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조선 혁명 선언

샌. 2012. 9. 18. 10:31

대통령 선거가 석 달 앞으로 다가왔다. 그저께는 민주통합당 대통령 후보로 문재인 씨가 선출되었고, 내일은 안철수 씨가 출마 선언을 할 예정이다. 둘이 단일화를 이루어 여권의 박근혜와 맞붙을 것 같다. 볼만한 싸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문재인 씨의 대통령 후보 수락 연설을 들으며 문득 단재 신채호 선생의 '조선 혁명 선언'이 떠올랐다. 온건한 이미지의 문재인 씨의 얼굴을 보며 왜 하필 단재가 생각났는지 모르겠다. 젊었을 때는 단재의 과격한 사상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간디의 비폭력 정신에 매료되었던 때였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단재도 점차 이해하게 된다.

 

'조선 혁명 선언'을 읽으며 선생의 의기를 다시금 느껴본다. 선생은 혁명의 길은 파괴에서 시작한다고 선언하고, 구체적으로 파괴해야 할 대상 다섯 가지를 들었다. 이족 통치 파괴, 특권 계급 파괴, 경제 약탈 제도 파괴, 사회적 불평균 파괴, 노예적 문화 사상 파괴가 그것이다. 시대적 환경은 달라도 선생의 말씀에서 우리가 경청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본다. 선생의 대쪽 같은 선비정신이랄까, 그 사자후가 그리워지는 요즈음이다. 

 

 

조선 혁명 선언

 

1

 

강도 일본이 우리의 국호를 없이 하며, 우리의 정권을 빼앗으며, 우리의 생존적 필요 조건을 다 박탈(剝奪)하였다.

 

경제의 생명인 산림, 천택(川澤), 철도, 광산어장 내지 소공업 원료까지 다 빼앗아 일체의 생산 기능을 칼로 베며 도끼로 끊고, 토지세·가옥세·인구세·가축세·백일세(百一稅)·지방세·주초세(酒草稅―)·비료세·종자세·영업세·청결세(淸潔稅)·소득세……기타 각종 잡세가 축일(逐日) 증가하여 혈액은 있는 대로 다 빨아 가고, 여간(如干) 상업가들은 일본의 제조품을 조선인에게 매개하는 중간인이 되어 차차 자본 집중의 원칙하에서 멸망할 뿐이요, 대다수 인민 곧 일반 농민들은 피땀을 흘리며 토지를 갈아, 그 종년(終年) 소득으로 일신과 처자의 호구거리도
남기지 못하고, 우리를 잡아먹으려는 일본 강도에게 진공(進供)하여 그 살을 찌워 주는 영세(永世)의 우마(牛馬)가 될 뿐이요, 내종(乃終)에는 그 우마의 생활도 못 하게 일본 이민(移民)의 수입이 연년(年年) 고도의 속률(速率)로 중가하여 '딸깍발이' 등쌀에 우리 민족은 발 디딜 땅이 없어 산으로 물로 서간도로 북간도로 시베리아의 황야로 몰려가 아귀(餓鬼)부터 유귀(流鬼)가 될 뿐이며, 강도 일본이 헌병 정치, 경찰 정치를 여행(勵行)하여 우리 민족이 촌보(寸步)의 행동도 임의로 못 하고, 언론, 출판, 결사, 집회의 일체 자유가 없어, 고통과 분한(憤恨)이 있으면 벙어리의 가슴이나 만질 뿐이요, 행복과 자유의 세계에는 눈뜬 소경이 되고, 자녀가 나면 '일어를 국어라, 일문을 국문이라' 하는 노예 양성소 - 학교 - 로 보내고, 조선 사람으로 혹 조선사를 읽게 된다 하면 '단군을 무(誣)하여 소잔명준(素棧鳴遵)의 형제' 라 하며, '삼한 시대 한강 이남을 일본 영지' 라 한 일본 놈들이 적은 대로 읽게 되며, 신문이나 잡지를 본다 하면 강도 정치를 찬미하는 반일본화한 노예적 문자뿐이며, 똑똑한 자제가 난다 하면 환경의 압박에서 염세(厭世) 절망의 추락자가 되거나, 그렇지 않으면 음모 사건의 명칭하에 감옥에 구류되어 주리·가쇄(枷鎖)·단근질·채찍질·전기질·바늘로 손톱 밑과 발톱 밑을 쑤시는, 수족을 달아 매는, 콧구멍에 물 봇는, 생식기에 심지를 박는 모든 악형, 곧 야만 전제국(野蠻專制國)의 형률 사전(刑律辭典)에도 없는 갖은 악형을 다 당하고 죽거나, 요행히 살아서 옥문을 나온대야 종신 불구의 폐질자(廢疾者)가 될 뿐이다.

