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황당한 부탁

샌. 2012. 8. 15. 10:10

모교에서 전화가 왔다. 제자라는 사람이 나를 찾는데 전화번호를 가르쳐줘도 되겠느냐는 것이었다. 괜찮다고 했더니 잠시 후 벨이 울렸다. 10여 년 전에 J고등학교에서 2학년 때 담임을 했던 제자였다. 이름을 말하는데 간신히 얼굴이 기억났다. 졸업 후에는 아무 소식도 없다가 갑자기 무슨 일인가 궁금했다. 다음다음 주에 결혼을 하는데 주례를 서달라는 부탁이었다. 너무 황당했다. 고작 결혼식 두 주를 앞두고 느닷없이 전화로 주례 부탁이라니, 선생이 무슨 커피 자판기도 아니고 내심으로는 많이 불쾌했다. 몸 핑계를 댔더니 제자도 싹싹하게 전화를 끊었다.

 

주례를 부탁할 정도면 어느 정도는 존경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인 줄은 안다. 그러나 이건 아니다, 싶다. 최소한 몇 달 정도만 미리 얘기했어도 고민을 했을 것이다. 결혼 대사가 오래전부터 준비되어야 하는 건데 성의만 있었다면 이런 식의 무례한 부탁은 안 해도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전화를 끊고 났더니 좀 미안한 마음도 있다. 그냥 봐 줘야 하는 거였나? 이럴 땐 어떻게 하는 거지?

 

잊히지 않는 제자가 또 하나 있다. J고등학교에 근무할 때였는데 전 학교에서 가르쳤던 아이가 찾아왔다. 학교생활에 적응을 못 하고 말썽만 부리다가 결국 자퇴한 아이였다. 마침 찾아온 날이 스승의 날을 앞두고 있던 차라, 속으로는 이놈이 이제 사람이 되었구나, 라고 흐뭇해하며 맞았다. 그런데 긴히 드릴 말씀이 있다고 밖으로 나가잔다. 식당에서 하는 얘기가 글쎄, 자기의 어려운 사정을 호소하며 돈을 빌려달라는 것이었다. 그것도 천만 원 가까이 되는 큰돈이었다. 이 무슨 황당 시추에이션인가? 결국, 그날 밥값 내고, 지갑을 다 털렸다. 그때도 잘못한 건가? 어려운 제자 형편을 헤아려 돈을 마련해 주었어야 하는 건가?

 

돌아보면 나는 제자 복이 지지리도 없다. 교직 생활 35년 동안 담임을 몇 번밖에 안 했으니 찾아올 제자가 거의 없지만, 가끔 연결되는 제자도 이 수준이다. 그렇다고 누구를 탓할 마음은 없다. 내가 아이들에게 정성을 다하지 않았는데, 아이들이 나를 기억하고 찾아줄 리는 없기 때문이다. 페스탈로치라는 별명을 가진 친구가 있다. 아직 현역에 있는데 60이 되도록 아이들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마음에 담임을 자청하며 한다. 이 친구에게는 제자가 끊이지 않는다. 그걸 옆에서 보면 질투가 난다. 다 자기가 지은 업보인 것이다.

 

그래도 이런 전화라도 와서 옛날 내가 선생을 했던 기억을 되살려준다. 은퇴한지 이제 2년이 되지만 '정말 내가 선생한 게 맞아?' 할 정도로 교직 생활은 기억에서 빠르게 소멸되고 있다. 그게 오히려 반갑다. 나비가 번데기 시절을 자꾸 연연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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