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올림픽 단상

샌. 2012. 8. 14. 14:30

런던 올림픽이 끝났다. 올림픽 중계를 보다 보면 외국 선수의 직업이 소개될 때가 있다. 유럽이 그런 경우가 많은데, 교사, 소방관, 검찰관 등 다양하다. 우리는 올림픽을 준비하기 위해 국가대표 선수촌에 입촌하고 몇 년간 운동에만 전념하며 전문 훈련을 받는다. 외국 사정을 잘 모르지만 우리만큼 특별 훈련을 받지는 않을 것이다. 직업이 있다는 것은 근무시간 외에 파트타임으로 틈틈이 훈련하는 것은 아닐까? 생활 체육과 엘리트 체육의 차이다.

 

우리나라가 메달을 많이 따고 스포츠 강국이 되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지만 외화내빈은 아닌지 반성할 필요가 있다. 국민 전체가 운동을 즐기기보다는 소수정예주의로 성적을 낸다. 외국에는 운동 종목별로 많은 클럽이 있고, 거기에 등록된 선수가 엄청나게 많다고 한다. 그만큼 운동을 즐기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재질 있는 소수에만 신경을 쓰고, 생활 체육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하다. 이젠 정책의 중심을 바꿀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다행히 이번 올림픽 중계나 보도는 금메달 지상주의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는 것 같아 기뻤다. 금메달에만 목매다는 풍조가 사라지는 건 우리 사회가 그만큼 성숙하고 있다는 증거다. 그러나 아직도 지나친 경쟁과 민족주의적 성향은 여전하다. 메달 수로 나라의 품위나 국격이 올라가는 건 아니다. 북한이 금메달 4개를 따서 20위에 들었지만, 북한이 그만한 역량을 가진 나라라고 여기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대체로 전체주의 국가가 그런 외형적 결과에 집착하면서 국민을 결집시키는 수단으로 사용한다.

 

메달 수보다는 우리가 메달을 딴 종목이 다변화되고 있는 게 반갑다. 특히 펜싱과 체조에서 메달을 땄다는 것은 선진국 수준으로 올라서고 있다는 증거다. 수십 년 전만 해도 이런 종목에서 태극기가 올라간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욕심을 부린다면 이젠 육상 트랙에서도 우리 선수가 뛰는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한 번 물꼬를 트는 게 중요하다.

 

어찌 되었든 금메달 수를 기준으로 할 때 세계 5위의 성적은 대단하다. 외국에 나갔을 때 우리의 위상이 달라진 걸 피부로 느낀다. 15년 전 독일에 연수를 갔을 때는 한국을 아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동양인을 보면 일본인, 아니면 중국인이냐고 물었다. 이제는 코리아, 하면서 어깨를 으쓱할 수 있다. 한국은 아시아의 변방에 있는 은둔의 나라가 아니다. 경제 뿐만 아니라 높은 문화와 정신 수준으로 세계를 리드해야 할 때다. 어느 나라처럼 '에코노믹 애니멀'이라는 별명은 듣지 말아야겠다.

 

올림픽 중계를 통해 땀 흘리는 선수들을 보면서 아름다움을 느꼈다. 어떤 경기는 예술에 가까웠다. 환희, 눈물, 안타까움, 감동, 투혼, 젊음의 극한이 올림픽에 있었다. "우리가 선수들을 응원한 줄 알았더니, 선수들이 우리를 응원한 거였다."라는 광고 문구가 있다. 우리 선수들을 열심히 응원했지만, 그들을 통해 내가 도리어 더 큰 응원을 받았다. 결과에 연연하기보다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아름답다. 그리고 올림픽이 하나씩 지나갈 때마다 우리 의식도 그만큼 성장하는 걸 보게 되어서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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