 

그렇지 않을지라도 발명, 창작의 본능은 생활의 곤란에서 달절되며, 진취활발의 기상(氣象)은 경우의 압박에서 소멸되어 '찍도 짹도' 못 하게 각 방면의 속박, 편태(鞭苔), 구박(驅迫), 압제를 받아 환해(環海) 삼천리가 1개 대감옥이 되어 우리 민족은 아주 인류의 자각을 잃을 뿐만 아니라, 곧 자동적 본능까지 잃어 노예부터 기계가 되어 강도 수중의 사용품이 되고 말 뿐이며, 강도 일본이 우리의 생명을 초개(草芥)로 보아 을사(乙巳) 이후 13도의 의병이 나던 각 지방에서 일본 군대가 행한 폭행은 이루 다 적을 수 없거니와, 즉 최근 3·1 운동 이후 수원, 선천…… 등의 국내 각지부터 북간도, 서간도, 노령 연해주 각처까지 도처의 거민(居民)을 도륙(屠戮)한다, 촌락을 소화(燒火)한다, 재산을 약탈한다, 부녀을 오욕(汚辱)한다, 목을 끊는다, 산 채로 묻는다, 불에 사른다, 혹 일신을 두 동강이 세 동강이로 내어 죽인다. 아동을 악형한다, 부녀의 생식기를 파괴한다 하여 할 수 있는 데까지 참혹한 수단을 써서 공포와 전율로 우리 민족을 압박하여 인간의 '산 송장'을 만들려 하는도다.

 

이상의 사실에 거(據)하여 우리는 일본 강도 정치(强盜政治) 곧 이족 통치(異族統治)가 우리 조선 민족 생존의 적임을 선언하는 동시에, 우리는 혁명 수단으로 우리 생존의 적인 강도 일본을 살벌함이 곧 우리의 정당한 수단임을 선언하노라.

 

2

 

내정 독립(內政獨立)이나 참정권(參政權)이나 자치(自治)를 운동하는 자 누구이냐?

 

너희들이 '동양 평화', '한국 독립 보전' 등을 담보(擔保)한 맹약(盟約)이 묵(墨)도 마르지 아니하여 삼천리 강토를 집어먹던 역사를 잊었느냐? '조선 인민 생명, 재산, 자유 보호', '조선 인민 행복 증진' 등을 신명(申明)한 선언이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여 2천만의 생명이 지옥에 빠지던 실제를 못 보느냐? 3·1 운동 이후에 강도 일본이 또 우리의 독립 운동을 완화시키려고 송병준(宋秉晙), 민원식(閔元植) 등 13 매국노를 시켜 이 따위 광론(狂論)을 부름이니, 이에 부화(附和)하는 자는 맹인(盲人)이 아니면 어찌 간적(奸賊)이 아니냐?

