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경청 / 정현종

샌. 2004. 6. 8. 14:31


불행의 대부분은

경청할 줄 몰라서 그렇게 되는 듯.

비극의 대부분은

경청하지 않아서 그렇게 되는 듯.

아, 오늘처럼

경청이 필요한 때는 없는 듯.

대통령이든 신(神)이든

어른이든 애이든

아저씨든 아줌마든

무슨 소리이든지 간에

내 안팎의 소리를 경청할 줄 알면

세상이 조금은 좋아질 듯.

모든 귀가 막혀 있어

우리의 행성은 캄캄하고

기가 막혀

죽어가고 있는 듯.

그게 무슨 소리이든지 간에,

제 이를 닦는 소리라고 하더라도,

그걸 경청할 때

지평선과 우주를 관통하는

한 고요 속에

세계는 행여나

한 송이 꽃 필 듯.

 

< 경청 / 정현종 >


이 시는 지난 달에 발표된 12회 공초문학상 수상작이다.

시어가 투박하기도 하지만 그래서 도리어 편안하게 읽힌다. 무거운 주제를 부담감 없이 펼쳐 보이고 있다.

현대는 온갖 말과 정보가 난무하는 시대이다.

그런데 대개 자기 주장과 외침만 있지 상대방의 소리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사람들은 너무 많은 소음에 귀가 멀었는가 보다.

그래서 세상은 항시 시끄럽다.

사람이 자기 내면의 소리를 경청할 줄 안다면 이 세상은 훨씬 더 조용해지고 평화로워질 것이다.

경청이란 어디에서 무슨 소리에서든 내면의 소리를 듣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다. 제 이를 닦는 소리에서도 그 침묵의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만약 그대가 경청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면, 그대는 명상의 가장 심오한 비밀을 배운 것이다.' - 오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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