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유토피아의 농업

샌. 2005. 11. 22. 11:07

유토피아는 토머스 모어가 1516년에 발표한 인간의 이상향을 그린 공상소설입니다.

유토피아가 당시 영국의 부조리한 현실에 바탕을두고 쓰여진오래 된 소설이지만, 지금도 이상적인 사회 모델을 찾는 사람들에게는 끊임없이 영감을 주고 영향을 미치고 있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정치 권력이나 교회 같은 당시의 사회 지배층에게 억누리고 착취 당하던 일반 민중들의 삶에 대한 따뜻한 애정이 서려 있는 작품으로사유재산이 없는 평등사회, 모든 사람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에 대한 고민과 염원이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유토피아에서는 농업을 어떻게 다루었을까요? 유토피아에는 농민이 없습니다. 그것은 모든 국민이 다 농민이기도 하다는 뜻입니다.

유토피아는 54개의 도시로 되어 있는데 각 도시는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안쪽은다양한 직업에 종사하는 수만 명의 주민들이 거주하는 곳입니다. 그리고 도시를 중심으로 사방 30km 정도로 농지가 펼쳐져 있습니다. 농촌 지역에는 농기구가 갖쳐져 있는 농가들이 산재해 있는데, 도시의 주민들이 교대로 이곳에 나와 거주를 하면서 농사를 짓습니다. 한 마을에 대략 40명 정도가 사는데 주민들은 2년마다 교대하면서 이곳에서 생활 합니다.

땅을 경작하고, 가축을 기르고, 나무를 자르고 하는 일을 통해 도시에서 필요로 하는 생산품을 공급하게 됩니다. 수확기 같은 일손이 많이 필요한 때에는 도시에서 지원 인력이 나오기도 합니다.

유토피아가 이런 특이한 구조를 갖게 된데는 농사가 고된 일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근본적으로 농업이라는 것이 사람의 생존에 필수적인 것이기에 모든 주민이 의무적으로 이 일에 종사하고땀의 의미를 체험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유토피아 농업의 특징은 각 도시 단위의 자급자족적 체제라는 것과 농업 활동에 모든 주민이 참여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금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 합니다. 현재 우리의 시스템은 이것과 정반대 방향으로 나가고 있습니다. 농업은 돈이 안되는 낙후된 업종이고 퇴출 대상입니다. 천시 받는 농민들이 분노하는 것도 이유가 있어 보입니다.

내일 국회에서 쌀 협상 비준안이 처리될 예정이라 하고, 농민들은 연일 시위를 벌이고 있습니다.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의 단식은 20일을 넘고 있습니다. 농성장에 걸려 있는 '國以民爲本 民以食爲天'(나라는 백성을 근본으로 삼고 백성은 식량을 하늘로 삼아야 한다) 현수막이 낯 설기만 합니다. 국익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농업이 희생되어야 한다는 경제 논리에 우리는 세뇌 당하고 있습니다.

결국 문제는 농업을 어떻게 보느냐는 우리의 태도에 달려 있습니다. 농업을 수 많은 업종들 중 하나로 보고 경쟁력이 없으면 다른 산업으로 대체될 수도 있다고 보느냐, 아니면 농업은 삶의 근본이므로 어떤 대가를 치르고라도 지켜내야 하느냐의 문제입니다. 저는 후자의 길이 옳다고 믿고 있습니다.

얼마 전 부산 APEC이 끝났는데 세계 경제의 흐름은 '세계화'의 방향으로가고 있습니다. 농업 문제도 당연히 이 흐름 속의 일부입니다. 거역할 수 없는 흐름이라면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된다고 사람들은 믿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세계화가 진행된 후의 세계가 과연 모든 사람들이 골고루 잘 살고 행복해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만약 시각을 행복과 복지의 관점으로 돌리면 세계화의 평가는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세계화의 흐름에 전면적으로 거부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우리 농업의 회생과 생존 기반을 마련하는 정책은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 농업을 살려야 합니다.

예전에는 학교에서 노작교육(勞作敎育)으로 불리는 활동이 있었습니다. 일주일에 몇 시간은 밭에 나가 일을 하고 고구마도 키우고 했습니다.지금은 사라진 이런 교육을 다시 부활시키면 어떨까요? 도시 학교라고 못 할 것도 없습니다. 뜻만 있다면 가능한 방법은 분명 있을 것입니다. 학교 교육이 학원과 다른 점은 이런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학교는 돈이나 출세, 또는 경쟁에서 이기는 것만이 최고 가치가 아님을 가르쳐야 합니다.

농촌 문제가 워낙 답답해 유토피아 책을 꺼내 보았습니다. 그리고 농촌 문제는 결코 경제적 논리로 해결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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