설혹 강도 일본이 과연 관대한 도량(度量)이 있어 개연(개然)히 차등(此等)의 요구를 허락한다 하자. 소위 내정 독립을 찾고 각종 이권을 찾지 못하면 조선 민족은 일반의 아귀가 될 뿐이 아니냐? 참 정권을 획득한다 하자. 자국의 무산 계급의 혈액까지 착취하는 자본주의 강도국의 식민지 인민이 되어 기개(幾個) 노예 대의사(大議士)의 선출로 어찌 아사(餓死)의 화(禍)를 구하겠느냐? 자치를 얻는자 하자. 그 하종(何種)의 자치임을 불문하고, 일본이 그 강도적 침략주의의 초패(招牌)인 '제국' 이란 명칭이 존재한 이상에는 그 부속하(附屬下)에 있는 조선 인민이 어찌 구구한 자치의 허명(虛名)으로써 민족적 생존을 유지하겠느냐?

 

설혹 강도 일본이 돌연히 불보살(佛菩薩)이 되어 일조(一朝)에 총독부를 철혜하고 각종 이권을 다 우리에게 환부(還付)하며, 내정 외교를 이주민을 일시에 소환(召還)하고 다만 허명의 종주권(宗主權)만 가진다 할지라도, 우리가 만일 과거의 기억이 전멸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일본을 종주국으로 봉대(奉戴)한다 함이 '치욕' 이란 명사를 아는 인류로는 못 할지니라.

 

일본 강도 정치하에서 문화 운동을 부르는 자 누구이냐?

 

문화는 산업과 문물의 발달한 총적(總積)을 가리키는 명사니, 경제 약탈의 제도하에서 생존권이 박탈된 민족은 그 종족의 보전도 의문이거늘, 하물며 문화 발전의 가능이 있으랴? 쇠망(衰亡)한 인도족(印度族), 유태족(猶太族)도 문화가 있다 하지만, 1은 금전의 역(力)으로 그 조선(祖先)의 종교적 유업(遺業)을 계속함이며, 1은 그 토지의 광(廣)과 인구의 중(衆)으로 상고(上古)의 자유 발달한 여택(麗澤)을 보수함이니, 어디 문맹같이 시랑(豺狼)같이 인혈(人血)을 빨다가 골수까지 깨무는 강도 일본의 입에 물린 조선 같은 데서 문화를 발전 혹 보수한 전례가 있더냐? 검열, 압수 모든 압박 중에 기개(幾個) 신문 잡지를 가지고 '문화 운동' 의 목탁(木鐸)으로 자명(自鳴)하며, 강도의 비위(脾胃)에 거스르지 아니할 만한 언론이나 주창하여 이것을 문화 발전의 과정으로 본다 하면 그 문화 발전이 도리어 조선의 불행인가 하노라.

 

이상의 이유에 거(據)하여 우리는 우리의 생존의 적인 강도 일본과 타협하려는 자(內政獨立: 자치, 참정권 등의 論者)나 강도 정치하에서 기생하려는 주의(主義)를 가진 자(문화 운동자)나 다 우리의 적임을 선언하노라.

 

3

 

강도 일본의 구축(驅逐)을 주장하는 가운데 또 여좌(如左)한 논자들이 있으니,

 

제 1은 외교론이니, 이조 5백 년 문약 정치(文弱政治)가 '외교' 로써 호국(護國)의 장책(長策)을 삼아 더욱 그 말세(末世)에 우심(尤甚)하여 갑신(甲申) 이래 유신당(維新黨), 수구당(守舊黨)의 성쇠가 거의 외원(外援)의 유무(有無)에서 판결되며, 위정자의 정책은 오직 갑국(甲國)을 인(引)하여 을국(乙國)을 제(制)함에 불과하였고, 그 의뢰의 습성이 일반 정치 사회에 전염되어, 즉 갑오(甲午), 갑진(甲辰) 양전역(兩戰役)에 일본이 수십만의 생명과 수억만의 재산을 희생하여 청·노 양국을 물리치고 조선에 대하여 강도적 침략주의를 관철하려 하는데, 우리 조선의 '조국을 사랑한다', '민족을 건지려 한다' 하는 이들은 일검일탄(一劍一彈)으로 혼용탐폭(昏庸貪暴)한 관리나 국적(國賊)에게 던지지 못하고, 공함(公函)이나 열국 공관에 던지며 장서(長書)나 일본 정부에 보내어 국세(國勢)의 고약(孤弱)을 애소(哀訴)하여 국가 존망, 민족 사활의 대문제를 외국인 심지어 적국인의 처분으로 결정하기만 기다리었도다. 그래서 '을사조약', '경술합병', 곧 '조선' 이란 이름이 생긴 뒤 몇천년 만의 처음 당하던 치욕에 조선 민족의 분노적 표시가 겨우 하얼빈의 총, 종현(鐘峴)의 칼, 산림 유생(山林儒生)의 의병이 되고 말았도다.

