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더 먼저 더 오래 / 고정희

샌. 2004. 6. 17. 17:51

더 먼저 기다리고 더 오래 기다리는 사랑은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기다리는 고통 중에 사랑의 의미를 터득할 것이요

더 먼저 달려가고 더 나중까지 서 있는 사랑은 복이 있나니

저희가 서있는 아픔 중에 사랑의 길을 발견할 것이요

더 먼저 문을 두드리고 더 나중까지 문닫지 못하는 사랑은 복이 있나니

저희가 문닫지 못하는 슬픔 중에 사랑의 문을 열게 될 것이요

더 먼저 그리워하고 더 나중까지 그리워 애통하는 사랑은 복이 있나니

저희가 그리워 애통하는 눈물 중에 사랑의 삶을 차지할 것이요

더 먼저 외롭고 더 나중까지 외로움에 떠는 사랑은 복이 있나니

저희가 외로움의 막막궁산 중에 사랑의 땅을 얻게 될 것이요

더 먼저 상처받고 더 나중까지 상처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랑은 복이 있나니

저희가 상처로 얼싸안는 절망 중에 사랑의 나라에 들어갈 것이요

더 먼저 목마르고 더 나중까지 목말라 주린 사랑은 복이 있나니

저희가 주리고 목마른 무덤 중에서라도 사랑의 궁전을 짓게 되리라

그러므로 사랑으로 씨 뿌리고 열매 맺는 사람들아

사랑의 삼보 - 상처와 눈물과 외로움 가운데서 솟은 사랑의 일곱 무지개

이 세상 끝날 때까지 그대 이마에 찬란하리라

 

< 더 먼저 더 오래 / 고정희 >


힘들고 지칠 때 이 시를 떠올린다.

나 비록 사랑으로 씨 뿌리고 열매 맺는 사람이 되지는 못하지만

내 생각과 행동이 온통 이기적이어서 감히 사랑이라는 말을 쓸 수는 없지만

고통으로, 아픔으로, 슬픔으로, 눈물로, 외로움으로, 절망으로, 목마름으로 그 나라에 이른다는 말씀이 있어

내 아픔, 내 절망이 결코 무의미하지만은 않다는 위안을 받는다.

비록 내가 무능하고못난 탓으로당하는 업보이긴 하지만

나에게찾아오는 모든 사건들이 내 생각과 행동으로 지어낸 것들이긴 하지만

그래도 고통과 눈물로 그 나라에 들어간다는말씀이있어

상처 가득한 내 마음은 살아계신 그분의숨결로 다시 따스해진다.


'더 먼저 상처받고 더 나중까지 상처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랑은 복이 있나니

저희가 상처로 얼싸안는 절망 중에 사랑의 나라에 들어갈 것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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