가 한 달에도 여러 번 있다. 그것은 분명 마을 이장님께서 마을의 공지사항을 안내하려고 하니 주민들은 들을 준비를 하라는 예고 방송이다. 여름철이면 창문을 열어놓고 생활하는 시간이라 그 소리를 잘 들을 수 있으나 위치에 따라 띄엄띄엄 들리는 곳도 있고, 그것이 문을 닫고 생활하는 겨울에는 더욱 잘 안 들릴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런 방송이 있는 날 방송을 잘 듣지 못하였다면 꼭 마을 회관이나 이장님한테 물어서라도 무슨 일인지 확인하시길 바란다.

그 방송은 필경 “오늘은 동네 어떤 어른의 생신이니 아침 드시러들 오라”는 것일 수도 있고, “마을의 대동회 날이니 점심을 같이하자”라거나, “정월 대보름날 척사대회를 하는데 주민 여러분의 많은 참여를 바란다.”는 방송이거나, “비료나 씨앗을 타가”라는 방송일 수도 있기 때문에 우리가 전원생활을 하는데 놓쳐서는 안 되는 아주 중요한 일들이다. 우리는 '전원일기'라는 드라마에서 많이 접할 수 있었지만, 실제로 전원생활을 시작해 보니 절대로 무시해선 안 되는 아주 중요한 부분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일이 있을 땐 간단한 선물이라도 가지고가서 예를 갖추는 것이 전원생활을 하는데 얼마나 좋은 일인지 독자도 아시게 될 것이다.

박카스 한 상자면 어떻고, 싼소주 몇 병이면 어떤가. 모든 것이 다 성의가 아니겠는가! 옛말에도 '코 밑에 진상이 최고'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이렇게 하찮은 조그마한 선물이- 필자는 선물이란 표현보다는 관심이라 하고 싶다 - 얼마나 많고 커다란 인정이 되어 돌아오는가를 여러분은 곧 실감하게 되실 것이다. 세상엔 공짜란 없는 법이니까 말이다.

3) 전원생활은 품앗이 생활이다.

'품앗이'란 국어사전에 이렇게 설명 되어 있다. 힘 드는 일을 거들어 주어서 서로 품을 지고 갚고 함. 전원생활은 아파트생활하고는 많이 달라서 이웃과 어떻게 융화를 잘 이루느냐가 전원생활의 필수 관건이 될 수 있다. 아파트에선 조금 섭섭한 일들이 있다 해도 서로 문 닫고 들어가면 에레베이터 안에서나 가끔 마주칠 뿐, 별로 크게 만나지 않아도 서로의 생활을 즐길 수 있지만, 정이 그리운 전원생활은 그것과는 많이 다르다.

집도 띄엄띄엄, 사람도 띄엄띄엄 그래서 시골은 적적하기 마련이다. 우선 이웃이 많지 않기 때문에 서먹한 감정을 오래 지니고 있을 수도 없을 만큼 외롭다. 또 무거운 짐을 들거나 가구를 옮길 때, 특히나 농사를 지을 때는 이웃의 아쉬움은 말할 수 없이 크게다가온다. 이렇게 전원생활은 서로 서로 돕고 사는 것이 일상화 되어 있어 사는 맛이 난다. 새로 담근 김치를 맛보라고 가져다주는 인심에 “요번에 동해안에 갖다가 사 왔다”고 아직 덜 마른 오징어 몇 마리를 건네는 풍부한 인심이 있는 곳이 시골이다.

시골에선 한해에 적어도 서너 차례 정도는 동네잔치가 벌어진다. 그런데 사실 외지에서 이주해 온 분들은 '남의 집 불보기'다. 그러나 이젠 이렇게 동네의 많은 분들이 모이는 장소에도 자주 참석하여 작은 성의라도 표하면서 서로의 사이를 좁히는데 노력하는 그 자체가 삶의 질을 높이는 것 아니겠는가?

나와 내 가족만 살려고 전원생활을 시작했다면 잘못 시작한 전원생활이다. 시골 사람들과의 사귐이 없다면 전원생활을 하더라도 반쪽 전원생활을 하는 셈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왜냐면 그 사람들은 그 사람들대로의 멋도 있고, 우리가 모르는 여러 가지를 알고 있어 '말이 잘 안 통 한다.'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대화에 적극적으로 나선다면 풋풋한 시골 인심을 맛볼 수 있어서 좋고, 또 여러 가지 내가 알지 못하는 지식도 얻을 수 있어 좋을 텐데 그렇지 못하다면 분명 반쪽 생활임에 틀림없다.