 

아! 과거 수십 년 역사야말로 용자(勇者)로 보면 타매(唾罵)할 역사가 될 뿐이며, 인자(仁者)로 보면 상심할 역사가 될 뿐이다. 그러고도 국망(國亡) 이후 해외로 나아가는 모모(某某) 지사들의 사상이 무엇보다도 먼저 '외교'가 그 제1장 제1조가 되며, 국내 인민의 독립 운동을 선동하는 방법도 '미래의 일·미 전쟁(日美戰爭), 일·로(日露戰爭) 등 ‘기회’가 거의 천편일률의 문장이었고, 최근 3·1 운동에 일반 인사의 평화 회의, 국제 연맹’에 대한 과신(過信)의 선전이 도리어 2천만 민중의 분용 전진(奮勇前進)의 의기(意氣)를 타소(打消)하는 매개가 될 뿐이었도다.

 

제 2는 준비론이니, 을사조약의 당시에 열국 공관에 빗발치듯하던 조회(종이)쪽으로 넘어가는 국권을 붙잡지 못하며, 정미년(丁未年)의 해아 밀사(海牙密使)도 독립회복의 복음(福音)을 안고 오지 못하매, 이에 차차 외교에 대하여 의문이 되고, 전쟁 아니면 안 되겠다는 판단이 생기었다. 그러나 군인도 없고 무기도 없이 무엇으로써 전쟁하겠느냐? 산림 유생들은 춘추대의(春秋大義)에 성패를 불계(不計)하고 의병을 모집하여 아관대의(峨冠大衣)로 지휘의 대장이 되며, 사냥 포수의 화승대(火繩隊)를 몰아 가지고 조일 전쟁(朝日戰爭)의 전투선(戰鬪線)에 나섰지만, 신문쪽이나 본 이들 ― 곧 시세(時勢)를 짐작한다는 이들 ― 은 그리 할 용기가 아니 난다. 이에 '금일 금시로 곧 일본과 전쟁한다는 것은 망발이다. 총도 장만하고 대포도 장만하고 장관(將官)이나 사졸(士卒)감까지라도 다 장만한 뒤에야 일본과 전쟁한다.' 함이니, 이것이 이른바 준비론, 곧 독립 전쟁을 준비하자 함이다.

 

외세의 침략이 더할수록 우리의 부족한 것이 자꾸 감각되어, 그 준비론의 범위가 전쟁 이외까지 확장되어 교육도 진흥(振興)해야겠다, 상공업(商工業)도 발전해야겠다, 기타 무엇무엇 일체가 모두 준비론의 부분이 되었다. 경술 이후 각 지사들이 혹 서북, 간도의 삼림(森林)을 더듬으며 혹 시베리아의 찬 바람이 배부르며, 혹 남 · 북경으로 돌아다니며, 혹 미주나 하와이로 돌아가며, 혹 경향(京鄕)에 출몰하여 십여 성상(星霜) 내외 각지에서 목이 터질 만큼 "준비!"를 불렀지만 그 소득이 몇 개 불완전한 학교와 실의 착오이다. 강도 일본이 정치·경제 양 방면으로 구박(驅迫)을 주어 경졔가 날로 곤란하고, 생산 기관이 전부 박탈되어 의식의 방책도 단절되는 때에 무엇으로 어떻게 실업을 발전하며, 교육을 확장하며, 더구나 어디서 얼마나 군인을 양성하며, 양성한들 일본 전투력의 백분의 1의 비교라도 되게 할 수 있느냐? 실로일장의 잠꼬대가 될 뿐이로다.

