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후쿠시마를 반성의 기회로

샌. 2012. 3. 11. 08:25

일본 동북부 지방의 대지진과 쓰나미, 그리고 이어진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참사가 일어난 지 한 해가 지났다. 1년 전 오늘, 규모 9.0의 강진으로 발생한 쓰나미가 일본 도호쿠 지방을 덮쳤다. 시커먼 바닷물이 육지로 밀려 들어오는 무서운 광경이 지금도 눈에 생생하다. 이 지진으로 2만 명이 넘게 사망했고, 수많은 이재민이 생겼다. 아직도 34만 명이 피난 생활을 하고 있다.

쓰나미보다 더 큰 재앙이 연이어 찾아왔다. 지진의 여파로 전력이 중단되자 후쿠시마 원전의 냉각장치가 작동되지 않았다. 그러자 원자로 노심이 녹고 방사능이 대량 유출되었다. 히로시마 원폭의 수백 배에 달하는 방사능이 주변으로 퍼져 나가 땅과 바다를 오염시켰다. 사람을 비롯한 생물들도 피폭되었다. 아직도 방사능 공포는 계속되고 있고, 피폭의 영향은 장기간에 걸쳐 서서히 나타날 것이다. 2011년의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1979년의 스리마일, 1986년의 체르노빌 사고를 넘어서는 사상 최대의 원자력 사고였다.

전 세계 사람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일본에 이웃한 우리나라는 특히 더했다. 방사능에 소금이 좋다고 하여 시장에서 동날 정도였다. TV 일기예보에서는 대기 중의 방사능 수치가 등장했다. 지금도 아내는 수산물을 살 때마다 일본산인지 확인한다. 안전하다고 믿은 원자력 발전의 신화는 깨졌다. 그동안 정부와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원자력을 깨끗하고 안전한 에너지라고 선전해 왔다. 대중들은 이면의 진실을 보게 되었다.

그때로부터 1년이 지났지만 우리의 현실은 별로 달라진 게 없다. 후쿠시마의 재앙은 이제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히고 있다. 한 술 더 떠 우리나라에서는 '후쿠시마 사고를 도약의 계기로!'라는 구호까지 등장했다. 원자력 발전 축소가 아니라 더 확대하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 독일이나 프랑스 같이 원자력 발전을 폐지하거나 축소하는 세계적인 흐름과는 반대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원자력만큼 위험하고 더러운 에너지도 없다. 한 번 사고가 발생하면 엄청난 재앙을 가져온다. 아무리 안전장치가 되어 있다고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천재지변이 일어날 수 있다. 또는 전쟁이나 불순한 의도를 가진 집단의 공격 대상이 될 수도 있다. 만약 원자력 발전소가 통제 불능 상태가 된다면 어떻게 될지 상상하기도 싫다. 최악의 경우 한반도 전체가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으로 변할 수도 있다. 황해를 따라 건설되고 있는 중국의 원전도 걱정거리다. 원자력 공포는 어느 한 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후쿠시마에서 피폭된 어린이가, 왜 어른들은 나쁜 연료로 전기를 만들어 쓰느냐고 묻던 장면이 잊혀지지 않는다. 원자력은 한마디로 반생명적이다. 태양계가 탄생하고 태양에서 오는 방사선이 차단되면서 지구에 생명체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인간은 그 방사선을 다시 불러들이고 있다.

원자력 발전은 연기나 이산화탄소와는 비교되지 않는 악질적인 핵폐기물을 만들어낸다. 깨끗하고 청정한 에너지라는 건 어불성설이다. 사용 후 핵연료를 비롯해 발전에 관계된 모든 물질이 방사능에 오염된다. 이것들은 안전하게 처리하는 방법이 없다. 깊은 해저나 땅속에 묻어두어야 하는 더러운 쓰레기다. 방사능이 자연 소멸하는데는 종류에 따라 수만 년에서 수십만 년이 걸린다. 우리 후손들에게 엄청난 부담을 떠넘기는 것이다. 윤리적으로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수명이 다한 원자력 발전소를 폐기하는데도 엄청난 시간과 돈이 든다. 일반 건물처럼 부수면 되는 게 아니다. 원자로 하나를 폐쇄하고 두꺼운 시멘트로 밀봉하는데 대략 20년이 걸린다고 한다. 이때 드는 경비까지 포함하면 원자력 발전에서 나오는 전기가 결코 싼 에너지가 아니다. 원자력은 문제가 많은 에너지다. 정부는 다른 대안이 없다고 하지만 이젠 생각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우리 문명의 근본부터 재검토를 해야 한다고 본다. 우리도 원자력 발전소가 건설되면 싼 전기를 마음껏 쓰게 된다고 좋아라고만 할 일이 아니다.