4) 담장을 낮춰라!

처음 전원생활을 시작한 분들의 대부분은 담장을 높이 치는 것을 볼 수 있다. 말 그대로 철옹성을 만든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첫째는 방범문제이고, 둘째는 사생활 침해를 이유로 드는 것이 대부분의 말씀들이다. 그렇다! 다 옳은 말씀들이다. 그래서 이사 오기도 전에 벌써 “X콤”을 단다, “Y”콤을 단다. 난리 법석도 아니다.

허기야 낮에는 남자들도 거의 집에 없는 시간이니 겁이 날 수밖에 없다. 도시에선 부부싸움만 크게 해도 온 동네사람들이 다 알 정도였다. 그러나 전원생활에선 소리, 소리 질러도 들어 줄 사람이 없다. 어찌 겁이 안 나겠는가? 그러나 1년 정도의 시간이 흐르면 X콤, Y콤 하던 물건들은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돈이 아까워서도 작동시킬 수가 없다. 하루 하루 전원생활에 익숙해지면서 겁이 없어지는 건 물론이고, 좀도둑 하나 들었다는 얘기도 못 들어 봤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에 있는 게 아니다. 담장을 높이 친 그 다음부터 그 집과 이웃 사람들과의 보이지 않는 벽이 그 담장의 높이만큼 만들어 진다는 것이 아주 중요한 사안이다. “지가 서울에서 왔으면 왔지. 돈이 얼마나 많기에 저리도 높이 담장을 쌓아!“ “시골 놈들은 다 도둑놈인 줄 아나보지!” “지가 얼마나 돈이 있는지 몰라도 나도 땅 좀 팔면 지깟 놈 정도는 돼!” “웃기지 말라고 그래!”

사실 그렇다. 돈으로 따지자면, 요즘 시골 사람들이 어지간한 도시 사람들 정도는 된다. 땅값이 많이 오르다 보니 선조들에게서 물려받은 논 몇 마지기나 밭 몇 떼기만 있어도 몇 억대는 실히 간다. 시골 사람들한테 돈 얘기 잘못하다간 공자 앞에서 문자 쓴 꼴이 되고 마는 것이 현실이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얘기들은 이렇게까지 비약하고 만다. 이것도 이웃과 친교를 나눌 수 없는 이유 중에 하나이다. 원래 시골에 사시던 분들은 도시에서 온 사람들 자체를 건방진 놈들로 보는 경향이 있는데 이런 짓들이 더욱 더 그 분들과의 사이를 벌려 놓는다. 또 실제로 자기네들은 대문은 물론 방문도 잠그지 않고 다닌다. 가지고 갈 것도 없거니와 혹여 가지고 갈 것이 있다고 해도 예전부터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별다른 의식이 없다.

그런데 별 볼일도 없는 도시 것들이 내려와서 건방을 떤다. 도저히 그냥 봐 줄 수 없다. 그러기에 사사건건 시비를 걸어댄다. 이렇게 되면 전원생활의 첫 단추를 잘 못 낀 경우가 되니 조심하여야 한다. 대개의 도시 사람들은 주위와 조그만 불화만 생겨도 “법대로 하라!”는 식이지만 전원생활에선 법보다 훨씬 빠른 것이 순수한 마음이고, 서로 의논하고, 타협해 나가는 것이 일을 빨리 해결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따지기 좋아하는 도시사람들은 쉽게 해결 할 것도 그 좋아하는 '법'이고 '따지는 것' 때문에 망치는 것을 자주 본다.

서울서 내려온 K씨는 전원주택을 짓기 위해 공사를 시작했다. 원래 지목이 “대지”인 곳에 구옥이 있던 것을 허물고 새로 건축을 하는 것이라 허가과정에선 아주 순조로운 진행이었다. 그러나 공사를 시작한 다음날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아침에 중장비가 들어와야 그 날의 공사를 하는데 골목길을 경운기가 버티고 있고, 그 경운기 위에는 촌 노인네가 앉아서 “이 길은 내 길이니 못 간다.”고 하니 아연실색이 아닐 수 없지 않는가?

여기서 잠시 부언해 둘 말이 있다. 시골의 골목길들은 예전엔 다 논두렁, 밭두렁이던 것이 사람들이 살면서 차츰 넓어져서 현재에 이른 것이다. 바로 이 노인네는 지금 이 길이 자기가 옛날에 내놓은 땅이니 다니지 말라는 생떼(?)를 부리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땅값을 내어 놓고 길을 사용하던지, 아니면 어떠한 보상이라도 하라는 것이다. 참! 어이가 없는 일이다. 그 길을 통해서 몇 집이 새로 전원주택을 짓고 살고 있다.

