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그만큼 행복한 날이 / 심호택

샌. 2003. 10. 16. 09:13


그만큼 행복한 날이
심 호택


그만큼 행복한 날이

다시는 없으리.

싸리빗자루 둘러 메고

살금 살금 잠자리 쫒다가

얼굴이 발갛게 익어 들어오던 날.

여기저기 찾아 보아도

먹을 것 없던 날.


아무 것도 먹을 것 없던 그 때가 어떻게 행복했을까?
지나간 것은 다 그리워지기 때문일까?
그 때는 모두들 가난했지만 가난했다는 생각은 거의 없었다. 마음의 배고픔은 아니었다.
그러나 어른이 된 지금, 잘 먹고 잘 살게 되었지만 사람들은 허기에 져 있다.

조사에 따르면 세계의 빈국들에서 행복지수가 높게 나오고 있다.
물질적 풍요와 정신의 행복은 비례하는 것이 아닌가 보다. 도가 지나친 풍족과 욕심은 공허와 권태라는 또 다른 선물을 가져다 준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 또 문명의 발전이라는 것은
뭔가 소중한 것을 잃어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요즘 자주 든다.
2년 전에 도시에서 지방으로 이사를 간 후배가 있다. 작은 시와 시골 중간쯤에 거처를 정했는데 주위 사람들과 어울리는데 아직까지도 어려움이 있다고 한다. 학연과 혈연으로 얽힌 그쪽 사회에 합류하는데 눈에 보이지 않는 벽을 느낀다고 한다.
그런데 아이들은 그렇지 않더라고 한다.
이내 동네 아이들과 스스럼없이 친구가 되더라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가장 행복한 때로 기억되는 어린 시절.....
놀다가 부엌에 뛰어 들어가 솥뚜껑을 열어 보아도텅 비어 있을 때가 많았다.
그냥 찬 물 한 바가지 퍼 마셔도 마냥 즐겁기만 했던그 시절......

우리를 그렇게 행복하게 만든 건 순수했던 그러나 지금은 우리 곁을 떠난 그 동심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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