 

이상의 이유에 의하여 우리는 '외교', '준비' 등의 미몽(迷夢)을 버리고, 민중 직접 혁명의 수단을 취함을 선언하노라.

 

4

 

조선 민족의 생존을 유지하자면 강도 일본을 구축(驅逐)할지며, 강도 일본을 구축하자면 오직 혁명으로 할 뿐이니, 혁명이 아니고는 강도 일본을 구축할 방법이 없는 바이다.

 

그러나 우리가 혁명에 종사하려면 어느 방면부터 착수하겠느뇨?

 

구시대의 혁명으로 말하면 인민은 국가의 노예가 되고, 그 이상에 인민을 지배하는 상전(上典), 곧 특수 세력이 있어 그 소위 혁명이란 것은 특수 세력의 명칭을 변경함에 불과하였다. 그러므로 인민은 혁명에 대하여 다만 갑,을, 양 세력, 곧 신구 양상전(兩上典)의 숙인(熟仁), 숙폭(熟暴), 숙선(熟善), 숙악(熟惡)을 보아 그 향배(向背)를 정할 뿐이요, 직접의 관계가 없었다. 그리하여 '주기군이조기민(誅其君而弔其民)'이 혁명의 유일 종지(宗旨)가 되고, '단사호장이영왕사(簞食壺奬以迎王師)'가 혁명사의 유일 미담이 되었거니와, 금일 혁명으로 말하면 민중이 곧 민중 자기를 위하여 하는 혁명인 고로 '민중 혁명' 이나 '직접 혁명' 이라 칭함이며, 민중 직접의 혁명인 고로 그 비등(沸騰) 팽창의 열도가 숫자상 강약 비교의 관념을 타파하며, 그 결과의 성패가 매양 전쟁학상의 정궤(定軌)에 일출(逸出)하여 무전무병(無錢無兵)한 구축하나니, 그러므로 우리 혁명의 제1보는 민중 각오의 요구이니라.

 

민중이 어떻게 각오하느뇨?

 

민중은 신인(神人)이나 성인(聖人)이나 어떤 영웅 호걸이 있어 '민중을 각오'하도록 지도하는 데서 각오하는 것도 아니요, "민중아, 각오하자.", "민중이여, 각오하여라." 그런 열규(熱叫)의 소리에서 각오하는 것도 아니며, 오직 민중이 민중을 위하여 일체 불평, 부자연, 불합리한 민중 향상의 장애부터 먼저 타파함이 곧 민중을 각오케 하는 유일한 방법이니, 다시 말하자면 곧 선각(先覺)한 민중이 전체를 위하여 혁명적 선구(先驅)가 됨이 민중 각오의 제일로(第一路)니라.

 

일반 민중이 기(飢)·한(寒)·곤(困)·고(苦)·처호(妻呼)·아제(兒啼)·세납(稅納)의 독봉(督捧)·사채(私債)의 최촉(催促)·행동의 부자유 등 모든 압박에 졸리어, 살려니 살 수 없고 죽으려 하여도 죽을 바를 모르는 판에, 만일 그 압박의 주인(主因)되는 강도 정치의 시설자인 강도들을 격폐(擊斃)하고 강도의 일체 시설을 파괴하고, 복음이 사해(四海)에 전하며, 만중(萬衆)이 동정의 눈물을 뿌리어, 이에 인인(人人)이 그 '아사(餓死)' 이외에 오히려 혁명이란 일로(一路)가 남아 있음을 깨달아, 용자(勇者)는 그 의분(義憤)에 못 이기어, 약자(弱者)는 그 고통에 못 견디어, 모두 이 길로 모여들어 계속적으로 진행하며 보편적으로 전염하며 거국 일치의 대혁명이 되면 간활잔폭(奸猾殘暴)한 강도 일본이 필경 구축되는 날이라. 그러므로 우리의 민중을 환성(喚醒)하여 강도의 통치를 타도하고 우리 민족의 신생명(新生命)을 개척하자면 양병(養兵) 10만이 일척(一擲)의 작탄(炸彈)만 못하며, 억천장(億千張) 신문 잡지가 1회 폭동만 못할지니라.

