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잠적

샌. 2012. 8. 19. 09:00

B 선배가 잠적했다. 두 달 전 학교에 명퇴 신청서를 낸 뒤부터 연락 두절이다. 풍문으로 들리는 소식에 마음이 아프다.

 

수업 시간에 학생과 마찰이 있었던 것 같다. 말을 듣지 않는 학생을 나무라는 과정에서 욕설을 한 모양이다. 모욕을 당했다며 학생의 부모가 인권위에 진정을 넣었고, 학교로 공문이 내려와서 그걸 처리하는 과정에서 정신적으로 많이 시달린 것 같다. 자랑할 일이 아니라 주변 사람도 쉬쉬하니 저간의 상세한 사정을 모르지만, 선배가 얼마나 모멸감을 느꼈을지는 짐작할 수 있다. 많이 자책도 할 것이다.

 

수학을 전공한 선배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데 무척 열성이었다. 쉬는 시간에도 항상 문제를 풀며 교재 연구를 했다. 나이가 들면 머리가 굳는다고 젊은 선생들 두세 배는 노력했다. 같이 근무했을 때 보면 수업 종료종이 친 뒤에도 칠판에다 열심히 문제를 푸는 선배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아이들이 지겨워하든 말든 내 갈 길을 가는 게 선배의 스타일이었다.

 

그런 선배가 인문계로 학교를 옮기고 의욕적으로 시작한 것 같다. 그런데 아이들이 기대만큼 따라주지 않으니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이다. 그래서 어느 날 폭발하지 않았나 싶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데 열정이 없거나 자질 부족인 교사가 가끔 있다. 그런 사람은 무탈하게 잘 지낸다. 그런데 열심히 해 보려는 사람이 대부분 사건에 연루된다. 물론 아이들과 소통의 문제에서 반성할 부분도 있을 것이다.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선배의 경우도 무척 안타깝다.

 

선배는 늘 정년까지 교사 생활을 하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제 2년을 남기고 명퇴를 던졌다. 선배의 마음이 얼마나 착잡할지 짐작된다. 아이들과 잘 지낼 수 있다면 교직은 신이 내린 직장일 수도 있지만, 그게 쉽지 않다. 잘못되면 매 순간 아이들과의 갈등이나 스트레스의 연속이다. 요사이는 더 심해졌다고 한다. 선배의 경우를 보아도 사제간의 정이란 말을 쓸 환경이 아니다. 어떤 사안이 생기면 행정적이고 법률적인 절차에 따라 처리하는 경우가 흔하다고 한다.

 

누구를 탓하겠는가? 세상이 그렇게 변해가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런 변화가 꼭 부정적인 것만도 아니다. 단지 교사라는 사실만으로 존경을 받던 시대는 지나갔다. 독일에서 살고 있는 한 어머니가 담임 선생님에 대해 고맙게 생각해야 한다고 아들에게 말했다고 한다. 그랬더니 돌아온 아들의 대답은, "왜 고마워해야 돼? 우리 때문에 봉급 받고 살아가니 도리어 우리한테 고마워해야지." 한국도 이미 이런 인식의 단계에 도달하지 않았나 싶다. 노력하지 않거나 인격적으로 성숙되지 않은 교사의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질 것이다.

 

어찌 됐든 씩씩했던 B 선배가 모든 걸 훌훌 털고 활짝 웃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언젠가는 이렇게 외칠 것이다. "야호~~ 난 이제 자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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