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나침반

장자[198]

샌. 2012. 3. 12. 10:03

왕은 사마자기에게 말했다.

"설은 양 잡는 비천한 처지에 살지만

의를 진술함에 심히 고상하오.

사마께서 나를 위해

그에게 재상의 지위를 받도록 인도하시오!"

설이 말했다.

"삼정의 지위가

양 도축업의 우두머리보다 높은 줄 알고

만종의 녹이

양 도축업의 이익보다 부한 것임을 잘 압니다.

그러나 제 어찌 작록을 먹음으로써

우리 왕이 잘못 베풀었다는 오명을 받게 하겠습니까?

저는 감당할 수 없으니

원컨대 도축장의 자리로 돌아가게 해 주십시오!"

끝내 그는 상을 받지 않았다.

 

王謂司馬子기曰

屠羊說居處卑賤

而陳義甚高

子기爲我延之

以三旌之位

屠羊說曰

夫三旌之位

吾知其貴於屠羊之肆也

萬種之祿

吾知其富於屠羊之利也

然豈可以食爵祿

而使吾君有妄施之名乎

說不敢當

願復反吾屠羊之肆

遂不受也

 

    - 讓王 6

 

초나라 소왕(昭王)이 나라를 잃었을 때 양을 잡던 백정 설(說)도 소왕을 따랐다. 뒷날 소왕이 나라를 회복한 후 자신을 따른 이들에게 상을 내렸는데 설도 해당이 되었다. 그러나 설은 사양했다. 자신의 공이 없다는 것이다. 왕은 설을 만나서 얘기를 들어보고그의 사람됨과 의(義)를 알게 된다. 이 대목은 왕이 설에게 재상을 시키려 하지만 그마저도 사양하는 내용이다.

 

오늘은 좀 다른 관점에서 이 얘기를 보고 싶다. 신분을 떠나 지혜 있는 자를 찾는 초나라 소왕의 열린 마음이다. 2천여 년 전의 중국은 철저한 신분사회였다.천한 백정을 한 나라의 재상으로 등용하려는 것은 파격이었을 것이다. 그만큼 소왕이 현인을 얻고 싶어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당시는 춘추전국시대로 크고 작은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 왕이나 제후에게는 상대를 이기기 위한 비책을 가진자문 집단이 필요했을 것이다. 자천, 타천으로 많은 사람들이 권력 가까이에 가려고 했다. 공자도 자신의 뜻을 펼치기 위해 각 나라를 유세하며 다녔다.

 

이 이야기가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이런 내용이 <장자>에 자주 등장하는 것은 당시 신분사회를 고발하려는 의도도 있는 듯 보인다. 천한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이나 불구자들이 최고의 현인으로 <장자>에 나온다. 지혜는 신분이나 외양과는 무관하다. 장자는 사회적 존경을 받는 사람들과 이들을 대비시킴으로써 세상의 일반적인 통념을 뒤집으려고 한다. 그것은 바로 작고 소외된 것에 애정과 관심이다. 그러나 정반대로 돌아가는 세상을 보며 장자는 분노와 슬픔을 느꼈을 것이다. 공명에 뜻을 두지 않고 현실에서 비켜서 세상을 조롱하며 살아간 장자의 마음이 이해가 될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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