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발 등에 떨어진 불

샌. 2012. 9. 17. 11:35

첫째가 출산을 앞두고 있다. 그동안 임신 과정을 지켜보며 한국에서 아이를 갖는다는 게 무척 힘들다는 걸 느꼈다. 우선 병원의 과잉(?) 진료비에 부담이 크다. 그렇다고 병원에서 권하는 검사를 안 받는다, 할 수도 없다. 첫째도 초음파 정밀 검사, 양수 검사, 유전자 판별 검사 등을 받느라고 200만 원이 넘는 돈이 들었다. 이렇게까지 자세하게 검사를 해야 하는지 의문이 든다. 외국에서는 35세가 넘는 고령 임산부가 아니면 초음파 이외의 검사는 하지 않는다고 들었다. 우리나라는 조금만 이상이 보여도 온갖 정밀 검사를 받으라고 권한다. 두 달 전에는 태아에게 다운증후군이 염려된다고 해서 특별 검사를 받기도 했다. 검사 결과가 나오기까지 가족들이 얼마나 노심초사했는지 모른다. 의사는 혹시나 있을지 모를 질병 때문에 확인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한다. 병원 측 입장이 이해 안 되는 건 아니지만 내가 볼 때는 하지 않아도 될 검사를 남발하는 것 같다.

 

요사이는 출산 뒤에 대부분 산후조리원을 이용한다. 미리 예약하지 않으면 들어가기 어려울 정도다. 첫째도 벌써 몇 달 전에 예약해 두었다. 이 비용 역시 만만치 않다. 두 주일 있는데 350만 원이다. 이렇다면 출산에 드는 돈이 거의 700만 원이나 된다. 이 경비의 대부분을 개인이 부담해야 한다. 일본의 경우에는 워낙 병원비가 비싸서 1,000만 원 가까이 나오지만 정부나 지자체에서 70% 정도를 부담하기 때문에 개인은 300여만 원이면 된다고 한다. 산후조리도 집에서 하는데 지자체에서 비용을 대주는 산후도우미가 집으로 찾아온다고 한다. 출산과 보육 시스템이 우리나라보다 훨씬 잘 되어 있는 것 같다.

 

아이를 낳고 나서도 문제다. 맞벌이 가정의 경우에는 육아 부담을 조부모가 떠맡는다. 자식 결혼시키느라 등골 빠졌는데 나중에는 손자까지 책임져야 하는 게 한국의 현실이다. 예외적으로 공무원만이 특혜를 받는데 3년까지 육아휴직을 쓸 수 있다. 법적으로는 어떻게 되어 있는지 모르지만 일반 기업체 경우는 몇 개월을 쉬는 게 고작이다. 직장은 다녀야 하고 아기를 믿고 맡길 데가 없으니 울며 겨자 먹기로 늙은 부모에게 손주를 맡긴다. 싫더라도 마다할 수 있는 부모는 거의 없다. 주변에서 이와 같은 슬픈 사례를 자주 본다.

 

둘째가 임신을 미루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출산율이 낮다고 걱정만 할 게 아니라 정책적으로 뒷받침해 주면 이는 저절로 해결되는 문제다. 근본은 그냥 둔 채 나타난 현상만 가지고 호들갑을 떠는 꼴이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복지국가에 대한 비전이 제시되고 있는데 출산과 보육 시스템에서도 공공성을 강화할 필요가 절실하다. 쓸데없는 4대강 사업 대신 국가 예산을 이런 데 투자하는 게 훨씬 효율성이 높다고 본다. 출산과 육아 경비 지원과 함께 공공보육원을 대폭 만들 것을 건의한다. 이렇게 되면 보육원의 간호사와 보모들 일자리가 늘어나고, 아이를 맡길 수 있어 젊은 여자들의 고용이 늘어나며, 지금 국민이 떠맡아야 하는 보육 스트레스도 많이 줄어들 것이다.

 

소규모일지라도 이런 보육원이 각지에 산재해야 한다. 직장 부근에 있는 보육원에 아이를 맡긴다면 근무하는 틈틈이 아이를 만날 수도 있다. 물론 엄마가 가정에서 아이를 기르는 게 최선이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그렇다면 엄마와 아이가 함께 행복한 환경을 국가가 제공해야 한다. 현재로서는 공공보육원의 대폭 확대가 제일 나은 방법으로 보인다. 이건 정책적 결단의 문제이므로 새 정부에서는 반가운 소식이 들리길 기대한다. 딸이 결혼하고 아기를 가지게 되니 이런 문제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당장 내 발등에 떨어진 불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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