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소립자

샌. 2005. 9. 29. 10:50

오랜만에 소설을 한 권 읽었다. 미셀 우엘벡(Michel Houellebecq)이라는 프랑스 작가가 쓴 ‘소립자(Les Particules)'라는 책이다.

도서관 서가에서 이 책의 제목을 보고 물리적 내용을 소재로 한 책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이 책은 20세기 서구 사회의 변화와 그 와중에 희생된 개인의 일생과 문명의 전환을 다룬 스케일이 큰 소설이다. 특이한 점은 포르노 수준의 적나라한 성 묘사가 가득해서 읽는 사람을 나른하고 어둡게 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책을 읽고나니 ‘소립자’라는 제목이 전혀 엉뚱한 것만도 아니었다. 사회 시스템 안에서 각 개인은 마치 소립자 같은 존재일지도 모른다. 소립자는 외부의 물리적 장(場)에 의해 영향을 받고 서로 간에 상호작용을 하는 독립적인 존재이다.


이 책에는 이부(異父) 형제간인 두 명의 주인공이 나온다.

형 브뤼노는 육체의 쾌락주의자이다. 성에 탐닉하지만 한 여자를 사랑한 적은 없다. 사랑 없는 섹스는 결국 그를 정신병원에서 일생을 마치게 한다. 이것은 당시 프리섹스 풍조가 유행했던 비뚤어진 유럽 사회의 고발로 비쳐진다.

동생 미셸은 분자생물학자이다. 그는 학문의 길로 들어서서 유명한 과학자가 되지만 고립된 삶을 살며 사랑을 경험하지 못한다. 미셸 역시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서구 사회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그는 자살로 생을 마치는데 이 소설에 등장하는 다른 사람들의 말년 역시 비참하기만 하다.


저자는 대다수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세계관의 근본적이고 전반적인 변화를 ‘형이상학적 돌연변이’라고 부른다. 우리가 보통 쓰는 용어로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등장과 비슷한 개념이라고 보면 된다.

형이상학적 돌연변이는 일단 일어났다 하면, 이렇다 할 저항에 부딪치지 않고 궁극적인 귀결에 이를 때까지 발전해 간다. 인간의 어떤 힘도 그 흐름을 중단시킬 수 없다.

인류 역사에서 첫 번째 나타난 형이상학적 돌연변이는 기독교의 출현이었고, 두 번째는 근대과학의 등장이었다고 저자는 보는 것 같다. 그리고 세 번째 형이상학적 돌연변이가 21 세기 초에 미셸에 의해서 촉발된다고 소설을 그리고 있다. 이 세 번째 형이상학적 돌연변이야 말로 이전 것들을 뛰어넘는 가장 근본적인 것이 된다.


결말 부분이 좀 황당하지만 나에게는 소설 뒤에 짧게 나오는 에필로그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완전한 인간 유전자의 복제가 가능하다는 이론이 알려지면서 드디어 2029년에 인간이 <자신의 모습대로> 지어낸 새로운 종이 창조된다. 그들은 섹스를 거치지 않고 번식하며, 서로 같은 유전 정보를 가지고 있어 유대감과 우애로 뭉쳐진 신인류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지금의 인류는 점점 숫자가 줄어들어 소멸되고, 새로운 종이 번성한다. 그들은 이기주의와 분노와 폭력에서 벗어난 유토피아(?)를 만들어 낸다. 모순덩어리였고 개인주의적이었으며 싸움을 좋아하고 이기심에 끝이 없었던 시대는 과학에 의해서 종언을 맞게 된다. 그러나 그 세계는 결코 멋지지 못한 ‘멋진 신세계’를 자꾸만 연상시킨다.


이 소설은 두 사람의 쓸쓸한 인생 역정을 다루고 있지만 그것은 이기주의가 지배하는 사회에 대한 고발이며, 몰락하는 문명에 대한 경고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에 대한 구원을 과학에서 찾고 있다. 지금의 인류를 대체한 새로운 종이 나타남으로써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세상은 구원이 아니라 종말로 비쳐진다.

소설에서 그리고 있는 어두운 현상들은 현 인류와 사회에 대한 절망감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사랑할 줄 모르는 세상에 대한 냉소이기도 하다.


이 소설을 읽으며 과연 우리에게 얼마만큼 가능성이 있는지 되물어보게 된다. 이 소설은 인간 본성에 대한 어두운 예언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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