 

민중의 폭력적 혁명이 발생치 아니하면 이(已)이어니와, 이미 발생한 이상에는 마치 현애(懸崖)에서 굴리는 돌과 같아서 목적지에 도달하지 아니하면 정지하지 않는 것이라, 우리 이왕(已往)의 경과로 말하면 갑신정변은 특수 세력이 특수 세력과 싸우던 궁중 일시의 활극이 될 뿐이며, 경술 전후의 의병들은 충군애국(忠君愛國)의 대의(大義)로 격기(激起)한 독서 계급의 사상이며, 안중근, 이재명 등 열사의 폭력적 행동이 열렬하였지만, 그 후면에 민중적 역량의 기초가 없었으며, 3·1 운동의 만세 소리에 민중적 일치의 의기가 별현(瞥現)하였지만, 기(其) 1만 빠지면 비록 굉렬장쾌(轟烈壯快)한 거동이라도 또한 전뢰(電雷_같이 수속(收束)하는도다.

 

조선 안에 강도 일본이 제조한 혁명 원인이 산같이 쌓이었다. 언제든지 민중의 폭력적 혁명이 개시되어 "독립을 못 하면 살지 않으리라", "일본을 구축하지 못 하면 물러서지 않으리라."는 구호를 가지고 계속 전진하면 목적을 관철하고야 말지니, 이는 경찰의 칼이나 군대의 총이나 간활(奸猾)한 정치가의 수단으로도 막지 못하리라.

 

혁명의 기록은 자연히 참절장절(慘絶壯絶)한 기록이 되리라, 그러나 물러서면 그 후면에는 흑암(黑暗)한 함정(陷穽)이요, 나아가면 그 전면에는 광명한 활로(活路)니, 우리 조선 민족은 그 참절장절한 기록을 그리면서 나아갈 뿐이니라.

 

이제 폭력 - 암살, 파괴, 폭동 - 의 목적물을 대략 열거하건대,

 

1. 조선 총독급(及) 각 관공리
2. 일본 천황급 각 관공리
3. 정탐노(偵探奴), 매국적(賣國賊)
4. 적의 일체 시설물

 

차외(此外)에 각 지방의 신사나 부호가 비록 현저히 혁명 운동을 방해한 죄가 없으리라도, 만일 언어 혹 행동으로 우리의 운동을 완화하고 중상하는 자는 우리의 폭력으로써 대부(對付)할지니라. 일본인 이주민은 일본 강도 정치의 기계가 되어 조선 민족의 생존을 위협하는 선봉이 되어 있은즉 또한 우리의 폭력으로 구축할지니라.

 

5

 

혁명의 길은 파괴부터 개척할지니라. 그러나 파괴만 하려고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건설하려고 파괴하는 것이니, 만일 건설할 줄을 모르면 파괴할 줄도 모를지며, 파괴할 줄을 모르면 건설할 줄도 모를지니라. 건설과 파괴가 다만 형식상에서 보아 구별될 뿐이요, 정신상에서는 파괴가 곧 건설이니, 이를테면 우리가 일본 세력을 파괴하려는 것이,

 

제 1은 이족 통치(異族統治)를 파괴하자 함이다. 왜? '조선'이란 그 위에 '일본'이란 이족, 그것이 전제하여 있으니, 이족 전제의 밑에 있는 조선은 고유적 조선이 아니니, 고유적 조선을 발견하기 위하여 이족 통치를 파괴함이니라.

 

제 2는 특권 계급을 파괴하자 함이다. 왜? '조선 민중'이란 그 위에 총독이니 무엇이니 하는 강도단의 특권 계급이 압박하여 있으니, 특권 계급의 압박 밑에 있는 조선 민중은 자유적 조선 민중이 아니니, 자유적 조선 민중을 발견하기 위하여 특권 계급을 타파함이니라.