지금 인간의 지적이나 도덕적 수준으로 원자력을 다루기에는 시기상조가 아닌가 싶다.어린 아이에게 수류탄을 맡긴 꼴이다. 과학자들은 너무 빨리 핵이라는 비밀 상자를 열어버렸다. 군사적 강대국들은 지구를 몇십 번이나 파멸시킬 수 있는 핵무기를 감춰두고 있다. 어떤 미친놈이 버튼을 잘못 누르면 세계의 종말이 올 수도 있다. 핵을 잘못 만지다가 인류가 멸종할 가능성이 상당히 크다. 그러므로 우선 핵무기를 완전히 폐기하고, 원자력 발전소 건설도 금지하는 국제적 합의가 필요하다. 다음다음주에 서울에서 핵안보정상회의가 열린다는데 의제를 보면 엉뚱하기 그지없다. 미국과 러시아 같은 핵 강국부터 먼저 핵무기를 포기하는 게 순서다.

원자력문화재단이라는 단체가 있다. 원자력을 홍보하기 위해 1년에 100억 가까운 예산을 쓴다. 내가 교직에 있을 때도 교사들 대상으로 1박인가 2박짜리 발전소 시찰 프로그램이 계속되었다. 공짜라고 몇 번씩이나 참가한 동료도 있었다. 나는 한 번도 따라가지 않았는데 지금 돌아보아도 잘한 일이었다. 학생들에게도 일방적인 세뇌가 아니라 정확한 원자력의 실상을 알려주는 게 중요하다. 차라리 그 돈으로 원자력 안전에나 더 신경 쓰라고 당부하고 싶다. 이제 원자력이 깨끗하고 안전한 에너지라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부분의 사람이 원자력에 대해 무지하므로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하는 말을 그대로 믿어왔다. 그러나 그들은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이번 후쿠시마 사고에서도 드러났지만 정부나 전문가들은 사실을 은폐하고, 기만하고, 진실을 왜곡하는 일이 흔하다. 자신들에게 불리한 정보는 공개하지 않는다. 현대의 원자력 산업 시스템을 '원전 마피아'라고 부르기도 한다. 원자력에 관련된 관료, 학자, 기술자, 건설업체가 철옹성을 구축하고 있다. 지구와 우리의 생존에 관계된 문제를 그들 손에만 맡겨서는 안 된다. 탈핵을 향한 사회 운동이 더욱 활발해져야 한다.

우리나라는 2030년까지 원자력 발전 비율을 60%까지 끌어올리려고 한다. 나는 이러한 원자력 확대 정책이 4대강 살리기나 해군 강정기지 건설 강행 등과 같은 줄기로 연결되어 있다고 본다. 이런 식의 국가 정책이 과연 우리와 후손들에게 행복한 삶을 보장해 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세계 문명의 흐름은 작지만 안전한 사회, 질적으로 새롭게 변화된 사회로 나아가고 있다. 에너지 소비를 줄이면서 자연 에너지나 재생 가능 에너지 개발에 더 힘을 쏟아야 한다. 지금은 우리 후손을 위해 친환경 에너지로의 정책 전환을 해야 할 때다. 원자력 강국이 이 시대의 국가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 '후쿠시마를 도약의 기회'라며 외칠 게 아니라 '후쿠시마를 반성의 기회'로 삼는 게 옳은 일이 아닐까. 잘못 되어도 뭔가 한참 잘못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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