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이 슬픔을 팔아서 / 이정우

샌. 2012. 8. 18. 13:02

이 슬픔을 팔아서

조그만 꽃밭 하날 살까

이 슬픔을 팔면

작은 꽃밭 하날 살 수 있을까

 

이 슬픔 대신에

꽃밭이나 하나 갖게 되면

키 작은 채송화는 가장자리에

그 뒤쪽엔 해맑은 수국을 심어야지

 

샛노랗고 하얀 채송화

파아랗고 자줏빛 도는 수국

그 꽃들은 마음이 아파서

바람소리 어느 먼 하늘을 닮았지

 

나는 이 슬픔을 팔아서

자그만 꽃밭 하날 살꺼야

저 혼자 꽃밭이나 바라보면서

가만히 노래하며 살꺼야

 

- 이 슬픔을 팔아서 / 이정우

 

 

슬픔이 얼마나 진했으면 시인은 슬픔을 팔아 꽃밭 하나 사고 싶다고 했을까? 슬픔을 살 사람은 없으니, 슬픔이 팔릴 리가 없다는 걸 시인도 잘 알 것이다. 슬픔을 팔겠다는 건 슬픔과 함께 하겠다는 다른 표현이 아닐까. 이때의 슬픔은 처음의 비탄이 아니라, 고운 꽃으로 승화된 슬픔이다. 꽃밭에는 아픔이 배인 꽃들이 핀다. 슬픔과 아픔마저 긍정하는 시인의 고운 마음씨가 읽힌다.

 

너무 호들갑스럽게 살지 않아야겠다. 인생의 그늘에도 꽃이 핀다.....

 

'시읽는기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내의 전성시대 / 임보  (0) 2012.09.01
너무 늦게 그에게 놀러간다 / 나희덕  (0) 2012.08.26
가장 사나운 짐승 / 구상  (0) 2012.08.10
담쟁이 / 도종환  (0) 2012.07.25
어처구니 / 이종문  (1) 2012.0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