 

제 3은 경계 약탈 제도를 파괴하자 함이다. 왜? 약탈 제도 밑에 있는 경제는 민중 자기가 생활하기 위하여 조직한 경제가 아니요, 곧 민중을 잡아먹으려는 강도의 살을 찌우기 위하여 조직한 경제니, 민중 생활을 발전하기 위하여 경제 약탈 제도를 파괴함이니라.

 

제 4는 사회적 불평균을 파괴하자 함이다. 왜? 약자 이상에 강자가 있고, 천자 이상에 귀자가 있어 모든 불평균을 가진 사회는 서로 약탈, 서로 박삭(剝削), 서로 질투 구시(仇視)하는 사회가 되어, 처음에는 소수 행복을 위하여 다수의 민중을 잔해(殘害)하다가 말경(末境)에는 또 소수끼리 서로 잔해하여 민중 전체의 행복이 필경 숫자상의 공(空)이 되고 말 뿐이니, 민중 전체의 행복을 증진하기 위하여 사회적 불평균을 파괴함이니라.

 

제 5는 노예적 문화 사상을 파괴하자 함이다. 왜? 유래하던 문화 사상의 종교, 윤리, 문학, 미술, 풍속, 습관 그 어느 무엇이 강자가 제조하여 강자를 옹호하던 것이 아니더냐? 강자의 오락에 공급하던 제구(諸具)가 아니더냐? 일반 민중을 노예화하던 마취제가 아니더냐? 소수 계급은 강자가 되고, 다수 민중은 도리어 약자가 되어 불의의 압제를 반항치 못함은 오로지 노예적 문화 사상의 속박을 받은 까닭이니, 만일 민중적 문화를 제창하여 그 속박의 철쇄(鐵鎖)를 끊지 아니하면, 일반 민중은 권리 사상이 박약하며, 자유 향상의 흥미가 결핍하여 노예의 운명 속에서 윤회할 뿐이라. 그러므로 민중 문화를 제창하기 위하여 노예적 문화 사상을 파괴함이니라.

 

다시 말하자면 '고유적 조선의', '자유적 조선 민중의', '민중적 경제의', '민중적 사회의', '민중적 문화의' 조선을 건설하기 위하여 '이족 통치의', '약탈 제도의', '사회적 불평균의', '노예적 문화 사상의' 현상을 타파함이니라. 그런즉 파괴적 정신이 곧 건설적 주장이라.

 

나아가면 파괴의 '칼'이 되고, 들어오면 '기(旗)'가 될지니, 파괴할 기백은 없고 건설할 치상(癡想)만 있다 하면 5백 년을 경과하여도 혁명의 꿈도 꾸어 보지 못할지니라. 이제 파괴와 건설이 하나요 둘이 아닌 줄 알진대, 민중적 파괴 앞에는 반드시 민중적 건설이 있는 줄 알진대, 현재 조선 민중은 오직 민중적 폭력으로 신조선 건설의 장애인 강도 일본 세력을 파괴할 것 뿐인 줄을 알진대, 조선 민중이 한편이 되고 일본 강도가 한편이 되어, 네가 망하지 아니하면 내가 망하게 된 '외나무다리 위'에 선 줄을 알진대, 우리 2천만 민중은 일치로 폭력 파괴의 길로 나아갈지니라.

 

민중은 우리 혁명의 대본영이다.

 

폭력은 우리 혁명의 유일 무기이다.

 

우리는 민중 속에 가서 민중과 휴수( 手)하여 부절(不絶)하는 폭력 ― 으로써 강도 일본의 통치를 타도하고, 우리 생활에 불합리한 일체 제도를 개조하여 인류로써 인류를 압박치 못하여, 사회로써 사회를 박삭치 못하는 이상적 조선을 건설할지니라.

 

1923년 1월 일 의열단(義烈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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