도로에 문제가 있으리라곤 전혀 생각하지 못한 일이다. K씨는 우선 버럭 화부터 냈다. 그리고는 파출소에 연락하여 자초지종을 말하니 노인네는 파출소로 끌려가는 사태로까지 진전되고 말았다. 그러기를 두, 세 차례. 그러나 경찰관들도 어찌할 수 없는 일이 바로 이런 일이다. 같은 관내의 어른을 어떻게 할 수도 없고, 또 얘기를 들어보니 법 이전에 옳은 말이기도 하다. 법이면 되겠지 하고 생각한 K씨만 속 터지는 일이 되었다. 결국은 다른 사람들이 중재에 나서서, 노인네 댁의 담장을 수리해 주는 조건으로 타협이 일단락되었고, 그 후 순조로운 공사로 전원주택에 입주 할 수 있었다.

얼마 전 저녁식사 자리에서 K씨는 이런 말을 했다. 처음부터 그 정도의 요구였다면 그런 난리법석 떠는 일은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시골에 처음 내려온 K씨로서는 우선은 겁이 났고, 그 다음은 이참에 아주 혼을 내 주어 다시는 이런 일이 없게 하겠다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시골생활은 법으로는 문제없이 이길 것 같은 일들도 많은 시간과 정력과, 돈만 낭비할 뿐 소득은 없는 경우가 많다.

5) 오물은 무서워 피하는 게 아니다!

이렇게 쓰면서도 필자는 겁이 난다. 시골 사람들을 오물로 표현한 건 아닌데 혹시나 오해의 소지가 될까 두렵다는 것이다. 필자가 말하는 오물이란 표현은 외지인이 집을 지을 때나 그 밖의 다른 일에도 사사건건이 시비를 걸어오는 예전부터 그 고장에 살았던 사람이 간혹 있다. 그런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이라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리 큰일이 아니라면 아니꼽고 더러워도 참아내는 법도 배워야 하겠다. 결국엔 그렇게 싸움을 하고 나서도 이웃으로 살아야 하는 것이 현실이고, 그 때의 앙금은 쉽사리 가시질 않는 것도 사실이다. 전원생활에 익숙해지면 웃으면서 해결하는 현명한 방법을 배우게 된다. 될 수 있다면 내가 한 발 양보하는 미덕을 보인다면, 그들도 다정한 마음으로 내게로다가온다는 진리를 잊지 말아야 하겠다.

또 이런 분들의 대부분이 신고식(?)을 치르지 않은 분들이다. 땅을 구입했을 때, 아니면 건축허가가 났을 때, 그 때도 못했으면 건축을 시작하려고 했을 때 돼지 한 마리쯤 잡아서 막걸리라도 이웃에게 대접했다면 그분들의 자존심이 풀려서 그냥 넘어갈 수도 있었는데. 결국 텃세를 톡톡히 당한 셈이 되고 말았다. 그 돼지 한 마리가 돈으로 따지면 얼마나 되겠냐마는 그러나 그 돼지 한 마리가 시사하는 뜻은 크고도 많다.

이런 얘기를 한다고 필자가 시골 사람들한테 아첨이라도 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이지 마시기 바란다. 필자 자신이 못한 모든 것들이 후회로 쌓여 이렇게 피력하는 것이라고 보아 주길 바라고, 불화로 시작하면 상당한 시간이 지나서도 풀리기 어렵다는 의미로 받아들여 주었으면 한다.

그냥 시골에 살면서 느낀 바로는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뿐이다. 처음부터 웃음으로 지나면 친할 수 있는 이웃이었는데, 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일들 때문에 매일 매일을 등 돌리고 사는 생활이 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얘기다. 이웃 주민들과 어울리지 않아도 실제 생활에 아무런 불편이 없고, 또 반대로, 간섭도 받지 않으므로 편하다고 생각될지 모르나 그것은 요즘 아이들 말로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다.

전에도 말씀 드렸듯이 시골 사람들과 어울려 우리가 지금껏 모르던 시골의 풍습이나, 농사짓는 방법, 들이나 산에 자라는 풀이나 나무에 대해서 하나하나 배우면서 정을 쌓아가는 재미를 모른다면 전원생활의 많은 재미 중 가장 큰 재미 하나를 잃어버리는 셈이 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전원의 생활이 은둔의 생활, 나만의 생활을 도모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벗어나 다른 곳에서의 사회생활과 같은 연장선상에서 우리는 사고할 수 있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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