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나침반

장자[199]

샌. 2012. 3. 16. 10:00

원헌이 노나라에 살 때

한 칸의 움집 방에 생풀로 지붕을 이었고

쑥대로 엮은 문은 불안했고

뽕나무로 지도리를 삼았고

깨진 독으로 창문을 만든 방이 둘인데 헌 옷으로 막았다.

위에서는 비가 새고 아래는 습한데

바르게 앉아 비파를 타고 있었다.

자공은 큰 말을 타고

감색 바탕에 겉은 흰 줄이 있는 옷을 입고

수레가 다닐 수 없는 골목이라

걸어서 원헌을 찾아왔다.

원헌은 화산관을 쓰고 발뒤축이 없는 신발을 신고

명아주 지팡이를 짚고 문 앞에서 맞이했다.

자공이 물었다.

"오! 선생은 어찌 병색이오?"

원헌이 응답해 말했다.

"제가 듣기로는 재산이 없는 것을 가난이라 하고

배우고도 실천하지 않는 것을 병통이라 합니다.

지금 저는 가난할 뿐 병통이 아닙니다."

자공은 우물쭈물하면서 난감한 표정이었다.

원헌은 웃으며 말했다.

"속세의 명예를 위해 행동하고

무리 지어 주선하며 벗을 삼고

남을 다스리기 위해 학문을 하고, 자기를 위해 가르치며

인의를 빌려 사특하고

수레와 말을 수식하는 짓을

저는 차마 할 수 없습니다."

 

原憲居魯

環堵之室 茨以生草

蓬戶不完

桑以爲樞

而甕유二室 褐以爲塞

上漏下濕

匡坐而弦

子貢乘大馬

中紺而表素

軒車不容巷

往見原憲

原憲華冠쇄履

杖藜而應門

子貢曰

희先生何病

原憲應之曰

憲聞之無財爲之貧

學而不能行謂之病

今憲貧也 非病也

子貢逡巡而有愧色

原憲笑曰

夫希世而行

比周而友

學以爲人 敎以爲己

仁義之慝

輿馬之飾

憲不忍爲也

 

    - 讓王 7

 

원헌(原憲)과 자공(子貢)은 공자의 제자다. 원헌은 제자 중 제일 가난했고, 자공은 부자였다. 여기서는 자공이 한껏 위세를 부리면서 원헌을 찾아간 일화를 다루고 있다. 결국은 자공이 부끄러움을 느끼고 가난한 동료로부터 한 수 배운다는 내용이다.

 

재미있는 건 장자가 공자의 제자를 등장시켜 유가학파를 비판하고 있다는 점이다. 장자의 유머라고 할 만하다. 당시에 장자학파 사람들이 유가쪽을 어떻게 보는지 원헌의 말에 잘 드러나 있다. 인의(仁義)라는 명분으로 무리를 지어 다니며 속세의 명예를 위해 행동한다. 옛사람들은 자신을 다스리기 위해 학문을 했지만, 유가는 남을 다스리기 위해 학문을 이용한다. 한 마디로 겉 다르고 속 다른 무리라는 소리다.

 

원헌을 통해 장자가 안빈낙도(安貧樂道)의 가치를 높이 평가함도 볼 수 있다. 가난은 부끄러운 게 아니라 도리어 떳떳하고 당당하다.도가(道家)에서 부(富)를 바라보는 관점은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예수님 말씀과 일치한다. 화려한 옷을 입고 수레와 말을 장식하는 것은 그들에게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짓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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